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

31회 대담: 머튼 영성 정리- 현대영성가 토마스 머튼과의 만남-박재찬 신부 해설

은가루리나 2020. 4. 9. 11:15


31회 대담: 머튼 영성 정리- 현대영성가 토마스 머튼과의 만남-박재찬 신부 해설



김남희 교수 : 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다시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여기 지난 대담처럼 또 야외인데요 오늘 바깥에서 조금은 따뜻하게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박재찬 신부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김남희 교수 :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해 주셨던 토마스 머튼의 영적 과정과 그 다음에 신부님의 영적 과정을 보면서

많이 인상에 남았구요, 그 여정의 길을 저희가 함께 같이 가고 있었는데 이렇게 또 명상의 집

앞에서 하게 되어서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재찬 신부 : 네, 저도 여기 명상의 집에 오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올 1월에 귀국을 해서 3월에 이곳에 처음 왔습니다.

그래서 명상의 집에서 지내는 가운데 참 많은 새로운 분들, 그 타인들을 많이 만났죠 처음에.

근데 지금 그 타인들이 우리 가족이 되어가고 있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참 좋습니다.


교수님과도 마찬가지죠.

방송하면서 처음에는 잘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그죠!


김남희 교수 : 네, 또 다른 새로운 인연을 신부님을 통해서 만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 인연들이 이렇게 모아져서 낙엽이 되서 이렇게 성숙해지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박재찬 신부 : 낙엽이 떨어지겠죠.  또 겨울이 오고 새로운 싹이 나겠죠.

그래서 점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자라가는 것 같습니다.

근데 결국은 물을 주시고 햇볕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니까 하느님께 다 나무들이 모든 걸

하늘에 내어맡길 때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께 모든 걸 내어맡길 수 있는 그런 마음들을

이 방송을 통해서 가질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김남희 교수 : 네, 신부님, 시작하기에 앞서서 하나 궁금한 점이 있어서 그러는데요,

지난 번에 왔을 때도 분도 명상의 집에서 궁금했었는데 오늘은 물어볼려고 하는데요

그 명상의 집 앞에, 위에 그 십자가가 있고 CSPB 이렇게 쓰여 있더라구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박재찬 신부 : 네, 여기도 지금   CSPB가 있고 저희 왜관수도원에 가도 CSPB가 있는데,

흔히들 많은 분들이 그 수도원에 와서 저  CSPB를 보고는 저게 뭡니까! 이렇게 여쭤봅니다.


그러면 대개 이렇게 시작합니다.

C는 CSPB는 수도원에서 나오는 특산품들을 이렇게 상징하는 그런 단어들을 모아서 십자가를

만들었다고, 그래서 수도원에서 치즈도 만들고 그 다음에 S, 우리가 햄을 만들잖아요.

소세지 소세지도 만들고 그 다음에 수도원에서 포도주도 생산합니다.

그래서 P-포도주, 원래 와인인데 그죠!

그리고 또 빵도 만듭니다 직접. 주방 수사님이 직접 빵을 구우세요.

그래서 그 빵 구울 때는 갑자기 굶주려집니다. 막 그 배고픔 때문에.


그래서 흔히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떤 분들은 긴가민가 하면서 아, 아닐텐데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실제로는 'crux santi patris Benedict' 해서 '사부 성 베네딕도의 십자가'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모든  베네딕도회 가면  CSPB가 특징적으로 표시가 되어 있지요. 


김남희 교수 : 다 믿고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재찬 신부 : 혹시 분도 패에 보시면 그 베네딕도 메달 있잖아요.

거기 보시면 거기도 CSPB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베네딕도 성인을 통해서,베네딕도 성인은 이름이 축복하다라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그 축복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마귀를 쫓아내고, 옛날부터 그런 전해내려오는 그런 게 있었죠.


베네딕도라는 말 자체도 굉장히 인상적이고 우리한테 필요한 말입니다.

