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루이사 피카레타의 생애와 사명 〔제10장-박 해 ⑤〕(p.160-175)

은가루리나 2015. 12. 10. 11:19


제 10


박 해 (2)

 


1 (p.160)


  박해가 불폭풍처럼 일어난 이 시기에 

루이사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비오 신부에게 조언을 청하는 편지를 썼다. 

비오 신부는 

산죠반니 로톤도의 ‘카푸친회’ 사제로서 일찍부터 오상을  받고 기적을 행하기도 했으며, 

2000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회 역사상 오상을 받은 최초의 사제로 알려졌던 성인은 루이사의 편지를 받았을 무렵, 

그 자신도 연전에 교회 내부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이미 맹렬한 박해를 겪었던 터였다. 

(그것은 1931년 6월부터 1933년 7월까지의 일이었다. 

검사성성에 의해 

개인적으로 미사를 올리는 것 외에는 사제로서의 모든 직권을 박탈당했던 것이다!) *


  성 비오 신부는 루이사의 단죄 소식을 듣고 이 한마디 일침으로 답신하였다.

“성인들은 만들어지지만 성인들을 만드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 “검사성성은 1923년 3월 31일부터 1931년 5월 22일까지 

 비오 신부를 거슬러 교령을 공표하였다… 

 10년 동안 비오 신부는 

아무 방문객도 맞아들일 수 없었고, 공적으로 미사를 드릴 수 없었으며, 

 그의 영적 조언과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편지조차 쓸 수 없었다” 

 이 Pelletier 신부가 흥미로운 일이라고 지적한 것은 

 검사성성이 교령들을 취소한다는 공식적인 선언을 하지 않았음에도 

 교황 비오 11세가 비오신부를 복권시키고  그에 대한 규제를 풀어 주었다는 점이다.


2 (p.161) 


  1938년 9월 11일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지에 실린 한 기사는 

칼비 신부가 펴낸 루이사의 책 세 권은

 “위험한 가짜 신비주의” 로 인해 단죄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고 확언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저술 내용 중 

엇이 거짓이며 위험한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가짜 영성 서적” 이라는 제목 으로 서명 없이 기술된 이 기사에 의하면, 



  루이사의 저술들은 “지나치게 열광적인 병적 망상의 산물” 이고,

“부정확하고 과장된 표현으로 중언부언하는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루이사는 그녀의 방에서 매일 미사가 거행 되는 특전도 박탈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이런 일이 있기 얼마 전, 예수님께서 폴란드의 마리아 파우스티나 (+1938) 수녀에게 

그녀의 사명 역시 박해로 정화될 것이라고 이르셨다. 

과연 1959년 검사성성 (곧 현재의 신앙교리성)은 

성녀 파우스티나가 실행한 것과 같은 형태의 하느님 자비 신심을 금지하였다.

이 금지 조처는 1978년 4월 15일까지 유효하였다. 

루이사의 세 가지 책에 대한 신앙교리성의 단죄도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의 경우처럼 결국 철회될 것이었다. (본서 12장 참조) 

그러나 그때까지 단죄의 효력은 지속될 터였다.

 


  루이사는 그래도 여전히 순명하기 위하여 글을 썼다. 

예수님의 격려와 도움을 받으며 고통스러운 상황을 감수했던 것이다.

 

  “단죄 받은 가련한 자로서의 엄청난 괴로움과 그지없는 굴욕감을 느끼며 

하느님 의지의 바다 안에 있다. 

예수님께서 나의 지주와 힘과 도움이 되어 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아 있을지 모를 지경이다.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고통에 참여 하시며 함께 고통을 받으시고, 

격한 슬픔과 사랑에 젖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딸아,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네가 안다면 - 내가 그것을 너에게 보여 준다면, 

너는 그 고통으로 죽을 것이다. 

나는 너를 더욱 괴롭히지 않기 위해서 

부득이 내가 느끼는 모든 고뇌와 잔혹한 아픔을 감출 수밖에 없다. 

저 사람들이 단죄한 것은 네가 아니라 너와 함께 있는 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는… 너와 나의 이 단죄를 내가 십자가에 달리며 치른 사형 선고와 하나가 되게 하여라. 

그러면 그것의 공로와 그것이 생기게 한 모든 선을 너에게 주겠다. 

그것은 나를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모든 이가 생명을 얻고 모든 선이 되살아날 내 부활을 초래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들은 그 단죄로 

내가 내 거룩한 뜻에 대해 말한 것을  깨끗이 말살할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오히려 그런 매질과 통탄할 조처를 허락함으로써 

내 진리가 사람들 가운데 더욱 아름답고 장엄하게 떠오르게 할 작정이다… 

나는 사랑과 은총과 징벌 따위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 

피조물의 모든 면에 손을 대어 나의 뜻이 다스리게 하겠다. 

그리하여 참된 선이 사라진 것 같아 보일 때에 

그것이 더욱 아름답고 장엄하게 다시 떠오를 것이다.’ ” {천상의 책 36권}

 

  루이사가 1938년의 이 단죄 사건 앞에서 

하느님의 뜻이 어떻게 다스리실 수 있을는지 의아해하자, 

예수님께서 그녀를 안심 시키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오늘 유익해 보이지 않는 것이 내일은 은혜가 될 것이다. 

