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과 순결에 대하여

Re:<교육을 마무리할께요>

은가루리나 2018. 12. 26. 17:45


2017년 11월 29일연중 제34주간 수요일복음 ╂ 오늘의 복음


알맹이 등급변경▼  조회 228  추천 0  2017.11.29. 04:4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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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2017년 11월 29일 복음 - 하섭내 새 번역본 제5장 ╂ 오늘의 복음


moowee 등급변경▼ 조회 385 추천 0  2017.11.29. 13:53



<하섭내 새 번역본>


제5장 순수한 신앙 상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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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e:Re:하섭내 새 번역본 제5장/ 

천상의 책_맡김{1권 61장} 

그분께서는 진리의 말씀을 주시는 바로 그 순간에 창조 행위도 함께 하신다. ╂ 오늘의 복음



moowee 등급변경▼ 조회 218 추천 0 2017.11.30. 22:41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1-61


예수님께서 당신 원의를 드러내시려고 쓰신 방법들

셋째 방법




moowee 17.11.30. 09:50



<8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내가 얼마나 ★ 순결★ 한지 보아라!  너도 이처럼 순결하기 바란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한 순결의 티없는 광채가 동반되는 이 말씀을 듣자, 

마치 그분의 순결이 온전히 내 안에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므로 


그 이후부터는 그분의 향기에 취하여  육신이 없는 사람처럼 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 무화 + 끊지기들 > !

하느님이 성(性)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 오! 

그러나 그분은, 정말이지 그것을 잘 보십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이리 단순합니까! >


<하섭내 새 번역본> 제5장 순수한 신앙 상태에 대하여 중에서.




앗숨  17.11.30. 22:50  



<성자를 통하여 알려지신 성부>

가톨릭 기도서 제1편 239항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신앙의 언어는 주로 두 가지 측면을 가리킨다. 

먼저 하느님께서는 만물의 근원이시며 초월적인 권위를 지니셨으며, 

동시에 당신의 모든 자녀를 자비와 사랑으로 보살피신다는 점이다. 


하느님의 부성은 또한 모성의 모습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데41) 

이는 하느님의 내재성과, 하느님과 당신 피조물 사이의 친밀성에 

더 주목하여 가리키는 것이다. 

이처럼 신앙의 언어도 부모들에 대한 인간적 경험에서 도움을 얻는다. 

어떤 면에서 인간은 부모에게서 처음으로 하느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인간인 부모들이 그릇될 수도 있으며 

부성과 모성의 모습을 왜곡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성별을 초월하신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분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하느님이시다.

그분은 인간적인 부성과 모성의 근원이며 척도이시면서도42) 이를 초월하신다.43) 

아무도 하느님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일 수 없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평등과 차이> 

제1편 370항



하느님께서는 결코 인간의 모습이 아니시다. 

그분께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시다.

하느님께서는 성을 구별할 여지가 없는 순수한 영(靈)이시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의 ‘완전성’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어떠한 완전성, 

곧 어머니의 완전성,240) 아버지와 남편의 완전성을 반영한다.241)




*예비자 교리 교재 <함께하는 여정 중에서>*



8. 왜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조상과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돌보심으로써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셨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고 ‘너희 아버지’라 부르심으로써 

외아들로서의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도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고, 

그분께서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요한 1,12)주셨기 때문입니다.


현대 여성신학에서는 어머니로서의 하느님을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하느님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성(性)을 초월하여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해욱프란치스코62 17.05.26. 00:49


부활 논쟁(마르 12,18-27; 루카 20,27-40) 


23 그날,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4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이 자식 없이 죽으면, 

그의 형제가 죽은 이의 아내와 혼인하여 그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25 그런데 저희 가운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혼인하여 살다가 죽었는데, 

후사가 없어서 아내를 동생에게 남겨 놓았습니다. 


26 둘째도 셋째도 그러하였고 일곱째까지 그러하였습니다. 


27 맨 나중에는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28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 일곱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그들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31 그리고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해서는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않았느냐?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33 군중은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의 가르침에 감탄하였다. "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참으로 부족한 우리들이지만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래도 우리들은,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는 말씀 그대로,


<장가드는 일 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남녀 서로 간에

차별(구별이 아니라) 없이 살아가야 되겠지요, 어렵지만!



사랑하는 아버지,

거내영과 아버지께 내맡긴 하내영들을 맡기오니

천사들처럼 살알 갈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주소서!(청원기도)




Re:Re:Re:Re:Re:하섭내 새 번역본 제5장/ 단순(單純)함 ╂ 오늘의 복음


moowee  등급변경▼  조회 217  추천 0  2017.11.30. 22:41




Re:Re:Re:Re:Re:하섭내 새 번역본 제5장/ 순결과 동정 ╂ 오늘의 복음


moowee 등급변경▼ 조회 240 추천 0 2017.12.01. 10:20



moowee 17.11.30. 23:23



사실, 제가 <하느님의 性的 정체성>에 대해서 

끊지기 여러분께 질문을 드린 이유의 속내는 그것보다 

★순결 ★이라는 덕목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 위하여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순결>이라는 덕목을 생각할 때 

<육체적 순결>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난>이라는 덕목을 생각할 때,

<물질적 가난>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순결>이라는 덕목을 생각할 때도 

<육제적 순결>만을 생각헤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얼~마 전,

<童貞>에 대한 저와의 대화 도중 이곳을 떠나버린 어떤 하덧사가 생각납니다.


<童貞性>을 자신의 신앙생활의 최고 가치로 여기는 그 자매에게 

저는 <童貞에 대한 저의 생각>을 이야기했으나,

그 자매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곳을 떠나간 것입니다.



