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20권

천상의 책 {20권54장} 예수님께서 글을 쓰지 않으신 까닭. 이 글에는 하늘나라의 반영이 있다. 하느님 뜻의 나라가 도래할 시기. 자원해서 겪는 고통

은가루리나 2018. 6. 21. 15:38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20-54



1927년 1월 30일



예수님께서 글을 쓰지 않으신 까닭

이 글에는 하늘나라의 반영이 있다.

하느님 뜻의 나라가 도래할 시기.

자원해서 겪는 고통의 위력




1 '다정하신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나에게 매사에 당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분은 글을 쓰신 적이 없었다.


복음서에 딱 한 번 그분께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는 대목이 나오지만,

그때에도 그분은 펜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쓰셨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글을 쓰기를 원하시니,

내가 그분을 본받는 길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시는 셈이 아닌가?

그분은 조금도 쓰지 않으셨는데, 나는 이토록 많이 써야 하니 말이다?'



2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귀여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오셨다.

내 팔에 안겨 얼굴을 내 얼굴에 갖다 대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내 딸아, 입맞춤을 내게 주면 내 입맞춤을 너에게 주겠다."



3 그렇게 여러 차례 입맞춤을 드리고 나자

그분은 한 번 더 그렇게 하라고 하신 다음,


"딸아, 내가 왜 글을 쓰지 않았는지 알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것은 너를 통해 글을 쓸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4 실상 너의 지성에 활기를 불어넣고, 

너에게 낱말들을 공급하고,

내 손으로 너의 손을 움직이고,

너로 하여금 펜을 잡고 종이 위에 낱말들을 쓰게 하는 것은 나다.


그러니 글을 쓰는 것은 나지 네가 아니다.

너는 다만 내가 쓰기를 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뿐이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이 너의 일이고,

나머지 일은 내가 혼자 다 하는 것이다.



5 네가 느껴 알다시피,

너는 여러 번 쓸 힘이 없어서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나는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나라는 것을 네 손으로 직접 감지하게 하려고

나 자신의 생명으로 너를 감싸 활기 있게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몸소 쓰곤 하였다.


너는 여러 차례 이를 체험하지 않았느냐?


6 그런데 한 시대가 지난 뒤에야 '지고한 피앗의 나라'를 알릴 인즉,

나는 '구원의 나라'를 먼저 알릴 시간을 주고

그다음에 '거룩한 피앗의 나라'를 알리기 위하여, 

그 당시에는 글을 쓰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피앗의 나라가 더 가까이 왔을 때에

너와 함께. 너를 통해 쓰기 위해서였고,


또한 피조물에게 나의 이 뜻의 극단적인 사랑을,

그들에 대한 사랑으로 내 뜻이 행했고 겪었고 행하고자 하는 것을

새로운 선물로 주기 위해서였다.




7 딸아, 새로운 것은 흔히 새로운 생명, 새로운 재산을 가져온다.

사람들은 그래서 새로운 것에 주의를 쏟으며 

마치 그것에 실려 가듯 몸을 맡긴다.


게다가 내 거룩한 뜻에 대하여 새로이 나타내 보이는 이 새로운 것은 

신적인 힘과 감미로운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8 그것은 

인간적인 뜻의 (연기에) 그을린 영혼 위에 천상 이슬처럼 쏟아져 내리면서 

행복과 빛과 무한한 재산을 날라다 주는 일꾼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 새로이 드러내 보이는 것들 속에는 

또한 아무런 위협도 대경실색할 것도 없다.

그런 어떤 것이 있다면

인간적인 뜻의 미궁 속에 남아 있기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머지 모든 것 속에서 

사람은 단지 천국의 메아리와 언어 및 저 높은 곳에서 오는 향유를 볼 수 있고

- 이 향유는 사람을 거룩하게 하고 신화(神化)한다. -

지복의 나라에만 가득한 행복에 대하여 계약금을 치루는 셈이 된다.



9 나는 그래서 '거룩한 피앗'에 관한 글 쓰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낀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 속한 것들에 대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표현들 속에서, 

천국의 메아리, 지고한 뜻의 기나긴 사랑의 연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피조물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재산의 공유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은 

너무나 신가 없고 배은망덕한 자들일 것이다.



10 그럼에도 그분께서는

세계 역사를 통해 지나간 모든 것은 제쳐 두려고 하시는 것 같다.


마치 창조된 만물의 새 역사가 이제 막 시작되려는 것처럼, 

새 시대, 새 창조를 시작하시기를 원하시니 말이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하는 대로 맡기고 있어라.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11 그 말씀을 듣고 나는,

"저의 사랑이시여, 

이 '영원한 피앗의 나라'를 다른 무엇보다 더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모든 사랑과 업적들이 거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것들이 이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을 자랑으로 삼기까지 하십니다.


그토록 끔찍이 사랑하시는 나라 - 그 나라는 언제 오겠습니까?

당신께서는 어찌하여 그 나라의 도래를 서두르지 않으십니까?" 하고 

그분께 물었다.