정신의 눈이 멀어 지금 어둠으로 보이는 것이, 

내일 볼 눈이 있는 이들에게 태양으로 바뀌어 수많은 선익을 베풀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까지 해 온 일을 그대로 계속하자. 

우리 편에서 할 필요가 있는 일을 함으로써 

도움과 빛과 선과 놀라운 진실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게 하여 

나의 뜻이 알려지고 통치하게 하려는 것이다...”


​3 (p.163


  여러 나라의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다수의 무고한 사람들이 곤경에 빠지는 것과 같이, 

루이사도 일련의 점증적인 재제 조치에 속박된 몸이 되었다.

1938년 10월 7일, ‘하느님 뜻의 집’ 에서 

‘거룩한 열성의 딸들’ 과 함께 지낸 지 꼭 10년 만에 이 집을 떠나라는 강요를 받고 

맏델레나 가 20번지의 한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아파트에 와서 몇 달 동안은 그래도 매일 미사가 봉헌되었으나 

더 이상은 그런 특전을 누리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1938년 12월 28일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에는 글을 쓰라는 명령 또한 철회되었고, 

이 때부터 루이사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9년 동안 다시는 자신의 몸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내적으로 가르쳐 주신 것을 끊임없이 실행하고 있었으나 

더는 그분을 뵙지 못했던 것이다.

‘도미니코 제3회’ 회원으로 입회할 때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이름을 택했던 그녀는 

바로 그 막달레나 성녀처럼 십자가의 발치에 달라붙은 채 

사랑하는 그분에 대한 믿음만으로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한 친구에게 이렇게 썼다.

 

  “날마다 그분은 내게 거룩한 성체를 모셔 옵니다. 

한 주일에 한 번만 미사 참례를 할 수 있어요. 

수도원을 떠난 뒤에도 얼마 동안은 매일 미사 참례를 할 수 있었는데, 

금서 처분이 내린 지 여섯 달 후 우리 주교님이 돌아가시자, 

금서 처분을 끌어냈던 사제들이 검사성성에서 또 미사 금지령도 얻어 낸 것이지요, 

그렇지만 아무도 나를 하느님의 뜻에서 떼어 놓을 수는 없어요. 

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어요. 거룩한 미사까지도.’’

 


  매일 미사 특전을 상실한 것 외에도 

루이사는 약 일 년 동안 고해 사제 베네데토 칼비 신부를 만나지 못했다.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39년에 접어들면서 페트로닐리 대주교가 칼비 신부에게 

루이사의 고해 사제 임무를 다시 시작하라고 지시했는데, 

그 해가 저물어 갈 무렵 로마의 검사성성에서 트라니 교구청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다시 루이사의 방에서 매일 미사를 드려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코라토에서 루이사는 달리 어찌할 수 없는 상태로 박해의 폭풍을 견뎌 내고 있었다. 

나중에 그녀는 한 친구에게 이렇게 썼다.


  “그대가 로마에서 말한 것과 관련된 새로운 일이 

여기에서는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책들과 나를 거슬러 큰 폭풍이 일고 있었는데, 

내 생각에는 코라토 출신의 일부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일으킨 폭풍 같습니다. 

모쪼록 주님께서 그들 모두를 용서하시며 축복해 주시기를 빕니다. 

악마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만 들어도 성이 나서 길길이 뛰고 있었던 것입니다.”

 

4 (p.165)


  7월 10일 루이사로 하여금 유명한 예언을 하게 한, 연합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시칠리아 섬에 대한 반격은 

메시나의 ‘기도 수도회’ (로가찌오니스티 수도회) 고아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코라토의 ’거룩한 열성의 딸 수도회’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는 그 큰 위험을 알아차리고 

메시나의 수녀들에게 그들의 고아들을 안전한 코라토에 보내라고 하였다. 

때맞줘 그 어린이들을 옮긴 덕분에 단 한 명도 다치지 않았지만, 

루이사는 아이들 대신 한 “희생자” 가 자기 목숨을 바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사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수녀가, 

오직 한 수녀가 메시나에서 나치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연합군은 9월에 이탈리아 본토에 상륙하여 북진하기 시작했다. 

한때 이탈리아 남부 지방이 전후좌우로 공습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몇 차례 약속하신 대로 루이사를 보시어 

코라토가 여러 징벌의 예봉을 면하게 해 주셨다. 

그러므로 남부 이탈리아가 맹렬한 포격을 받는 동안에도 코라토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코라토와 한가지로 산죠반니로톤도의 공동체도 한 거룩한 영혼으로 인해 보호를 받았으니 

그는 앞에서 언급한 ‘카푸친회’ 의 오상의 비오 신부였다. 

하느님의 종인 이 두 사람은 직접 만난 적이 없었으나 

서로 안부 인사와 기도를 교환했고, 방문자들을 서로에게 보내곤 하였다.


  이를테면 비오 신부의 가장 가까운 제자인 페데리코 아브레스크는 

가장 충실한 루이사 숭배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아들 비오가 첫영성체를 할 때가 되자 

산죠반니로톤도에 데리고 가서 성체를 영하게 한 뒤 코리토를 경유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코라토에서 아들을 루이사의 영적 보살핌에 맡기기 위함이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사제가 된 그 아들이 바로 비오 아브레스크 신부였는데, 

그는 루이사를 방문한 일과 그녀의 모범적 성덕을 생생하게 기억하였다. 

