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

토마스 머튼의 영적인 성장의 원리/19회 머튼의 신앙 성장과 나의 영적 성장 2_현대영성가 토마스 머튼과의 만남_박재찬 신부 해설

은가루리나 2020. 3. 28. 12:43


+ 찬미예수님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 박재찬 안셀모 신부입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주님 안에서 평안하셨는지요? 지난 시간에 저희들은 토마스 머튼의 영적인 성장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제임스 파울러의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신앙의 발달단계에 대해서 하나 둘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종합적.관습적 신앙 3단계를 넘어서 이제 4단계가 개별적.반성적인 신앙의 단계인데 토마스 머튼이 어떻게 이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지금 이 시간을 통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 나눔이 있기 전에 늘 하듯이 우리 토마스 머튼의 기도를 함께 바치면서 시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 하느님 우리는 당신과 하나입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과 하나되도록 만드셨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서로 마음을 열면 당신이 우리안에 머무르시겠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개방성을 보존하고 우리의 마음을 다해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도와주소서.

서로 거부하는 곳에는 이해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를 도와주소서.

오, 하느님 우리는 서로를 온 마음으로 온전히 완전히 받아들임으로써

당신을 받아들이게 되고, 당신께 감사드리게 되고, 당신을 찬미하게 되며

우리의 존재를 다해 당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는 당신 존재 안에 있고

우리의 영은 당신의 성령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으로 가득 채우시고

우리로 하여금 각자 다양한 길을 가면서도 사랑으로 결합되고

이 한 분의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

이 성령이 바로 당신을 이 세상에 현존하게 하시고

당신으로 하여금 궁극적인 실재가 곧 사랑임을 증거하시게 만듭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겨냈습니다.

사랑이 승리했습니다.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 기도는 토마스 머튼이 아시아에 머무는 동안에 바친 기도문입니다. 이 기도문에서 아마 영적으로 어떤 성장의 단계에 대해서 이미 알고 계신 분들은 제가 왜 이 기도문을 택했는지 어느 정도 감을 잡으셨을 겁니다. 토마스 머튼은 우선 여기에서 '우리'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제가 주님과 하나되게 해 주십시오. 제가 주님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는 반면에 이제는 '우리', 우리는 당신과 하나입니다. 우리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개방성에 대한 이야기,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조했죠. 사랑! 사랑이 승리했습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겨냈습니다. 이 신앙을 제임스 파울러는 '보편적인 신앙' 이렇게 표현합니다. 영어로는 'Univdrsalizing faith'라고 표현하는데, 오늘은 그 토마스 머튼의 이런 보편적이고 좀 더 더 열려진 신앙을 살펴보기 위해서 그 앞 단계, 지난 시간에 설명했던 것을 이어서 제가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그 나의 하느님에 대해서 강조를 했었죠. 토마스 머튼도 이제 나의 하느님을 체험하고 난 다음에 수도원에 입회를 하게 되고, 입회를 해서는 1940년대에는 아주 보편적인 그런 신앙관보다는 전통적이고 그 다음엔 보수적인 어느 정도는 그런 신앙관, 또 굉장히 그 당시에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그런 수도생활의 모습들을 보고 배우고 익히면서 여느 수도자와 다를 바 없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왔죠. 


