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

3회 토마스 머튼의 생애 2_현대영성가 토마스 머튼과의 만남_박재찬 신부 해설

은가루리나 2020. 3. 13. 12:11




+찬미예수님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의 박재찬 안셀모 수사신부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지난 시간에 이어서 토마스 머튼의 생애에 대해서 살펴보는데  그

가운데에 입회전에 토마스 머튼이 회개하는데 영향을 미친 신비체험으로부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토마스 머튼이 입회전에 한 여러가지 신비로운 체험들, 하느님 목소리를 들었던 그런 체험들

이 있는데 이 체험들이 때로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데에 직접적인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

지만 때로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체험을 했는지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토마스 머튼이 아주 어린시절에, 칠층산에 보면 카르투시오 수도회 옛 터에서 뭐 그런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는 이런 표현이 있는데 이 표현들은 신비로운 체험이라기 보다는 어떤

감정적인 그런 체험이라고 이렇게 느껴집니다.



결정적인 첫 번째 체험은 로마에서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한 1년정도 남짓 되었을 때 로마로 성지순례를 떠납니다.

그래서 로마의 여러 성지들을 둘러보는 가운데 성 고스마와 다미안 바실리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는 비잔틴 모자이크가 아름답게 벽화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자이크화 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앉아서 있는데 토마스 머튼이

굉장히 뭔가 압도당하는 느낌, 또 뜨거운 느낌 이런것들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이 칠층산에서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저는 갑자기 경외감에 사로잡혔고 그로 인해 제가 인식하고 이해한 어떤 것을 찾았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그동안 찾아 왔던 어떤 것이었습니다.'



이 신비로운 체험 이후에 토마스 머튼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이 사람에 대해서

어떤 것을 찾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토마스 머튼은 성경을 사서 읽기 시작했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토마스 머튼이 아버지에 대한 환시를 체험합니다.


방에 있는데 아버지가 꿈에 나타난거죠. 그런데 그 꿈이 너무 생생해서 마치 아버지를

이렇게 만질 수 있을만큼 그렇게 가깝게 느껴졌다고 표현을 합니다.


'제가 아버지의 현존을 느낀것은 너무도 생생하고 실제같았으며 너무 놀랍도록 선명해서

마치 아버지가 제 팔을 만지는 것 같았고 저에게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갑자기 압도되었고 비참하고 부패한 제 영혼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크나큰 은총의 체험을 토마스 머튼은 감사롭게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또 이런 묘사도

합니다. '그 때에 만약에 제가 그 경험들을 따랐다면 저의 삶은 매우 달라졌을 것이며 그 시절을

비참하게 보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 토마스 머튼이 로마의 성 고스마와 다미안 바실리카에서  그리스도의 체험과 또 꿈에

아버지에 대한 그런 체험을 했지만 그 이후에 이제 쌩글레어 대학에 와서 공부를 하는 가운데

굉장히 타락한 삶, 방탕한 삶을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 여담인데 제가 실제로 이 이 성 고스마와 다미안 성당에 갔었습니다. 2015년에~

그 성당에 가서, 로마에 처음 방문한 때였는데 그 성당을 제일 먼저 달려갔습니다.

저도 토마스 머튼처럼 뭔가 좀 느껴보고 싶어서! 그래서 그 비잔틴 벽화가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그 성당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저도 뭔가 압도당한 느낌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 토마스 머튼은 이 체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다고 하지만

나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을 했었었습니다.

아무튼 토마스 머튼은 이런 로마에서의 신비로운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비로운 체험

이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어떤 신비로운 하느님의 체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뭐 여러가지 꿈에라든지 좋은

말씀 혹은 또 자연을 통해서 또 어떤 환시나 환청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은 하느님의 그 어떤 선물로서 주어지는 하느님의 체험들인데 이 체험들은 하느님

께서 그 사람을 위해서 또 공동체를 위해서 필요할 때 특별한 은사로써 신비로운 체험을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인간의 자유의지로 그것을 받아들일 때도 있고 또 우리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런 선물이 다가와도 하느님의 신비로운 체험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혹은 공동체를

위해서 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 하느님의 신비로운 체험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시간에 차차 더 깊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토마스 머튼이 두번 째로 깊은 하느님 체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체험으로 인해서

가톨릭으로 점점 개종하는데 어떤 결정적인 배경이 되는데 처음에 토마스 머튼은 가톨릭에

대해서 지난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심지어

미사 때 학교에는 채플에서는 미사를 의무적으로 해야되쟎아요. 그래서 그 미사에 사도

신경이 나오는 부분에 혼자서 눈을 감고 다른 사람들은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이렇게 기도를 하는데 토마스 머튼은 혼자서 입을 꾹 다물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했답니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스스로 이제 미사에 대한 거부감, 가톨릭에 대한 거부감을 가졌었지만은 어느 날 갑자기 토마스

머튼의 내면에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미사에 가라, 미사에 가라!"