아버지 페데리코 아브레스크는 비오 신부의 격려를 받고 

루이사의 저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산죠반니 로톤도에 기도회를 시작하였다. 

이 회원 중 몇은 루이사의 영성을 통해 사제 성소나 수도자 성소를 받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비오 신부로부터 

루이사의 가르침을 연구하며 실행하라는 직접적인 권고를 받았던 것이다.*



 * 비오 신부의 열성적인 제자인 

 아드리안나 팔로티도 페데리코 아브레스크의 하느님의 뜻 기도회에 참여했는데, 

 나중에 비오 신부의 열렬한 성원으로 자신의 기도회를 시작했다. 

 이 기도회는 

산죠반니로톤도의 비오 신부 수도원 가까이에 있는 한 건물에서 모임을 계속하였다. 

 팔로티의 말에 의하면, 하느님 뜻 기도회 회원들이 비오 신부에게 

 루이사의 저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곤 했다고 한다. 

 한 젊은이가 비오 신부에게 고해 성사를 받으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팔로티에게 말했다.


 “신부님, 루이사가 자신의 글 속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복되신 성모님께서 위대하신 것온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동정, 원죄 없는 잉태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인간적인 뜻을 결코 따르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을 따르셨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그러자 비오 신부는 “그렇다, 아들아, 정말이다! 정말 그렇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 젊은이는 이어서 말하였다. 

 “신부님, 한 가지 더 여쭈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세상 끝 날까지 십자가에 달려 계실 것이라는 것이 

 정말입니까?... 

 그리고 그분 십자가의 세로대는 모든 세기 만큼 길고 

 그 가로대는 온 인류만큼의 너비라는 것도 정말입니까?"

 비오 신부의 대답은 똑같았다. ”그렇다, 아들아, 정말이다! 정말 그렇다!“


 


5 (p.168)


​  전쟁이 계속된 몇 해 동안 

페데리코 아브레스크처럼 루이사를 찾아오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었다. 

세계 2차 대전 초기에는 

폴란드의 운명이 걱정된 크라쿠프의 대주교가 루이사를 방문한 적도 있었는데, 

면담 후 엄숙하고 비통한 표정으로 그녀의 아파트를 떠났다고 한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있는 연고자의 소식을 알려고 루이사를 찾아왔다. 

이런 이들에게 그녀는 둘 중 하나의 대답을 해 주었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해 묻는 경우에는 희망을 가지고 하느님을 신뢰하라고 격려했고,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해서라면 참고 받아들이도록 권고했던 것이다. 

또 몸의 치유를 받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루이사는 이들 중 다수의 사람들에게 “자가(自家) 치료”를 권하여 

그녀에게서 주의를 돌리게 하였다.


  한번은 이웃 도시에 사는 어떤 부인이 

좌골 신경통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루이사의 방에 들어온 일이 있었다. 

루이사는 그 부인에게 

카밀레(국화과의 풀이며 꽃은 말려서 약재로 쓴다 - 역주)를 빻아 통증 부위에 바르라고 하였다. 

그 지시대로 하여 완전히 나은 그녀는 걸어서 코라토에 다시 와서 루이사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해 줘서 고맙다고 하였다. 

또 한 번은 어떤 남자가 다리에 생긴 고통스러운 종양을 루이사에게 보여 준 일이 있었다. 

루이사는 뜨거운 물수건으로 그 종양을 찜질하라고 하였다. 

그가 그렇게 하자 종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루이사의 기도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 치유 사례들도 있었다. 

예컨대 맏델레나 가 20번지 그녀의 아파트 위층 이웃인 바르톨로메오 부부의 어린 아들에게 

극적인 치유가 일어났다 

코라토 주민들은 30년대는 물론 40년대까지도 

작은 목조 창고처럼 나무로 둘러 막은 공동 우물에서,물을 길러다 썼는데 

하루는 마을 소년들이 몹쓸 장난으로 그 안에 개 한 마리를 가두어 놓았었다. 

지오 바르톨로메오가 물을 길으러 왔다가 이 성난 개에게 발을 물리고 만 것이었다. 

상처의 감염이 급속도로 진행 되었으므로 지역 병원에 수술 일정을 잡아두었으나, 

지노의 어머니는 기어코 루이사에게 아이를 보이고 싶어 하였다. 

수술 바로 전날 밤 자정에 루이사는 이에 동의하였고, 

아이의 발에 손을 댄 채 자기 침대 위쪽에 걸린 십자고상을 바라보면서 

아이 어머니에게 안심하라고 일렀다. 

그 이튿날 수술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가서 보니, 아이의 발은 이미 깨끗이 나아 있었다. 

이런 기적들이 많이 보고되었지만 어떤 기적들은 더욱 놀랄만한 것이었다. 

성 안니발레 디 프란치아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루이사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죽은 소년을 되살려 주신 일도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기적들이 

코라토의 보통 사람들 사이에 루이사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불러 일으켰으므로 

그들은 아직 세상에 살아 있는 그녀를 “성녀” 라고 불렀고, 

그녀의 모성적인 보호에 대한 신뢰의 상징으로 집안에 그녀의 사진을 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장 깊은 감명을 준 것은 육체적 치유 사례들이 아니었다. 

