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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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나의 아버지시다.
아기가 처음으로 "아빠!"라는 말을 하는 그날은 우리가 대사(大赦)를 받게 되는 날이다.
그리고 조만간에 우리 모두에게 그날이 올 것이다.
우리가 다소 깨어서 그리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입술을 오물거리다 드디어 "아빠!"라고 발음하게 되는 것은
애오라지 그 어른의 덕분이다.
자상하신 정으로 우리를 어르고,
점잖으신 얼굴을 찌푸려가면서까지 "아빠"라는 말을 가르치시는 덕분이다.
아기가 태어나는 데는 아홉 달이 걸린다.
우리가 하느님 아들로 태어나는 데는 족히 한평생이 걸린다.
엄마의 품속은 좁아 아기는 마음대로 놀 수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품속은 광대무변하다.
하지만 뛰어다니고 놀고 하는 일은 그 어른의 품 '안에서' 해야 한다.
우리를 품어 낳아주시는 분의 얼굴을 아직 뵙지 못한 까닭이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간다" (사도 17,28)
그러나 아직 그분을 뵙지는 못했다.
이곳에서 빠져나갈 때에 비로소 우리는 그분을 마주볼 것이다.
성서 말씀대로.
지금은 하느님이 우리를 꼬옥 감싸고 계신다.
그래서 그분의 행동을 짐작할 수 없는 처지를 신앙이라 하고,
우리를 사람꼴로 만들어가는 힘을 희망이라 하고,
품속에 가득히 어린 그 사랑을 애덕이라 한다.
그런데도
그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힘든 노릇이다.
힘들다고 한 것은 매사가 침묵 속에 이루어지며,
침묵은 사람을 두려움으로 몰아넣는 때문이다.
"나 여기 있다."고 말씀해주심직도 하다.
소리나 빛으로 당신이 거기 계심을 알려주심직도 하다.
출애굽 사건처럼 그분이 몇 번 그렇게 하신 적이 없지는 않으나,
그때는 인류가 아직 어려서
그렇게 해주시지 않으면 그분의 현존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침묵을 더 좋아하신다.
지금 와서는 굳게 침묵을 지키신다.
인류가 철들 만한 나이에 이르렀으므로 그것이 더 어울린다고 여기신 까닭이다.
하느님의 침묵은 인간이 믿음으로 그만큼 철이 들었다는 표지이다.
그분의 침묵이 두렵다면 그대가 아직 어린 데가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침묵과 어둠을 무서워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거기에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실상 하느님의 사물은 말이 필요없는 것들이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얘기하고
창공은 그 손수 하신 일을 알려주도다.
낮은 낮에게 말을 전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도다.
그 말도 이야기도, 비록 소리 없어도
그 소리 온 땅으로 퍼져나가고,
그 말은 땅끝까지 번져가도다" (시편19,2-5)
만물이 이야기하고 하늘이 속삭인다. 그러나 하느님은 잠자코 계신다.
그래서 나는 성모님의 발현이나,
그이의 현존을 표하는 놀라운 기적에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다.
차라리 덤덤한 로사리오 기도를 그이께 올리고,
눈을 감고 조용히 그이께 말씀을 여쭙는다.
나는 착각에 빠질까 두려워한다.
보이지 않는 분과의 만남에서 감각적 위안을 기대치는 않는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걷는 길은
착각과 환영에 사로잡힌 길과는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그 길은 하느님의 침묵 속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는 십자가 밑을 지나는 길이다.
'어둔 밤'을 걸아가는 길이다.
그 어둠이 빛과 마찬가지다. 우주 안은 어둡다. 대기권 밖은 어둡다.
그러나 이 순수한 어둠보다 환한 것이 세상에 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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