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자유의지 76 pp.394-398 제 3편 제10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유 혹 - ①

은가루리나 2019. 7. 12. 18:42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119  추천 0 2013.05.2703:26



제3편 위탁의 대상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①

 제4절 장소와 환경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 

 ⑴

 ⑵

 ⑶

 ⑷ 


제8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실패와 과실 -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내적시련의 일반 -

 

 ②

 ③

 


제10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유혹 -①

 - 유혹 -② 

 - 유혹 -③



제11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위안과 건조


제12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제13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제2절 각가지 공포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제4절 양심상의 小心


제14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





p.394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10 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유 혹 - 



성「알퐁소」는 말한다.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영혼에 있어,

유혹보다 더 커다란 고뇌는 또 없다.


왜냐 하면,

다른 모든 재화(災禍)는 만일 이것을 기꺼이 인내한다면,

영혼으로 하여금 더욱 깊이 천주께 일치시키는 것이지만, 

유혹은 이 영혼을 주에게서 떼어 놓으려는 위험에 처하게 하고,

따라서 다른 어떤 고뇌보다 더욱 괴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에의 사랑」13.1)




모든 유혹이 반드시 악마에게서 오는 것은 아니다.


「각 사람이 유감을 당함은,

이 곧 자기 사욕(邪慾)으로 말미암아 자극되며 유인됨으로써이니라」

(야고버서 1.14)

성「야고버」는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이 저주할 불은,  

사악(邪惡)한 자, 불완전한 자가 주는 악한 표양에 의해서 충동된다.

많은 이는 스스로 몸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또는 이어 그것에 뛰어 든다.


악마는 다만 팔짱끼고, 그들이 스스로 하는 일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하여,

이미 자기 수중에 있지 않는 영혼에 대해서는,

그 주위를 간단 없이 광분(狂奔)함을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사막의 한 은수자는,

지옥의 군단이 거룩한 은수자들을 향하여 공격을 가하고 있는 동안,

악마가「알렉산드리아」의 성문 위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본 것도 

그 까닭이다.



p.395


존자「루이. 드. 블로아」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악마는 우리를 공격하기 위하여 가지각색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어떤 때는 아무렇지 않은 모양으로 가장 하여 은밀히 접근해 오며,

또는 경건의 아름다운 가면을 쓰고서까지,

더욱 확실하게 우리를 그 함정에 빠뜨리려 한다.


어떤 때는 폭력으로써 노골적으로 덤벼들며,

맹렬한 타격으로써 한꺼번에 넘어뜨리려 한다.


때로는 또한 뱀처럼 은밀히 잠입하고,

극히 사소한 일을 업신여기게 함으로써,

우리의 양심을 혼란시키고, 마비시키려 한다.


다른 경우에는,

전연 이런 방법을 쓰지 않고, 각가지 무서운 모습을 취하여 나타나며,

갑자기 가장 증오할 범죄를 종용한다.


때로는, 영적 위안, 또는 내심의 고뇌에 뛰어 들어,

오만 또는 낙담에 빠지게 하고, 

어떤때는, 물질적인 순경(順境) 또는 역경을 이용하여,

타락 또는 실망에 빠뜨리려 한다.



사악한 영(靈)들의 그대에게 대한 습격에 관해서는

뭣이라고 말해야 좋을 것인지.


광란노도(狂爛怒濤)가 밀려듬 같이,

그들은 끊임없이 그대의 마음을 몹시 동요시켜,

그대는 시종 불행한 난파(難破)에 처해 있는 것처럼 생각할 정도일 것이다.


아마 유혹의 공포 때문에,

천주께 버림받은 이의 마음 안에만 일어날 수 있는 생각에

사로잡힐 적이 있으리라.



그런 때,

온 지옥이 함께 그대에 대하여 공모(共謀)하고,

또한 천주께서는 그 분노하심에서

그대를『사탄』에게 넘기신 것 같이 생각되리라.


자주 기도하려 해도, 주의 찬미가를 부르려 해도,

입을 열 수 없을 때도 있으리라.


이미 그처럼 괴로운 공격은,

그 영속(永續)과 빈번에 의해서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 되리라.



악마는 한번의 공격 또는 몇 차례의 공격만으로는 손을 떼지 않는다.


