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

5회 성숙한 머튼_현대영성가 토마스 머튼과의 만남_박재찬 신부 해설

은가루리나 2020. 3. 14. 12:40



+찬미예수님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의 박재찬 안셀모 신부입니다.

지난 시간에 여러분들 대담 잘 보셨는지요? 김남희 교수님께서 참 말씀도 잘 하시고 또 우리 교우분들을 대신해서 여러가지 좋은 질문도 많이 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여러분들과 함께 계속해서 토마스 머튼에 대해서 배워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배움을 통해서 김남희 교수님께서도 그러셨습니다. 신부님 덕분에 토마스 머튼 책도 사서 보게 되고 또 토마스 머튼 영성을 배우면서 하나 둘 조금씩 본인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고 하셨는데, 여러분들께서도 이 강좌뿐만 아니라 책을 한 권 두 권 사서 읽어보시면서 토마스 머튼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삶의 여정을, 또 영적인 여정을 한번 더 같이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머튼을 통해서 오히려 하느님께 더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되기를 빕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1960년대에 토마스 머튼이 이제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었는지, 영적인 여정에 있어서 또 수도생활의 여정에  있어서 또 통합된 영성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지난 시간에 제가 루이빌에서의 그 체험을 설명해 드렸었구요, 그리고 또 토마스 머튼이  그 체험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 가운데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다 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한 그 체험을 통해서 저 역시 또 새로운 제 영적인 여정에서의 어떤 변화를 체험했다는 그런 말씀도 드렸습니다.  토마스 머튼이 그러면 이 1960년대에 과연 어떻게 변화 되었길래 새로운 머튼, 성숙한 머튼이라고 부르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토마스 머튼은 이 시대에 관상과 활동을 통합한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서 열려졌고 또 세상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도원의 이 담벼락, 내 담벼락은 더 확대되어서 세상이라는 것이 모두 토마스 머튼에게 있어서는 수도원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굉장한 내적인 자유로움으로 사람들에게 진정한 변화를 촉구하는 그런 메세지를 계속해서 남기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깨달은 자의 책임감이죠. 내가 하느님께로부터 깨어났기 때문에 세상을 향해서 깨어난 나의 삶의 모습, 또 깨어난 자의  삶의 모습으로서의 책임감으로서 세상을 위해서 헌신하게 됩니다.


특별히 이 시대에는 1960년대에는 냉전시대였고 또 핵 전쟁의 위기가 있던 시기였고, 또 베트남 전쟁이 있었죠. 그래서 이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운동, 또 사회정의에 대해 외치는 그런 일들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토마스 머튼을 '피스메이커' 라는 그런 별명을 붙여서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토마스 머튼은 이 시대에 특별히 종교간 대화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됩니다. 그래서 도교라든지 불교, 또 다른 기타 아시아에 대한 종교에 대한 관심도 증가되구요 또 개신교와의 대화에도 힘쓰게 됩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이 이 시대에 굉장히 열려진 상태, 개방된 모습, 또 세상을 향해서 뭔가 외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선구자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토마스 머튼은 좀 더 그 시대를 앞서 간 그런 역할을 한 분이라고도 볼 수도 있을겁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저술을 통해서 세상에 사회정의에 대해서 외치기도 했는데 토마스 머튼은 직접적인 사회참여라기 보다는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켜야지 사람들이 세상이 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여러가지 글들을 많이 적었는데 사실 수도회 장상은 토마스 머튼이, 특히 트라피스트수도회 수도승이 사회에 참여한다는 거에 대해서 반대가 좀 있었습니다. 또  어떤 부분은 검열도 하시고 이 부분은 수도승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해서 출판을 못하게 하기도 하고 그러셨습니다.


