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36권

천상의 책 (36권, 1938년 11월 20일)

은가루리나 2018. 11. 18. 14:47



1938년 11월 20일 

신적인 뜻을 기다리는 영혼. 신적인 뜻은 하느님의 일들을 위해 적응할 수 있는 재료들을 형성한다. 작은 신적 (神的)인 장 (場). 


 ‘신적인 뜻의 빛’으로 나의 행동들을 감싸고 ‘신적인 뜻 자신’으로 나의 행동들을 만들기 위해, 내 작은 행동들을 하려고 할 때나 나의 작은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말하려고 할 때마다, 내 안과 밖에서 ‘신적인 뜻’을 느낀다. ‘그 뜻’은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경이로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관심을 갖고 있다. 피조물이 ‘그 뜻’에게 그의 작은 행동들을 주는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오, ‘그 뜻’이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는지! 오! 나 역시, 나로부터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여 우리 서로를 놀라게 할 수 있도록 하여, ‘그 뜻’을 닮음으로써, 얼마나 주의하려고 하는지! 


하지만 내가 이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모든 것이 사랑이신 분께서, 내 작은 영혼을 방문하시어 말씀하셨다: “내 복된 딸아, ‘내 뜻’ 안에서 살기를 원하는 영혼은 ‘그 뜻’을 기다리며 산다; 그는 ‘그 뜻’과 함께 사랑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가 사랑할 때 ‘그 뜻’을 기다린다. 그가 행동하기를 원하면, ‘그 뜻’은 ‘(직접 행동하는) 배우’이자 ‘관객’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내 뜻’을 기다린다. ‘내 뜻’은, 피조물 안에 살고, ‘(직접 행동하는) 배우’가 되고, 그의 행동들을 ‘그 뜻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피조물이 하는 모든 것에 대한 지속적이고 간절한 바람을 갖고 있다. 


 “게다가, 너는 이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피조물이 ‘내 뜻’ 안으로 들어오면, 그는 그를 감싸는 ‘하느님의 성스러움’, 그를 치장하는 ‘그 뜻의 아름다움’, 하느님 안에서 그를 변화시키는 ‘그 뜻의 사랑’을 발견한다. ‘그 뜻의 순수함’은 그를 너무 맑게 만들어서 그는 더 이상 그 자신을 인식하지 않는다; ‘그 뜻의 빛’은 그를 ‘하느님 같이’ 만든다. 오! ‘내 뜻의 힘’이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이것이 모든 영원으로부터 준비되었고 그 피조물을 위해 행해졌던 ‘그 뜻의 일들’을 하기를 원하여, ‘그 뜻’이 피조물의 ‘관람자’가 되는 이유이다. ‘내 뜻’은 ‘내 뜻의 끊임없는 움직임에서 억눌려지기를 원치 않고, 받고 줄 수 있고 ‘그 뜻’ 안에서 사는 이를 기다리며 고통 받지 않기 위해서, ‘그 뜻의 영원한 움직임’ 안에 그 피조물을 가둬두는 지경에 이른다. ‘그 뜻’은 ‘그 뜻’과 함께 가까이 살 피조물을 갖지 않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그 뜻’이 ‘그 뜻의 신적인 움직임과 성스러움 안에서 피조물을 느끼지 않으면, ‘그 뜻의 사랑’은 마치 구금되어 질식 당하는 것 같이 남는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작은 신적인 장 (場)’을 ‘내 뜻’ 안에서 사는 이의 안에 유지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뜻’이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일들’을 만들 수 있는 적당한 재료를 제공하는 중에, ‘우리의 일’을 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이 영혼의 작은 장 (場)에서 일하기를 원할 때, ‘우리’는 ‘우리의 신성한 손’을 진흙이 묻은 인간 안에 놓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성스러움’의 재료를 발견하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일들’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를 끄는 ‘우리의 순수함’을 찾기를 원한다; ‘우리’를 매료시키는 ‘우리의 아름다움’; ‘우리’를 일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지워지는 ‘우리의 사랑’. ‘우리의 뜻’ 만이 ‘우리의 일’을 위해 이 신적인 재료들을 제공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 맞게 적용될 수 있어서, ‘우리’는 천국과 지상을 놀라게 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반면에, ‘우리’는 ‘우리의 뜻’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아무 것도 못하도록 강요당한다. ‘우리’가 우리의 적당한 재료들을 못찾고, 만약 어떤 선이 있다면, 그것은 겉으로만 순수한 것이고, 자존심, 우월감, 비뚤어진 의도에 얼룩진 것이다.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일들’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피조물 안에서 일하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는 우선 확실히 해 놓고, 그 후에 행한다. 너는 이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피조물이 ‘우리’ 안에서 행동을 더 많이 할수록, 그는 ‘하느님’ 안으로 더 많이 들어온다; ‘우리의 신적 태’ 안에 작은 장 (場)을 더 넓히고, ‘우리’는 ‘아름다운 일들’을 더 많이 할 수 있고, ‘우리 자신’을 더 많이 줄 수 있다. 