그대는 이 유혹의 도가니 안에 몇번이나 던져져,

때로는 몹시 괴롭게, 때로는 그처럼 괴롭지 않아도,

그러나 언제나 극히 혹심한 고뇌에 사로잡혀

슬픈 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수도자의 거울」6장)


p.396


성「프란치스꼬. 살레시오」는 기억해야 할 두가지 좋은 보기를 든 후,

다음과 같은 격려가 되는 주의를 덧붙이고 있다.


「그런 격심한 악마의 공격, 맹렬한 유혹은 천주께서 특히 

그 지극히 순수하고 기묘한 사랑에 이끄시기를 바라시는 영혼에 한해서 

이것을 허락하신다.」(「입문」4편 4,5장)


만일 우리가 경계하고 깨어 기도한다면,

천주께서는 우리와 함께 작은 배 안에 머물러 계시며,

아마 졸고 계시는 것처럼 보이드라도

그 허락하심이 없이는 폭풍우는 일지 못하며,

또는 그 입으로부터의 한 말씀으로써 폭풍은 가라앉으리라.



유혹이 매우 치열하게 느껴지는 것은 ,

흔히 심령생활의 초기에 있어서이며,

때로는 그 중도(中途), 때로는 그 완성시기에 있어서다.


어떤 경우에는, 유혹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만,

그것은 예컨대, 신앙 또는 성소(聖召)에 대한 유혹 같은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천주께 대한 모독과 증오, 또는 신앙에 관한 짓궂은 의혹과 같은 

특수한, 또는 이상한 유혹에 부딪치는 수도 있다.


주위 사람들의 성질, 맡겨진 직무, 일시적인 사정등이

유혹의 기회가 되는 것도 적지 않다. 


이런 유혹의 뿌리는,

주로 우리의 기질, 성격, 영혼의 약점, 주요한 결점 안에 숨어 있다.



그리고 사람은 영(靈)과 육(肉)으로 돼 있으며,

천사(天使)인 동시에 동물(動物)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만과 부정(不淨)과의 악덕에 대해서 각별히 힘을 다하여 싸워야 한다.


특별한 은총이 없으면, 

그것은 누구에게 있어서도, 더우기 우세한 이대강적(二大强敵)이다.


p.397


성인들도 이 괴로운 싸움을 경험하였다.


천사적 덕(天使的德), 즉 결백에 거스르는 유혹에 관해서만 말한다면,

성녀 대 「데레사」,「리마」의 성「로사」, 영해 예수의 성녀「데레사」와 

같은, 약간의 성인들만 이런 유혹을 면하였다.


「빠시」의 성녀「막달레나」는 9일 동안,

성녀「말가리다.마리아」는 불과 몇 시간 동안만,

그런 유혹의 오욕(汚辱)을 단시간 동안 받았다.


성「분도」와 「아퀴나스」의 성「토마스」와 같이, 소수의 성인은 

빛나는 승리 후에 비로소, 그런 유혹에서 온전히 보호되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성인은 오랜 세월, 때로는 만년에 이르러서까지,

그 고통스러운 공격에 괴로움을 겪었다.


이방인의 사도 성「바오로」,「로마」의 성녀「프란치스까」,

「시에나」의 성녀「가타리나」, 성「분도.라브르」,

그밖에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악신의 가혹한 채찍질 밑에서 고통을 겪었는가.


그런 유혹은 성「알퐁소.로드리게스」에게는 7년,

「에집트」의 성녀「마리아」에게는 17년,

존자「체사르.드.뷰스」에게는 25년 동안이나 계속하였다.


무구(無垢)한 천사였던 성「알퐁소.리고리오」는, 

88세의 노령에 이르러,

1년 이상에 걸쳐 이런 종류의 유혹에 두려울만큼 괴로움을 당하였다.


복자「폴리뇨」의「안젤라」가, 이 덕에 관한 시련을 말하는 것을 읽으면,

누구나가 동정을 금할 수가 없다.



특수한 은총을 받은 이를 제외하고

이런 종류의 유혹은 모든 영혼에 있어서 커다란 싸움이다.


그리고 이 밖에도 허다한 다른 유혹,

때로는 전연 예기치 않은 유혹에 부딪치는 적도 있다.


성인들의 전기는 그런 것으로 차 있다.




우리에 관해서는 주로 언제 유혹에 괴로움을 당하겠는가.


영적생활의 시초 무렵인가, 중도에 있어선가,

그렇잖으면 만년에 이르러서일까, 또는 아마 항상 그럴 것인가.


어떤 점에 관해서 특히 시험을 당할 것인가.

얼마나 혹심하게 얼마나 길게 갈 것인가.