너무도 감미로운 그런 속삭임, 또 너무도 강하고 부드럽고 깨끗한 충동이었다고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오후에 여자친구랑 약속이 있었는데 그 여자친구랑 약속을 포기하고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여를 합니다.  또 그때 아주 어린 꼬마아이가 조용히 앉아서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감동을 받았다고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 이후에 토마스 머튼은 예수회 신부인 제랄드 홉킨스의 전기를 읽고 있었는데 또 이때

하느님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내면안에서 '너는 무엇을 망설이고 있느냐? 왜 일어나 가지

않느냐? 너는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알고 있지 않으냐?"


이 소리를 듣는 순간 토마스 머튼은 주저하지 않고 이제 책을 내려놓고 성당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성당에 포드 신부님께서 주임신부님이셨는데 주임신부를 만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고백을 합니다.

'신부님, 저는 가톨릭 세례를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포드 신부님으로부터 일정한 기간 교리교육을 받은 다음에 이제

1938년 11월 16에 가톨릭 신자가 됩니다.



가톨릭 신자가 되고 난 다음에 토마스 머튼은 1940년에 쿠바로 성지순례를 떠납니다.

성모성지를 순례하기 위해서 떠나는데 부활절 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쿠바에 하바나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성당에서

미사를 바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당에서 토마스 머튼은 또 신비로운 하느님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마침 들어갔을 때에 성가대에서 사도신경을 우렁차게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마스 머튼은 갑자기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천둥이 치는 것 같았고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그리고 내 몸이 뭔가에 사로잡혀 이끌려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성당안에서 어떤 하느님의 깊은 체험을 하게 됩니다.

'heaven is in front of me ' 바로 천국이 여기다. 하늘이 여기다.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


토마스 머튼 자신이 표현한 걸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사도신경이었습니다. '창조주를 믿나이다.'라는 그 외침.

그것은 크고 밝고 그리고 갑작스럽고 기쁜 승리의 고함 소리였습니다.

그것은 한 순간에 극도로 명백하게 된 깊은 믿음의 빛이었습니다.

저는 마치 제가 하느님 현존의 현현(顯現)에 의해 장님이 된 것처럼 갑작스럽게 환하게 빛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칠층산-



또 다른 <세속의 여정>이라는 책에는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

"하늘이 정확히 제 앞에 흔들리지 않는 확실성, 분명하고 즉각적인 지식이 마치 천둥처럼

저를 내려치는 듯했고, 마치 번갯불처럼 저를 지나가는 듯했으며, 지상을 벗어나 저 높이

들어 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신비로운 체험(mustical experience)을 머튼은 이제 자기 나름대로 알고 있는 방식으로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물론 신비로운 체험은 인간의 언어로는 다 표현될 수 없지만은

토마스 머튼 나름대로 이 뜨거운 체험을 하고 난 다음에 너무도 벅찬 마음으로 두 가지

서원을 합니다.

 

첫 번째는 '주님, 제가 반드시 사제가 되겠습니다. 사제 성소에 대한 확실성!'

두 번째는 '주님, 제가 사제가 되면 첫 번째 미사는 성모님께 봉헌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성모님 성지를 순례하러 왔었기 때문에 그 영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로마의 체험보다는 이 하바나에서의 체험을 첫 번째 가장 강한 하느님

체험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또 소소하게 하느님의 영적인 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건

겟세마니 수도원의 종소리를 듣게 되는 체험이었습니다.


