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루이사 피카레타의 생애와 사명 〔제2장-그리스도의 부르심 ③〕(p.15-19)

은가루리나 2015. 12. 27. 01:11


4 (p.15)



  이 열렬한 영적 성장의 시기에 루이사는 수도 생활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게 되어 

예수님께 수녀가 될 은총을 주시기를 빌었다. 

그분께서 그 청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시자, 

그녀는 양친에게 원죄 없으신 잉태 수도회에 입회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하였다. 

양친은 그런 생각을 접게 하려고 했지만 루이사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열네 살이 된 해에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낸 루이사는 

순진한 확신을 가지고 그 수녀들에게 가서 원장수녀님과의 면담을 청하였다. 

그러자 수녀들은 원장 수녀님이 매우 바빠 만나 줄 수 없다고 하면서 그녀를 돌려보냈다.  


  이 거절에 영적으로 짓눌린 루이사는 복된 성사 안에 계신 예수님께 그 심정을 토로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과 피조물의 변덕스러운 사랑의 차이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녀에게 특별한 애착을 가지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그래도 수도 소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 루이사는 

코라토에 있는 봉쇄 수도원 ‘클라라회’ 에 들어갈 마음을 굳혔는데, 

여기서도 다시 실망과 마주쳤다. 

루이사의 어머니가 그 수녀들에게 그녀의 허약한 건강에 대해 알려 주었으므로 

그들 역시 루이사의 청원에 퇴짜를 놓았던 것이다.


  나중에 이 거듭된 거절을 회상하면서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께 

’하지만 당신께서는 저에게 거짓말을 하셨습니다. 

꼭 수녀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시면서 저를 놀리셨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그럴 때마다 예수님은 

당신 말씀의 진실성을 천명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를 뿐더러 누구를 놀릴 줄도 모른다. 

너에 대한 나의 부름이 특별한 것이었을 뿐이다. 

수녀가 되어 더할 수 없이 엄격한 수도 생활을 할지라도

 (지금의 너처럼) 

걷지도 못하고 바람도 못 쐬며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오히려 자주 축소판 세상을 안으로 끌어들여 

이를 신나게 즐기는 수도원들이 한 둘이 아니지 않으냐? 

나는 뒷전으로 밀려난 듯 홀로 남아 있고… 

아, 딸아, 

내가 어떤 신분으로 사람을 부를 때는 이 소명을 완전히 이루는 방법도 알고 있기 마련이다. 

마땅히 되어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수도 생활의 본질이 있으므로, 

누가 수도원에 들어갔다고 해도 수도원이라는 장소 자체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수도원의 관습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너는 정녕 내 마음의 작은 수녀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




  열네 살이었던 그 당시의 루이사는 자신의 소명이 어떻게 실현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자기를 가르친 수녀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수녀로 살고 싶은 열망의 불을 붙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실망이 거듭되자 그 애정도 뿌리째 없어지고 말았다. 

여기에 대하여 그녀는 나중에 이렇게 썼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단 한 번 겪은 무질서한 애정으로 기억 된다. 

그 이후에는 누구에게도 특별한 애정을 느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본성적인 애정은, 

비록 무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하찮은 마음을 지배하는 사나운 폭군이다. 

특별한 애착으로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마음의 참된 평화를 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또한 

그분에게서 결코 떨어지는 일 없이 사람을 사랑 할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사람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내게 어떤 선행을 베풀면 그것을 마땅히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알아보고 

- 왜냐 하면 하느님이 바로 그 선행의 원동력이며 창조주시니까 

그 분께서 사람을 써서 내게 그렇게 해 주셨다고 여겼다. 

반대로 누군가가 내게 악행을 저지르면 

이 역시 하느님께서 오로지 나의 영적이고 육체적인 행복을 더 키워 주시려고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다고 생각하였다.,,,

게다가 모든 사람을 하느님 안에서 보고  그 각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봄으로써 

사람에 대한 존경심도 잃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이 나를 조롱할 때도 

내 영혼으로 하여금 새로운 공로를 얻게 해 주는 것으로 여기면서 

하느님안에서 그들을 더욱 사랑해야 할 의무를 느꼈다. 

반대로 사람들이 내게 찬사와 박수를 보내면 그것을 경멸로 받아들이며 

이렇게 중얼거곤 하였다. 

'피조물의 변하기 쉬운 성질로 볼 때, 오늘의 이 찬사는 내일의 증오가 될지도 몰라.‘ 

요컨대, 그 순간 이후부터 내 마음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워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