바로 그녀의 삶이라는 기적이었다. 

루이사 자신도 사람들이 자기를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대하지 않도록 설득하였다. 

자기를 찾아오는 수많은 방문객에 대하여

 그녀는 측근의 협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들이 찾아오면 기도를 한 번 하겠지만, 오지 않으면 두 번 할 것 입니다!”


  만일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그녀에게 기도를 청하면, 

그런데 그 사람이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식별하면, 

그녀는 대개 연옥 영혼들을 위한 미사 한 대를 바치라고 조언하였다. 

또 다른 때에는 하느님의 뜻과 하나 되어 사는 그녀에게 허락된 능력으로, 

자기를 찾아온 사람의 당면한 걱정거리를 훨씬 넘어서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어떤 여인이 힘든 임신 기간을 보내며 기도를 청하러 온 적이 있었는데, 

루이사는 그 여인에게 해산이나 태어날 아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고 

언니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하였다. 

그 당시에는 이것이 이상한 충고로 보였다. 

그녀의 언니는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례하며 온 고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이사의 예언이 확증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얼마 후 산모는 건강한 아기를 낳았지만, 

그 언니는 미치고 말아서 정신 병원에 입원시켜야 했던 것이다.



  루이사는 또한 

직접 자기를 찾아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희망과 격려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 

한 재소자에게 그녀는 이렇게 썼다.


  “형제여, 신뢰를 가지십시오. 

당신을 무척 사랑하시며 절대 떠나지 않으실 천상 어머니가 계시니 말입니다. 

당신이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그분께서 당신이 갇혀 있는 교도소를 거룩한 곳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인간적인 나약이 당신을 거기로 데려갔지만, 

존귀하신 여왕님께서는 하느님 뜻의 힘으로 당신을 천국으로 데려가실 것이며 

당신의 나날이 덜 슬프게 여겨지게 하실 것입니다... 

이 천상 어머니의 묵주기도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기회가 있으면 교도소 선교사가 되어, 

천상 여왕님께서 모든 재소자를 찾아가셔서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리십시오. 

그 외에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데 대금을 지불할 수 없다면, 제 말을 믿으십시오. 

틀림없이 그것을 공짜로 받게 될 것입니다.”



6 (p.172)


  방문객들과의 서신 교환이나 담론을 통하여  루이사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에 그들 자신을 온전히 맡기도록 도왔다. 

한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는 이렇게 썼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아니란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질 수 없는 짐을 지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얘야, 모든 것은, 

우리의 뜻을 예수님의 손에 맡기고 우리의 행위를 그분의 행위로 만들려고 하는, 

강력하고 확고하며 한결같은 결심에 달려 있다. 

우리 존재의 모든 것 안에서, 

곧 삶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작, 우리의 음식과 수면, 

우리의 고통과 기도와 정당한 즐거움들 안에서 그와 같이 하면, 

하느님의 뜻이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하실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뜻을 가지고 있지 말아야 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죽은 것에 대해 승리를 거둔다면 우리에게도 예수님께도 승리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뜻이 살아 있기를 바라신다. 

그래야 우리가 우리 안에서 일하시면서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아름다운 빛깔로 채색하시는 

그분의 거룩하신 뜻의 온갖 선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뜻은 하느님 뜻의 집이 되어야 한다. 

그 자신의 자유를 넘겨주면서 

하느님 뜻으로 하여금 좋으실 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해 드리는 것이다.”



  루이사는 또 

자신의 책에 나오는 가르침을 실행에 옮기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작은 것들” 에 더 관심을 기울이라고 충고하였다.

부모들에게는 자녀를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기르라는 단순한 충고를 주었는데, 

그것은 페데리코 아브레스크에게 준 다음의 말과 같은 것이었다.


“꼬마 비오에게, 

네가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 저의 뜻을 가져가시고 당신의 뜻을 저에게 주십시오.’ 

하고 말해야 한다 고 이르세요.”


7 (p.173)


  2차 세계 대전의 대학살을 통해 루이사는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미리 말씀하셨던,

인간의 완고함으로 인한 징벌의 표징을 보았다. 

그녀는 이것을 자주 편지에 내비치곤 하였다.


 “거룩한 비오 신부님께,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면 

님 뜻의 나라가 오시도록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드려 주십시오.....

나는 세상이 하느님의 뜻을 확실히 알게 될 때가 오리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삼위께서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먼저 땅이 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깨끗해졌을 때에 예수님께서 기쁨에 싸여 오시어,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서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의 축복을 항상 누리려면 

함께 기도하면서 우리 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루이사는 가끔 방문객들에게 

전시(戰時)의 어수선한 혼돈 상태를 뛰어넘어 

앞일을 내다보는 예언적 통찰력을 드러내 보였다. 

장차 사람들이 양식을 내다버릴 정도로 대단한 풍요를 누릴 때가 오겠지만 

그 뒤에는 더 절약하며 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게 될 기근의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었고, 

그런가 하면 세계 제2차 대전이라는 징벌보다 더 큰 징벌들을 예고하기도 하였다. 