토마스 머튼이 지난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할려고 했지만

거절을 당했어요. 그래서 굉장히 실의에 빠져있는 찰나에 하느님께서는 두 곳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는 뉴욕의 할렘가에 있는 '우정의 집'이라는 빈민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단체였는데 그곳에 이제 일생을 봉사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갈 그런 결심을

또 했고, 한편으로는 또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하는 것을 하느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토마스 머튼이 이 둘 사이에서 굉장히 갈등을 많이 하고 있을 즈음이었는데 보나벤투라

경당, 토마스 머튼이 당시에 보나벤투라 대학의 영어강사였습니다. 그래서 이 경당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겟세마니 수도원의 종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기도하기

전에 이미 토마스 머튼은 그 겟세마니 수도원에 한번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아마 그 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그 종소리가 땡땡땡 하고 울리는 그 소리를 듣고 아, 내가 가야될

곳은 하느님이 부르시는 곳은 이곳이구나! 하고 결심을 하고 1941년 12월 10일 겟세마니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를 하게 됩니다. 



겟세마니 수도원은 제가 3번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 수도원은 루이빌에서 1시간 반 

정도 남쪽 방향에 켄터키주에 있는데  굉장히 큰 수도원입니다.

물론 수도원 건물도 크지만 그 주변에 농장이라든지 정원이라든지 또 산책로라든지

굉장히 아름답게 잘 꾸며져 있는 곳입니다.


지금 현재는, 머튼 당시에는 한 200명 정도 가까이 살기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40~50

명 정도의 수도승들이 하루에 7번 모여서 기도를 기도합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3시 반부터 기도, 묵상, 미사 , 삼시경, 육시경, 구시경, 저녁기도,

끝기도, 하루종일 기도한다고 봐도 될 겁니다.


그리고 토마스 머튼이 입회했을 당시에는 1962년에 개최되었던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수도원의 형태였기 때문에 굉장히 육신의 고행이라든지 엄격한 생활들, 그런 금욕적인

생활들을 더 많이 하던 시대였습니다.


어떤 육신의 고행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것이 바로 수행생활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았기 때문에 굉장히 엄격한 생활을 하던 시대에 들어갔기 때문에 더 그

당시에는 토마스 머튼이 입회하던 시대는 지금보다 더 엄격한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이 처음에 입회했을 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이 트라피스트 관상 수도원에서 엄격한 생활을,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을 견뎌낼려면 추위도 견뎌야 되고 그래서 12월 엄청나게 추위가 시작되는

즈음에 창문을 열고 윗도리를 벗고 첫날밤을 보내게 됩니다. 수도원에서.

근데 웬걸요, 호되게 감기몸살을 앓고 난 다음에 이런 영웅적인 금욕주의는 하지 말아야

되겠다 그런 결심을 하기도 했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 토마스 머튼이 창문을 열어놓고 이런 금욕적인 생활을 한 이 에피소드는

토마스 머튼이 1940년대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일화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토마스 머튼은 이 금욕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을 굉장히 영웅적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우월적으로 생각했죠. 그래서 이제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는

동안에 전통적인 이런 수행생활을 공부하면서 내가 수행을 하고 있고 바깥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엄격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 자체가 나는 굉장한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선택된 삶을 살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을 했던거죠.


그래서 영웅적인 이런 우월의식을 가지고 생활하면서 토마스 머튼은 자기나름대로

자기만족에 빠져 있었었습니다.


토마스 머튼이 초기에 수도생활을 배우던 이 시기들은 토마스 머튼의 어떤 고유한

모습이라기 보다는 그 당시에 살았던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수도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중의 하나였다고 라고 볼 수밖에 없을겁니다.

그렇지만 이제 토마스 머튼은 어떤 한계를 느낍니다.

자기가 배워왔던 그런 수도생활 고행생활하고 자기가 체험한 하느님 이 사이에서

어떤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조금 더 설명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이제 1948년에 '칠층산' (The Seven Storey Mountain.)이라는 책을 적게 되는데

굉장히 유명한 책이죠.



보통 사람들은 이제  'Seven Story'  하면 이 스토리가 '이야기'라고 하는 스펠링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은  7개의 스토리가 아니라 7개의

계단을 이야기하는데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연옥의 7단계를 비유해서 이 책 제목을

옮겨 온 것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이 젊은 시절에 방탕하게 살았던 연옥같은

생활을 이제 그만두고 포기하고 이제 천국으로 들어왔다는 거죠.

