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36권

천상의 책 (36권, 1938년 11월 30일)

은가루리나 2018. 11. 18. 14:48



1938년 11월 30일 

신적인 뜻 안에서 거니는 이는 그 뜻의 업적들 주위를 돌아다닌다. 그는 하느님께서 그를 위해 준비하셨던 지참금을 받고, 그의 나날들을 형성한다. 그는 천국과 지상 사이의 평화의 전령이 된다. 신적인 생성의 소유자. 


나는 우리를 위한 ‘사랑’으로 행해졌던 ‘신적인 뜻의 행동들’ 안에서 나의 순례를 하고 있었고, 내가 보기에 각각의 ‘행동’은 ‘그 뜻’이 행한 모든 것이 인식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 뜻의 사랑’은 절대 끝나지 않으니, ‘그 뜻’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고 아직 우리를 사랑하고 있는지. 그래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신적인 뜻의 행동들’ 안으로 항상 돌아옴으로써 내가 어떤 선을 행하고 있나? 


그리고 나의 항상 사랑하올, 모든 선이신, 예수님께서, 갑자기 나타나 놀라게 하시며, 말씀하셨다: “나의 복된 딸아, 너는 이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우리가 구원사업과 더불어 창조사업에서 한 모든 것 안에 우리 자신의 선들과 업적들을 피조물에게 주기 위하여 지참금을 만들었다. ‘우리의 뜻’ 안으로 들어오는 영혼은 자신의 지참금을 인식하고 사랑하여 소유하기 위해 온다. 그의 창조주에 의해서 그에게 주어진 이 아주 많은 지참금을 알기 위해서 ‘우리 뜻’ 안에서 돌아다니면, 시간 상에 그의 날을 형성하게 된다. 그가 돌아다니고, 걷고, 사랑하고, 아는 만큼의 날들을 형성한다. 나는 그가 시간 상에서 살면서 받고 알 수 있는 이 큰 지참금을 이 이유 때문에 주었다: 끝나지 않을 그의 영생의 영원한 날을 그의 머리에 씌워 줄 그의 날들을 형성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 뜻’ 안에서 더 많이 돌아다닐수록, 천국에서 더 부유하고 영광스러워지도록 더 많은 날들을 형성한다. 


“만약 피조물이 이 많은 지참금을 인식하고, 소유하고, 사랑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많은 선들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곤하게 살고 궁핍을 강요 당하는 불쌍하고 불행한 자가 될 것이다. 이는 아들에게 매우 큰 재산을 주었지만,아버지로부터 받은 이 재산을 알려고 하거나 그것을 소유하여 즐기기 위해 자주 가보려 하지 않는 아들의 아버지에게 일어나는 일과 같다. 이 아들은 자기가 소유할 수 있는 이 모든 좋은 것들을 관리하거나 인식하지 않고, 부에서 빈곤으로 추락한다. 사람들은 그가 그 아버지의 적법한 아들이 아닌 것 같아서 아버지의 고귀함으로부터 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부유하지만, 아들이 다른 이들에게 빵을 구걸하는 불쌍한 부랑아로 밖에 볼 수 없는 아버지의 고통이 어떠하겠느냐” 만약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이 아들은 그의 아버지를 고통으로 죽게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지고한 존재’의 상태이다. 우리가 창조한 모든 것들은 피조물을 행복하고 부유하게 하고,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고, 우리가 그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알게 하기 위한 지참금이었다. 따라서, 우리의 업적들 안에서 거니지 않는 이들은 그것들을 인식하거나 소유하지 않고, 시간 상에서 그들의 나날들의 가치를 얻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고통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항상 우리의 업적들 안으로 들어와라. 더 많이 올수록, 정당한 권리로 그것들을 더 많이 인식하고, 사랑하고, 소유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내 뜻’ 안에서 행해진 각각의 행동은 지상을 떠나 천국으로 가는 평화의 전령이다. 천국과 지상 사이에 평화를 가져오게 된다. ‘내 뜻’ 안에서 하는 하나하나의 말은 평화의 계약을 전달하고, ‘그 뜻’ 안에서 살려고 오는 이들은, 최고의 선으로서, 그와 우리 사이의 평화의 계약을 받는다. 그는 마치 우리의 신적인 평화로 부음 받음을 느낀다. 이 평화의 계약으로 그는 그의 안에 천국과 지상 간의 평화수호자가 되는 미덕을 느낀다. 그의 내부는 모든 것이 평화이다; 말이 평화스럽고, 시선이 평화스럽고, 움직임이 평화스럽다. 오! 그가 한 마디로 우리와 피조물 간에 얼마나 많은 평화를 주는지. 그로부터 오는 달콤하고 평화로운 한 번의 시선이 우리를 아프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징벌들을 은총들로 바꾸도록 만든다. 그래서, 그의 행동들은 바로 평화의 계약이다 – 피조물들의 평화의 입맞춤을 신에게 가져오고 신의 입맞춤을 피조물들에게 가져오는 평화의 전령들이다. 더우기, 피조물이 ‘우리 뜻’ 안에서 더 많이 살수록, 우리의 신적인 가족 안으로 더 깊이 들어와서, 우리의 방식을 취하고 우리의 비밀들을 받는다. 우리와 더 많이 닮아 보이고, 우리는 서로 더 사랑하고, 우리로 하여금 항상 새로운 은총들을, 새로운 사랑의 놀라움들을, 주는 상태에 있게 한다. 우리는 그를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우리 집에 계속 있게 한다. 우리의 식탁에서 같이 먹고 우리의 무릎에서 잠을 잔다. 그저 우리는 그 없이 살 수가 없다. ‘우리의 뜻’이 그를 우리와 너무 단단히 묶어서, 그의 사랑과 매력을 느껴, 그 없이 우리가 있을 수 없고, 그도 우리 없이 있을 수 없다. 