그런데 토마스 머튼이 그런 욕구가 굉장히 강했죠. 사회를 변화시켜야 된다. 그리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의식을 변화시키는 글을 써야 된다는게 그냥 의무감이 아니라 솟아나오는 그런 어떤 굉장한 열정이었기 때문에 토마스 머튼이 심지어는 필명을 다르게 해가지고 당신의 생각을 세상에 이렇게 전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분들이 사제들이, 혹은 뭐 수도자들이 사회 참여하는 거에 대해서, 또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참여하는거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계십니다. 직접적인 참여가 아니더라도 하느님은 우리 교회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곳에 계십니다. 그래서 사회정의를 위해서 본인의 목소리를 내고 또 사회정의를 위해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우리의 역할이요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당신 자신을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세상에 참여하는거에 대해서 1962년에 브라질에 있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우리는 전 인류에 대한 우리의 보다 높은 책임을 인식함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저는 관상가로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 역사속에 활동하십니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아무런 감각도 갖지 않고 아무런 역사적 책임감도 없는 관상가는 온전한 그리스도교의 관상가가 아닙니다.' 사회참여가 어떤 교회의 정신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를 그리스도의 정신에 따라서 더 발전시켜 나가고 또 그리스도의 정신이 스며들 수 있도록 부르짖는 것은 마땅히 그리스도교의 관상가로서 해야 할 역할이라고 토마스 머튼은 깨닫게 된 것입니다.


또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관상가로서 저는 고독안에서 고독안으로 저 자신을 가두어두는 것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가난한 세상이 제가 고독안에 있어야 할 올바른 장소입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정치적, 지적, 미적, 그리고 사회운동에 대한 관상적인 이해에 의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안에서 이제는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고독을 통해서 하느님을 체험한 이의 삶의 태도라고 볼 수 있을겁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열매가 없는 기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기도와 관상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사랑의 열매를 통해서 우린 식별해 나가야 될 것이고, 서로 나누는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더 영광받으시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토마스 머튼이 이제 1960년대에서 아주 결정적인, 또 굉장히 중요한 역할,  또 굉장히 중요한 변화중의 하나는 바로 1965년부터 은둔처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어떤 사랑의 실천과 더불어 동시에 토마스 머튼은 더 깊은 고독을 갈망했다는 것은 참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토마스 머튼이 이 시점에서 은둔처에서 체험했던 어떤 고독한 삶은 그 전기에 1950년대에 가졌던 그런 고독의 체험과는 또 다른 차원의 체험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가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가말돌리회라든지 카르투시오회로 옮겨갈려는 어떤 지리적인 장소로서의 고독을 추구했었다면 이 은둔처에서의 새로운 고독의 시작은 보다 더 보편적인 그런 사랑의 실천을 위한 어떤 구심점의 역할을 하는 그런 장소를 찾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토마스 머튼은 이 은둔처에서의 삶을 허락받은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미국 트라피스트 수도자로서 최초로 공동체 생활을 떠나서 은둔처에 살게 된 수도승이었다고 합니다. 그 전에도 '안나의 집'이라든지 다른 곳에서 은둔처의 생활을 허락받긴 했지만 부분적이었습니다. 하루의 일부분만 그곳에 가서 생활할 수 있었는데 토마스 머튼의 이런 고독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장상에 의해 받아들여져서 1965년부터는 오롯이 은둔처에서의 삶을 통해서 보다 더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그런 뜻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토마스 머튼이 은둔처에 홀로 살면서 그냥 자기 마음대로 생활했던 게 아닙니다. 토마스 머튼이  장상에게 하루 일과표를 보낸 것들을 이렇게 보면 시간이 굉장히 타이트하고 엄격합니다.


제가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새벽 2시 15분 기상, 아침기도 5시까지, 아침 식사 후 7시 30분까지 렉시오 디비나, 그 후에 1시경과 로사리오 기도, 8시에 수작업, 뭐 손으로 하는 단순한 작업 혹은 허드렛일, 9시 30분 3시경, 그다음 6시경, 9시경을 합니다.


