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 삼마디와 브라흐만의 자각

은가루리나 2018. 8. 7. 08:54


836.  [문] 붓다(Bnddha, 佛陀)는 무신론자(無神論者)였습니까?

[답]  붓다는 결코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 자신의 깨달음을 전부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붓다>라는 이 말의 의미를 알겠는가. 깊은 명상을 통해서 순수한 지혜(神), 그 자체와 하나가 된 사람」, 「최고 지(智)인 보다 (Bodha, 覺)와 하나가 된 사람」이란 뜻이다. 자각의 상태는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어떤 것이다. 존재와 비존재는 쁘라끄리띠의 변형이다. 실재(Reality)는 이 둘을 초월한 것이다.





837.  지(智)와 무지의 이면(裏面)을 보라. 무지는 많은 것을 의식하는 것을 말한다. 유일자(神)를, 통일성을, 알지 못한 채 다양성만 아는 것이다. 박식으로 인한 이기주의의 근성은 바로 이 무지로부터 생긴 것이다. 신이 이 모든 것 속에 있다는 확신, 그리고 다양성 속에는 통일성이 있다는 확신을 우리는 유일자(神)에의 자각이라 부른다. 진정으로 그(神)를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올바른 깨달음(Vijnana)이다.


발에 가시가 박혔다고 가정해 보라. 너는 또 다른 가시로 그 박힌 가시를 뽑아내려 할 것이다. 그래서 박힌 가시가 뽑히게 되면 두 번째 가시마저도 내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무지의 가시를 뽑아내기 위하여 지혜의 가시를 가져와야 한다. 그리하여 절대자(神)을 완전히 자각하게 되면 그때 지혜와 무지의 가시를 모두 내버려야 한다. 절대자는 무지뿐만 아니라 지혜마저도 초월해 있다.


락쉬마나(Lakshmana Rama의 세째동생)는 그의 형 라마(Rama)에게 말했다. 「라마형님, 바시쉬따 데바*와 같이 신을 자각한 성인이 아들을 잃었다고 우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정도의 슬픔조차도 위로받을 수 없단 말입니까.」 라마는 이렇게 답했다. 「아우여, 신에 대한 상대적인 지혜를 얻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상대적인 무지도 아울러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사물의 본질에 있어서 신(智慧)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무지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경우 지혜와 무지는 상관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통일성(神)에 관한 지혜(Vidya, 明慧)는 다양성에 대한 동시적인 앎(Avidya, 無知)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빛의 존재를 느낀 사람은 또한 어둠의 존재를 느낀다.


절대자(神)는 지혜와 무지를 넘어서 있다. 죄와 복, 선행과 악행, 깨끗함과 더러움 따위의 인간의 한정된 기능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초월해 있다.



[문]  선생님, 그렇다면 지혜와 무지의 가시를 다 뽑아내 버리고 나면 그 다음은 무엇이 남습니까?

[답]  여기 오직 영원히 순수하고 절대적인 의식(神)만이 남는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 누가 너에게 정제된 버터의 맛이 어떤지 물었다고 가정해 보라. 정제된 버터를 먹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맛을 설명한다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이겠는가. 너는 결국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제된 버터의 맛은 분명히 정제된 버터의 맛이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결혼한 친구에게 물었다. 「저기 너의 남편이 온다. 남편을 볼 때마다 느끼는 너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말해 줄 수 있겠니?」결혼한 친구는 이렇게밖에 답할 수 없을 것이다.「친구여, 너 자신이 스스로 결혼해 보면 모든 걸 다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어떻게 그걸 설명할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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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asishtha Deva : 인도의 神話集 Purana에 나오는 성자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