그것은 천주의 비밀인데, 동시에 다소 우리 자신의 비밀이기도 하다.



p.398


지옥은 말하자면, 우리를 갈기갈기 찢으려는 맹견(猛犬)의 무리다.

그러나 이 저주할 짐승은, 어느 것이나 목이 쇠사슬로 묶여 있다.

천주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그들을 구사(驅使)하신다.


성의(聖意)에 거스른다면, 그들은 무력(無力) 그 자체에 불과하다.


천주께서는 좋다고 보시는대로,

바라시는 사람에 대하여, 또한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는 점과 시기에 있어

시험할 자유를 

악마에게서 혹 온전히 뺏으시거나,

또한 그것을 때로는 많이 때로는 적게 허락하신다.


유혹의 시기와 종류, 치열함과 기간등은

모두 우리의 아버지시며, 구세주, 성성자(成聖子)이신 천주의 손안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에 깊은 안도감을 주는 점이 아니겠는가.



은총의 도움으로써 우리는 많은 유혹을 예방하고,

적의 가장 맹렬한 습격이라도 물리칠 수 있다.


의지의 자유로운 승낙에 의한 것이 아니면 결코 패배하는 일이 없다.


악마가 으르렁거리고, 협박하며, 충동하드라도,

자기자신이 바라지 않는다면, 누구도 물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우리의 자유의지에는,

은총의 도움이 있어도, 유혹에 양보하며,

또한 감히 은총을 구하려 하지도 않고,

더우기 유혹을 찾아 구하기 위하여 나간다는 무서운 능력마저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언제라도 자기에게 의뢰해서는 않되는 까닭이다.



결국, 위험은 우리 안에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유의하고, 두릴 것은 우리자신이다.






제 3 편 10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계속) 유혹(2)|★거룩한위탁


옴니아|등급변경▼|조회 133|추천 0|2013.06.10. 05:05







 - 유  혹 -  (2)




p.399




이런 점에 있어서는,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와 명시의지 (明示意志)와의 혼합(婚合)이 있다.


명시의지가 요구하는 바는,

「유감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구하는」(마태오26.40) 것이다.


즉, 우리 자신으로서 할 수 있는 범위에 있어 유혹을 예방하고,

또한 그것에 패배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야 한다.


그러나 만일 기도와 경계에도 불구하고,

유혹이 닥쳐 왔을 적에는 천주의 명시의지는

우리가 더욱 그리스도의 용감한 병사로서 이것과 싸우기를 요구한다.



그 전술(戰術)은 이미 누구에게도 알려져 있는데,

성「알퐁소」에 의하면,


「가장 유효하고, 긴요한 치료방법, 특효약 가운데 특효약은,

천주께 도우심을 기도하고,

유혹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간단없이 기도를 그치지 않는 것이다.


흔히 천주께서는 

최초의 한번의 기도에 승리를 얻게하지 않으시고,

두번, 세번, 네번째의 기도에 비로소 승리를 거두게 하신다.


요컨대, 우리의 모든 선,

즉, 영적생활의 개선(改善)도, 유혹에 대한 승리도,

천주께 대한 사랑과 완덕과 견인(堅忍)과 영원한 구령의 은혜도

기도에 달려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경험이 증명하는 바와 같이,

유혹을 당해서 천주께 의뢰하는 이는 승리를 얻고 

의뢰하지 않는 이는, 특히 결백의 유혹에 있어 죄에 떨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에의 사랑」14.1)




그러나, 오직 경계하고, 기도하며, 저항하면서도,

과감히 싸울 것을 수락하여야 한다.

그것은 바로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시기 때문이다.



성「벨나도」는 말한다.


「누구도 유혹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즉, 하나의 유혹이 지나가자  마자, 

다른 하나가 닥쳐 온다는 것을 확신하고, 대기하여야 한다.

확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두려움으로써 해야 한다.


유혹에서 면해지도록 기도해야 되지만,

그러나 이 죽어야 할 육체에 있는 동안은

완전한 안식, 완전한 자유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역시 우리는 자주 천주께서 얼마나 깊은 인자와 사랑으로써

우리를 다루시는가를 생각하여야 한다.


즉, 우리를 어떤 종류의 유혹과의 싸움 안에 두시는 것은

다른 보다 위험한 유혹을 면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며,

또한 하나의 유혹에서 신속히 우리를 구하시는 것은

다른 더욱 유익한 유혹으로써 단련시키기 위해서다.」

(「성영」90에 관한 제 5 설교)



p.400


우리는 천주께 신뢰를 두어야 한다.