12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딸아, 내 거룩한 뜻에 대한 지식들이 달릴 길을 달리고 있으면,

사람들은 그 지식들 안에 있는 위대한 선을 보고 

만장일치로 내 나라가 속히 오기를 열망하며 간청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어떤 사람도 생각한 적 없는 선으로서,

내 뜻의 나라는 

하늘나라의 유출, 천상 행복의 메아리, 지상 선들의 충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3 그리고 창조된 만물도 그들의 소리 없는 언어로, 

아니 상으로만 소리 없는 언어로 그렇게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 내 뜻이 있고, 

이 뜻이 크고 우렁찬 소리로 

모든 사람에게 알려질 , 그 모두 위에 군림하여 다스릴 권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14 그러므로

땅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그 메아리와 그 탄식이 하나일 것이고,

모든 존재에게서 나오는 이 기도,

'지고한 '피앗의 나라가 오서.' 가 또한 하나일 것이다.


그러면 그 나라가 승리를 구가하여 피조물 가운데로 올 것이다.




15 여기에 지식의 필요성이 있다.


지식이 자극제가 되어 사람들의 식욕을 돋울이기에 

그토록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할 것이고,

그리하여 모두가 

그토록 행복한 나라에서 살고 싶은 원의와 열망을 느낄 것이다. 


그들 자신의 뜻으로 인해 처하게 된 폭정과 종살이에서 해방기 위함이다.



16 그들은 내가 드러내 보인 모든 것과 

'지고한 피앗' 이 내포한 좋은 것들에 대한 지식에 진보함에 따라

너의 모범을 찾아낼 것이다.


즉, 

네가 어떻게 하늘과 땅을 휘저으며 곳곳으로 돌아다니고

이 나라가 속히 알려지게 되기를 청하는지를 볼 것이다.


그들은 또 네가 그들에게 그토록 위대한 선을 얻어 주려고 

어떤 고통을 겪었는 지를 알게 될 것이고,

그 나라 안에서 살기 위해 자진해서 다가가려면 

어떻게 처신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17 따라서 모든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

내  나라가 모든 것을 완전히 갖추어,

더없이 큰 것이든 가장 작은 것이든 아무 것도 부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네 눈에 작아 보이는 것이 

내 지고한 뜻의 나라의 기초를 이룰,

순금으로 바뀐 거룩한 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18 나중에 나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다정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고한 피앗의 나라'를 크게 기리며 찬미하신다.


하지만 

바로 거룩한 뜻이신 그분 자신이나 

이를 전체로 소유하셨던 내 천상 엄마나 

이 세상에서는 행복하지 않으셨다.

그분들은 오히려 세상에서 고통을 가장 많이 받으신 분들이다.



19 그리고 나 자신도 그렇다.

그분께서는 나를 그분 뜻의 맏딸이라고 하시지만,

사십삼 년 이상이나 침상에만 붙박여 지내게 하셨으니,

그 동안 내가 무엇을 겪었는지는 예수님만이 아신다.


그럼에도 나는 실상 행복한 수인(囚人)이기도 하므로,

설령 누가 내게 제왕의 홀(笏)과 면류관을 준다고 하더라도

나의 이 행복한 운명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은 나를 넘치도록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20 그러나 이 행복이 인간의 눈앞에서는 사라진다.

외관상으로는 (행복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의 고통여왕이신 분의 고통 및 

예수님의 피조물 중에서 가장 작은 나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행복과 그 고통은 

아무래도 모순으로 보이는 것이다.'




21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불현듯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하나의 선, 하나의 나라를 이룩해야 하는 사람과 

그것을 누리기 위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는 속죄를 통하여 인간을 속량하며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왔다.

이 일을 하기 위하여 그들의 고통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것을 나 자신의 것인 양 짊어져야 했다.


22 공동 구자가 되어야 했던 내 거룩하신 엄마도 나와 다를 수 없었다.

그분께서 나의 작은 인성을 빚기 위하여 

그 지극히 깨끗한 가슴에서 나에게 주신 다섯 방울의 피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분의 심장에서 나온 것이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고통은 임무였고 

그것은 연악한 본성에 강요된 고통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원해서 겪은 고통이었다.



23 그러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우리가 겪었던 그 수많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숭고한 행복과 언제나 새롭고 끝없는 기쁨들과 지속적인 낙원을

나와 여왕이신 내어머니에게서 떼어 놓을 수 없었다.


24 고통에서 우리를 떼어놓은 것이 

- 왜냐하면 고통은 우리에게 본질적이거나 본성적인 것이 아니라

수행해야 할 임무였기 때문이다. -

우리 거룩한 뜻의 본성인 

무한한 행복과 기쁨의 바다에서 우리를 떼어 놓는 것보다 

더 쉬웠을 것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었고 또 우리 안에 생겨나게 했던 이 바다는

바로 우리 자신이요, 우리의 본질이었으니 말이다.