그렇지만 머튼의 이런 전통적인 신앙과 수도생활을 배우고 익히면서 조금씩 조금씩 이제 갈등이 일어나고 회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걸  지난 제가 생애에 대해 말씀드릴 때 이야기 했었습니다. 이 시기에 토마스 머튼이 점점 이제 작가가 될 것인가, 그 다음에 관상가가 될 것인가. 그 사이에서 갈등을 했고 또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떠나서 가말돌리회나 카르투시오회로 옮길려는 그런 마음도 가지면서 더 깊은 고독을 갈망하게 되었고, 또 관상과 활동의 통합도 이룰 수 있게 되었죠.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어떤 내가 다른 기존 종교적인 어떤 그런 교리라든지, 종교적인 분위기 안에서 배웠던 그런 신앙을 넘어서서 점점 새로운 신앙으로 나아가는 그런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1940년대를 지나서 50년대에는 뭔가 변화를 위한 그런 시기였다고 볼 수 있을거라고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임스 파울러가 그 다음 4단계 다음에  5단계는 결합적인 신앙, 'conjunctive faith' 라고 그러는데 결합적인 신앙, 이 신앙은 어떤 신앙이냐하면 흑백논리, 이원론적인 사고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그랬죠. 이 흑백논리를 극복하고 그 변증법적인 성장이라고 그러죠. 정반합의 원리라고 볼 수 있겠죠. 처음에 어떤 것들을 알고 있다가 나중에 모르는게 생기고 이 모르는 것들과 만나면서 더 새로운 더 깊은 곳을  알게 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변증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또 그런 신앙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타인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도 생깁니다. 그리고 어떤 역설이라든지 모순,  이런 것들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신앙 안에서 믿음의 어떤 더 깊이 있는 단계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생겨납니다. 그래서 어떤 신비신학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논리를 넘어가는 거잖아요. 그죠. 이런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힘도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속한 어떤 집단이나 단체뿐만 아니라 다른 집단이나 단체를 향해서 인정하고 포용하는 신앙도 이 시기에 갖게 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이 결합적인 신앙의 단계는 보통 사람들이 성당에서 활동하는 거하고 세상에서 활동하는 거를 분리시켜서 생각합니다. 혹은 집에서 활동하는 거, 성당, 집, 직장 분리시켜서 보는 게 아니라 이때는 통합됩니다. 하나로 이어지죠. 모든 곳에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집에 있을 때도 늘 하느님에 대한 그런 어떤 믿음을 가지고, 혹은 또 그런 마음으로 가족들을 대하게 되고, 직장에 가서도 기도하면서 내 일을 노동을 통해서 하느님을 찬미하게 되는거죠. 그래서 이 결합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더 통합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이 확장되어 가는거죠.


토마스 머튼도 이 루이빌 체험을 통해서 이 결합적인 신앙에 도달했다고 보여집니다. 루이빌 체험을 통해서 토마스 머튼이 어떻게 되었죠? 네, 1958년에 토마스 머튼이 길거리를 지나가는데, 벌써 다 잊어버리신 분도 계신 것 같애요. 토마스 머튼을 알고 계신 분들, 공부한 분들은 이 루이빌 체험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됩니다. 이 루이빌 체험을 통해서 이 전 단계와 전기 머튼과 후기 머튼을 구분하게 되죠. 그래서 성숙한 머튼, 미숙한 머튼 기억나시죠?


그래서 이 시기때 토마스 머튼은 이 체험을 통해가지고 완전히 관상과 활동의 통합을 이루게 되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더 많이 개방되는 그런 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60년대에는 사회활동도 많이 하고, 사회정의를 외칩니다. 뭐 직접적인 활동이 아니더라도 의식의 변화를 통해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특별히 이 시기에는 냉전시기였기 때문에 핵 전쟁에 대한 반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 또 사회의 여러가지 부조리한 모습에 대해서 글을 통해서 사람들의 의식을 바꿀려고 계몽시킬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사람들 안에 있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신앙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거' 아니면 '저거'였는데 이제는 '모두'라는 신앙관을 갖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다음 단계 제임스 파울러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는 단계를 보편적인 신앙,  

'Univdrsalizing faith' 이라고 했는데, 

토마스 머튼이 이 단계에 제임스 파울러는 도달했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와 동시에 표현하는게 뭐냐면 이 단계에는 보통 사람들은 잘 도달하기 힘들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마틴루터 킹이라든지 혹은 또 아빌라의 데레사라든지 이런 분들, 보편적인 더 높은 경지에 이른 성인들을 말씀하는 거겠죠. 이런 분들이 이제 이런 신앙에 도달했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도달한 사람들은 단순히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거, 혹은 자기 공동체만을 위해서 사는게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 하느님의 마음으로 그 너머에 있는, 그러니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너머에 있는 곳에 있는 사람들, 또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을 함께 생각하게 되고, 또 함께 유대하게 되고 영적인 유대도 함께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보편적인 신앙에, 보편적인 신앙에 토마스 머튼도 도달했다고 분명히 자신의 책에서 묘사를 하고 있는데 이 보편적인 신앙은 토마스 머튼 학자죠. 그 윌리엄 쉐논에 따르면 은둔처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언제였죠? 1965년부터 은둔처에서 살면서 이런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홀로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다른 세상에 있는,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홀로 있으면서도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 영적인 그런 유대 친교를 나누면서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는 그런 시기입니다.