 “따라서, 피조물은 언제나 더 많아지는 우리의 ‘신적인 생명’의 행동 아래 있다. 그를 향한 ‘우리의 사랑’은 너무 커서 ‘우리의 팔’ 안에 그를 안고 끊임없이 ‘’우리’는 너를 ‘우리의 모습’과 닮게 만든다’라고 반복한다. ‘우리’는 그를 ‘우리의 신적 호흡, 우리의 신성함, 힘, 선함으로 양육한다; ‘우리’는 그를 보며 ‘우리의 반사된 모습, 우리의 지혜, 우리의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우리’가 ‘우리의 신적 속성들’로 서로 묶여 있다면 –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에게 다시 주기 위해 그가 ‘우리’를 소유하고 ‘우리’가 그에게 준 것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댓가로 준다면 – ‘우리’가 어떻게 이 피조물 없이 있을 수 있겠느냐? 이를 넘어서, ‘우리 뜻’ 안에서 삶으로써 그는 ‘우리’로부터 일들이 아니라 ‘생명’을 생성하는 미덕을 받았다. 사실, 그에게 ‘우리의 성스러움’, ‘사랑’, 모든 다른 것을 줌으로써 ‘우리’는 그에게 ‘생성하는 미덕’을 준다; 그는 끊임없이 ‘성스러운 생명’, ‘사랑의 생명’, ‘빛의 생명’, ‘아름다움(의 생명)’, ‘힘(의 생명)’, ‘지혜(의 생명)’을 생성하여, ‘우리’에게 그것 (‘생명’)을 제공한다. 그는 ‘우리’가 준 모든 것을 ‘생명’으로 바꾸어,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오! ‘우리의 신성함’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우리’에게로 돌아오는 매우 많은 ‘생명들’을 보는 것은 – ‘우리의 빛, 지혜, 아름다움’ 안에서 이것이 행해지는 것을 보는 것은 - ‘우리’에게 대단한 잉태, 굉장한 축제이고 영광이 아닌가; 다른 피조물들은 기껏해야 신성함과 사랑의 일들을 줄 뿐이지, ‘생명’은 아니다. 오직 ‘우리 뜻’ 안에 사는 자만이, 그는 ‘우리’로부터 ‘생성하는 미덕’을 – 그가 원하는 만큼의 많은 ‘생명들’을 만들 수 있는 미덕을 - 받았기 때문에, 그의 행동들로 많은 생명들을 만들 수 있고 이렇게 말한다: ‘당신’께서 저에게 주신 ‘생명’; 그 ‘생명’, ‘당신’께 되돌려 드립니다.’ 


 “그러니 이 큰 차이를 보아라: ‘생명’은 말할 수 있고 끝나지 않는다. ‘생명’은 생성할 수 있다. 일들은 말할 수 없고, 생성하지 못하며, 흩어져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누구도 ‘우리 뜻’ 안에서 사는 이들과 ‘우리’를 위한 ‘사랑’을 가진 이에 미치지 못한다. 그들이 아무리 많은 큰 일들을 한다고 해도 그것들은 항상 큰 바다 앞의 작은 물방울들, ‘태양’ 앞의 작은 빛과 같다. ‘내 뜻’ 안에서 사는 피조물의 단 하나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모든 피조물의 모든 사랑을 모은 것을 훨씬 앞선다. 이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비록 작지만, 모두를 포용하고 모두의 위로 솟는다; 그것은 ‘우리’의 품 안으로 와서 ‘우리’를 포옹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수많은 애무를 하고, ‘우리의 사랑’에 대한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우리에게 말한다; 그것은 ‘우리의 태’안에 피신처를 마련하고, ‘우리’는 그것이 항상 이렇게 반복하는 것을 듣는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 생명의 ‘생명’ – ‘당신’은 저를 만들어 내셨고 저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이들 피조물들이 하기를 원하는 어떤 것에서건 그들은 다름 아닌 바로 ‘생명’을 만들어 낸다. 만약 그들이 선하고 성스러운 행동들을 하면, ‘우리 뜻의 생명’을 소유함으로써, ‘우리 아름다움의 생명’과 ‘우리 성스러움의 생명’을 만든다; ‘우리’의 품안으로 와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아름다움’과 ‘우리의 성스러움’의 이야기를 해준다. 오!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 얼마나 많은 ‘은총’을 갖고 ‘우리의 선함’의 퍼져나감과 ‘우리 성스러움’의 높음과 큼에 대해 - 얘기해 주는지. 그들은 ‘우리’가 얼마나 ‘선’하고 ‘성스러운지에 대해 반복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우리의 신적인 태’ 안으로 자신을 내던지며, 심지어 ‘우리’가 얼마나 선하고 성스러운지를 알기 위해 가장 은밀하게 숨겨진 곳까지 들어와서는, ‘우리’가 얼마나 선하고 성스러운지를 계속해서 우리에게 노래한다. 오! ‘우리 자신’과 결합된 인간의 뜻으로부터, 그의 ‘창조주’가 누구인지를 속삭이며, ‘우리 신적인 역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요약하면, 그가 ‘우리’를 찬미하기를 원하면, 그는 ‘우리 영과의 생명’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힘, 지혜, 아름다움’을 칭송하면, 그는 그 안에서 ‘우리 신적인 특징들의 생명’을 느낀다; 그는 ‘우리’에게 ‘우리’가 얼마나 강하고, 지혜롭고, 아름다운지 이야기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생명의 ‘생명’, 이제 제가 ‘당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신’에 대해 말하고 ‘당신의 신적인 이야기’에 대해 말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이 ‘생명들’은 항상 움직이고 항상 ‘우리 지고한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우리’에게는 가장 위대한 영광이자 ‘우리’의 길고도 분리될 수 없는 ‘세대’이다. 하나의 ‘생명’은 다른 ‘생명’을 기다리지 않는다: 하나가 오면 다른 하나가 뒤를 따르고, 다른 하나가 다시 온다 – 끝이 없다. ‘우리의 행복’은 충만하다 –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피조물과 함께 하는 ‘창조’의 목적이 완성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 안에서 즐기고 그가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 ‘우리’는 그가 ‘우리’를 더욱 더 닮게 만든다. 어찌 ‘우리’에 속한 이가 함께 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리고, 심지어, ‘우리’는 그의 생명의 ‘생명’이기 때문에 그 피조물이 같이 있는 것을 사랑한다. 


