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89 pp.457-461 제 3 편 제13 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계속 ) 제 4 절 평화 ①

은가루리나 2019. 10. 12. 14:45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109 추천 0 2013.09.03. 19:46




제3편 위탁의 대상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①

 제4절 장소와 환경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 

 ⑴

 ⑵

 ⑶

 ⑷ 


제8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실패와 과실 -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내적시련의 일반 -

 

 ②

 ③

 ④


제10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유혹 -①

 - 유혹 -② 

 - 유혹 -③


제11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위안과 건조-①

 - 위안과 건조-②

 - 위안과 건조-③

 - 위안과 건조-④


제12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제13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제2절 각가지 공포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제4절 양심상의 小心


제14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





p.457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13 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계속)



- 평화, 불안, 소심(小心) -



제 1 절 평화 ①




영혼의 평화는 

단지 그것이 가지는 감미(甘味) 때문만이 아니고,

또한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힘과, 

그 안에 우리를 있게 하는 유리한 상태 때문에

가장 바랄 만한 것의 하나다.


내적 생활을 영위하기 바라는 이에게 있어, 

이 평화는 거의 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성서 안에서 당신을 「평화의 신」(로마서 15.33, 16.20 기타)이라고 불르셨다.


양선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도 세상에 태어나시자 마자, 

즉시 천사들로 하여금

「지극히 높은 데서는 천주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마음이 좋은 사람들에게 평화함이로다」(누까 2.14) 라고 

노래하게 하셨다.



부활하신 후, 주께서는 가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때마다,

「너희는 평안할지어다!」라는 감동 깊은 거룩한 말씀으로써

그들에게 문안하셨다. (누까24.36, 요왕 20.19, 21.26 기타)


사도들도 그 서간을 같은 문안으로 시작하였고,

성신께서도 또한 우리에게「평화를 찾고, 그를 쫓을 것」(성영33.15)을 

권장하신다.



p.458


그러나 평화에도 나쁜 것과 좋은 것 두가지가 있다.


참된 평화는 

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안정(安定)이란 의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평화에 도달하기에는 

우리의 사상, 애정, 의욕, 행위 및 고통 안에 질서를 세워야 한다.


즉, 우리의 의지는 

항상 순명과 인종(忍從)에 의해서, 천주의 의지에 복종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무질서(無秩序)이며,

따라서 「주를 거스르는 이에게는 평화가 없고 」(욥 9.4),

적어도 정당한 평화를 맛볼 수 없다.




거짓 평화란, 

냉담 또는 죄에 있어서의 안정이다.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느니라』고 야훼께서 말씀하셨도다.」

(이사야 48.22 )


천주께서 죄인이 그 죄의 몽롱함에서 깨어날 때까지 

그들을 양심의 가책에 의해서 괴롭히시는 것은 커다란 은총이다.


그들이 죄안에서 안심하고 머물러 있다는 것은 최대의 불행이다.



같은 정도로는 아니라도, 

냉담한 영혼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


그런 영혼은 참된 깊은 평화를 맛볼 수 없다.


그 의지는 전면적으로 착한 것이 아니며,

너무나도 많은 정욕에 의해서 사방팔방으로 끌리고 있다.


만일 이 슬픈 상태에 고착해 버린다면, 그것은 하나의 걱정스러운 표시다.


실제, 그것은 정신이 소경이 되고, 

마음이 완고하게 되며,

양심이 마비한 결과에서 생기는 일이다.




그러므로, 참된 평화는「선의의 사람들」의 것이다.


그리고 

선의에 각가지 단계가 있는 것처럼, 참된 평화에도 각기의 단계가 있다.


천주의 계명을 지키고, 섭리의 계획에 복종하는 신자의 대부분은,

이것을 단지 불완전하게 수행함에 불과하며,

그리고 오히려 멸망의 두려움, 또는 구령을 얻으려는 소망에서만 행동한다.