그리고 개인미사를 위해 수도원으로 이동, 수도원으로 이동해서 개인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감사와 시편 찬양이 뒤따르고 수도원 식당에서 식사, 식사 후 은둔처로 귀가, 휴식시간 혹은 가벼운 독서, 1시에 저녁기도, 2시 15분 글쓰기 일 혹은 산책, 오후 4시 15분 독서의 기도, 5시 저녁식사 및 끝기도, 6시 성경읽기 묵상 그리고 성찰, 7시에 취침. 굉장히 특이한 하루의 일과이죠.


리가 해가 지고 뜨는 그런 시간을 어떤 개념들, 일과를 뛰어넘어서  2시 15분에 일어나서 하루종일 기도와 묵상과 또 단순한 일을 하고 글도 쓰고 그리고 저녁 7시에 취침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토마스 머튼의 일기를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그곳에서 지낸 일들을 하나하나 재미있게 또 솔직하게 담백하게 기록되어 있는 걸 보면 인간 토마스 머튼을 이 은둔처에서 또한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토마스 머튼이 이렇게 여러가지 은둔처의 삶의 이야기 가운데 토마스 머튼은 이 은둔처의 삶이 또 하나의 계시였다. 이런 표현을 쓰는데 굉장히 토마스 머튼을 새롭게 보게 만들어줍니다. 왜냐하면 이 은둔처에서의 삶은 토마스 머튼이 새로운 의식, 어떤 의식이냐하면 'trans-cultural consciousness' 초 문화적 의식을 갖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고 '윌리엄 쉐논'이라는 토마스 머튼 학자는 강력히 주장합니다.


토마스 머튼이 이제는 고요히 홀로 머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독에 참여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고독과 만나고 또 다른 사람들의 고독과 만나게 되고 그래서 결국은

모든 사람의 고독과 만나면서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그런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참 이해하기 좀 힘든 부분이기도 한데, 홀로 은둔처에서 살면서도 세상의 많은 것들과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시금 기억하면 조금 더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이곳에서 기도하는 동안에 기도함을 통해서 나 자신만을 위해서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세상의 저쪽편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그 기도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연결되고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소화데레사 성녀께서 선교자들의 수호성인이시잖아요. 그분은 일생동안 갈멜수도원에서 머무시면서 어떤 직접 선교지에 직접 나가신 것이 아니었죠. 그렇지만 그분은 그곳에서 기도하시는 가운데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또 선교사들을 위해서 일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들과 만났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토마스 머튼은 이 은둔처에서 홀로 있으면서 오히려 세상을 향해서 소리를 외쳤고 또 세상을 향해서 많은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또한 은둔처에서 여러 자연과의 대화하는 장면들도 많이 볼 수 있을텐데요 뭐 새와 또 숲과 나무들과 하나되는 그런 일치의 체험들, 그리고 또 은둔처에 홀로 있었지만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토마스 머튼을 찾아옵니다. 소위 말해서 이제 한 말씀 듣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죠.



하나의 일화로 헨리 나우웬 신부님께서도, 아마 헨리 나우웬 신부님을 아시는 분들 꽤 많이 있을 겁니다. 그분이 좋은 글들을 많이 쓰셨던 현대 영성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토마스 머튼의 명성을 듣고 헨리 나우웬 신부님, 그 당시에는 신부님이 아니셨죠. 근데 토마스 머튼을 찾아왔습니다. 소위 말해서 한 말씀 듣고자, 정말 관상의 영성을 살아가는 그분께 좋은 배움을 받고자 찾아갔습니다.