베네딕도 성인의 이름이 베네(bene)는 '보누스' '좋다' 이런 뜻이고 ,

딕도(dic)는 '디첼'에서 나온 말이예요 '이렇게 말하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을 좋게 말하는 게 뭐죠? 찬미하다, 찬양하다 이런 뜻이고,

하느님이 우리를 좋게 말하는 것, 그게 바로 축복하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제가 축복하다 라는 말씀 드렸잖아요.


그래서 베네딕도 성인 이름안에는 찬미하다, 찬양하다, 또 축복하다 이런 뜻이 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좋게 말해주는 그런 습관을

키우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남희 교수 : 아, 네! 그 말씀을 되새기면서 지난 시간에 했었던 강의 내용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번에 신부님께서 머튼의 삶을 통해서 신부님의 삶이 변화되었다고

하셨었는데 오히려 또 반대로 신부님의 그 모습을 통해서 다른 사람이 변화 된 적은 없는지?


박재찬 신부 : 아, 글쎄요. 마음은 그러면 좋겠는데 악영향만 안 미쳤으면 좋겠는데 ,

근데 저한테 기억날 만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제가 부제 때였죠. 그때 8일간인가 서품을 받기전에 피정을 하는데,

제가 마산 수정 트라피스트 수녀원에서 피정을 했습니다.


근데 그 피정에 갔을 때 어떤 자매님 한 분이, 5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자매님 한 분이

피정을 하고 계셨어요. 그건 침묵피정이니까 저도 조용히 피정을 하고,

저도 그때 수도복을 입고  있었으니까 그분은 아마 제가 수도자인지 아셨을 겁니다.


그리고 서품 피정하는 걸 아셨을 거구요. 

그리고는 제가  거의 마칠 때쯤, 5일쯤 지났을땐가 그 자매님께서 저에게 몇 가지 말을 건네셨는데,

마지막으로 간다고 잘 있으라고  피정 잘하시라고 하고 갔어요.

저는 피정을 마치고 바로 수도원에 와서 서품을 받고 그리고 사제로서의 삶을 시작했죠.


그런데 얼마후에 그 편지가 한 통 왔어요. 굉장히 두꺼운 편지였어요.

손으로 정성스럽게 쓴 편지였는데 그 편지에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부제님, 아, 이제는 신부님이 되셨겠네요.저는 사실 어느어느 수도회의 수녀였습니다.

그때 함께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그 피정을 간 이유는 마지막 식별을 하기 위해서 그 피정을 갔었고,

그래서 일부러 수도복도 입지 않고 사복을 입고 그 수녀원에서 피정을 했고

이 피정에서 마지막으로 식별이 되면 수녀원을 떠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피정을 하다보니까 나는 떠날려고 여기 왔는데 저 젊은 부제는 새로 시작할려고

여기 왔구나! 그것을 보는 순간, 아! 내가 마음을 달리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수녀원에서 계속 살겠다는 그런 다짐의 글을 저한테 보내왔어요.


저는 그분한테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그냥 제가 하는 피정만 했을 뿐이었는데

정말 저의 모습을 통해서,  아니면 저를 통해서 뭔가 성령께서 작용을 하셨겠죠.

그 수녀님이 계속 자기 성소를 이어갈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체험이!


김남희 교수 : 아, 네. 되게 감동적인 이야기인데요, 그 수녀님에게는 아마도 그곳이

광야였을텐데 오히려 그 광야가 하나의 희망이 되어서 간 것 같습니다.


박재찬 신부 : 교수님이 하신 표현이 점점 영적으로 되는 거 같애요.


김남희 교수 : 제가 오면서 토마스 머튼 책을 읽으면서 왔습니다.

신부님, 그리고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는데요,그 광야와 관련해서,

누구나 다 사막에 있잖아요 사실은!

그 사막에 있었던 캔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있다고~


박재찬 신부 : 네, 저는  캔 할아버지와의 토론토에서의 만남은 정말 하느님께서 저에게

보내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영어공부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 입학을 했을 때,

저의 학업을 도와주는 여교수님이 배당되었는데 그 교수님이 할머니 교수님이셨어요.

근데 그 할머니 교수님께서 저를 굉장히 귀여워해 주시고 아껴주셨어요.