예수님께서 온 도시들을 삼켜 버릴 큰 지진들과 수많은 사람들을 죽일 재난들을 

여러 차례 그녀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이 닥칠 것이기에, 

루이사는 예수님께서 해 주신 약속을 항상 기억하면서 

주님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도” 오시도록 끊임없는 기도 안에 머물러 있었다.








10

박 해 (2)

 

박해가 불폭풍처럼 일어난 이 시기에 루이사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비오 신부에게 조언을 청하는 편지를 썼다비오 신부는 산죠반니 로톤도의 카푸친회’ 사제로서 일찍부터 오상을  받고 기적을 행하기도 했으며, 2000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교회 역사상 오상을 받은 최초의 사제로 알려졌던 성인은 루이사의 편지를 받았을 무렵그 자신도 연전에 교회 내부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이미 맹렬한 박해를 겪었던 터였다. (그것은1931년 6월부터 1933년 7월까지의 일이었다검사성성에 의해 개인적으로 미사를 올리는 것 외에는 사제로서의 모든 직권을 박탈당했던 것이다!) 

성 비오 신부는 루이사의 단죄 소식을 듣고 이 한마디 일침으로 답신하였다.

 

성인들은 만들어지지만 성인들을 만드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 검사성성은 1923년 3월 31일부터 1931년 5월 22일까지 비오 신부를 거슬러 교령을 공표하였다… 10년 동안 비오 신부는 아무 방문객도 맞아들일 수 없었고공적으로 미사를 드릴 수 없었으며그의 영적 조언과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편지조차 쓸 수 없었다” 이 Pelletier 신부가 흥미로운 일이라고 지적한 것은 검사성성이 교령들을 취소한다는 공식적인 선언을 하지 않았음에도 교황 비오 11세가 비오신부를 복권시키고 그에 대한 규제를 풀어 주었다는 점이다.

 

1938년 9월 11일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지에 실린 한 기사는 칼비 신부가 펴낸 루이사의 책 세 권은 위험한 가짜 신비주의” 로 인해 단죄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고 확언하였다그러나 그녀의 저술 내용 중 무엇이 거짓이며 위험한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가짜 영성 서적” 이라는 제목 으로 서명 없이 기술된 이 기사에 의하면루이사의 저술들은 지나치게 열광적인 병적 망상의 산물” 이고, “부정확하고 과장된 표현으로 중언부언하는 것이다.”이와 때를 같이하여 루이사는 그녀의 방에서 매일 미사가 거행 되는 특전도 박탈한다는 통지를 받았다이런 일이 있기 얼마 예수님께서 폴란드의 마리아 파우스티나 (+1938) 수녀에게 그녀의 사명 역시 박해로 정화될 것이라고 이르셨다과연 1959년 검사성성 (곧 현재의 신앙교리성)은 성녀 파우스티나가 실행한 것과 같은 형태의 하느님 자비 신심을 금지하였다.

이 금지 조저는 1978년 4월 15일까지 유효하였다루이사의 세 가지 책에 대한 신앙교리성의 단죄도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의 경우처럼 결국 철회될 것이었다. (본서 12장 참조그러나 그때까지 단죄의 효력은 지속될 터였다.

 

루이사는 그래도 여전히 순명하기 위하 글을 썼다예수님의 격려와 도움을 받으며 고통스러운 상황을 감수했던 것이다.

 

단죄 받은 가련한 자로서의 엄청난 괴로움과 그지없는 굴욕감을 느끼며 하느님 의지의 바다 안에 있다예수님께서 나의 지주와 힘과 도움이 되어 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아 있을지 모를 지경이다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고통에 참여 하시며 함께 고통을 받으시고격한 슬픔과 사랑에 젖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딸아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네가 안다면 내가 그것을 너에게 보여 준다면너는 그 고통으로 죽을 것이다나는 너를 더욱 괴롭히지 않기 위해서 부득이 내가 느끼는 모든 고뇌와 잔혹한 아픔을 감출 수밖에 없다.저 사람들이 단죄한 것은 네가 아니라 너와 함께 있는 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는… 너와 나의 이 단죄를 내가 십자가에 달리며 치른 사형 선고와 하나가 되게 하여라그러면 그것의 공로와 그것이 생기게 한 모든 선을 너에게 주겠다그것은 나를 죽음으로 몰아갔지만모든 이가 생명을 얻고 모든 선이 되살아날 내 부활을 초래하기도 했으니 말이다그들은 그 단죄로 내가 내 거룩한 뜻에 대해 말한 것을 깨끗이 말살할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오히려 그런 매질과 통탄할 조처를 허락함으로써 내 진리가 사람들 가운데 더욱 아름답고 장엄하게 떠오르게 할 작정이다 나는 사랑과 은총과 징벌 따위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피조물의 모든 면에 손을 대어 나의 뜻이 다스리게 하겠다그리하여 참된 선이 사라진 것 같아 보일 때에 그것이 더욱 아름답고 장엄하게 다시 떠오를 것이다.’ ”

 

루이사가 1938년의 이 단죄 사건 앞에서 하느님의 뜻이 어떻게 다스리실 수 있을는지 의아해하자예수님께서 그녀를 안심 시키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오늘 유익해 보이지 않는 것이 내일은 은혜가 될 것이다정신의 눈이 멀어 지금 어둠으로 보이는 것이내일 볼 눈이 있는 이들에게 태양으로 바뀌어 수많은 선익을 베풀 것이다그러니 우리는 지금까지 해 온 일을 그대로 계속하자우리 편에서 할 필요가 있는 일을 함으로써 도움과 빛과 선과 놀라운 진실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게 하여 나의 뜻이 알려지고 통치하게 하려는 것이다...”