근데 토마스 머튼 신부님은 어떤 특별한 말을 한게 아니라 오히려 맥주를 한 잔 탁 권하면서 맥주 한 잔하고, 그리고 또 수도원의 아빠스님에 대한 이야기, 수도원에서 사는 이야기, 뭐 별반 다를 바 없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헨리 나우웬 신부님은 처음에 굉장히 토마스 머튼에 대해서 실망했다고 합니다. 아, 뭔가 특별한 게 있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너무 평범하니까 내가 여기 왜 왔나 그런 마음이 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헨리 나우웬 신부님도 깨닫게 된 거죠. 아, 영적으로 더 깊이 나아가고 성장한 그런 사람들, 또 관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특별한 뭔가가 있는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 가운데에서 더 깊이 있게 하느님을 만나는 사람이고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관상생활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어떤 확신,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머튼이 굉장한 영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분 역시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기도 하고  beer도 좋아하고 하는 그런 우리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하고 별반 다를 바 없지만 무엇보다도 그 모든 일상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면서 나도 관상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래서 이 은둔처에서의 토마스 머튼은 많은 사람들과의 친교 또 자연과의 친교, 그래서 생태학자들은 이 토마스 머튼의 은둔처에서의 어떤 자연과의 친교를 통해서 세상을 향한 그런 토마스 머튼의 관상뿐만 아니라 자연을 향한 그런 친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모델이 되었다고 또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을 요약하자면 이 3년간의 은둔처의 시간을 통해서 보편적인 그런 영성, 또 우리가 나아가야 될 영성의 어떤 좋은 모델로서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삶의 어떤 모범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이 시기에 아주 특별한 만남이 있었는데 그 만남은 바로 1966년 3월 31일이죠.  M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이 M은 누구일지 궁금한데요~ 이 M은 25살 난 학생 간호사였습니다. 토마스 머튼이 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제 M이라는 표현으로만 글을 남겼는데 글쎄요 뭐 마리아일지 말가리다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M이라는 이 여성을 통해서, 또 이 여성과의 만남을 통해서 토마스 머튼이 진정으로 인간이 되었다. 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제가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분들이 이 토마스 머튼의 로맨스에 대해서 오해하거나 혹은 과대포장 하거나 혹은 또 어떻게 수도승이 저럴수 있어!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토마스 머튼과  M과의 만남의 시작은 토마스 머튼이 허리통증으로 성요셉 병원이라는 곳에 입원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토마스 머튼이 루이빌에 있는 이 성요셉 병원에 허리수술을 받기 위해서  갔을 때 M을 만났고 이 M을 만난 이후에 일주일만에 서로 사랑에 빠졌다.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이 M을 만났을 때 토마스 머튼이 쓴 일기를 여러분에게 잠깐 나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M한테서 편지가 왔다. 그녀의 소식을 받는 일이 기뻤다. M이 나를 만나고 싶어하고 나도 M을 만나고 싶다.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멈추어야 할 것인가? 나는 더 자유롭고 진실로 뜻한 바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이 되어야 한다. 나 자신을 속여서는 안된다.' 이런 편지도 남겼구요 또 좀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내용도 있는데, 'M과 조금 걸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아경에 빠지는 것 같았고, 우리는 눈빛으로 사랑을 나누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아무 두려움 없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사랑을 말할 수 있다.'  굉장히 사랑에 빠진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대목에서는 이렇게 일기를 적었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은수자가 되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나 자신이 되도록 만드신 사람, 덧붙여 말하면 M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미 벌써 이제 M과의 사랑에 대해서 굉장히 어떤 사랑의 또다른 차원을 서서히 발견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토마스 머튼은 공의회 이전에 입회한 엄율 시토회의 트라피스트회 수도자였고 또 정결 서원을 했고 종신서원을 한 수도자였기 때문에 굉장한 이 M과 사랑에 빠진거에 대해서 갈등도 많이 느낍니다. 소위 말해서 심리학에서 본능적인 감정(id) 과 죄의식( super-ego)사이에서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저는 감히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이 저에게 불러 일으킨 자기 성찰의 불안을 동시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 많이 사랑받고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면서 지금 제 삶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표준들을 따라서 볼 때, 이 모든 것은  잘못되어 있고 부조리하고 제정신이 아닌 것입(같습)니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죠. 사랑에 빠지면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는 그런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 이런 표현도 합니다. '저는 이제 부조리한 존재를 이끌어가야만 합니다. 어떤 신비로운 방법 안에서 저는 이것에 대해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이롭고 신비적인 것 때문이 아니라, 부도덕 때문에 비난 받아야 합니다.' 이 표현에서는 토마스 머튼은 인정을 합니다. 나의 M과의 사랑자체는 수도승적인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는 부도덕한거다. 그렇지만 어떤 신비롭고 경이로운 체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토마스 머튼이 어떤 성(性)적인 그런 사랑을 넘어서 어떤 초자연적인 사랑을, 이 M과의 사랑을 통해서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이 M과의 사랑을 통해서 보다 더 전인적인 인간이 되었다.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오늘날 그 페미니스트들이나 심리학자들은  이 M과의 사랑에 빠진거에 대해서 좀 다른 견해를 많이 갖습니다. 초기에 토마스 머튼이 이 M과의 사랑에 빠진거에 대해서 굉장한 비판과 또 심지어 실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영웅적인 대가가 어떻게 한 여성과 스캔들이 될 수 있는가. 이런거에 대해서 사람들이 오해하기도 하고 또 잘못 전달되기도 했습니다. 토마스 머튼 역시 이 M과의 사랑에 깊이 빠지면서 스스로도 제정신이 아니었다라고 표현할 만큼 어떤 감정적인 거, 또 이런 것들을 주체할 수 없는 그런 성향이 없었던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이제 M과의 사랑이 수도회 장상에게 발각이 되게 됩니다. 처음에는 몰래 전화도 하고 편지도 주고받고 했었는데 어느날 토마스 머튼이 이 M에게 너무 전화를 하고 싶어서, 그 당시에는 뭐 휴대폰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몰래 수도원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서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수사님께서 이 M과 통화하는 장면을, 소리를 듣게 되고 그 통화내용을 듣고는 어, 이거는 평범하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이제 장상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장상도 깜짝놀랐고 결국 장상께서는 토마스 머튼을 불러서 '신부님, 둘 사이에 어떤 사랑의 관계를 이제 그만 청산을 하도록 하십시오'. 라고 권고를 합니다. 토마스 머튼도 이미 마음속에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그 관계를 청산하겠다고 말하지만, 쉽게 그것을 말로는 표현했지만 마음으로는 아직 할 수 없는 그런 단계였습니다.