수도원은 천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과 같은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아름다운 생활을 하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생활을 하는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이런 수도원에 내가 살고 있다는 거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바로 칠층산이라고 볼 수 있을거고 그래서 초기에 토마스

머튼이 그런 우월적인 생각을 가지고 칠층산을 적었다고 볼 수 있을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칠층산은 토마스 머튼이 보기에도 그랬고, 다른 많은 머튼 학자도

보기에는 미성숙한 상태에서 혹은 전통적인 견해로서 책을 기록한거다  라고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


그런데 이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토마스 머튼이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직접 제가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내일이면 내가 겟세마니 수도원에 입회한지 8년이 되는 해이다. 내가 예전(8년전)에

한 명의 세속의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렸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지금 나의 정체성은

더 모호해진 느낌이 든다.'


갈등이 시작된거죠. 전에는  수도원은 완전한 공동체이고 완벽한 공동체이고 내가 여기

에서 살아가는 것은 천국에서의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지금 (8년이 지난 다음)에는

뭔가 모르게 더 모호한, 예전에는 세속을 떠나서 수도원에 들어오면 완전한 삶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더 갈등하고 더 모호해진 그런 느낌이 든다는 표현을 쓰면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거죠.


그래서 저는 이 시기가 이제 특히 1950년대 토마스 머튼의 이 시기는  요나가 고래의

뱃속에 있었던 시기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토마스 머튼이 이제 쓴 책 중에 '요나의 표징'(The Sign Of Jonas)이라는 책도 있는데 이

책은 '토마스 머튼의 영적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토마스 머튼이 어떤 갈등을

겪에 되었고 또 어떻게 변화되어 가고 있는지 그 과정을 여정을 일기로 기록해 놓은겁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보시면 토마스 머튼이 점점 생각이 바뀌어지고 성숙해지고 있는 그런

과정들을 엿보실 수 있을겁니다. 마치 번데기와 같은 시기라고 볼 수 있겠죠. 나비가 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을겁니다.



그러면 어떤 갈등을 했는가?

첫 번째로 토마스 머튼은 글쓰기하고 관상가가 된다는 것, 이 둘 사이에 굉장한 갈등을

일으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글쓰는 재주는 있었지만 수도원에 들어와서는 이 글쓰기

보다는 관상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진정한 수도승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느님과 일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토마스 머튼이 생각할 때는 이 글쓰기는 방해가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장상들이 토마스 머튼이 글쓰기에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고 글쓰기를 시켰지만 처음에는

마음속으론 굉장히 거부를 합니다. 심지어 칠층산에 이런 묘사도 나옵니다.

'글쓰기의 악령이 지금 이 수도원까지 나를 따라와서는 나를 몹시 괴롭히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이 악령이 내 피를 빨아먹고 내 몸을 갉아 먹을꺼다.' 이런 표현까지 쓸

만큼 토마스 머튼은 글쓰기가 관상가가 되는 것과 반대가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토마스 머튼이 영적으로 더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이 글쓰기를 하는 것이

자신의 어떤 관상가로서의 삶에 방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더 하느님과 가까워지고 또 글을 씀으로 인해가지고 더 깊이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표현도 씁니다. 그리고 또 굉장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고 그래서

이제 오히려 글쓰는 것이 이 수도생활, 관상가가 되는데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표현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관상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 사는거다.'


여기서 어떤 관상과 활동의 통합이 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흔히들  성당일을 열심히 하는 분들, 또 기도 열심히 하는 분들, 활동

여러가지 하는 분들이 있지만 관상과 활동이 통합되지 못하고 분리되어 있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일을 하지만 나중엔 영적인 공허감을 느끼기도 하고 또

기도만 열심히 한 상태에서 실제적인 활동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관상은 열매가 있어야 됩니다. 열매가 없는 관상생활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울리는 징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진정한 관상가가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는 것, 그리고 글쓰기도 관상가도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이런 글쓰기와 관상에 대한 그 사이의 어떤 분리됨이 여기서 이제

해결이 됩니다.



두번 째 토마스 머튼이 갈등하고 고민했던 것 중의 하나는 카르투시오회나 가말돌리회라는

은둔생활을 하는 공동체로 옮기고 싶어 했습니다.