그리고 또 이 시기에 특별히 더 종교간 대화에 대해서 관심도 많이 갖게 되죠.  타 종교 아시아의 종교에 대해서 많은 문을 열고 나아갑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의 어떤 영적인 성장의 단계는 자아 'self'로부터  'friendship' 우정관계로, '너'와 함께 하는 단계, 그 다음에  이제 '모두', 저는 'spiritual family'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모두가 영적인 가족이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이 보편적인 신앙에 도달했다. 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조금 더 뭐랄까! 제가 좀 명료하게 영적인 성장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에 대해서 이 칠판에 좀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처음에는 유아기에는 보통 자기 중심의 신앙입니다. 좀 성장한 신앙은 '너'를 생각하게 되죠. 그래서 친구들도 사귀게 되고, 점점 더 하느님에 대해서 조금 더 확장되어 갑니다.


그 다음에 '우리'의 단계가 있죠. 우리 성당, 우리 교회,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거죠. 그 다음 단계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타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타인'.  그래서 그 다음 단계는 최종적으로 통합에 이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되는 이런 과정을 거친다는 거죠. 기억하면 됩니다. (나 → 너 → 우리 → 타인 〓> 통합)


내가 지금 지나치게 '나' 중심적인가, 아니면 '너'만 생각하고 있는가, 혹은 '우리'만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도 모르는 다른 하느님이 관심 갖고 있는 '타인'에게 나아갈 때 '통합된' 신앙으로 더 성장해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제임스 파울러 이론에 따르면 처음에는 무의식의 단계에서 신앙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친구나 부모님을 통해서 신앙이 형성되죠.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아주 여러가지 기적이라든지 책, 혹은 어떤 다른 신앙에 의존해서 내 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 다음 단계의 신앙은 인간관계를 위한 신앙의 단계, 그래서 이제 여러 사람들과 묶여서 함께 우리 레지오 다니면서 거기서 신앙을 하기도 하고, 또 다른 단체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 다음 단계가 바로 나의 신앙, 나의 하느님을 만나는 신앙의 단계입니다. 그래서 이 나의 하느님을 다 만나기 시작하면,  마치 이건 자전거를 타면서 넘어지기도 쓰러지기도 하는데, 이 나의 하느님 단계에 이르면 균형을 잡게 됩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더라도 쉽게 넘어지지 않는 그런 단계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 다음에 나와 너의 결합된 신앙, 통합  신앙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신앙.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통합은 하느님化된 신앙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하느님化된 신앙의 단계까지 이루어질 때 우리의 영적인 성장이 완성된 거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 제임스 파울러나 다른 여러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어떤 인격성장의 단계, 이게 사실 나이순으로 이렇게 많이 했는데, 나이 순 그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또 특별히 여러가지 개인마다 환경이 다르고, 또 자라온 성장이 다르고 또 부모님의 신앙도 다르고 또 늦게 신앙을 갖는 사람도 있고 그죠.


제임스 파울러 이론에 따르면 신앙은 어릴 때부터 가져야지만이 성장하는 걸로 나와있지만 뭐 오늘날 사회에는 나이들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 나이에 따라서 이렇게 구분하는거는 어느 정도 이제 제한적이라고 제가 말씀드리고 싶구요, 그냥 전체적인 분위기. 아, 신앙이 이렇게 형성되어 가는구나! 이것들을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또 신앙은 단순히 한 단계, 한 단계 거치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영적인 성장은 갑자기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어떻게요? 하느님의 어떤 영적인 체험을 한다든지, 아니면 회개의 체험을 통해서,  뭐 예를 들면 사도 바오로 같은 경우에도 갑자기 막 박해하는 사람이었다가도 하느님 체험을 통해 가지고 예수님 체험을 통해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죠.  그래서 이 회개의 체험은 어떤 신앙을 껑충 뛰어넘게 합니다.


하지만 한 번의 회개로 이루어지는게 아니죠. 그래서 토마스 머튼도 지속적인 회개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오로 같은 경우에도 내가 이게 나쁜 것인 줄 알면서도 이걸 하고 있다고, 죄인 줄 알면서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까, 계속되는 어떤 신앙의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항상 어떤 신앙의 변화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부터 주어지는 겁니다. 물론 인간이 노력하는 것도 있겠지만 이 노력은 잘 준비된 영혼, 하느님의 은총이 내릴 수 있도록 잘 준비하는 그런 거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제 영적인 성장은 순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기억하시면 좋겠고, 그렇지만 이런 순서로 흘러간다는 것을 대충 이해하시고, 나는 어느 정도의 신앙의 단계에 와 있는지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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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제 토마스 머튼이 영적인 성장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이 부분을 한 번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무엇보다도 영적인 성장은 우리 자신이 되는 것, 작아지는 것, 

그리고 본래의 인간 삶을 회복하는 것, 이게 영적인 성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되는 것, 

제가 관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미 우리 가운데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비로운 방법으로 발견하는 것, 이게 관상이고 기도라 그랬잖아요.