하지만 순명을 해야했고, 결국은 공동체에 마지막까지 머물겠다는 서약을 하고 또 다른 약속으로는 토마스 머튼이 본원에 와서 종교간 대화에 참여한다는 그런 조건으로 모든 것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사실 장상 아빠스님께서는 토마스 머튼이 너무 홀로 있어서 외로워서  M과 사랑에 빠진게 아닌가 생각을 했고 그 은둔처에의 삶을 그만두라, 이제 본원에 병실에 와서 좀 지내라. 라고 권고를 했는데 토마스 머튼은 이 은둔처에의 삶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장상의 조건을 다 허락하고 받아들이고 은둔처에 계속 머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근데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토마스 머튼의  M과의 사랑에 빠진 이야기는 오늘날 새롭게 다시금 재부각되고 있는데 그것은 토마스 머튼이 어린시절에 어머니와 일찍사별을 하고, 여성적인 그런 요소로서 부족했던 부분들을 이 M과의 사랑을 통해서 더 충만하게 채웠다. 이런 표현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토마스 머튼이 이 M과의 사랑을 나눈 것은 '마침내 한 인간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것을 윌리엄 쉐논 학자가 이런 표현을 하기도 하구요. 또 로버트 왈트론이라는 '토마스 머튼의 상처받은 마음'이란 책을 쓰신 분이십니다. 이분은 또 새롭게 M과의 관계를 재조명하는데요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사랑으로 인하여 영적인 성장이 확실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자기 자신 혹은 다른 이의 영적인 성장에 봉사하기 위해기꺼이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고자 하는 마음, 다시 말해 사랑의 행위는 자기 초월의 행위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굉장히 큰 핵심이 있습니다. 사랑의 행위는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받는, 이 사랑의 행위는 자기를 초월해 줄 수 있는 그런 도움이 된다, 도구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토마스 머튼은 이 M과의 사랑을 통해서 이 기간에 적은 여러가지 글들은 굉장히 인간적인 사랑을 통해서 초월적인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그리고 사랑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굉장히 강조하는 글들을 많이 쓰기도 합니다.