심지어 저한테 직접 말하지는 않으시고 예수회 다른 신부님한테

'봐라 봐라, 이번에 한국에서 어떤 젊은 신부가 왔는데 그 신부가 너무 귀여워서 꼭꼭 접어서

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다' 고 그런 말씀을 하실 정도로 저를 굉장히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셨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 저는 다른 코스를 하게 되고 그분과 헤어지게 되었는데 3년 후에 다시

그분한테 메일이 왔어요.


우리 남편이 베네딕도회 제3회 봉헌회라 그러는데 거기에 가입을 할려고 하는데

미국에 있는 빈센트 수도원까지 가야되는데  그 수도원까지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 남편이 지금 많이 아프다.

그래서 우리 집에 와서 봉헌의 예식도 해 주고 그 다음에 미사도 같이 해 주면 좋겠다.


그래서 저는 기쁜 마음으로 그 집에 갔죠. 가서 봉헌에 가입하는 그런 예식도 해 드렸습니다.

근데 그 사연을 들어보니까 그 할아버지는 굉장히 다치기 전에는 세상에서 성공한 분이셨고

소위 말해서 잘 나가시던 분이셨어요.


심지어 다치지 직전까지는 비행기 조종을 배우면서 막 착륙하는 게 어렵다는 이런 말씀도

하셨는데, 그분이 어떻게 다치게 되었냐 하면 하루는 등산을 하다가 발을 헛디뎌서 아주

높은 절벽에서 떨어졌어요.


그 떨어지는 순간에 그분 표현으로는 아, 나는 이제 죽는구나! 하는 그런 마음이 들었대요.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지고는 의식을 잃었대요.

아마 그 근처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으면 그분은 돌아가셨을 겁니다.


근데 마침 지나가는 분이 계셨고, 헬기로 그분을 이송하셔가지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어요.

그리고 그분이 병원에 갔는데 마침 자기 담당 의사선생님이 한국 분이셨대요.

한국 여의사였대요.


그래서 한국을 그분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고, 너무 한국을 좋아하게 되었고, 또 저도 만나게

되었고 자동차도 한국 차를 사시게 되셨어요.


아무튼 그분이 그렇게 절벽에 떨어지시고 난 다음에 기적처럼 살아났잖아요.

그 이후로 그분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셨습니다.


그리고 베네딕도회 그 봉헌에 가입할려는 것도 당장 하시게 되었고 그분이 모든 것은

기적이다. 'Everything is a miracle' 항상 말씀하시면서 매순간 감사의 삶을 사시게 되었고

또 가난한 사람들, 학생들, 본당의 여러 가지 봉사를 하시면서 살고 계세요.


그리고는 매 달 저랑 만났어요. 한 달에 한 번씩 만났어요.

저는 베네딕도회 영성에 대해서 그분께 소개해 드리고, 가르쳐 드리고

또 그분은 제 영어를 봐주시고 해서 서로 가족처럼 또 두 분 사이는 자녀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를 아들처럼 생각하시면서 성탄 때, 부활 때,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 때는

같이 식사도 나누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삶의 여정도 보면 전혀 본인이 그런 의사가 없었지만, 절벽에서 떨어지는 그

체험을 통해서 온전히 다시 태어나는 그런 체험을 하게 된 것 같애요.


정말 어떤 때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정말 말을 너무 안 들을때는 이렇게 한 방 탁 먹이시는 것 같애요

근데 그분은 정말 새롭게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하,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구나 하는 것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남희 교수: 네, 두 번째 이야기도 정말 감명 깊은데요,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합니다.

그러면 신부님~  그 어떤 우리가 사실은 각자의 신앙의 정도에 따라서 어떠한 책을 읽어도 또

받는 감동이 다르고, 또 자극을 받는 게 다르고 그런데요.




토마스 머튼 신부님의 그 책이나 영성에 관한 것도 다 다르게 다가오는데 신부님께서는

어떤 책을 제일 먼저, 토마스 머튼 책을  읽으셨나요?