여러 나라의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다수의 무고한 사람들이 곤경에 빠지는 것과 같이루이사도 일련의 점증적인 재제 조치에 속박된 몸이 되었다.

1938년 10월 7, ‘하느님 뜻의 집’ 에서 거룩한 열성의 딸들’ 과 함께 지낸 지 꼭 10년 만에 이 집을 떠나라는 강요를 받고 맏델레나 가 20번지의 한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이 아파트에 와서 몇 달 동안은 그래도 매일 미사가 봉헌되었으나 더 이상은 그런 특전을 누리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1938년 12월 28일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에는 글을 쓰라는 명령 또한 철회되었고 때부터 루이사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9년 동안 다시는 자신의 몸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예수님께서 내적으로 가르쳐 주신 것을 끊임없이 실행하고 있었으나 더는 그분을 뵙지 못했던 것이다.

도미니코 제3’ 회원으로 입회할 때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이름을 택했던 그녀는 바로 그 막달레나 성녀처럼 십자가의 발치에 달라붙은 채 사랑하는 그분에 대한 믿음만으로 스스로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한 친구에게 이렇게 썼다.

 

날마다 그분은 내게 거룩한 성체를 모셔 옵니다한 주일에 한 번만 미사 참례를 할 수 있어요수도원을 떠난 뒤에도 얼마 동안은 매일 미사 참례를 할 수 있었는데금서 처분이 내린 지 여섯 달 후 우리 주교님이 돌아가시자금서 처분을 끌어냈던 사제들이 검사성성에서 또 미사 금지령도 얻어 낸 것이지요그렇지만 아무도 나를 하느님의 뜻에서 떼어 놓을 수는 없어요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어요거룩한 미사까지도.’’

 

매일 미사 특전을 상실한 것 외에도 루이사는 약 일 년 동안 고해 사제 베네데토 칼비 신부를 만나지 못했다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39년에 접어들면서 페트로닐리 대주교가 칼비 신부에게 루이사의 고해 사제 임무를 다시 시작하라고 지시했는데그 해가 저물어 갈 무렵 로마의 검사성성에서 트라니 교구청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다시 루이사의 방에서 매일 미사를 드려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코라토에서 루이사는 달리 어찌할 수 없는 상태로 박해의 폭풍을 견뎌 내고있었다나중에 그녀는 한 친구에게 이렇게 썼다.

그대가 로마에서 말한 것과 관련된 새로운 일이 여기에서는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그와는 반대로 책들과 나를 거슬러 큰 폭풍이 일고 있었는데,내 생각에는 코라토 출신의 일부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일으킨 폭풍 같습니다.모쪼록 주님께서 그들 모두를 용서하시며 축복해 주시기를 빕니다악마가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만 들어도 성이 나서 길길이 뛰고 있었던 것입니 .”

 

7월 10일 루이사로 하여금 유명한 예언을 하게 한연합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시칠리아 섬에 대한 반격은 메시나의 기도 수도회’ (로가찌오니스티 수도회고아들을 위험에 빠뜨렸다코라토의 거룩한 열성의 딸 수도회’ (거룩한 열정의 수녀회)는 그 큰 위험을 알아차리고 메시나의 수녀들에게 그들의 고아들을 안전한 코라토에 보내라고 하였다때맞줘 그 어린이들을 옮긴 덕분에 단 한 명도 다치지 않았지만루이사는 아이들 대신 한 희생자” 가 자기 목숨을 바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수녀가오직 한 수녀가 메시나에서 나치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연합군은 9월에 이탈리아 본토에 상륙하여 북진하기 시작했다한때 이탈리아 남부 지방이 전후좌우로 공습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몇 차례 약속하신 대로 루이사를 보시어 코라토가 여러 징벌의 예봉을 면하게 해 주셨다그러므로 남부 이탈리아가 맹렬한 포격을 받는 동안에도 코라토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코라토와 한가지로 산죠반니로톤도의 공동체도 한 거룩한 영혼으로 인해 보호를 받았으니 그는 앞에서 언급한 카푸친회’ 의 오상의 비오 신부였다하느님의 종인 이 두 사람은 직접 만난 적이 없었으나 서로 안부 인사와 기도를 교환했고방문자들을 서로에게 보내곤 하였다.