또 '바실 패닝톤'이라는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유명한 신부님이시죠. 이 신부님은 이렇게 평가를 합니다. '저는 진정한 우정관계에 배타적이지 않은, 지나가는 로맨스의 현실을 넘어서 가는 토마스 머튼의 로맨스에 대해 어떠한 의문이나 위험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머튼은 수도승으로서의 신념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유로움을 느꼈고, 이 아름다운 경험에 자신을 충분히 개방하였습니다.'


토마스 머튼이 한 이 M과의 사랑을 통해서 많은 현대 영성가들이나 심리학자들이나 또 페미니스트들은 또 다른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거죠. 아, 우리 모두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또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그 과정을 통해서 하늘의 사랑을, 하느님의 사랑을 깨우칠 수 있는 그런 도구가 될 수 있다는거죠.


사실 우리 인간들 안에서의 사랑을 제대로 주고받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심지어 부부간에도 처음에는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처음엔 너 없이 못산다고 해놓고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되죠? 너 때문에 못 산다고 그러죠.  그래서 이 사랑이 어떻게 우리가 지속되어야 되는지 또 이 사랑이 하느님 사랑과 연결되지 않을 때에는 결국은 인간적인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에 머물수 있지만 그 시초가 되는 것은 하늘사랑으로 끌어올려지기 위해서는 인간이 진정으로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 그리고 진정으로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랑을 할 때, 우리는 하늘사랑의 맛을 볼 수 있게 되고, 여기에 덧붙여서 토마스 머튼이 끊임없이 하느님의 사랑을 추구했고, 하느님을 찾았던 것처럼 인간적인 사랑위에 또다른 하느님의 사랑을 더해진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하늘사랑을, 인간적인 사랑을 통해서 하늘사랑을 배울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결국 우리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런 삶의 여정 가운데 우리는 인간적인 사랑, 또 하느님 사랑은 분리된 게 아니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마주보면 어떻게 되죠? 서로 으르릉 거리며 싸웁니다. 하지만 함께 하느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토마스 머튼은 이 당신 사랑의 여정을 통해서 또 우리에게 어떻게 사람들의 사랑을 통해서 하늘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었다고 저는 생각이 듭니다. 토마스 머튼은 결국 이제 장상의 명령에 따라서  M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M이 쓴, 자기에 보냈던 모든 편지는 다 태웁니다. 그리고 본인이 이제 M에게 썼던 글들은 상자에 넣어서 봉헌을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수십년이 흐르고 난 다음에 이 상자를 열어보아라. 라고 표시를 해 두고는 깊숙히 보관을 합니다.


그렇지만 1968년에 토마스 머튼이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 이 판도라의 상자라고 표현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 이 상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었고, 처음에는 많은 이들에게 실망감을 주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제는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는 인간의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또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제가 이 토마스 머튼이 이 사랑을 얼마나 값지게 여겼는지에 대해서 아주 압축해 놓은 또 너무도 아름다운 말로써 오늘 이 시간을 마무리 해드릴까 합니다. 한 번 잘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참된 운명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 홀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것을 발견합니다.

우리 삶의 의미는 우리가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에 의해서

사랑안에서 우리에게 드러나는 비밀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든 하느님이든

우리 자신이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면

결코 충만한 실재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하느님을 너무너무 그리워하고 보고싶어하고 하느님과 함께 살고싶어 합니다. 토마스 머튼은 하느님과 함께 삶으로써 보편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또 사람을 사랑하면서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 하나가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지금 진정으로 나의 가족들, 나의 이웃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또 진정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그들과 나누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