박재찬 신부 : 네, 저는 그게 지금와서 생각하니까 토마스 머튼의 책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제가 초반에 18살 19살? 19살  되는 때에 그 수도원에 견학생으로 다녔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수도원에 가서 하룻 밤 자고 이렇게 오기도 했는데, 거기 갔을 때 책꽂이에

요만한 소책자인데 분도에서 나온 책이었어요. <침묵속에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


그 책이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성소자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책입니다.

그래서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삶을 소개해 주는 책이었는데 사진도 있고 글도 주욱 이렇게

나와져 있었어요. 그리고 소개하기를 그 아브라함과 야훼 하느님과의 대화에서 그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을 때, 열 명의 의인만 있어 멸하지 않겠다 했잖아요.


그래서 그 책에서는 수도승들이 그 열 명의 의인이다. 이렇게 표현을 썼어요.

굉장히 저한테는, 내가 이제 의인이 되어서 세상을 구하는구나!

이런 마음으로 착각 비슷하게~ 그런 마음으로 성소를 더 굳건히 할 수 있는 그런 책이 되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토마스 머튼이 쓰신 책이더라구요.


그 이후로 뭐 <칠층산>이라든지 그 다음에 또 <명상의 씨> 이런 책들을 읽었어요.

근데 그때 당시에는 그 책의 내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칠층산은 약간 스토리가 있잖아요. 어릴 때부터 주욱 살아온 과정이었기 때문에

아, 그냥 이 사람이 수도원에 입회하는 과정을 그렸구나! 수도 생활이 굉장히 엄격하고 또

그 안에서 살아가면 나도 정말 하느님의 사람으로써, 아주 특별한 사람으로써 내적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겠구나! 그런 뭐랄까 잔뜩 희망을 주었던 책인 것 같애요.


근데 이제 나중에 제가 토론토에서 공부를 하면서 머튼 책을 읽을 때는 그 사이에 토론토

가기 전까지 20년 가까이 수도원에 살았잖아요.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제 안에 많은

부서지고 깨지고 또 단련받고  또 기쁨과 평화, 또 어떤 하느님과의 영적인 충만함, 이런

것들도 체험하면서 다이나믹 했잖아요 그죠!


그런 과정에서 그 이후로 , 그런 과정을 겪고 난 다음에 머튼 책을 읽었을 때, 아! 그 글들이

이제는 그냥 단순한 글들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거죠.

제 안에 살아 움직임을 느꼈습니다.


특별히 제가 수도원에 살았기 때문에 그 토마스 머튼 신부님이 쓰신 글들이 더 저 한테는

깊이 동화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사실은 앞으로도 계속 토마스 머튼 책을 읽어 나가면서

좀 더 더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을거고,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저한테는 연구하고 바라보고 또

묵상하고 계속해서 읽어내야 될 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문자적인 그런 내용을 좀 더 넘어서는 것 같애요.

왜 그 토마스 머튼이 샬트란 림포체랑 만났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서로 대화를 하는데 아, 반쯤 이야기 했는데 이미 그분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알아듣더라!


그러니까 조금 더 영적으로 더 깊이 나아가고 또 더 깊이 들어가면서 토마스 머튼의 글을 읽으면서

아, 이분이 지금 무슨 말 하는구나 그걸  금방 캐치되는 것 같애요.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생겨나는 것 같애요.


그런데 어떤 부분은 지금도 무슨 말인지 이해는 되는데 아직 와 닿지 않는 것,

저도 역시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함께 머튼을 읽어나가고, 또 머튼을 살아가지만 결국은 문자를 벗어나서

더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 저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그때그때 만나고

그분의 소리를 듣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남희 교수 :  네, 그런 점에서 오늘날 토마스 머튼의 영성을 통해서 배워야 될 점을 조금

말씀은 해 주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설명을 해주신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박재찬 신부 : 제가 생각할 때는 오늘날 우리 많은, 특히 한국 교회안에서 어떤 영적인 갈망,

이런 것들이 굉장히 강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머튼 모임을 시작하면서도 사람들이 많이 모일까? 그런 의문이 좀 들었습니다.