그래서 이미 우리 가운데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본래의 우리 모습을 회복해 나가는 그런 과정에서 기도도 필요하고, 그리고 관상적인 삶도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그 관상적인 삶의 완성이 바로 영적인 성장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토마스 머튼은 영적인 성장에서 이 기도와 관상을 굉장히 중요시 했습니다. 

이 영적인 성장에서 기도가 없다면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없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또 영적인 성장에서 기도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느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 하느님의 은총이 내렸을 때 

우리는 한 순간에 변화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 존재의 가장 심연으로부터 그분에 의해 소유되어 있음을 실감하는 정도에 따라 

우리는 그분을 소유한다." 


무슨 말인고하니 

우리 안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이미 계시고 또 그분에 의해서 우리는 소유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소유를 우리가 발견하고 깨어날 때 

아, 내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것을 점점점 깨어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영혼도 성장해 나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특히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의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겁니다. 


예수님과 더욱더 친밀할수록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욱더 발전되고 성장해 나갑니다. 


제가 예전에 3가지 관계에 대해서 말씀드렸었죠. 

하느님과의 관계를 살펴볼 때 다른 사람과 나 자신과의 관계도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아직도 내가 하느님과 분리된 느낌이 든다. 

그러면 아직도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겁니다. 

더 친밀한 관계, 저 멀리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객체와 주체가 하나가 되어서 

내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토마스 머튼은 영적으로 성장한다고 보았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이렇게 <명상의 씨>에서 표현합니다. 

"분리된 느낌, 하느님과 우리 자신 사이에 거리가 있고  

하느님과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이런 의식이 있는 한, 

우리는 아직도 완전한 관상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아직도 영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고 본 것이죠.



그러면 토마스 머튼이 이 영적인 성장에 있어서 어떤 방해요소는 뭔가! 

토마스 머튼이 이야기하는 이 장애요소 중에 


하나낙심입니다. 

내가 기도하고 또 영적인 생활을 하는데 과연 이게 이루어질 수 있는건가? 

성장할 수 있는가? 

때때로는 정말 메마른 사막과 같은 그런 길을 걷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 기도를 하는 것 같지 않고, 영적인 성장을 이룰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늘 작은 일 앞에 또 소소한 일 앞에 화내고 짜증내고, 

나 자신 또 하느님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잖아요. 

그래서 낙심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은 낙심하는 이 경우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이야기하시면서 

이 낙심은 아직도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탈출구는, 이 낙심으로부터 벗어나는 탈출구는 오직 희망밖에 없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계속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이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영적인 성장에 있어서 걸림돌, 장애물은 혼란과 무기력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왜 생기냐 하면은 자기 자신의 하느님관에 갇혀 있을 때 이게 생겨난다고 그럽니다. 하느님은 이런 분이라고 딱 고착되어 있을 때 그 다음에는 이제 다른 하느님이 다가왔을 때는 혼란스러운 겁니다. 이런 하느님은 없었는데...그래서 영적인 성장을 멈추기도 하고, 또 피하기도 하고 퇴보하는 경우도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때에는, 무기력에 빠지거나 영적인 혼란이 올 때에는 

하느님께 계속해서 의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그럽니다. 주님, 굉장히 지금 너무 혼란스럽고 굉장히 지금 무기력한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가 기도할 줄 모르는 저를 대신해서 당신 성령께서 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저와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 당신께 모든 것을 의탁합니다. 라고 기도할 때 우리의 신앙이 무기력과 혼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그럽니다.


그럼 토마스 머튼은 다음 단계로, 영적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6가지 원리를 이야기해 줍니다. 

첫 번째 원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앞에 잠깐 말씀드렸는데 

거룩함은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본래의 자기를 회복하는 것, 이게 중요하다고 토마스 머튼이 이야기합니다.


토마스 머튼의 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새 명상의 씨>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저에게 성인이 된다는 것은 저 자신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함과 구원의 문제는 사실 내가 누구인지를 찾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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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영적성장의 원리중에 하나는 

자력으로 얻으려는 망상과 절망은 영적발전의 적들이다


내 힘으로 영적인 성장을 이룰려고 할 때, 

토마스 머튼은 그것은 바로 영적발전에 있어서의 원수들이다. 

