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10. p.60-64 제 1편 제 5장 거룩한 위탁의 개념(槪念) ②

은가루리나 2017. 12. 26. 13:28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84  추천 0  2014.07.24. 06:06


제1편, 거룩한 위탁의 본질


제1장 최고의 규범으로서의 천주의 의지

제2장 천주의 명시의지와 임의의지

제3장 천주의 명시의지에 대한 순명

제4장 임의의지에 대한 적합

제5장 거룩한 의탁의 개념

제6장 위탁과 현덕

제7장 위탁에 있어서의 願望과 기도

제8장 위탁에 있어서의 노력

제9장 위탁에 있어서의 고통감

제10장 위탁과 희생의 서원



p.60


제 1편 거룩한 위탁의 본질


제 5 장  거룩한 위탁의 개념(槪念) 




(1) 거룩한 무관심(無關心)



이것이 없으면 위탁은 불가능하다.

천주의 의지처럼,

그것 자신에 있어 사랑해야 할 것은 그밖에 하나도 없다.


천주의 의지는 

미리 명시(明示)되었던지, 각가지 일에 의해서 나타나든지,

영원한 생명에 우리를 이끌고,

현세에서부터 신앙과 사랑과 거룩한 일에 풍부케 하려는 이외에

결코 다른 목적은 없다.


천주께서는 우리의 아버지 또는 구세주로서의 성심(聖心)에

인자하심을 충만히 간직하시고,

그 손에 은혜를 그득히 가지시고 당신 스스로 찾아오신다.


그러나 

천주의 의지가 그렇게도 사랑스러운 것이라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많은 장애(障碍)에 부딪친다.


실로 천주의 계명, 우리의 회칙(會則), 

은총의 권유, 선택(選擇)의 철저한 실천 등,

대개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에 속하는 것은 

모두 날마다 무수한 희생을 우리에게 부과시키며,

더구나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는 

예지(豫知)된 십자가에 뜻하지 않던 것을 덧붙이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곤란은 우리의 타고난 타락에 의한 것이며,

이 타락 때문에 

우리는 교만과 육욕에 사로잡힌 자로서 

삼중(三重)의 사욕(邪慾)에 고민하는 것이다.


즉 굴욕(屈辱)과 궁핍(窮乏)과 고뇌(苦惱)와는 

비록 그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라도,

우리에게 반감(反感)을 일으키게 하지만,

옳고 그릇된 쾌락과 명예와 헛된 재보(財寶)와는 우리를 매혹한다.


악마와 세속과 피조물과 사변(事變) 등은 공모(共謀)하여 

우리의 마음에 그러한 욕정(欲情)을 일으키려고 한다.


많은 구실로 우리는 천주의 의지를 물리치고 

이미 그것을 돌보려고도 하지 않는 위험에 까지 가끔 떨어지는 적이 있다.


p.61


이러한 경우에, 

누가 우리의 눈을 뜨게 할 것인가.

누가 그와 같은 질곡(桎梏)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줄 것인가.

그것은 모든 형태의 그리스도교적 제욕(制慾)이다.


단지 인종(忍從)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이미 꽤 광범위에 걸친 제욕이 필요하다.


이 사실이 

세상에 그렇게도 허다한 반항자(反抗者), 불평불만을 말하는 이가 있고,

따라서 그렇게도 많은 불행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와

또한 완전한 복종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적고,

그러기 때문에 

참된 행복을 맛보는 영혼이 얼마나 드문가를 말해주는 이유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위탁에는 

적어도 그 습관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제욕(制慾)이 필요하다.


우리의 의지가 만일 죄의 큰 밧줄이라든가 무수한 작은 애착의 끈으로

지상(地上)에 연결되어 있다면, 

어떻게 천주에까지 높이 오를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의 의지가 희생의 정신에 의해서 견고하게 되지 않았다면,

또한 만일 모든 정욕(情慾)을 제어할 수 없다면,

그리고 또한 

천주와 천주의 거룩한 의지 외의 다른 모든 사물에 무관심하지 않는다면,

의지는 어떻게 어머니의 품안에 안겨진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천주의 손에 자신을 맡기고,

그 모든 뜻을 

비록 그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라도,

기꺼이 받아 봉행하려는 마음 준비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의지는 우선,

일반적으로 참을성이 강한 그리고 오랜동안의 노력에 의해서 

자제(自制)한다는 것,

인내(忍耐)하는 것, 

유혹도 고난도 개의(介意)치 않게 되도록 습관을 붙일 필요가 있다.


요약하자면, 

의지는 소위 성인들의 완전한 이탈(이탈),

또는 거룩한 무관심(無關心)을 수득(修得)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위탁에 있어서는, 적어도 판단과 의지와의 무관심이 필요하다.


