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

관상

은가루리나 2020. 3. 17. 14:02


9회 토마스 머튼의 관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 2
_현대영성가 토마스 머튼과의 만남_박재찬 신부 해설



토마스 머튼이 '관상'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했고
또 '관상'을 어떻게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지
사랑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로 '관상'의 의미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또 예수님께서
사랑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고 나도 그분을 응시하는 거죠.

그래서 서로 마음이 통하고 서로 사랑하는,
그래서 이제 말이 필요 없습니다,

'관상' 안에서는,
온전히 일치를 이루는 그런 사랑의 체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관상'은 사랑의 마음으로 보는 것,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
그분 곁에 머무는 것,
그분과 일치하는 것,
그분과 하나 되는 것,

이것을 다 '관상'이라는 용어로 표현을 합니다.



'관상'은 내가 그분과 하나 되어 내가 그분과 온전히 일치하는 거잖아요.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목표이고
우리 신앙생활의 최종적인, 어떤 나아가야 될 그런 곳입니다.

그래서 그걸 '지복직관'(至福直觀)이라고 그러죠.

고린토 전서 13장에 나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보듯이 희미하게 바라보지만
나중에는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될 거라는 그 말씀처럼
우리가 지금 이미 와 계신 주님을 만나고 바라보는 것,
그래서 온전히 그분과 하나 되는 것을 준비하는 것,
또 바라보는 그 상태에 있는 것,

이것이 바로 '관상'이기 때문에
'관상'은 사실 말이 좀 어려워서 그렇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최종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토마스 머튼은
'관상'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그랬습니다.

하느님의 선물!
'새 관상의 씨'(New seeds of Contemplation) 책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관상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입니다.
관상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그분을 알고 사랑하며
우리의 본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깊고 생생한 체험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창조의 목적에 다다른 모든 사람들은 다 천국에서 관상가가 될 것입니다."


'관상'은
야훼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난 다음에 마지막으로 쉬셨던 것처럼
우리가 하느님과의 온전한 일치를 통해서
그분 안에서 고요히 머물며 그분 안에 쉬는 것,

그것이 바로 '관상'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이기도 하고요.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가야 됩니다.  

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관상적인 삶, 관상적인 기도의 삶을 살아가야 되는 겁니다.
또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또 특별히 수도자들이든지 갈멜이라든지 이런 수도회,
혹은 트라피스트 수도회, 가말돌리회, 베네딕도회 같은
관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들만의 기도가 아니라 그 삶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 또 모든 사람들은 

이 관상적인 삶으로 불림을 받은 거죠.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또 이렇게 이어서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아직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도
이런 초자연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환경을
맛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관상'의 의미를 통해서 이 토마스 머튼은
이미 이제 와 계신 그분 안에서 쉬는 것,
그분 안에서 머무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창조의 최종 완성이고 목표라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초자연적은 이원론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초자연에 계신 분이 자연 속으로 들어오심으로써
이 세상은 이미 하느님의 세상과 연결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우리는 관상적인 삶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초자연에 계신 하느님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관상적인 삶을 통해서 천국을 미리 맛보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굉장히
토마스 머튼이 어떤 혁신적인 그런 가르침을 주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말합니다. 1963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저에게 있어 관상적 삶이란 진리와 하느님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창조물 안에서 올바른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제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하느님의 창조물 안에서 올바른 자리를 찾는 것,
이것이 바로 관상적인 삶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또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또 예수님의 친구로서
본래의 자리, 그 본래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
그래서 하느님 안에서 안식과 휴식과 편안함을 맛보는 것,
이것이 바로 '관상'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이 관상적인 삶을 통해서
진정으로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고,
또 진정으로 참다운 나, 자기 자신,
인간으로서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며
그리고 세상과 자연과 또 하느님과의 관계를 다시금 재발견하는 것이
바로 관상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관상의 길은 요약하자면 토마스 머튼은
세상과 뚝 떨어져서, 동떨어진
그런 신비로운 영역, 뭐 황홀경을 체험하고 이런 것들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이미 와 계신 주님을 발견하고
주님을 발견함을 통해서
사람들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어서
참다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
인간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


그것을 '관상'이라고 보았습니다.


관상 생활로 깊이 들어감으로 인해서
우리는 내적이고 또 영적인 측면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인간의 삶을 바라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인간을 전인적으로 보게 되는 겁니다.



또 다른 토마스 머튼이 이야기하는 '관상'에 대한 이야기 중에 하나는
관상 생활은 하느님을 찾는 생활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와 계신 그 주님과 함께 하는 삶,
그것이 바로 이제 관상의 삶이고,
그렇게 하느님을 발견하고 찾아가면서
하느님으로부터 깨어나는 삶이 바로 또한
'관상'으로부터의 삶입니다.

그래서 이 깨어난 사람들의 삶은 새로운 관계로,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하느님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고,
또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고,
사람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고,
또 자연들, 우주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