적이다.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영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것, 갈구하는 것 

이게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실 이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초기에 저도 물론 그랬었습니다. 

뭔가 수도원에 들어와서 많이 기도하고 그 다음에 공로도 많이 쌓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막 혼자서 뭔가 해볼려고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쓰러지게 됩니다. 그래서 깨닫게 되죠. 힘이 다 빠지게 되면 느낍니다. 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구나! 그래서 하느님을 찾는 것, 기도하는 것조차 내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해야되는구나.


그래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것도 

어쩌면 온전히 자기 자신이 다 힘이 빠져서 더 이상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할 수밖에 없구나. 

어쩌면 이게 바로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이들은 전적으로 아버지 엄마를 신뢰합니다. 

물론 뭐 미숙함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이와 같이 되라.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라고 말할 때,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것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예수님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하겠다. 그런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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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영적성장의 원리 가운데 하나는 약함을 받아들여라. 

앞에 부분과 좀 맥락이 이어지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그래서 내 자신은 너무너무너무 약한 사람입니다. 

보잘것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받아들일 때 사도 바오로처럼 저의 약함을 오히려 자랑하겠습니다. 라고 

표현하게 되는거죠.


래서 토마스 머튼은 <명상의 씨>에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전적으로 선하거나 악해서만이 아니고 

선과 악이 설명할 수 없이 교묘하게 뒤섞인 상태인 우리 자신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우리 자신이 죄도 지을 수 있고, 약하기 때문에 하느님께 의탁할 수밖에 없는 거겠죠. 

그래서 약함을 받아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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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네 번째, 지금 우리의 삶을 받아들여라. [

우리 삶 가운데는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고, 

그 다음에 또 행복할 때가 있는 반면에 또 불행한 시기도 있습니다. 

우리 삶이 항상 이렇게 공중에 붕 떠서 사는 삶이 아니죠.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그런 삶이죠.

 그래서 우리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런 여러 삶의 모습들, 

특별히 어렵고 힘든 사람이 다가올 때 

그 사람을 통해서, 또 그 사건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가 

여기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겁니다.


왜 하느님께서 이런 사람을 보내주셨습니까! 라고 생각할 때, 

영적인 성장은 멈추게 됩니다. 


그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 사람을 통해서 뭘 말씀하시고자 하는가! 왜 하필 나에게가 아니라, 

주님 이 선물을 당신께서 왜 주셨는지 다시금 묵상해 보겠습니다. 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성장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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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로 당신의 체험을 충만하게 함으로써 당신의 감정과 친해지기를 배워라

이게 무슨말이냐 하면, 우리에겐 여러가지 감정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토마스 머튼은 영적인 성장에 있어서 본인이 스스로 체험을 했습니다. 

러가지 절망적인 감정, 또 뜨거운 사랑의 체험도 했죠. 


그리고 또 장상과의 다툼에서 

무수한 갈등의 어떤 그런 감정, 미운 감정도 생기고, 원망의 감정도 일어납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 그것도 우리 자신안에 있는 겁니다. 그

래서 그 감정들과 친해지라고 그럽니다. 재미있는 표현이죠. 


감정들과 친해져라. 좋은 감정들도 있지만 내 안에 어두운 감정이 있습니다. 

그 어두운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영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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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엄격하게 정돈된 삶의 경향을 멀리하고 삶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게 내버려 두어라. 

의 흐름을 따르며 흘러갈 것은 흘러가게 내버려 두어라. 지난 시간에 제가 흘러갈 것,

Letting Go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드렸었죠. 

근데 많은 경우에 영적으로 성장할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이상하게 지나칠 정도로 엄격해질려는 경향을 띠게 됩니다.


자기 정화는 영적성장에서 첫 발걸음이기도 하지만, 

이 자기 정화를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이렇게 어떤 틀에 가둘려고 할 때 

이 자기 정화는 오히려 더 방해를 받기도 합니다. 

근데 다음 영적인 성장으로 나아갈수록 더 자연스러워지고 자유로워집니다. 

그래서 엄격한 틀에 자기 자신을 자꾸 가둘려고 할수록 

오히려 영적인 성장은 방해받게 되고, 그 틀 속에 자기를 가두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영적으로 퇴보하는 경향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재미난 사실은요 열심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열심히 살아요. 

