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20권

{20권 54,18-36 (Ⅲ)} 자원해서 겪는 고통의 위력

은가루리나 2018. 6. 24. 22:03



20-54



1927년 1월 30일



예수님께서 글을 쓰지 않으신 까닭

이 글에는 하늘나라의 반영이 있다.

하느님 뜻의 나라가 도래할 시기.

자원해서 겪는 고통의 위력




18 나중에 나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다정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고한 피앗의 나라'를 크게 기리며 찬미하신다.


하지만 

바로 거룩한 뜻이신 그분 자신이나 

이를 전체로 소유하셨던 내 천상 엄마나 

이 세상에서는 행복하지 않으셨다.

그분들은 오히려 세상에서 고통을 가장 많이 받으신 분들이다.



19 그리고 나 자신도 그렇다.

그분께서는 나를 그분 뜻의 맏딸이라고 하시지만,

사십삼 년 이상이나 침상에만 붙박여 지내게 하셨으니,

그 동안 내가 무엇을 겪었는지는 예수님만이 아신다.


그럼에도 나는 실상 행복한 수인(囚人)이기도 하므로,

설령 누가 내게 제왕의 홀(笏)과 면류관을 준다고 하더라도

나의 이 행복한 운명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은 나를 넘치도록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20 그러나 이 행복이 인간의 눈앞에서는 사라진다.

외관상으로는 (행복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의 고통과 여왕이신 분의 고통 및 

예수님의 피조물 중에서 가장 작은 나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행복과 그 고통은 

아무래도 모순으로 보이는 것이다.'




21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불현듯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하나의 선, 하나의 나라를 이룩해야 하는 사람과 

그것을 누리기 위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는 속죄를 통하여 인간을 속량하며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왔다.

이 일을 하기 위하여 그들의 고통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것을 나 자신의 것인 양 짊어져야 했다.


22 공동 구자가 되어야 했던 내 거룩하신 엄마도 

나와 다를 수 없었다.

그분께서 나의 작은 인성을 빚기 위하여 

그 지극히 깨끗한 가슴에서 나에게 주신 다섯 방울의 피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분의 심장에서 나온 것이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고통은 임무였고 

그것은 연악한 본성에 강요된 고통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원해서 겪은 고통이었다.



23 그러 너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우리가 겪었던 그 수많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숭고한 행복과 언제나 새롭고 끝없는 기쁨들과 지속적인 낙원을

나와 여왕이신 내어머니에게서 떼어 놓을 수 없었다.


24 고통에서 우리를 떼어놓은 것이 

- 왜냐하면 고통은 우리에게 본질적이거나 본성적인 것이 아니라

수행해야 할 임무였기 때문이다. -

우리 거룩한 뜻의 본성인 

무한한 행복과 기쁨의 바다에서 우리를 떼어 놓는 것보다 

더 쉬웠을 것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었고 또 우리 안에 생겨나게 했던 이 바다는

바로 우리 자신이요, 우리의 본질이었으니 말이다.



25 태양의 본성은 빛을 주는 것이고,

물의 본성은 갈증을 해소해 주는 것이며,

불의 본성은 온도를 높이고 모든 것을 불로 만드는 것과 같이

-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스스로의 본성을 잃을 것이다. -

내 뜻의 본성은 내 뜻이 다스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행복과 기쁨과 낙원이 솟아나게 한다.


하느님 뜻의 불행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 뜻의 완전한 충만도 없다.



26 인간적인 뜻의 개울은 바로 그 인간에게 쓰라린 슬픔을 만들어 주는데,

그런 인간적인 뜻이 우리 안으로는 들어온 적이 없었으므로 

우리에게는 언제나 행복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고,

기쁨의 바다들도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27 심지어 내가 십자가 위에 달려 있었을 때에도, 

또 내 어머니가 

내 거룩한 발밑에서 (영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도,

완전한 행복은 결코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만일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면,

나는 나 자신을 신성에서 떼어 내어 거룩한 뜻 바깥으로 나가서 

오직 인간적인 뜻과 본성만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28 그러므로 우리의 고통은 우리가 와서 완수할 임무로서 

우리 자신이 택한, 완전히 자발적인 고통이었다.

