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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그녀가 영성체를 하고 나자 그분께서 속 마음을 털어놓으셨다.
“사랑하는 얘야,
내가 지금까지 네 안에서 행해 온 일은 작은 준비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내 수난의 무한한 바다 속에 너를 잠금으로써
… 네가 내 수난의 고통을,
너를 위하여 모든 것을 감수하려는 갈망으로 나를 삼키던 사랑을
... 분명히 깨닫고 나면 그때에는
... 너의 스승인 내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았는지를 생각만 해도
네 고통은 한날 그림자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고,
고통이 네게는 오히려 감미로운 것이 되어
고통 없이는 지낼 수도 없을 정도에 이르게 될 것이다.’’
루이사는 예수님의 격려에 힘입어 그분의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기 시작했다.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예수님의 고난을 곰곰이 생각했는데,
하루는 코라토의 집 위층에서 일하면서
예수님께서 어머니의 태 안에서 겪으신 죽음의 고통을 생각하다가
어찌나 가슴이 짓늘리는지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정신을 딴 데로 돌려 보려고) 그녀는 발코니로 나갔다.
"나는 보았다. 엄청난 군중이 발코니 아래의 길을 지나가고 있었고,
그 일부는 어깨에 십자가를 짊어진 온유하신 예수님을 양쪽에서 잡아당기고 있었는데,
숨도 제대로 못 쉬시는 그분의 얼굴에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측은한 모습이신지, 돌덩이마저 동정심을 느낄 지경이었다.
그 순간,그분은 도움을 청하는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셨다.
그때 내가 느낀 비통을 대관절 어떻게 표혔할 수 있겠는가?...
나는 즉시 방으로 들어왔지만 사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고통으로 가슴이 부서지는 것 같아서 눈물을 쏟으며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오 좋으신 예수님, 당신은 너무도 큰 고통을 겪고 계십니다!
제가 당신을 도와 저 미쳐 날뛰는 이리들 손에서 풀어 드릴 수 있다면,
아니면, 적어도 제가 그 고통을 - 그 비통과 학대를 대신 겪음으로써
이 모든 것에서 당신을 구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지신 예수님, 제게 고통을 주십시오,
죄인인 저는 당신을 위해 아무 고통도 겪고 있지 않은데,
저에 대한 사랑으로 당신은 이처럼 큰 고통을 받고 계신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니 말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네게 고통, 곧 감미로운 고통에 대한 사랑을 불붙여 주셨으므로,
고통을 받지 않는 편이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이 고통에 대한 열망이 내 안에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렸는지
그 순간 이후부터는 절대로 사라진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영성체할 때면 나는 오직 한 가지만 열심히 청할 따름이었으니,
그것은 이 감미로운 고통을 통하여 나를 그분과 똑 같은 사람이 되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때때로 그분은 나의 그 열망을 채워 주시는 것 같았다.
어떤 때는 그분의 가시관에서 가시 하나를 뽑아 내 심장에 박아 주셨고,
다른 때는 또 하나의 가시를 내 머리에 박아 주셨으며,
가끔은 그분을 박은 못을 내 손과 발에 박아 더 없이 심한 아픔을 느끼게 해 주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그분께서 겪으신 고통들과 결코 같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또 어떤 때는 예수님께서 양손으로 내 심장을 얼마나 세게 쥐어짜시는지,
그 아픔 때문에 기절할 것 같았다.
나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아첼까 봐
‘예수님, 제가 고통을 받게 해 주시되, 아무도 모르도록 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얼마 동안 내 청을 들어 주셨다.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난 후, 내 잘못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도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눈치 채기 시작하였다.”
거룩한 영성체에 대한 열망이나 주님의 수난에 대한 묵상으로 말미암아
이따금씩 앓아눕는 경우를 제외하고,
루이사의 건강은 이때까지 양호한 상태였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를 본 이후
얼마 동안은 그녀의 신비적 고통이 외양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갈바리아산으로 올라가는 그녀를 위해
새롭고도 더욱 큰 고통을 마련해 두셨다.
“네가 나의 현존 속에서 고통을 겪을 때는 내가 함께 있으면서 도움을 주기 때문에
실제로 나의 고통과 같은 정도의 고통을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잠시 너를 혼자 있도룩 하겠다.
내 도움의 손길을 거두고 네가 무엇을 하든지 바로잡아 주지도 않을 터인즉,
너는 전보다 더욱 조심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나를 본받으면서 그저 따라오기만 했지만,
이제부터는 종전과 달리 내 모습을 보거나 내 현존을 실감하지 않고서도
내가 항상 너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기꺼이 모든 것을 행하며 겪어야 한다.
네가 내게 충실하면 돌아와서 상을 주겠고 불충실하면 벌을 주겠다...”
내가 잠시 너를 떠나려고 하는 것은
나 없이 혼자 있을 때 어떤 사람인가를 철저히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네 마음을 준비시켜서
내가 쏟아 부어 주려고 하는 새로운 은총을 받아들이게 하고자 한다.
지금까지는 내 모습을 보여주면서 너를 도와주었지만,
너의 허무를 정말 깊이 인식하도록 이제부터는 내 모습을 감춘 채 도와 주겠다는 것이다.
너를 더없이 깊은 겸손 속에 가라앉게 하고, 나의 은총으로 더없이 높이 일으켜서
그런 너 위에 가장 높은 성벽을 너와 함께 세우기 위함이다.
그러니 너는 슬퍼하는 대신, 나와 더불어 오히려 기뻐하며 내게 감사해야 한다.
너로 하여금 이 폭풍이 이는 바다를 빨리 건너가게 할수록
그만큼 빨리 네가 구원의 항구에 도착할 터이니 말이다.
내가 너에게 치르게 하는 시련이 클수록 더욱 큰 은총을 주겠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고 강복하신 후 내 눈앞에서 사라 지셨다...
나는 모든 것을 잃고 온전히 혼자만 남은 듯하였다.
예수님이 나의 전부이셨는데 그분께서 가버리셨으니...
주위의 일체가 지독한 쓰라림으로 바뀌고 말았다.
사물들마저 빈정대며 나를 괴롭히면서 그들의 소리 없는 말로
‘우리는 네가 사랑하는 분의 작품들이다. 그런데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물을 보건 불을 보건 꽃을 보건 심지어 내 방의 벽돌과 뭔지 모를 다른 것들을 보건
그 모두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보아라, 이 모든 것이 네 정배의 작품들이다.
너는 그분의 작품들은 보면서 정작 그들의 창조주를 뵙는 기쁨만은 못 누리고 있구나.'
그래서 나는 말하였다.
‘내 주님의 작품들아, 말 좀 해 다오… 내가 어디로 가면 그분을 뵐수 있겠느냐?…'
이런 상태에서 지내다 보니,
날이면 날마다 낮은 영원과도 같았고 잠 못 이루는 밤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그 쓰라린 비탄으로 말미암아 맥도 뛰지 않고 숨도 끊어지는 것을 느끼곤 하였다.
때때로 온 몸이 싸늘하게 식으면서 임종 경련 같은 것이 일기도 하여,
가족들은 내가 병이 들었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때 내가 겪은 모든 것이 가족들에게는 단지 육체적인 병증으로만 보였기 때문에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결국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진찰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분 부재의 이 상태에서 나는 온종일 거의 완전한 쓰라림 속에서 지내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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