이 후에, 그분께서 덧붙이셨다: “내 딸아, ‘우리 뜻’ 안에서 피조물이 산다는 우리의 희망이 너무 커서, 출산기를 느끼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불쌍한 어머니의 상태에 있는 것 같은 우리 자신를 발견한다. 그 어머니는 아이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지, 누가 아이를 받아줄지 모른다. 불쌍한 어머니,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우리 지고한 존재가 이 상태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생산할 필요를 느끼지만, 우리를 어디에 놓아야 하느냐? ‘우리의 뜻’이 피조물의 생명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있을 곳은 없다. 우리 자신을 줄 사람이 없고, 우리를 먹일 사람이 없다 – 심지어 우리 사랑스러운 왕권을 필요로 하는 왕궁도 없다. 우리의 가장 신성한 ‘삼위’는 항상 생산하는 행위 중에 있기 때문에, 이 탄생들은 우리 자신 안에서 억눌려진 채 남아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신성한 삼위’를 피조물 안에 생산하지만, 그들이 ‘우리 뜻’ 안에 살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신적인 생산’을 받는 이가 아무도 없다. 우리 자신들이 거부당하여 다시 우리 자신 안으로 오늘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피조물들 안에 ‘우리의 영원한 생성’이 만들 수 있는 ‘위대한 선’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뜻’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영혼이 그의 행동들을 형성하면, 그는 모든 것의 소유자가 된다. 그가 흠숭하면, 모든 이의 흠숭을 우리에게 가져온다; 그가 고통을 당하면, 그는 모든 이의 치유를 포함한다. ‘우리 뜻’ 안에서의 하나의 행동은, 우리가 ‘우리의 뜻’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지고한 존재의 소유자가 될 정도로, 모든 이와 모든 것을 능가하고, 포함하며, 포용한다. 그러므로, ‘우리 뜻’ 안에 사는 이는 그의 행동들 하나하나마다 그가 원하는 어디든 우리를 데려오기 위해 우리를 포용할 수 있다; 피조물들에게, 우리 자신을 알리기 위해; 모든 창조에게, 우리의 업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말하기 위해; 우리 자신에게,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기 위해: ‘보십시오, 제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제가 심지어 당신께 당신 자신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빛의 동심원 밖으로 나가지 않는 태양의 구체와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빛이 비록 지구의 저 밑까지 가서 모든 것, 심지어 아주 작은 식물까지 비추지만, 그 빛으로부터, 그것이 있는 높은 곳으로부터, 떨어지지 않는다; 그 빛이 하는 무엇이든 하면서 그 광선과 함께 겆는다. ‘우리 뜻’의 소유자인 우리도 그렇다; ‘우리 뜻’이 우리 자신의 소유자다. 우리는 하나의 생명이고, 그 뜻 안에 사는 이는 누구나 우리 신적인 존재의 소유자가 되고, 우리는 그 작은 인간적 뜻의 소유자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너무 사랑해서, 그것은 우리의 승리와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기쁨을 만들어 준다: 인간적 뜻 안에서 ‘우리의 뜻’이 성취된 것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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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상의 책 (36권, 1938년 11월 30일)|작성자 J M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