수난의시간들5

{11권 44장} 게쎄마니에서 겪으신 예수님의 삼중적인 수난.

은가루리나 2017. 10. 26. 01:56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11-44



1913년 1월 22일




게쎄마니에서 겪으신 예수님의 삼중적인 수난.

키드론 개울의 오수에 잠기기를 허락하신 의미




1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의 수난 중 

특히 게쎄마니에서 겪으신 것에 대해 묵상하다 보니

내가 완전히 예수님 안에 잠겨 있었는데,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나의 첫 번째 수난은 사랑에 의한 수난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로 자기 자신을 악에게 넘겨주는 첫걸음은 

사랑 결핍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어서 죄에 떨어지는 것이다.


3 나를 통해서 사람들의 그 사랑 결핍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고

누구보다도 더 나를 괴롭힌 것이 바로 사랑이었으니,

사랑이, 압착기에 깔려 으스러지는 것 이상으로 나를 짓누르면서,

이로 인해 

생명을 얻게 될 사람들의 수만큼 많은 수의 죽음을 내게 안겨 주었던 것이다.



죄의 두 번째 행보는 하느님에게서 그분의 영광을 빼앗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버지께서 사람들에게 빼앗긴 영광의 보상을 받으시려고

나로 하여금 죄에 의한 수난을 겪게 하셨으니,

각각의 죄가 저마다 내게 그 특유의 수난을 안기는 식이었다.


5 물론 수난의 시간은 하나였지만,

세상 끝날까지 저질러질 죄들의 수만큼 많은 수난들을 겪었다는 말이다.

내가 그리함으로써 아버지의 영광이 회복되었던 것이다.



죄에서 생기는 세 번째 결과는 인간의 나약이다.

그래서 유다인의 손으로 수난을 겪고자 하였다.

이것이 나의 세 번째 수난이었으니 인간이 상실한 힘을 회복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7 따라서, 사랑은 사랑에 의한 수난으로 제자리를 찾아 회복었으며,

아버지의 영광은 죄에 의한 수난으로 제자리를 찾아 회복었으며,

인간의 힘은 유다인들에 의한 수난으로 제자리를 찾아 회복되었다.


8 나는 이 모든 것을 '동산' 에서 겪었는데, 

그 고통이 너무 크고, 그 죽음이 - 그 극심한 고뇌의 경련이 너무 많이 일고 있어서, 

아버지의 뜻이 있었다면 실제로 거기에서 벌써 죽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