유혹의 원인이 무엇이건,

「그것을 

리의 선을 위하여 허락하시는 것은, 항상 천주가 아니시겠는가.

그리고 죄, 천주께서 증오하시는 유일한 것,

우리도 역시 천주와 함께 증오해야 할 죄를 제외하고는,

만사에 있어 천주의 거룩한 허락은 이를 흠숭해야 되지 않겠는가.

(드.고사드「위탁」2편6.3)



나아가, 존자 「루이. 드. 블로아」가 가르치는 것처럼,


「유혹은 곧 천주의 계획에 있어,

그대의 천주께 대한 사랑의 빛을 무한히 발휘시키기 위한 시련이며,

그대와 같이 적의 공격에 고통을 겪고 있는 이에게

동정의 시선을 향하기를 배우게 하기 위한 교훈이며,

그대의 죄를 보상하고,

또한 새로운 죄과를 예방하기 위한 수단이고

보다 풍부한 은총을 받을 준비이며,

끝으로, 

그대가 천주의 은총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오만심에 대한 예방약임을 항상 생각하라.」(「수도자의 모범」6장)




이 얼마나 훌륭한 겸손의 교훈이랴!


「어떤 영혼이 내적 위안의 혜택을 받고 있을 적에는

모든 적의 공격에도 쳐 이길 수 있고

또한 천주의 영광에 관계되는 어떤 사업이라도

성취할 수 있으리라고 믿기 쉬운데


그러나 혹심한 유혹에 고통을 당하고 절벽의 언저리에 서서,

곧 전락(轉落)할 위험에 처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때,

자신은 얼마나 비참한 자,

천주의 도움심 없이는 저항하는데 얼마나 무력한 이라는것을 

느끼는 것이다.」라고 성「알퐁소」는 말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에의 사랑」13.1)


p.401


영혼이 겸손에 관해서 받는 찬란한 광명도

헛된 자기 만족의 기회도 될 수 있겠지만,

이에 반하여 

유혹은 영혼에 그 비참함을 생생하게 싫증이 날만큼 드러내 준다.


아아 영혼은 하늘로 부터의 선물과 은총에 도취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유혹은 그 교만을 막아 주고

또는 다시 자신의 허무의 구렁에 잠기게 한다.


허다한 성인들 마저, 오만에 의해서 멸망의 위험에 처했는데,

유혹은 그들에게 있어 심리적인 해독제(解毒劑)였다.


천주께서는 그들을 완덕의 절정에 높이기 위하여

치욕의 심연에 가라앉게 하셨다.



이것이 제三의 하늘에까지 올려진 대사도 성「바오로」가

「사탄」의 사자(使者)인 악령(惡靈)에 채찍질을 당하였고,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가, 주와의 영적인 친교(親交) 후에,

「구뻴띠노」의 성「요셉」이 감탄스러운 탈혼상태(脫魂狀態) 후에,

아픔을 잔인할 만큼 몸에 느끼고


그리고 무비(無比)의 지도자였던 성「알퐁소」도

자기의 가장 끝 제자 이상으로 양심상의 소심(小心)에 고통을 받은 까닭이다.




성「벨나도」역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유혹에 부딪친다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싸움없이는 정당하게 영관(榮冠)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싸우기 위해서는 적이 있어야 한다.

도리어 유혹에 저항하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연관도 또한 많게 되는 것이다.」(사순절에 관한 제5 설교)


 

평화 중에 있어서는 사람은 졸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전쟁에 있어서는 승리냐 죽음이냐의 길 밖에는 없다.


패배의 고배를 맛보지 않기 위해서는,

위험 밖에 있을 때보다도 백배나 많이 경계하고 기도하며,

따르고, 낮추며, 제욕(制慾)하고, 노력한다.



악마가 우리를 습격하는 것은 증오 때문인데,

그것에 의해서 우리를 자극하여,

말하자면 진보를 강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 악의에도 불구하고,

악마는 우리의 영적 향상(靈的向上)을 위한 극히 충실한 일꾼이다.


p,402


그러기에 성「암브로시오」는 결론하여 말한다.