인간 본성이나 허약의 결실,

또는 타락한 본성에 대한 강요의 결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너는 너의 고통 역시 맡은 바 임무로서 치르는 고통, 

곧 자원한 고통이라는 것이 기억나지 않느냐?


29 실제로 나는 산 제물의 신분에로 너를 부르면서

이를 자발적으로 수락하는지 물었었다.

그러자 너는 완전한 자유의사로 받아들이면서 '피앗'을 발하였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다시 후렴을 읊듯 너에게,

내 거룩한 뜻 안에서 또 이 뜻과 함께 사는 것을 수락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너는 다시 '피앗'을 발하였다.


이 피앗이 너를 새 생명에로 다시 태어나게 하여 그 자신의 딸로 삼았으니,

이는 '지고한 피앗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하여 

그것에 합당한 임무인 고통을 너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30 내 딸아, 

자원해서 받는 고통은 세력과 제국을 가질 만큼 강한 능력이, 

하느님마저 지배할 능력이 있다.


천상 아버지의 배를 찢고, 하느님 안에서 행한 그 찢음을 통하여 

은총의 바다들이 넘쳐흐르게 하면서.

지고하신 임금님의 승리와

이 자원한 고통의 제국을 가진 사람의 승리를 이룰 능력이 있는 것이다.



31 그러므로

크고도 놀라운 일인 구원사업에 자발적인 고통이 필요하였다.


위대한 기적인 내 '피앗의 나라'에도 그러한 고통이 필요하고,

그것은 임무로서의 고통, 거룩한 뜻에서 활기를 얻는 고통이다.


이들은 하느님과 피조물을 지배하는 제국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 임무에 내포된 크나큰 선을 줄 수 있는 것이다.



32 따라서, 바로 거룩한 뜻인 내가 고통을 받았다고 해서. 

또 내가 너를 이리도 오랫동안 침상에만 붙박여 지내게 했다고 해서,

그것이 너의 말처럼

'거룩한 피앗의 나라'의 행복에 대한 나의 찬미와 모순이 되는 것은 아니다.




33 하나의 선, 하나의 나라를 이룩해야 하는 사람은 

이 한가지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고통을 받으며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하느님을 이겨 선을 얻어 내는 일이다.


그 선을 받을 사람은 다른 어떤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며 그 진가를 인정하고, 

투쟁과 고통을 치르며 마침내 승리를 얻어그 전리품을 그들에게 주며 

기뻐하게 한 사람에게 감사하는 일이다.



34 그런즉

피조물 가운데에 있는 내 뜻의 나라는 천상 행복의 반영을 가져올 것이다.

피조물 가운데서나 천국에서나, 지배하며 다스리는 뜻은 

하나의 같은 뜻일 것이기 때문이다.


35 나의 인성이 

존귀하신 여왕의 십자가에 못 박힌 심장의 지극히 순수한 피로 

빚어진 것과 같이,

구원사업은 나의 지속적인 못 박힘으로 이루어졌으니,

해골산에서 나는 구원된 사람들의 나라 위에 십자가 인장을 찍었다.


이와 같이 '지고한 피앗의 나라'는

십자가에 못 박힌 한 사람의 심장에서 나올 것이다.

내 뜻이 너의 뜻을 십자가에 못 박아 내 뜻의 나라를 내놓을 것이고,

이 나라의 자녀들을 위한 행복을 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36 이 때문에 나는 산 제물의 신분에로 너를 불렀을 때부터

줄곧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에 대하여 네게 말했었다.

너는 그것을 손발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으로 생각했고,

나는 너를 그 못 박힘 안에서 지내게 하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내 나라가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그 못 박힘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너의 온 존재 안에서 내 뜻이 완전히, 지속적으로 못 박힐 필요가 있었고,

이것이 바로 내가 너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니,



'지고한 피앗의 나라'를 내놓으려면

너의 뜻이 내 뜻의 계속적인 못 박힘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