근데 모르겠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몰리는

걸 보면 아마 사람들이 그동안 영적인 뭔가를 갈망하고 있었고, 뭔가 채우고 싶었고 또

뭔가 그 토마스 머튼에 대해서 옛날에 읽었었는데 지금 다시금 읽으면서 뭔가 새로운 걸

느끼는 분도 계셨구요.


그래서 한국 교회안에서 토마스 머튼 영성이 필요한 이유중에 하나는 많은 동적인 활동들,

또 많은 사회참여라든지, 교회 봉사하는 거, 여러 가지 활동을 하지만 그 근본적으로 그 활동을

지탱해주는 어떤 관상적인 태도라든지 또 기도의 자세, 


그리고 또 영적인 수행을 바라보는 자세, 또 영적인 면에 대해서 좀 더 더 마음을 쓰는 것,

그리고 관상과 활동의 균형이나 조화가 아니라 통합으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이런 것들이

우리 교회안에 좀 부족한 부분이 아니었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토마스 머튼 영성을 통해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통합, 어떤 단순한 균형이나 조화가

아니라 전체, 전인적인 성장, 이런 것들을 이루어나가는데 있어서 토마스 머튼의 영성은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관상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한국 사람들한테는 낯설게 느껴집니다.

뭔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 같고, 또 그 자체가 굉장히 익숙하지 않은 단어로 들립니다.


근데 앞으로 토마스 머튼 영성 나눔을 통해가지고 관상이라는게 우리가 정말 꼭 필요하고,

지난 시간 강의에 말씀드렸지만, 예수님을 만나는 거, 그게 바로 우리 삶의, 우리 그리스도인

의 삶의 목표인데, 관상으로 예수님을 미리 만나는 겁니다.


미사를 통해서도 만나고, 기도를 통해서도 만나고, 또 삶을 통해서도 만나고,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함께 나눔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배우고 익히면서 내 삶을 들여다보면서

내 삶 안에 이미 와 계신 주님을 또 만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 교회안에 좀 더 더 기도하는 사람들, 영적인 면들, 이런 면들을 더

강조되어야 함이 토마스 머튼을 통해서 좀 더 일깨워지길 바랍니다.


김남희 교수 : 네, 제가 KTX타고 내려오면서 사실 막 바쁘게 지내다가, 막 급하게 사실은

토마스 머튼의 책이 꽂혀 있었는데요 제 책상 위에서요,  거기서 하나를 콕 집어가지고 왔어요.

게 사실은 이 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책이 있으니까 막 고민하면서 왔었는데 <고독속의 명상>이라고 제목만 보게 되면

사실은 바쁜 현대인들이 도피하고 싶은 딱, 그 단어들이거든요

 

근데 이 첫 번째 펼치자 마자 나왔던 문구가 바로 토마스 머튼이 지금 방금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영성 생활이 비현실속에 빠지는 것에  대해서 우려하고 걱정하고 또 경계해야 된다 라고

하셨는데  딱 그 말씀이신거죠.


박재찬 신부 : 네. 신앙 생활이 실제 우리 영성 생활이 실제 삶하고 분리되어서는 안 되는거죠.

고독을 찾는 이유는 결국은 보다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보다 더 내 방식이 아니라, 하느님 방식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고독속에 머무는 거죠.


그래서 온전히 고독 속에서 그분과 하나되어 가는 그런 여정에 대해서, 이 책에서 그 방법에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그래서 고독은 더 잘 사랑하기 위한 방법인거죠.


김남희 교수 : 아, 네! 그러면 그 토마스 머튼 신부님이 쓰셨던 그 사랑의 편지에 관한 모음, 

 책이 한국에 번역되어서 나와 있나요 신부님?


박재찬 신부 : 아직 안 되어 있습니다. 그 책이 굉장히 두꺼워요. 이 만큼 두꺼운데,

그 책 제목이 'The Hidden Ground of Love'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숨겨진 근원> 그 숨겨진 사랑이 어디에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 토마스 머튼 강좌를 많이 들으셨죠.


김남희 교수 : 구두 시험이라고 생각하고 답을 하겠습니다.

하느님에게 있고, 근데 그  하느님은 내가   하느님과의 만남 일치 안에서.