「천주께서는 

그 가장 사랑하는 영혼이 가장 자주 유혹에 부딪쳐,

가장 치열하게 시험되기를 허락하신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지상에 있어서는 보다 많은 공로를 세우고,

천국에 있어서는보다 찬란한 영예를 획득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허다한 적에 공격되는 것을 보고, 

현세를 떠나, 천주에게 날아가며 

이미 멸망의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죽음을 갈망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의무에 충실한다면 

유혹에 부딪쳐도,

천주의 총애를 잃었다고 우려할 것까지는 없으며,

오히려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다 깊이 확신하여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에의 사랑」13.1)




그러므로,

유혹이 빈번하고, 혹심하다는 것만으로 낭패하는 것은 잘못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도 옳지 않다.



성녀 대「데레사」는 자서전 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천주께서 전능하시고, 악마들은 그 노예에 지나지 않는 이상,

어째서..... 은총으로써 ..... 

나에게는 지옥의 전군(全軍)과 싸울 힘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읍니까.


나는 하나의 십자가를 손에 쥐고 있을 때,

이 십자가에 의해서 

나는 모든 악마를 쉬이 정복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읍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때때로 노골적으로 나에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나의 마음에는 아무런 공포도 일으키지 않았읍니다.


오히려 내 모습을  보고 두려워 하는 것 같았읍니다.

나는 악마가 매우 비겁한 자임을 알았읍니다.



만일 그들을 경멸한다면, 

곧장 그들의 용기는 꺾이고 말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명예나, 재물이나, 쾌락 등에 애착하여,

자진하여 이용당하는 기회를 그들에게 준다면,

그들은 무리와 함께 공모(共謨)하여,

우리에게 공격의 화살을 겨누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스스로

무기(武器)를 그들의 손에 넘기는 것과 같은 짓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후회해도 부족한 일입니다.


단지 하나의 소죄라도 우리에게 온 지옥의 악마보다도

더욱 혹심한 해독(害毒)을 끼칠 수 있는 것입니다. 」

(「자서전」25장)






제 3 편 10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계속) 유혹(3) |★거룩한위탁



옴니아|등급변경▼|조회 146|추천 0|2013.06.18. 00:20





p.403


- 유 혹 -  (3)




경건한 「즈네브」의 성인 주교는,  

성녀「요안나.드.샹딸」에게 같은 것을 써 보냈다.


「신앙에 대한 유혹은 

다시 그대를 습격하고, 그대를 괴롭히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것에 너무나 정신을 산란케 하고,

그것을 두려워하며, 지나치도록 근심하고 있읍니다.

그대는 유혹에 너무나 예민합니다.


그대는 신앙을 귀중히 여기고,

그것에 거스르는 오직 하나의 생각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읍니다.


그런데,

그대에게는 모든 일이 신앙을 해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돼서는 안됩니다.

만만코 아닙니다.

결코 나무의 잎들이 스치는 것을

무기(武器)가 부딪치는 소리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곧잘 성인들의 둘레에서 으르렁거리고,

미쳐 날뛰며, 떠들어댔읍니다.

그러나 대신 성인들은

이제 이 가련한 놈이 잃었던 장소를 점유하고 있지 않읍니까.



그대는 악마의 허세에 위압되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조금도 해악(害惡)을 끼칠 수 없읍니다.


그래서 억지로 우리들에게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고,

이 공포심으로써 우리를 불안에 빠뜨리며

이 불안으로써 피로하게 하고,

피로함으로써 권태를 느끼게 하며,

권태함으로써 자포자기에 이끌려고 합니다.



우리는 오직 천주 한 분만을 두려워 합시다.

그것도 사랑에 충만된 두려움으로써 

우리들의 문을 굳게 닫고,

결심의 성벽(城壁)이 무너지지 않도록 경계하며,

평화 안에 살아 갑시다.」(「서간」397, 400, 427)


p.404


물론 유혹은 싫은 것이며,

우리 위에 인상(印象)을 반드시 남기고야 만다.


또한 그것으로써 우리는 악에 대한 경향을 느낀다.

 ..... 그렇지만, 그런 것을 꺼릴 것까지는 없다.


인상은 하나의 감정에 불과하다.

그것은 우리를 부끄리게 하지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느낀다는 것은 승낙한다는 것이 아니다.


영혼의 하부(下部)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즉, 상상, 기억, 인상, 무질서한 충동......등등,

이런 모든 것은 우리 안에서 볼 수 있지만, 우리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본디 이런 모든 것은 숙고한 후에, 또는 부러 야기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에 승낙을 줄 때 비로소 죄가 구성되는 것이다.


악에 대한 경향은 인간성의 하나의 약점이지, 의지의 혼란은 아니다.

악한 쾌락은 악에로 충동하며 위험의 씨가 된다.


