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제3장] 24. 이유|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은가루리나 2019. 2. 1. 22:37




24.   이유



우리가 하느님을 뵙지 못한다면 그것은 피조물들 때문이기보다는 우리의 소망이 약하기 때문이다.

드높은 곳에 뜻을 두고 높아지도록 하라, (p. 133)


당신은 결핍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지옥에서 불타는 것은 무엇인가? 

학자들은 모두 자기 의지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나는 지옥에서 불타는 것은 결핍이라고 주장한다. 비유로 말해 보겠다.


내가 불타는 석탄을 손 위에 놓았다고 해보자. 이때 석탄이 나를 태우고 있다고 말한다면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나를 태우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규정해 본다면 그것은 결핍이다.

석탄은 그 안에 내 손이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는 것이다.


잘 살펴보라. 바로 이 결핍이 나를 타게 만든다. 내 손이 석탄과 같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면 그 손은 똑같이 불타는 본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느님과 하느님을 뵙는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에 속한 어떤 것을 지니고 있는데 

하느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 결핍이 자기 의지나 어떤 불보다도 지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p48)


죄와 악, 또는 어둠으로 가득찬 죄인은 이 빛을 받을 수 없다. 성 요한이 말하듯이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알아보지도 못한다.

빛이 들어오는 길이 어리석음과 어둠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은 마치 하느님과 피조물처럼 양립할 수 없다.

하느님이 들어오면 피조물을 나간다. (pp.10-11)


자신의 근저에서 너무 오랫동안 계속해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경우가 아니고서는 어떤 사람도 길을 잃지 않는다. 성아우구스티노는 많은 사람들이 빛과 진리를 추구하면서도 그것이 없는 곳에서, 먼 곳에 떨어져서 찾는다고 말한다.


이들은 결국 너무 멀리 가서 결코 돌아오지 못하고 길을 찾지 못한다.

이 사람들은 진리를 발견하지도 못한다.

진리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근저 안에 있기 때문이다. (p.11)


많은 경우 우리는 좋은 선물을 받으면서도 처녀처럼 소심하기 때문에 부인들처럼 열매를 맺어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를 낳지 못한다.

그러면 선물들은 변질되고 사라지며 인간은 그 선물들로 인해 더 나아지거나 행복해지지 못한다.


이 경우에는 그 동정성은 쓸모가 없다.

동정성에 부인의 완전한 풍요로움이 더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해로운 일이다. (p. 35)


하느님이 정신에게 아무리 자연스럽고 적합하다 하더라도, 

정신이 피조물들과 제휴하여 그들의 방식에 익숙해져 버리면 정신은 약해지고 

자기를 지배하지 못하며 좋은 지향에 중대한 결함을 가져온다.


그렇게 되면 잃어버린 근저를 되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만약 되찾게 되더라도 인간은 언제나 방어 태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제2권 p. 31)


인간의 영혼과 지성이 죽어버리면 통제되지 않은 악이 이를 정복하게 된다.

영혼과 육신을 분리하는 것은 나쁘지만 하느님에게서 분리된 영혼은 훨씬 더 나쁘다. (p.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