박재찬 신부 : 네, 맞습니다. 내 안에, 이미 내 안에 숨겨져 있는거죠.

내 안에 숨겨져 있는 그 하느님과의 어떤 그 사랑, 그 사랑을 속삭이게 되고,

그 사랑으로 내가 완성되어 가는! 


근데 그 토마스 머튼의 영성이 아주 잘 표현한 것 같아요, 그 책 제목이~

그러니까 사랑의 숨겨진 근원은 바로 내 안에 계신 예수님! 예수님인거죠.


김남희 교수 : 나 안에 있는 예수님이다.


박재찬 신부 : 제가 관상 설명할 때, '이미'라는 말을 굉장히 자주 썼잖아요.


김남희 교수 : 그러면 사랑에는 레벨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신부님.  단계가 있나요?


박재찬 신부 : 네, 그 뭐 '사랑은 아무나 하나' 하는 유행가 가사도 있는데,

그 사랑에도 조금 차원이 다른 사랑이 있는 것 같아요.

쉽게 이야기 해서  예수님께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거,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사랑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거, 그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방인도 할 수 있다. 이런 표현을 쓰셨어요.


인간은 타고나면서부터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픈 마음, 보호할려는 마음 이런 게 있잖아요.

그래서 그걸 자기 자신만 사랑할 때는 그것을 이기적인 사랑이라고 하죠.

근데 이기적인 사랑 혹은 자기 자신만 사랑하는 것은 조금 낮은 단계의 사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는 그 마음은 좀 더 더 숭고하잖아요.

또 선생님이시니까 교수님께서 또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또 남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남들에게 내어주는 사랑이잖아요 그죠!


그리고 또 나의 가르침을 통해서 나의 제자들이 더 성장해 나가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도

같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남희 교수 : 사실 막 아프면서두요 강의 전에 들어갈 때는 아파서 못 할 것 같은데,

강의를 하러 들어가서 학생들을 딱 보잖아요. 그러면 힘이 나요. 되게 신기하더라구요.


박재찬 신부 : 천직이시네요.


김남희 교수 : 그런 사랑을 이야기하실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박재찬 신부 : 저는 미사하러 들어가면 그런 마음이 듭니다.


김남희 교수 : 네, 맞아요.


박재찬 신부 : 저는 미사를 너무 사랑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그 마음에는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느냐!

그게 아마 최고의 높은 단계의 사랑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를 낮추는 사랑, 그리고 또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

그리고 조건없는사랑, 마지막으로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이었죠.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다 내어놓으셨잖아요. 그죠.


그래서 그런 이타적인 사랑이 더 깊어져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기까지는 끊임없이 제가

거듭 강조하는 자기를 비워내고 또 예수님의 마음을 담아가는 그런 과정들, 수행의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이 없이는 내가 내 힘으로 그 사랑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있는 곳에 예수님이 계시고,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종교를 넘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 또 희생하는 사랑들을 하고 있구요.


그래서 가톨릭 교회에서도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 의지로 말미암아서 그렇게 명시적으로

하느님을 표현하진 않았지만 자기를 희생하는 그런 사랑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낸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구원으로부터 배제시키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거죠.


김남희 교수 : 네, 제대 앞에 있는 십자가의 그 예수님의 고통만 생각하지 말고, 그 고통을

통한  희생 그거를 다시 실천으로 옮겨야 된다 라는 말씀이죠.


박재찬 신부 : 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십자가에 달리신 거죠.

예전에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또 하느님은 전지전능 하신데 왜 아드님을 십자가에 그렇게 고통스럽게

희생시켜서 우리를 구원하셨을까?


김남희 교수 : 네, 근데요~ 맞네요.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니까요.


박재찬 신부 : 다른 방법도 있을텐데, 전지전능 하시다면 그냥 구원할 수도 있었을텐데~

왜 그러셨을까?

근데 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또 그때 저에게 교의신학을 가르켜 주시던 신부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건 어쩌면 하느님이 그 방법을 택하셨기 때문에 아마 그 방법은 최고의 방법이지

않았을까!