그러나 의지가 그것을 추구하고

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동안은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악마의 충동이 강하드라도,

상상 안을 헤메는 망상(妄想)이 어떤 것이거나,

우리의 의지에서 나오지 않는 한,

그런 것은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기는 커녕 오히려

이것을 깨끗하게 하여 더욱 천주께 맞갖는 이가 된다.



불결, 증오, 반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무슨 유혹이

우리의 마음을 몹시 괴롭히고,

그것에 빠졌다는 두려움이 우리를 불안케 하며, 슬프게 하는 수가 있다.


이것은 

리의 천주에 대한 두려움과 죄에 대한 증오와 유혹에 대한 저항력이 크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런 상태에 있는 영혼이 갑자기 일변(一變)하여, 

스스로 분명히 분별하지 않고서,

완전한 충분한 승락으로써 대죄를 범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고작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유혹이 혹심해지고, 빈번하게 되기 때문에

어떤 태만, 일시적인 놀람, 예컨데, 복수심이 싹트고,

쾌락에의 반의지적(半意志的)인 마음의 움직임 정도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 있는 영혼이 숙고를 거듭하여,

전연 고의로 이에 승낙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또는 적어도,

대죄를 무엇보다도 두려워 하고 증오하는 심정에서,

그것을 완전히, 충분히 승낙하는 마음에 옮기는 일이 있다면,

쉬이 자각할 수 있으리라.

(드.고사드 「위탁」2편 6장의 3,5, 

성 프란치스꼬.살레시오「입문」4편3-6장,

성 알퐁소.리고리오「예수.그리스도에의 사랑」13.1,

암브로시오.드.롱베「내적 평화」4편5장 참조)


p.405 


그러나, 비록 아무리 커다란 이익을 거기에서 이끌어 낼 수 있을지라도

유혹을 원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유혹은 악에의 하나의 실제의 자극이며,

우리영혼에게 있어, 하나의 위험이기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를 유혹에서, 특히 패배의 우려가 있는 유혹에서 면케하시도록 

기도하여야 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천주의 성의시라면, 유혹에 부딪치는 것을 인종(忍從)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유혹을 예방하고 또는 그것을 극복하기에는

천주의 명시의지(明示義志)에 의한 모든 일을 완수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낙심하는 일 없이, 천주께 신뢰하며,

그 감미로운 섭리에 자신을 맡겨 무엇이나 두려워 하지 말고,

기도하며 싸우자.


우리를 싸움에 임하게 하신 분이 천주신 이상,

어찌 우리를 고독하게 방치하시고,

또한 무력하여 패배하는 대로 맡겨 돌보지 않으시겠는가.

(성 알퐁소.리고리오「예수.그리스도에의 사랑」13장)




거룩한 위탁은,

이 위험한 시련에서 면하겠다는 절도 있는 소망을

물론 불허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불안과 이 소망이 과도에 흐르는 것을 배척한다.


총명한 지도자인 성「프란치스꼬.살레시오」

성녀 「요안나.드.샹딸」에게 다음과 같이 써 보냈다.


「그대는 오래전부터의 유혹에 관해서,

그것에서 해방되려고 너무 초조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그 공격에도 공포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천주의 도우심으로써 미구에 그것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지만,

그러나 천주의 뜻에 온전히 인종(忍從)하여 기도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이 인종은 온전히 유순하고 유쾌한 인종입니다.


그대는 지금 이 점에 관해서

천주께서 그대를 평화 안에 머물게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나는 단지 이 일에 국한하지 않고, 

만사에 있어 주께서 만족하신다는 것,


즉, 나의 소망의 다만 한가지라도

천주의 의지에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바랍니다.



나는 그대가 

이 무익한, 그리고 아마 해로울 평화를 부려 바라지 않도록 

간절히 바라고 있읍니다.


나는 또한 

그대가 이런 소망에 의해서도, 그 밖의 어떤 소망에 의해서도

결코 마음이 번민하지 않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우리가 겸손되이 싸움 가운데서 마음이 평온하게 살아간다면,

주께서는 당신의 평화를 우리게 주십니다.


마음을 굳게 간직하십시오.

주께서는 분명히 그대를 도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 더 깊이 주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서간」428)  p.406





moowee 13.06.18. 16:41




먼저 중요한 것은

<의지가 그것을 추구하느냐, 아니냐>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남자)를 보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남자)와 간음하는 것이다(마태5,28)."



"음욕을 품고" 란 말씀은 이미 <의지가 그것을 추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