이를테면 비오 신부의 가장 가까운 제자인 페데리코 아브레스크는 가장 충실한 루이사 숭배자이기도 하였다그는 아들 비오가 첫영성체를 할 때가 되자 산죠반니로톤도에 데리고 가서 성체를 영하게 한 뒤 코리토를 경유하여 집으로 돌아갔다코라토에서 아들을 루이사의 영적 보살핌에 맡기기 위함이었다.여러 해가 지난 후 사제가 된 그 아들이 바로 비오 아브레스크 신부였는데,그는 루이사를 방문한 일과 그녀의 모범적 성덕을 생생하게 기억하였다아버지 페데리코 아브레스크는 비오 신부의 격려를 받고 루이사의 저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산죠반니 로톤도에 기도회를 시작하였다이 회원 중 몇은 루이사의 영성을 통해 사제 성소나 수도자 성소를 받았음을 깨닫게 되었다많은 이들이 비오 신부로부터 루이사의 가르침을 연구하며 실행하라는 직접적인 권고를 받았던 것이다

 

※ 비오 신부의 열성적인 제자인 아드리안나 팔로티도 페데리코 아브레스크의 하느님의 뜻 기도회에 참여했는데나중에 비오 신부의 열렬한 성원으로 자신의 기도회를 시작했다이 기도회는 산죠반니로톤도의 비오 신부 수도원 가까이에 있는 한 건물에서 모임을 계속하였다팔로티의 말에 의하면하느님 뜻 기도회 회원들이 비오 신부에게 루이사의 저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곤 했다고 한다한 젊은이가 비오 신부에게 고해 성사를 받으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팔로티에게 말했다.

신부님루이사가 자신의 글 속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복되신 성모님께서 위대하신 것온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동정원죄 없는 잉태 때문이 아니라그분의 인간적인 뜻을 결코 따르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뜻만을 따르셨기 때문이라고 했는데정말 그렇습니까?”

그러자 비오 신부는 그렇다아들아정말이다정말 그렇다!” 하고 대답하였다그 젊은이는 이어서 말하였다. “신부님한 가지 더 여쭈어 보겠습니다. '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세상 끝 날까지 십자가에 달려 계실 것이라는 것이 정말입니까?... 그리고 그분 십자가의 세로대는 모든 세기 만큼 길고 그 가로대는 온 인류만큼의 너비라는 것도 정말입니까?"

비오 신부의 대답은 똑같았다그렇다아들아정말이다정말 그렇다!“

 

​전쟁이 계속된 몇 해 동안 페데리코 아브레스크처럼 루이사를 찾아오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었다세계 2차 대전 초기에는 폴란드의 운명이 걱정된 크라쿠프의 대주교가 루이사를 방문한 적도 있었는데면담 후 엄숙하고 비통한 표정으로 그녀의 아파트를 떠났다고 한다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있는 연고자의 소식을 알려고 루이사를 찾아왔다이런 이들에게 그녀는 둘 중 하나의 대답을 해 주었다아직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해 묻는 경우에는희망을 가지고 하느님을 신뢰하라고 격려했고이미 죽은 사람에 대해서라면참고 받아들이도록 권고했던 것이다또 몸의 치유를 받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루이사는 이들 중 다수의 사람들에게 자가(自家치료를 권하여 그녀에게서 주의를 돌리게 하였다.

 

한번은 이웃 도시에 사는 어떤 부인이 좌골 신경통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루이사의 방에 들어온 일이 있었다루이사는 그 부인에게 카밀레(국화과의 풀이며 꽃은 말려서 약재로 쓴다 역주)를 빻아 통증 부위에 바르라고 하였다그 지시대로 하여 완전히 나은 그녀는 걸어서 코라토에 다시 와서 루이사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해 줘서 고맙다고 하였다또 한 번은 어떤 남자가 다리에 생긴 고통스러운 종양을 루이사에게 보여 준 일이 있었다루이사는 뜨거운 물수건으로 그 종양을 찜질하라고 하였다그가 그렇게 하자 종양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루이사의 기도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 치유 사례들도 있었다예컨대 맏델레나 가 20번지 그녀의 아파트 위층 이웃인 바르톨로메오 부부의 어린 아들에게 극적인 치유가 일어났다 코라토 주민들은 30년대는 물론 40년대까지도 작은 목조 창고처럼 나무로 둘러 막은 공동 우물에서물을 길러다 썼는데 하루는 마을 소년들이 몹쓸 장난으로 그 안에 개 한 마리를 가두어 놓았었다.지오 바르톨로메오가 물을 길으러 왔다가 이 성난 개에게 발을 물리고 만 것이었다상처의 감염이 급속도로 진행 되었으므로 지역 병원에 수술 일정을 잡아두었으나지노의 어머니는 기어코 루이사에게 아이를 보이고 싶어 하였다수술 바로 전날 밤 자정에 루이사는 이에 동의하였고아이의 발에 손을 댄 채 자기 침대 위쪽에 걸린 십자고상을 바라보면서 아이 어머니에게 안심하라고 일렀다그 이튿날 수술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가서 보니아이의 발은 이미 깨끗이 나아 있었다이런 기적들이 많이 보고되었지만 어떤 기적들은 더욱 놀랄만한 것이었다성 안니발레 디 프란치아에 의하면예수님께서 루이사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죽은 소년을 되살려 주신 일도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기적들이 코라토의 보통 사람들 사이에 루이사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불러 일으켰으므로 그들은 아직 세상에 살아 있는 그녀를 성녀” 라고 불렀고그녀의 모성적인 보호에 대한 신뢰의 상징으로 집안에 그녀의 사진을 두기도 하였다그러나 그들에게 가장 깊은 감명을 준 것은 육체적 치유 사례들이 아니었다바로 그녀의 삶이라는 기적이었다루이사 자신도 사람들이 자기를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대하지 않도록 설득하였다자기를 찾아오는 수많은 방문객에 대하여 그녀는 측근의 협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들이 찾아오며 기도를 한 번 하겠지만오지 않으면 두 번 할 것압니다!”