<童貞>에 대해서도 저의 생각은 마찬가지입니다.

동정을 <육제적 동정>만을 생각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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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  17.12.01. 23:49


[기독교여성들] 신의 어머니가 된 동정녀 마리아 영성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붙여진 처음 이름은 Virgin Mary, 동정녀 마리아였다.

성서는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 예수의 탄생을 예고했을 때 

마리아는 아직 결혼 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마태1,23)



'처녀 어머니'가 탄생되는 순간이다. 이것이 과연 실제로 가능한 일인가?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는다. 

과학적 사유가 일상이 된 오늘날, 

어머니 마리아에게 주어진 동정녀라는 이름은 

종교적 전제가 붙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름임에 틀림이 없다.


'처녀'와 '어머니'는 

생물학적으로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리아의 존재를 기록했던 성서시대의 동정녀 개념을 먼저 살펴보자.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본래의 동정녀 개념은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에서 

육체적 순결을 지키고 있었던 일반 처녀를 이르는 말은 아니었다.


일생을 하느님을 위해 살겠노라고 

종교적 순결을 서원한 미혼 여성을 구분하여 부르는 개념이었다.


신약 성서에는 기독교 탄생에 영향을 미쳤던 여성들을 이르는 말 가운데 

동정녀 외에 과부라는 이름이 여러 군데 나온다.



이것도 

단순히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남겨진 여성을 부르는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라

남편과 사별하고 일생을 '하느님의 딸'로 살아가기로 결단하고 

종교적 삶에 온전히 헌신했던 여성을 존중하여 부르는 개념이었다.


하느님께 자신의 일생을 바치며 신실한 삶을 살았던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신앙의 모범이 되었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특별히 존경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동정녀의 개념은 종교적 신실함의 의미는 점점 퇴색되고 

육체적 순결을 지키는 삶으로 그 의미가 대폭 축소된다.


헬레니즘적 세계관에 익숙했던 남성지식인들이 

기독교를 변증하고 교회의 리더로 자리 잡으면서, 

동정녀 마리아는 하느님을 향한 신실함을 끝까지 지킨 신앙의 모범에서

점차로 육체적 순결을 간직한 순종적인 처녀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 상위카페에서 옮겨와 보았습니다.>


<순결>은 이렇듯 육체적 순결의 개념이 아닌 온전히 하느님으로 가득 채운, 

하느님 없이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하느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영혼의 깨끗함, 영적 올곧음'

- 하느님 뜻대로 거룩히 살고자 하는 

절대적 이상을 품은 영혼의 마음이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김소영데레사51 17.11.29. 



["복음적 가난''


도미니코회 지성 전통에 속해 있던 에크하르트는 

물질적 가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정신적 가난 즉 영적 가난 에 관심을 두었다. 



그의 눈으로 볼 때, 

영적 가난을 살지 않는 당시 사람들은 

어느 시대보다도 자기 아집에 매여 있어 

자유로울 수 없었고 평화를 맛볼 수 없었다고 그는 파악한다.]



[영적 가난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2코린 8,9)


빈곤은 가난과 똑 같은 것이 아닙니다. 

빈곤은 신앙이 없는, 지지가 없는, 희망이 없는 가난입니다. 

세 종류의 빈곤이 있습니다. 


물질적 빈곤, 도덕적 빈곤, 그리고 영적 빈곤 이 그것입니다. 

물질적 빈곤은 통상적으로 가난이라고 합니다.


복음은 영적 빈곤에 대한 실질적인 해독제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2014년 사순 메시지 -]




moowee 14.03.03. 08:12 



참으로 감사합니다, 요한님!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글은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다른 교황님들

(교황 바오로 6세, 교황 요한 바오로 1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베네딕도 16세)에 비해 

<느낌>이 매우 다릅니다.



특히 

<빈곤은 가난과 똑 같은 것이 아닙니다. 

빈곤은 신앙이 없는, 지지가 없는, 희망이 없는 가난입니다. 

세 종류의 빈곤이 있습니다. 

물질적 빈곤, 도덕적 빈곤, 그리고 영적 빈곤이 그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교황님이 언급하신 3가지 빈곤 가운데

마지막 빈곤 즉 <영적 빈곤>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빈곤이라 생각합니다.


영적 빈곤을 해소 시키면, 

나머지 <물질적 빈곤과 도덕적 빈곤>은 저절로 해소될 것입니다.

그것이 올바른 <순서>이고, 순리입니다. 


이 지구상 인구의 절반이 넘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신앙인들(이슬람교, 그리스도교)의 영적 빈곤이 해소되면 

교황님이 외치시는 <물질적 빈곤>은 저절로 해소될 것입니다.

<도덕적(정치적) 빈곤>도 아울러 말입니다.


<사회정의>를 외치시는 분들도 

그들 스스로가 <영적 빈곤>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영적으로 빈곤한 이들이 외치는 <사회정의>는 울리는 꾕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정의를 내세우며 정의를 구현하겠다 외치는 분들도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의 <영적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영적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나가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느님을 만나 하느님으로 채워지면 모든 빈곤이 해소됩니다.★

<도덕적(정치적) 빈곤>도 아울러 말입니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말합니다.

<죄는 결핍에서 생겨난다. 

영혼 안에서는 결핍을 처음부터 뿌리뽑아야 한다.

그대 안에 결핍이 있다면 그대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다.>고 말입니다.


결핍이 많은 상태가 <빈곤>이 아니겠습니까.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충만> 자체이신 하느님을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해답>입니다, 해답,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답입니다.★




<순결>도 <동정>도 다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