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9. 어느 때 라마크리슈나는 케샵이란 제자에게 말했다.
<왜 신의 영광과 전능을 그렇게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 아버진 집도 많고 말과 소도 많다. 또 넓은 정원과 과수원을 가지고 있다. ---
아버지 앞에 앉아 있는 어린이는 결코 이런 식으로는 생각지 않는다.
"아버지는 참 다정한 분이다. 나를 몹시 사랑하신다." 그는 또 이런 식으로도 생각지 않는다.
아버지가 자기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보살펴주는 것이 왜 이상하게 보이겠는가.
우리는 모두 신의 어린아이다.
그가 우리를 보살펴주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한 것이다.
그런데 왜 걱정을 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신의 신봉자는 그런 식으로 곰곰이 생각하는 대신에
신과 가장 친한 관계가 된다.
신을 그 자신으로 만든다.
신을 귀찮게 졸라대고 신을 자랑으로 여기고 신에게 이렇게 억지를 부린다.
"당신은 내 기도를 들어줘야 합니다. 당신 자신을 나에게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신의 영광과 전능만을 곰곰이 생각한다면
신을 너 자신으로서, 너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로서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신에게 억지로 졸라댈 수도 없다.
"그(神)는 얼마나 위대한가, 그는 우리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이런 식의 생각만이 들 것이다.....
신을 너 자신으로 생각하라.
생각할 수 있는 데까지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라.
그러면 너는 신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690. 특별한 태도와 확고부동한 헌신에 의하여 신을 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신은 너의 기도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여기 예를 들어보자.
두 사람이 서로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을 때는 형식적인 존대말을 쓴다.
그러나 보다 깊이 친해지게 되면 형식적인 말은 사라진다.
그 대신 가장 다정한 말로 대화를 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신을 우리와 가장 가까운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
여자가 부정한 관계를 갖게 되면 처음에는
그 사실에 대하여 아주 부끄러워한다.
그리고 그것을 비밀로 한다. 그러나 사랑이 무르익게 되면 이런 느낌은 다 사라져 버린다.
그녀는 대담하게 가정을 버리고 공공연하게 애인과 살고자 한다.
그러나 만일 남자가 변심하게 되면 그녀는 그놈의 멱살을 움켜잡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당신 때문에 나를 보호해 주던 집을 나왔어요.
자 당신의 태도를 분명히 말해 주셔요.
내 생활비를 계속 대줄 것인지 아닌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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