그 때 의지는,

천주는 모든 것이며, 피조물은 허무에 불과하다는 확신에 충만되어, 

만사에 있어 사랑하고 바라는 천주와,

자신을 목적에 이끄시는 천주의 거룩한 의지만을 보고,

또한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의지가 넓은 범위의 기호(嗜好)의 무관심을 획득하여

마치 천주를 목말라하는 영혼에서 보는 바와 같은

세속과 그 환락(歡樂)과 지상(地上)의 재부(財富)와 명예와,

천주로부터 우리를 멀리하는 사물은 모두 싫어지고,

우리를 천주께 가까이 가게 하는 것은 모두 고난까지도 유쾌한 것이 되면,

거룩한 위탁의 실천은 얼마나 쉽게 될지 모른다.


p.62


그러나, 이 무관심은 

병적(病的)인 무감각(無感覺)이거나 게으른 무관심도 아니며,

또한 고통을 향하여,「그대는 허무한 말에 불과하다」라고 말한

「스토아」주의자와 같은 교만한 경멸(輕蔑)도 아니다.


그것은 의지(意志)의 이상한 정력(精力)이다.


즉, 의지는 이성(理性)과 신앙(信仰)에 강하게 비추어져 

모든 사물에서 온전히 이탈하여

자기의 온전한 주(主)로서 완전한 자유로써 그 모든 세력을 모아,

천주와 그 거룩한 의지 위에 그것을 집중한다.


이렇게 하여 의지는 아무리 마음을 끄는 것이거나,

또는 싫게 여겨지는 것이라도,

피조물이라는 피조물에는 무엇하나 움직여지지 않고,

굳게 자신을 간직하여 모든 일을 기꺼이 맞이하며, 

행동하는 것도 행동하지 않는 것도

다만 

섭리의 뜻이 제시하시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한다.


p.63


거룩한 무관심의 상태에 있는 영혼은

천주의 의지 쪽에 언제라도 기울이려고 하면서

평형(平衡)을 유지하고 있는 저울이거나,

또는 어떠한 형태라도 주어지는대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재료(材料)이거나

또는 천주께서 뜻대로 붓을 내릴 수 있는 백지(白紙)와도 같다.


그것은 또한,

「고유의 형태를 가지지 않은 액체(液體)라고 비유할 수 있다.

액체의 형태는 담기는 그릇에 따라 다르다.

액체를 열가지 틀리는 그릇에 쏟으면, 각각 다른 형태를 

그리고 부어지자 마자 즉시 받아들인다.」(「게」주교)



그와 같은 영혼은「마치 천주의 손 안에 있어, 

그 영원한 임의의지에 의한 모든 인각(印刻)을 마찬가지로 받는 

한 덩어리의 밀납(密蠟)」이나

또는 

「자신의 의지로는 아직 아무것도 바라거나 사랑하지도 않는 유아(幼兒)」

(「신애론」9편 4 및 13장) 처럼 부드럽고 다루기 쉽다.


또는나는 당신 앞에 가축과 같았나이다.」(성영 72 . 22)


「가축은 

그 기르는 주인이 명하는 일 가운데서 

이러저러한 차별이나 선택등을 하지 않고,

때와 장소와, 사람과 짐과의 구별도 하지 않는다.


거리, 밭, 산, 골짜기, 어디서나 주인의 용무를 수행한다.


오른 쪽에로도 왼 쪽에로도 이끌려,

주인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라도 간다.


아침, 밤, 낮, 저녁 언제라도 용무를 수행할 각오를 하고있다.


어른과 아이의 구별 없이 구사(驅使)되는 대로 움직이며,

분뇨(糞尿)와 금괴(金塊) 자갈과 보석과의 여하를 불문하고, 

불평없이 운반한다.」

(성「쥬르」저 「오주께 대한 인식과 사랑」3편 8장 8절)


p.64


영혼의 상태가 그렇게까지 되면,

「천주의 의지는 어떠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영혼의 자유스러움을 보고,

마치 주인이 없는 토지처럼 이를 점령해 버린다.


그러한 영혼에게 있어, 모든 것은 마찬가지로 선(善)하게 보인다.


자신이 무엇이건, 또 아무 것도 아니건,

위에 서서 명하든지 밑에 있어 복종하든지, 업신여김을 당하든지,

또는 잊혀지든지, 궁핍하든지, 궁핍하지 않든지, 

한가하거나, 분주하거나, 혼자 있거나, 벗과 함께 있거나,

또한 그것이 어떠한 벗이든지, 

길이 멀리 보이거나, 겨우 발을 디뎌놓을 곳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거나, 

위로가 있거나, 

무감각이거나 또는 그 무미건조(無味乾燥)에 있어 유감을 당하든지,

강장(强壯)하든지, 

병든 몸으로 몇년동안이나 쇠약해 있든지, 무력(無力)하든지,

봉사하려고 온 수도원단체의 무거운 짐이 되든지, 

장수(長壽)하든지, 단명(短命)하든지, 빈사상태(瀕死狀態)에 있든지, 

모든 것은 그에게 있어 유쾌하고 만사는 선(善)하다.


그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일체를 바라고,

일체를 바라기 때문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게」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