기도도 많이 하고, 또 고행도 많이 하고, 자선도 많이 해요. 근데 교만에 빠져요. 그래서 이만큼 내가 하는 만큼 너도 이만큼 하라고 은연중에 강요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만큼 하지 않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이 사람은 영적인 교만의 틀 속에 갇혀서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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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6가지는 제가 다 말씀을 드렸구요, 

다음 단계로 영적인 성장의  Key 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적인 성장에 있어서 토마스 머튼이 이야기한  Key는 바로 뭘까요? 

토마스 머튼이 이야기한 영적성장의  Key는 바로 겸손과 순종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처럼 '예'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겸손과 순종의 자세로 하느님의 은총에 신뢰하고 하느님의 자유를 믿고, 

하느님께 나를 온전히 의탁하는 것, 

그래서 순종과 겸손을 통해서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항상 하느님의 뜻에 먼저 순종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성장은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통합적인 성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서 먼저 과거의 나의 어떤 기억들과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과거의 기억들과 화해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내 삶에서 함께 하신다는 것도 한 번 더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강조하는 것중에 하나는 

영적인 성장은 결국 나를 넘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나아가는 것,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자기 초월의 단계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성장에 있어서 필요한 요소중에 하나는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그분 곁에 머무는 시간들, 

또 그분과 함께 하는 그런 의식적인 함께 함, 

그리고 의식적으로 그분의 현존을 의식하는 것,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성장에는 완성이 없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가 온전히 도달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비록 하느님化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영적인 성장은 끝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걸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영적인 성장의 목표로 지금까지는 나의 하느님이었다고 칩시다. 

제임스 파울러가 이야기한 그 4단계 중에 나의 하느님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제는 그 다음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은 나의 하느님 단계를 넘어서 '하느님의 나',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더 기쁘게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가. 

기에 관심을 가질 때 영적으로 더욱더 성장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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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적으로 성장해 나아가기 위해서 또 필요한 요소는 세 단계가 필요합니다. 


세 단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 다음 단계는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 다음 단계는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하느님의 눈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거죠.


우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아까 말씀드린 나의 과거의 기억들과의 화해도 필요하구요, 


그 다음에 과거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 지금 현재 나의 모습을, 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아까 제가 토마스 머튼의 6단계 이야기하면서 말씀드렸죠. 

심지어 내 감정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중요합니다. 

감정과 친해지라 그랬죠.



그래서 나의 미래도 하느님께 맡겨드릴 수 있는거죠. 

나의 모든 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 겸손하게 받아들이는거 중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여기에 중요한게 바로 하느님의 자유를 인정하는거죠.

하느님 하고 싶은대로 하실 수 있도록, 

주님 당신 하고 싶은대로 하십시오. 당신 종이 여기 있나이다. 

이런 자세가 영적인 성장에, 또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의 자세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해서 

내가 온전히 하느님의 마음, 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일치되었을 때, 

다른 사람을 그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거죠. 

그래서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고, 

너를 기다려줄 수 있고, 

너와 함께 하는 그런 영적인 힘이 생겨나는 겁니다

근데 사실 말처럼 신부님 말은 그렇게 쉽지만 

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용서한다는건, 너를 용서하고 받아들인다는 건 

특별히 더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감당할 수 없는 용서를 한다는 것은 

제 생각에는 이거는 인간의 힘으로 되는게 아닌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거는 하늘차원의 사랑을 하는거다.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서는 하늘차원의 사랑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정말 하느님께 더욱더 의탁해야 되고, 

좀 기다림의 자세도 필요하고,

 그 사람에 대한 미운 감정이 일어날 때에는 계속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하느님께 말씀드리면서 

그 사람을, 또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나 자신도 주님께 봉헌할 수 있는 마음, 

그런 마음이 생겨날 때, 어느 날 하느님의 때가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겁니다. 

아, 내가 용서할 수 있는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런 마음자세를 가질 수 있을 때, 

우리는 정말 하늘차원의 사랑에 도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영적인 성장에 대해서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는 나를 위한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한 내가 되어가는 것, 

그래서 여러분들도 좀 더 더 보편적인 신앙으로, 

토마스 머튼이 보편적인 신앙에 도달했다고 그랬잖아요 그죠.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하느님께서 그러하셨기 때문에 

나도 역시 그 하느님의 마음으로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신앙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도록 

먼저 하느님께 나를 봉헌하고, 

하느님께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위탁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