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 신은 유형적이면서 동시에 무형적이다. 794-805

은가루리나 2018. 6. 23. 10:22


 □  신은 유형적이면서 동시에 무형적이다.



794. 신은 무형적이면서 동시에 유형적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신은 무형을 초월해 있다. 

<그는 이 모든 것>이라는 것을 오직 그만이 알고 있다.



795. 신의 유형적인 면(형상화된 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마치 물에서 물거품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저 다양한 모습은 의식의 순수공간으로부터 믈거품처럼 그렇게 솟아오른다. 

이 다양한 형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신의 화신이다.



796. 신을 자각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없다. 

그(神)의 자비심 때문에 

그는 그 자신을 여러가지 모습과 갖가지 방법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염색공은 염색법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손님에게 묻는다. 


「당신의 옷은 무슨 색으로 염색해 드릴까요?」

손님이 붉은 색으로 염색해 달라 하면 그는 자기의 염색통 속에 옷을 넣었다 꺼내며, 

「자, 당신의 붉은색 옷이 오.」한다. 


다른 손님은 노란색을 원한다. 

염색공이 같은 통 속에 옷을 넣었다 꺼내면 노랗게 염색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한 곳에 염색할 옷들을 담지만 그러나 손님들이 원하는 색깔대로 

그 한통 속의 옷들은 염색된다. 


노란 색을 원하면 노란 색으로, 보라색을 원하면 보라색으로, 

푸른 색을 원하면 푸른 색으로 물들여 준다. 


처음부터 줄곧 이를 지켜본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친구여, 나는 어떤 색깔도 원치 않는다. 

아무 색깔이건 관계치 않으니 그대가 원하는 대로 물들여 주게.」



 이와 같이 신봉자들의 필요에 따라 

신은 그 자신을 형상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무형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이렇게 유형과 무형으로 나타난 신의 비전은 모두 진실이다. 

각기 다른 환경과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연결된 진실이다. 

저 성스러운 염색공(神)은 그가 그 자신을 염색할 색깔이 무슨 색인지 잘 알고 있다. 

사실 그(神)는 갖가지 모습으로 현현된 어떤 구속력에도 속박되지 않는다.



797. 어느 흰두교 승려가 뿌리(Puri)에 있는 쟈가나드(Jagthana) 사원에 갔다. 


「신은 형상이 있는가. 형상이 없는가」.......그는 이것을 의문시 하고 있다. 


그가 쟈가나드 사원 안에 들어가서 성스러운 이미지(괴이한 휜두교 신의 형상)을 보았을 때 

그는 그의 의문점을 풀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신의 형상에 닿는 것을 느끼기 위하여 

그는 그의 지팡이로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더듬어 갔다. 

그러나 지팡이 끝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신은 형상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지팡이를 더듬어 갔을 때는 지팡이 끝에 신의 형상이 닿았다. 

그래서 그는 또 이렇게 결론지었다. 

「신은 형상이 있으면서 동시에 형상이 없다.」




798. 종을 칠 경우 연속적으로 치게 되면 소리는 구별되어 들린다. 

일타(一打)와 이타(二打)와 삼타(三打)의 소리가 각각 형상이 있는 것처럼 구별되어 들린다. 


그러나 종치기를 멈추면 일타와 이타와 삼타가 구별할 수 없게 되어 

잠시 동안 여운으로 들리다가 서서히 사라져 버린다. 


소리의 여운이 사라져 버리고 대신 거의 종소리의 무형이 나타난다. (소리가 전연 들리지 않는다.) 

이 종소리와 같이 신은 유형적이며 동시에 무형적이다.



799. 신의 유형적인 모습은 가시적(可視的)이다. 

우리는 그(神) 만잘 수 있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친구처럼 서로 얼굴을 맞대고 볼 수도 있다.



800. 신을 무형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오직 이런 입장만이 옳고 그 나머지 견해는 다 거짓이다」라는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라. 


신을 유형적으로 명상하는 것 역시 무형적인 것만큼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분명히 신을 자각할 때까지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너의 입장을 고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801. 신은 절대자이며 영원한 우주의 아버지다. 

그러나 분할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순수한 존재, 

그 자체로서의 신은 망망한 바다와 같다. 

끝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격신(神) 속으로 들어갈 때는 

물에 빠진 사람을 해변으로 끌어내오듯 손쉽게 평안을 얻을 수 있다.



802. 예배와 헌신의 어떤 경지에 이르게 되면 신봉자는 유형적인 신 속에서 만족을 느낀다. 

그리고 또다른 경지에 이르게 되면 무형적인 신 속에서 평안을 느께게 된다.



803. 박따(Bhakta)에게 신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그 자신을 나타낸다. 

그러니 삼마디 속에서 즈냐나(Jnana, 지혜)의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는 

신은 무형적이며 절대적으로 파악된다. 

그러므로 즈냐나(지혜)와 박띠(헌신)를 잘 조화시켜야 한다.



804. 물이 응결되면 얼음이 된다. 

절대자의 가시적인 형상은 우주에 충만한 무형적인 브라흐만(神)의 물잘적인 현현이다. 

이를 우리는 응결된 사찌다난다(Sachchidananda)라 부른다. 


얼음은 물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물 속에 남아 있다가 물속으로 녹아 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격인 신은 비인격적인 신의 한 부분이다. 

비인격적인 신으로부터 생겨나서 거기 머물다가 그곳으로 용해되어 사라져버린다.



805. 불은 그 자신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불꽃이 점점 커지게 되면 여러가지 형태로 보인다. 

그래서 형상이 없는 불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형상이 없는 신이 

때때로 그 자신을 특정한 형상으로 나타내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