 “이것이 ‘우리 아들들’ 중의 첫째인 아담이 자기 자신의 뜻을 하려고 ‘우리의 뜻’으로부터 내려갔을 때 ‘우리의 고통’이 컸던 이유이다. 불쌍한 아담. 그는 그의 행동들로 ‘신적인 생명들’을 생성할 수 있는 ‘생성의 미덕’을 잃었다; 기껏해야 ‘생명들’이 아닌 일들만을 만들 수 있었다. 그가 ‘우리의 뜻’과 결합되어 있었을 때는 ‘신적인 미덕’을 소유했었고, 그의 행동들로 그가 원하는 만큼의 ‘생명들’을 만들 수 있었다. 생명을 줄 수 없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어머니, 또는 가장 순수하고 밝게 빛나는 금색 실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으로 일을 하고 싶어하지만 이내 그 금실을 내던져 버리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그에게 일어났다: 그는 ‘생명’으로서의 ‘내 뜻’을 옆으로 치워버렸다 – 그는 쇠로 된 실과 같은 자기 자신의 뜻의 실을 사용했어야만 했다. 불쌍한 피조물. 그는 더이상 금으로 된 일들을 – ‘내 뜻’의 찬란한 ‘태양’에 의해 비추어진 일들을 - 할 수 없었다. 그는 단지 쇠로 된 일들만을 하며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고, 필요하면, 심지어 열정으로 더러운 일들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담의 운명은 너무 반대가 되어 그가 그 자신마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는 빈곤의 구렁으로 내려가 버렸다; ‘강함’과 ‘빛’은 더이상 그의 권한이 아니었다. 그가 죄를 짓기 전에 그의 모든 행동들에서는 ‘우리의 형상과의 닮음’이 자라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가 그를 창조했던 행동 안에서 취했던 과업이었고, ‘우리’는 ‘우리의 창조적인 특성을 갖는 말’을 그의 행동들을 통하여 작용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과업’을 유지하기를 원했었다. 또한 ‘우리’는 그를 항상 ‘우리’와 같이 하게 하고 ‘우리’와 계속 소통하게 하기를 원했었다. ‘우리의 고통’은 컸고, ‘모든 것을 보는’ ‘우리’가, 미래의 세기들에서, ‘우리의 심한 고통’에 대한 작은 위안과 같이, ‘생명’으로서 다시 다스리는 ‘우리 뜻’을 못보았다면, ‘우리의 뜻’이 더이상 다스리지 않을 때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몰라, ‘창조’ 전체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창조’는 오직 피조물들을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졌고, ‘우리’는 모든 것들을 ‘우리 자신’과 피조물들을 위해 창조했다. 그러니, ‘내 뜻’이 ‘생명’으로서 돌아오게 기도하여라. 너 자신은 ‘그 뜻’의 희생물이 되어라.”

[출처] 천상의 책 (36권, 1938년 11월 20일)|작성자 J M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