사실 우리 일반 신자들은 이해가 안 될겁니다. 트라피스트 수도회도 굉장히 엄격한 생활을

하는데 그 생활보다 더 엄격한 생활을 하는 은둔, 홀로 살아가는 가말돌리회라든지 그리고 

또 카르투시오회에 입회할려고 그 수도회로 옮길려고 한다는 것은 조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토마스 머튼은 무엇보다도 완전한 고독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철저한 고독, 철저하게 혼자있고 싶어하는 그래서 철저하게 하느님만 사랑하며 살고 싶어하는 

그런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장소를 옮겨서 가말돌리회나 카르투시오회에 실제로

그런 시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수도원을 옮길려고 했지만 그 총장 신부님께서 이미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종신

서원을 했기 때문에 신부님이 이제 수도회를 옮기는 것에 대해서 허락하지 않는다는 최종결정을

통보 받게 됩니다.


그런데 토마스 머튼은 이것을 수용하면서 그 과정에서 이런 깨달음 얻습니다.

'완벽한 장소는 없다. 다만 완벽한 고독이 있을 뿐이다.'

이 말씀이 저에게는 있어서는 굉장한 여운을 남기고 또 울림이 됩니다. 

제가 예전에 수도원에 살면서 제가 말을 지금도 잘 못하지만 그 당시에는 더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신부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강의도 하고 가르치고 하는 걸 못하겠다.

불안하고 너무 힘들다.그래서 제 지도신부님한테신부님,제가 신학교 다니는거 그만두고

싶고 평수사로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때 마침 카르투시오회 수도회가 한국에 처음 진출을 하려고 할 그때 였습니다.

래서 저도 카르투시오회로 옮기도 싶다이런 말씀까지 드렸었습니다.

 

그런데 제 지도신부님께서 만약에 그 부르심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거라면 성소를 식별해야

하기 때문에 한 1년 정도 기다려보십시오그러면 성소를 식별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분명히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이 왔다면 하느님께서 그쪽으로 인도해주실 겁니다.’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데 1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그런 생각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하느님께서 나를 이곳 베네딕도 수도원에 불려주셨다는 것은,

또 베네딕도 수도자로서 살 수 있는 힘도 주실거고 비록 말을 잘 못하고

어둔하고 부족하지만 또 나름대로 거기에 필요한 은총을 주실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그리고 저한테 주는 은총중의 하나는 성실하게 준비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매일 강론도 준비해서 강론하게 되고 심지어 이제 떨리면 참 떨립니다.

이런거까지 강론의 원본에 이제 적어서 발표하고 강론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계속 그렇게 하고 있는데 오히려 저의 약함을 통해서 좀 더 강론을 더

조리 있게 잘할 수 있는 은총도 더 받게 된 것 같습니다.

또 지금도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것도 저한테는 기적과

같은 시간인 것 같습니다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자체가 말입니다.


 

아무튼 토마스 머튼은 그런 성소의 식별이 있어서 장상에게 순명을 했고

하느님의 뜻을 따랐습니다그래서 진정한 어떤 장소를 옮겨서 그런 고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벽한 고독을 향해서 달려갔고결국에는 나중에

그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살면서 미국인 최초로 수도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은둔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런 수도자가 됩니다.

 

나중에 설명을 드리겠지만 1965년부터 그런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각자 받은 성소가 있을겁니다또 자기 가정이 있고 환경이

있습니다그곳에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할 때 하느님께서는 더 그 약함을 통해서 더 깊고 큰 것을 보여준다는

더 선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토마스 머튼은 이런 완벽한 고독을 향한 그런 성소를 느꼈고 이 성소를

발전시켰는데 나중에 후기에 쓴 '논쟁점들(Disputed Questions)이라는 책에 보면

이렇게 아름답게 고독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한번 귀 기울여 들어보십시오.


'참된 고독은 단순히 분리됨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일치를 향합니다.

참된 고독은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습니다사람들과 깊이 일치된 이는 더 이상 주변적 관심사들에 의해 도취

되지 않기에 모든 것이 더 깊어집니다.

 

하느님과의 깊은 고독안에서 친교를 나누는 사람은 사람들과도 연결됩니다.

그래서 보편적인 그런 고독으로 하느님의 고독과 만나고 그리스도의 고독과

만나고 사람들과의 고독과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고독은 하느님 안에서의 사랑의 친교라고 토마스 머튼은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토마스 머튼이 고독에 대한 갈망또 새로운 어떤 수도생활에 대한 더

깊은 갈망이런 변화에 대한 갈망들이 있을 즈음에 결정적인 하느님의 선물을 받는

데 그것은 바로 루이빌에서의 하느님 체험이었습니다그것도 사람들 사이에서.