만일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그녀에게 기도를 청하면그런데 그 사람이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식별하면그녀는 대개 연옥 영혼들을 위한 미사 한 대를 바치라고 조언하였다또 다른 때에는 하느님의 뜻과 하나 되어 사는 그녀에게 허락된 능력으로자기를 찾아온 사람의 당면한 걱정거리를 훨씬 넘어서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어떤 여인이 힘든 임신 기간을 보내며 기도를 청하러 온 적이 있었는데루이사는 그 여인에게 해산이나 태어날 아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고 언니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하였다그 당시에는 이것이 이상한 충고로 보였다그녀의 언니는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례하며 온 고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루이사의 예언이 확증되는 사태가 일어났다얼마 후 산모는 건강한 아기를 낳았지만그 언니는 미치고 말아서 정신 병원에 입원시켜야 했던 것이다.

 

루이사는 또한 직접 자기를 찾아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희망과 격려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한 재소자에게 그녀는 이렇게 썼다.

 

형제여신뢰를 가지십시오당신을 무척 사랑하시며 절대 떠나지 않으실 천상 어머니가 계시니 말입니다당신이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그분께서 당신이 갇혀 있는 교도소를 거룩한 곳으로 만드실 것입니다인간적인 나약이 당신을 거기로 데려갔지만존귀하신 여왕님께서는 하느님 뜻의 힘으로 당신을 천국으로 데려가실 것이며 당신의 나날이 덜 슬프게 여겨지게 하실 것입니다... 이 천상 어머니의 묵주기도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기회가 있으면 교도소 선교사가 되어천상 여왕님께서 모든 재소자를 찾아가셔서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리십시오그 외에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데 대금을 지불할 수 없다면제 말을 믿으십시오틀림없이 그것을 공짜로 받게 될 것입니다.”

 

방문객들과의 서신 교환이나 담론을 통하여 루이사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에 그들 자신을 온전히 맡기도록 도왔다한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는 이렇게 썼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은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아니란다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질 수 없는 짐을 지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얘야모든 것은우리의 뜻을 예수님의 손에 맡기고 우리의 행위를 그분의 행위로 만들려고 하는강력하고 확고하며 한결같은 결심에 달려 있다우리 존재의 모든 것 안에서곧 삶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동작우리의 음식과 수면우리의 고통과 기도와 정당한 즐거움들 안에서 그와 같이 하면하느님의 뜻이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하실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뜻을 가지고 있지 말아야 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죽은 것에 대해 승리를 거둔다면 우리에게도 예수님께도 승리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뜻이 살아 있기를 바라신다그래야 우리가 우리 안에서 일하시면서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아름다운 빛깔로 채색하시는 그분의 거룩하신 뜻의 온갖 선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그러니 인간의 뜻은 하느님 뜻의 집이 되어야 한다그 자신의 자유를 넘겨주면서 하느님 뜻으로 하여금 좋으실 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해 드리는 것이다.”

루이사는 또 자신의 책에 나오는 가르침을 실행에 옮기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작은 것들 에 더 관심을 기울이라고 충고하였다부모들에게는 자녀를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기르라는 단순한 충고를 주었는데그것은 페데리코 아브레스크에게 준 다음의 말과 같은 것이었다.

 

꼬마 비오에게네가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저의 뜻을 가져가시고 당신의 뜻을 저에게 주십시오.’ 하고 말해야 한다 고 이르세요.”

2차 세계 대전의 대학살을 통해 루이사는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미리 말씀하셨던,

  

 

인간의 완고함으로 인한 징벌의 표징을 보았다그녀는 이것을 자주 편지에 내비치곤 하였다.

거룩한 비오 신부님께우리가 평화를 원한다면 주님 뜻의 나라가 오시도록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드려 주십시오.....나는 세상이 하느님의 뜻을 확실히 알게 될 때가 오리라고 믿습니다왜냐하면 성삼위께서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먼저 땅이 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모든 것이 깨끗해졌을 때에 예수님께서 기쁨에 싸여 오시어당신의 피조물 가운데서 다스리실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가하느님의 축복을 항상 누리려면 함께 기도하면서 우리 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합니다

 

루이사는 가끔 방문객들에게 전시(戰時)의 어수선한 혼돈 상태를 뛰어넘어 앞일을 내다보는 예언적 통찰력을 드러내 보였다장차 사람들이 양식을 내다버릴 정도로 대단한 풍요를 누릴 때가 오겠지만 그 뒤에는 더 절약하며 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게 될 기근의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었고그런가 하면 세계 제2차 대전이라는 징벌보다 더 큰 징벌들을 예고하기도 하였다예수님께서 온 도시들을 삼켜 버릴 큰 지진들과 수많은 사람들을 죽일 재난들을 여러 차례 그녀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이러한 일들이 닥칠 것이기에,루이사는 예수님께서 해 주신 약속을 항상 기억하면서 주님의 나라 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도” 오시도록 끊임없는 기도 안에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