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자애심 73 pp.381-385 제 3편 제9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내적시련의 일반 -②

은가루리나 2019. 6. 21. 18:17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107  추천 0 2013.05.0502:45



제3편 위탁의 대상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①

 제4절 장소와 환경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 

 ⑴

 ⑵

 ⑶

 ⑷ 


제8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실패와 과실 -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내적시련의 일반 -

 

 

 ③

 


제10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유혹 -


제11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위안과 건조


제12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제13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제2절 각가지 공포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제4절 양심상의 小心


제14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례





p.381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9 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계속)



― 내적 시련(內的試鍊)의 일반 



천주의 섭리의 작용에는 두가지 길이 있다.


즉, 그하나는, 각가지 감미로움에 넘치는 길,

다른 것은 거룩하고 엄격한 길이다.


어떤 영혼이 천주께 몸을 바치기 시작하자 마자,

천주께서는 이를 끌어당기시어,

지상의 쾌락을 이탈시키시려고

이에 감성적 위안(感性的慰安)을 충만케 하신다.


이렇게 하여 영혼은 점차로 피조물을 떠나서, 천주께 결합돼 간다.



그러나, 이 이탈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하는 모든 일에 만족을 탐구하는 것은,

아직 완전하지 못한 영혼의 일반적 결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각가지 감미로움은 

바로 정신의 오만, 또는 영적 탐식(靈的貪食)을 내포하는 

가장 맛있는 영양분이다.


그럼으로써 사람은 알게 또는 모르게,

몇 번이나 새로이 자기 만족에 되돌아가며,

천주에게서 받은 은혜를, 자기의 것인냥 여기고,

일정한 신분에 머물러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천주의 무한한 자비를 찬미하는 대신,

그 공적을 적어도 은밀한 마음 안에, 자신에게 돌리게 된다.



그러므로 자애심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천주께서 영혼에게 내적 시련의 혹심한 타격을 가하지 않으실 수 없다.


물론 그것은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겠지만, 결정적인 것이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천주께서는 우리를 낮추시고, 가르쳐 이끄신다.


당신 영광을 보관하시고 우리가 그것을 도취(盜取)하여,

마음 안에 은닉함을 피하게 하시려고,

천주께서는 거의 모든 은총과 모든 은혜를 우리 눈에서 감추어 버리신다.


p.382


이 법칙에는 두가지 예외가 있다.


즉 감지(感知)되는 감각적 은혜로써 끌어당겨지고,

마음을 빼앗길 필요가 있는 초심자의 경우와,

이미 허다한 내적 시련을 겪어, 자애심이 정화(淨化)되고, 

추호도 자기 만족에 떨어지는 일이 없으며,

마음 안에 지니고 있는 천주의 은혜를 자각할 수 있는 위대한 성인의 경우다.



일반적으로 

천주께서 이런 영혼에 채우시는 풍부한 은혜를 감추시는 것은,

이 영혼이 자기의 겸손, 인내, 진보, 천주께 대한 사랑을 

조금도 자각하지 않을 정도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스로 이런 선덕이 없으며,

고난에 부딪치면 관대함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때로는 눈물을 금하지 못할 적이 있다.




동시에 천주께서는,

우리 인간 안에 있는 본래의 타락의 심연(深淵),

그들이 전에 그토록 한번도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었고,

또한 측량하려고도 생각하지 않았던 타락의 심연을 그들에게 폭로하신다.


천주께서는 이를 찬란한 광명에 의해서가 아니고,

몇번이나 거듭되는 쓰라린 체험에 의해서 서서히 드러내신다.


우리의 자애심에 있어,

이처럼 괴롭고 굴욕적인 광경과 같이 치명적인 것은 없다.


시시각각으로, 자신의 나약함을 느끼며,

절벽의 언저리에 서 있는 자신을 보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온전히 버리고,

오직 천주 한 분에게만 신뢰하도록 이끄는 가장 유효한 시련이 아닌가.


남 앞에서 수치를 당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우리 자신의 눈에 있어, 전연 무(無)와 같은 이로 보이는 것은 

더욱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특히 우리 마음의 오만을 점차로 멸망시켜 주는 길이다.



그리고,

거기에 천주께서 이처럼 많은 내적 굴욕을 허락하시는 까닭이 있다. 


그것은 참으로 하나의 눈부시도록 명백한 교훈이며,

그리고 

우리가 이 교훈을 이미 잊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몸에 배도록 배울 때까지,

천주께서는 그것을 계속하신다.


언짢음과 싫증을 수반하는 거짓 겸손을 몰아내는

유순하고 평화에 충만된 겸손에 마음을 굳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선용(善用)하는 방법을 아는 것만으로 넉넉하다.


참으로,

고통에 있어서의 언짢음과 싫증이 인내하지 못하는 행위인 것과 같이,

굴욕에 있어서의 언짢음과 싫증은 그 어느 것이나 오만한 행위다.