 

토마스 머튼이 수도원 일 때문에 루이빌로그 도시 이름이 루이빌입니다.

루이빌에 가게 되는데 그 루이빌에 월러시(Wallasey)라는 거리가 있습니다그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순간에 어떤 뭔가가 자기를 압도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

습니다어떻게 할 수 없는 강한 하느님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그래서 이때 자기의 너무

뜨거웠던 하느님 체험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루이빌에서 저는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순간 갑자기 무언가가 저를 압도하는

듯했고 제가 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저는 여전히

인류의 한 구성원입니다그것은 마치 금욕과 거룩함으로 여겨지는 세상특별히 수도원

안에서 차별과 거짓된 자기 위안의 꿈으로부터 빠져나와 이 거리를 걷고 있는 것 같았으며,

세상으로부터의 분리의 개념은 완벽한 망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수도서원을 함으로써 수도승들은 다른 종류의 존재, 모조품, 천사들영적인 사람들내적인

삶의 사람들이여야 된다는 것을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저의 망상이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제가 단지 다른 사람들 가운데 있는 평범한 사람

이라는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제가 홀로 있는 것이 그들의 덕분인 것은 제가

그들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제가 홀로 있을 때그들은 더 이상 그들이 아니라 바로

저 자신입니다낯선 사람들은 더 이상 없습니다.’

 

 

이 루이빌에서의 영적인 체험을 통해서 토마스 머튼은 이 차별의 꿈에서 완전히 깨어

나게 됩니다전에는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을 했었죠그런데 이제는 더 우월

함이 아니라 오히려 똑같다 그 사람들과그리고 주체와 대상의 일치이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던 것

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안에 계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거죠사실 이 이야기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같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수없이 들어왔기 때문에 머리로는

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그런데 실제로 이게 가슴으로 와닿게 되었다는 거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도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고 그러셨는데

토마스 머튼도 머리로 알고 있던 하느님 사랑을 가슴으로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 새로운 관상에 대한 사람들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사람들 안으로 들어갈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1960년대에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그래서 제가 이 토마스 머튼의

영적인 체험을 통해서 저 자신도 이 글을 읽으면서 굉장한 많은 영적인 체험을 하였고

또 변화되는 체험을 했습니다사실 저도 지난 첫 회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굉장히

우월적인 의식을 갖기도 했고 제가 더 특별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토마스 머튼과 어떤

영적인 유대를 통해서 그냥 평범한 한명의 인간이었고 오히려 사람들을 위해서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많이 배워야 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깨우쳐 준 그런 사건 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1960년대에 토마스 머튼은 사회정의를 위해서 많은 글들을 쓰기도 하고 또

많은 활동들을 합니다그렇지만 직접적인 활동보다는 토마스 머튼이 생각할 때는

의식의 변화가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생각을 했습니다그래서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토마스 머튼은 많은 글을 적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실 어느 트라피스트 아빠스가 수도승이 세상에 대해서 여러 가지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좋아했겠어요또 이 당시에는 굉장히 엄격한 생활을 더 심하게 했던 때

이기 때문에 토마스 머튼은 장상들로부터 검열을 많이 당했고 제지를 많이 당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그 필명을 달리해 가지고 자신의 글을 발표하기도 합니다.

 

이런 생활을 하던 와중에 토마스 머튼은 또 동시에 세상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더

깊은 고독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습니다그래서 1965년부터 토마스 머튼은 이제

하루를하루종일 그 은둔처에서 살 수 있는 허락을 받게 되는데 이 은둔처는

겟세마니 수도원에서 한 20분 정도 걸어가면 숲속에 이렇게 은둔처가 놓여져

있습니다저도 이 은둔처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조그만한 집입니다.

거기에 작은 경당도 하나 있고침실이 있고 벽난로가 하나 있고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토마스 머튼은 하루종일 혼자 기도하고 또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담화도 나눠주고 했던 그런 토마스 머튼이었습니다.

 

오늘 이 프로를 보고 계시는 여러분 모두도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깨달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을 준비하십시오내가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을 갈망하고

하느님께 기도드릴 때준비된 영혼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음성을 당신의 목소리

를 들려주실 것입니다그래서 그 목소리가 들릴 때 우리는라고 응답하면서

하느님의 그 목소리에부르심에 응답하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겁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들 삶 속에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여러분을 부르고 계시는지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