그들은 노예 혹은 고용인이며, 천주의 아들, 천주의 벗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천주의 계명을 사랑하는 이에게 약속하신 

충실하고 깊은 평화(성영118.165)를 찾아 얻을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p.459


「그루」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경건한 영혼이기는 하나,

그러나 아직 완전히 맡겨 버리지 못한 이의 평화마저 지극히 약하며,

또는 양심의 소심, 또는 천주의 심판에 대한 공포,

또는 인생의 각가지 사건 때문에 

매우 쉽게 동요하고, 혼란되기 쉽다.


그렇다면, 대체 언제 심오하고, 견고한 

말하자면 변함이 없는 평화가 영혼의 속 깊이 뿌리를 박을 것인가.


그것은 즉 영혼이 자신을 남김없이 천주께 주는 순간부터다.

(「내적 영혼의 안내」기초적 진리 참조)




영혼이 이것을 결심하자 마자, 

평화가 시작되며, 그리고 모든 사물에서 이탈하고, 

천주의 의지에만 애착함에 따라,

이 평화는 발전하고 견고한 것이 된다.


천주께 대한 사랑은 영혼을 의무의 편에로, 그리고 

자애심은 감각적 즐거움 혹은 정신적 만족의 편에 이끌었기 때문에

영혼은 괴로움을 겪었다.


그것은 은총과 본성과의 싸움이었다.


지금 

자기 의지를 업신여겨 물리치고, 천주의 의지만을 찾아 구하고 있는 이상

혼란은 끝나고, 질서가 다시 확립된다.



이렇게 하여 불안, 당황, 초조함은 완화되고, 

평온과 참된 마음의 안락이 내심에 넘친다.


그리고 영혼은 성「프란치스꼬.살레시오」가 

성녀「요안나.드.샹딸」에게 권장한 바

전신의 완전한 자유, 은혜에도, 위로에도, 신심업에도 애착하는 일 없이,

천주의 의지가 우리를 다스리도록 오직 그것만에 애착하는

정신의 자유에 도달했을 적에는, 

영혼의 평화는 말하자면 확고부동한 것이 된다.




이런 평화는 

우리의 노고의 최초의 보수, 

시련에 있어 우리를 지탱하는 하나의 힘,

진보를 드러내는 하나의 징후(徵候)다.


그것이 보다 내적인 것, 보다 견고한 것이 되어,

일반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산란시키기 쉬운 모든 것에도 동요되지 않음에 따라,

우리가 모든 사물에서 떠나,

천주의 의지에만 굳게 일치하여 

덕의 길에 확실한 진보를 이룩한 증거가 된다.


p.460


이렇게 하여 평화의 절정과 완덕의 절정과는, 

섭리의 각별한 허락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병행(竝行)하며, 

불가분적 (不可分的)인 것이다.


그런 결과는 거의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이며,

따라서 시련의 한가운데 있어서도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천주께서 생각하실 때, 또는 바라시는 대로 

영혼에 넘칠만큼의 풍부한 보다 깊이 느껴지는 평화,

이제까지 맛보지 못한 평화,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을 마음에 충만케 하시고,

지상의 사물에 대해서 깊은 멸시의 감을 일으키게 하는 바

평화를 주입하시는 적이 있으시다.


p.461


이에 반하여, 

비록 영혼이 아무리 충실했다손 치더라도 

천주께서는 원하시는대로 이 내적 풍부함을 거절하시고, 

일반적으로 덕에 수반하는 평화의 인상을 제거하시며,

윤택하지 않고 감정이 동반하지 않는 평화만을 남기실 수 있다.


천주께서는 또한 바라신다면,

불안, 당황, 초조함에 던져 넣으시려는 적(악마)의 세력 밑에

우리를 맡겨 두시는 것도 자유시다.



그럴 적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오직 천주의 의지에 더욱 더 깊이 일치하여,

두려워 말고 성부의 팔에 자신을 맡기는 일이다.


왜냐 하면, 

천주께서는 어떤 일이라도 우리의 영혼의 최대의 이익을 위하여 하시며,

또는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신앙과 신뢰와 사랑에 의해서 천주의 의지에 굳게 일치하여

움직이지 않는 동안은, 세상의 어떤 사람도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