(드.고사드「위탁」2편 4장의 4,22, 6장의17, 7장의 14 참조)



p.383

이런 시련에 의해서 

천주께서는 우리들 안에 자아에서의 이탈을 완성하신다.


자애심은 일곱머리를 가진 뱀이다.

이것을 죽이기 위해서는 그 머리를 하나씩 베어 떨어뜨려야 한다.


우리는 먼저 세속, 지상의 행복, 오관의 쾌락, 

건강 등에 대한 애착을 끊어 버리는데 노력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도우시기 위하여,

천주께서는 현세의 희락 위에 비애를 뿌리시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물로써 우리를 채찍질하시며,

우리의 육체를 병약(病弱)함에 맡기셨다.


이 천주의 작용에 순순히 복종하여, 

우리는 이미 커다란 이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런 점으로 파멸된 자애심은

다른 한층 미묘한 약점으로 우리를 대기하고 있다.


즉, 자애심은 신심(信心)의 감각적인 방면에서 사로잡히고 만다.


그리고 이 애착은 천한 것이 아니고, 

외관상 정당한 것이기에 더우기 경계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완전한 사랑은,

위안에 대한 이 애착과 천주와의 사이에

마음을 나누는 것을 견딜 수 없게 한다.


그런데, 천주께서는 어떤 수단을 강구하시겠는가.


p.384


만일 그처럼 풍부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천주께서 그토록 시기심이 깊은 ,

부드러운 사랑을 베푸시지 않는 영혼이라면,

이런 영혼이 평화 안에 거룩한 감미로움을 맛보아 즐기도록 맡기시며,

감각적인 희열(喜悅)을 희생하는 것만으로 천주께서는 만족하시리라.


실제, 이것이 어떤 신심가(信心家)의 일반적 방법인데,

그런 신심에는 일종의 자기애(自己愛)가 혼입(混入)하고 있다.


물론 천주께서는 그들의 결점을 승인하지 않으시지만

그러나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일이 보다 적기 때문에,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도 그렇게 탁월한 완전함은 아니다.



특별히 간선하신 영혼에게는 각별한 계획을 가지시기 때문에,

이에 요구하시는 바 역시 전연 특종(特種)인 것이다.


천주의 사랑의 질투는, 그 사랑의 농도(濃度)와 같다.


간선된 영혼에게 자신을 온통 주시기 열망하시는 천주께서는

또한 그들의 마음을 나누는 일 없이, 완전히 소유하시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천주께서는 외부적인 십자가와 고통으로써,

그들을 피조물에게서 이탈시키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자기 자신에게서 이탈시켜,

그들 안에 있는 자애심의 마지막 뿌리,

즉 신심(信心)의 감정에 애착하고, 그것에 의지하며,

그것으로 자신을 기르고, 그것에 만족을 느끼는 

자애심의 마지막 뿌리를 없애버리기 바라신다.


이 제二의 죽음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천주께서는 모든 위로, 모든 감미, 모든 내적 지지(內的支持)를 앗으시고,

건조, 혐오, 무감각, 그밖의 고뇌로써 영혼을 시험하신다.


그래서 영혼은 마치 허무와 같은 상태가 돼 버린다.




천주의 작용은,

반드시 언제나 이토록 격심한 정도에까지 이른다고는 할 수 없다.


즉,

천주께서는 당신의 사랑의 계획과 동시에 영혼의 힘과 관대함에 응하여

그 작용을 가감(加減)하신다.


그리고 천주께서 그와 같은 거룩한 가혹함으로써

그들을 다루시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여기실 적에는

적어도 그들에게 

위로와 무미건조, 평화와 싸움, 광명과 암흑을 교대로 보내신다.


이 끈임없는 변동에 의해서, 

천주께서는 영혼을 당신의 모든 작용에 대하여 

유순하고, 부리기 쉬운 것으로 하신다.


왜냐 하면,

이 내적 상태의 간단 없는 변화에 의하여

영혼은 드디어 어떤 상태에도 이미 고착(固着)하지 않게 되며,

성의대로 또한 성의 쪽에 부르시는 천주 성신께서 바라시는대로

어떤 상태라도 취할 수 있는 각오를 가지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p.385


이것을 요약한다면,

존자「루이.드.블로아」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런 모든 시련에 의해서 천주께서는 영혼을 정화(淨化)시키시고, 

낮추시며,

그 의지에 순종하기 쉬운 것으로 하시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천하고 추루한 흉측한 곳을 도려내시고,

그 눈에 드시는 모든 장식으로 꾸미신다.


그리고 그들의 인내와 선의에 충만된 충성을 보실 때.

각가지 고난으로써 오래 시험하시며

은총의 도우심으로써 그들이 드디어 이 높은 완덕,

즉 거기에는 어떤 종류의 유혹 고난도,

평온하게 기쁨으로써 감수할 수 있는 높은 완덕에 도달한 것을 보실 때,

천주께서는 가장 완전히 그들을 당신과 일치시켜,

그 현의(玄義)와 신비를 드러내시어,

당신을 온전히 그들에게 나누어 주신다.」(「수도자의 모범」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