25 태양의 본성은 빛을 주는 것이고,

물의 본성은 갈증을 해소해 주는 것이며,

불의 본성은 온도를 높이고 모든 것을 불로 만드는 것과 같이

-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스스로의 본성을 잃을 것이다. -

내 뜻의 본성은 내 뜻이 다스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행복과 기쁨과 낙원이 솟아나게 한다.


하느님 뜻의 불행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 뜻의 완전한 충만도 없다.



26 인간적인 뜻의 개울은 바로 그 인간에게 쓰라린 슬픔을 만들어 주는데,

그런 인간적인 뜻이 우리 안으로는 들어온 적이 없었으므로 

우리에게는 언제나 행복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고,

기쁨의 바다들도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27 심지어 내가 십자가 위에 달려 있었을 때에도, 

또 내 어머니가 

내 거룩한 발밑에서 (영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도,

완전한 행복은 결코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만일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면,

나는 나 자신을 신성에서 떼어 내어 거룩한 뜻 바깥으로 나가서 

오직 인간적인 뜻과 본성만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28 그러므로 우리의 고통은 우리가 와서 완수할 임무로서 

우리 자신이 택한, 완전히 자발적인 고통이었다.

인간 본성이나 허약의 결실,

또는 타락한 본성에 대한 강요의 결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너는 너의 고통 역시 맡은 바 임무로서 치르는 고통, 

자원한 고통이라는 것이 기억나지 않느냐?


29 실제로 나는 산 제물의 신분에로 너를 부르면서

이를 자발적으로 수락하는지 물었었다.

그러자 너는 완전한 자유의사로 받아들이면서 '피앗'을 발하였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다시 후렴을 읊듯 너에게,

내 거룩한 뜻 안에서 또 이 뜻과 함께 사는 것을 수락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너는 다시 '피앗'을 발하였다.


이 피앗이 너를 새 생명에로 다시 태어나게 하여 그 자신의 딸로 삼았으니,

이는 '지고한 피앗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하여 

그것에 합당한 임무인 고통을 너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30 내 딸아, 

자원해서 받는 고통은 세력과 제국을 가질 만큼 강한 능력이, 

하느님마저 지배할 능력이 있다.


천상 아버지의 배를 찢고, 하느님 안에서 행한 그 찢음을 통하여 

은총의 바다들이 넘쳐흐르게 하면서.

지고하신 임금님의 승리와

이 자원한 고통의 제국을 가진 사람의 승리를 이룰 능력이 있는 것이다.



31 그러므로

크고도 놀라운 일인 구원사업에 자발적인 고통이 필요하였다.


위대한 기적인 내 '피앗의 나라'에도 그러한 고통이 필요하고,

그것은 임무로서의 고통, 거룩한 뜻에서 활기를 얻는 고통이다.


이들은 하느님과 피조물을 지배하는 제국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 임무에 내포된 크나큰 선을 줄 수 있는 것이다.



32 따라서, 바로 거룩한 뜻인 내가 고통을 받았다고 해서. 

또 내가 너를 이리도 오랫동안 침상에만 붙박여 지내게 했다고 해서,

그것이 너의 말처럼

'거룩한 피앗의 나라'의 행복에 대한 나의 찬미와 모순이 되는 것은 아니다.




33 하나의 선, 하나의 나라를 이룩해야 하는 사람은 

이 한가지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고통을 받으며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하느님을 이겨 선을 얻어 내는 일이다.


그 선을 받을 사람은 다른 어떤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며 그 진가를 인정하고, 

투쟁과 고통을 치르며 마침내 승리를 얻어그 전리품을 그들에게 주며 

기뻐하게 한 사람에게 감사하는 일이다.



34 그런즉

피조물 가운데에 있는 내 뜻의 나라는 천상 행복의 반영을 가져올 것이다.

피조물 가운데서나 천국에서나, 지배하며 다스리는 뜻은 

하나의 같은 뜻일 것이기 때문이다.


35 나의 인성이 

존귀하신 여왕의 십자가에 못 박힌 심장의 지극히 순수한 피로

 빚어진 것과 같이,

구원사업은 나의 지속적인 못 박힘으로 이루어졌으니,

해골산에서 나는 구원된 사람들의 나라 위에 십자가 인장을 찍었다.


이와 같이 '지고한 피앗의 나라'는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사람의 심장에서 나올 것이다.

내 뜻이 너의 뜻을 십자가에 못 박아 내 뜻의 나라를 내놓을 것이고,

이 나라의 자녀들을 위한 행복을 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36 이 때문에 나는 산 제물의 신분에로 너를 불렀을 때부터

줄곧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에 대하여 네게 말했었다.

너는 그것을 손발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으로 생각했고,

나는 너를 그 못 박힘 안에서 지내게 하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내 나라가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그 못 박힘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너의 온 존재 안에서 내 뜻이 완전히, 지속적으로 못 박힐 필요가 있었고,

이것이 바로 내가 너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니,



'지고한 피앗의 나라'를 내놓으려면

너의 뜻이 내 뜻의 계속적인 못 박힘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