그냥 우리를 구원하는 거 말고 진정한 사랑을 드러내는 방법,

나를 희생해서 드러내는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교회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배울려고 하고, 또 예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서 더 큰 구원으로

나아갈려는 그런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았나!


그래서 그건 하느님이 택하신 방법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십자가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었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도 거기에 굉장히 큰 동의를 했습니다.


김남희 교수 : 인간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사실 자기가 가장 사랑하고, 자기가 가장 아끼고,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내놓기가 쉽지가 안잖아요.

바로 그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지금까지 토마스 머튼 신부님의 영성을 살펴보았는데요, 아마 다음 시간부터는

종교간의 대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것 같아서, 거기에 관해서 조금만 간단하게 사전 설명을

해 주시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박재찬 신부 : 네, 지금까지 계속해서 토마스 머튼이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영적인 변화를

거쳐왔고, 또 그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영성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제가 여러 차례 다양한

모습으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근데 이런 기본적인 토대가 있어야지만 토마스 머튼의 어떤 종교간의 대화에 대한 이해도 좀 더

더 수월할 수 있구요, 그렇지 않으면 단편적으로 토마스 머튼의 종교간 대화를 바라보면 오해의

여지가 있어요.


왜냐하면 토마스 머튼은 그 불교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았었고, 또 불교의 어떤 수행법 이런

것들을 배울려고 했었고, 근데 왜 토마스 머튼이 그것을 배울려고 했는가! 


그 앞의 부분을 생략하게 되면 토마스 머튼의 어떤 영성의 깊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모르게 되면

마치 변절자인지 혹은 배신자,  뭐 이렇게 우리 종교에도  충분히 좋은 게 많은데 왜 굳이 다른

종교를  통해서 배울려고 하는가 하는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또 토마스 머튼은 또 교황님이 이런 표현을 했어요.

"그 시대에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에 대해서 도전했던 사람이었다." 

토마스 머튼은 공의회 이전 분이셨잖아요.

나중에 공의회를 거쳐서 다시 새롭게 변화되었는데 그 당시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런

그리스도교 안에, 가톨릭 안에 어떤 구원관 이런 것들에 도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교회 문헌이라든지 또 바티칸 공의회도 마찬가지고, 굉장히 많이 개방이

되었고 또 다른 종교에 대해서 관대해지고 또 토마스 머튼이 했던 그 생각을 거의 그대로

표현해서 종교간 대화에서 사용을 합니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토마스 머튼이 어떤 예언자이고 선지자였다는 거죠.

앞서 나갔다는 겁니다. 개척자이죠.


그 당시에 볼 때는 그것이 너무 새로운 생각이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든 거였죠.

근데 그것만 바라보게 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에서 어떻게 다른 종교를 바라봤는지에 대해서 역사적인 이해, 그리고 또

지금 현재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 다른 종교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이런 기본적인 교회 가르침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서 먼저 설명을 드리는 게 토마스 머튼의 영성을

종교간 대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남희 교수: 네, 이런 긴 여정의 시간 동안에 저처럼 공부를 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사실

토마스 머튼하면 종교간의 대화를 가장 많이 떠올렸었거든요.

거기에 대한 어떤 오해나 아니면 좀 더 깊이있는 연구를 위해서 먼저 이렇게 영적 시간을

많이 가져주신거에 대해서 정말 많이 공감하고 그리고 충분히 이해하고, 왜 신부님께서 이렇게

길게 하셨는가 다시 한번 깊이 공감을 하게 됐습니다.


아마도 이런 긴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 시간에 하게되는 종교간의 대화와 관련해서는

특히 한국 사회와 많이 연결이 될 것 같아요. 


저희 신자들이 이제 불교신자도 만나고 그 다음에 다른 여러 종교인들을 만나게 되면서

어떻게 그 신앙을 올바르게 보여주면서 그 타 종교인들과 같이 어우러져서 살아갈 수 있을지를

아마 신부님을 통해서 많이 배우게 될 것 같습니다.


신부님, 다음 강의가 기대되구요, 이것으로 저희 아쉽지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박재찬 신부 : 감사합니다


김남희 교수 : 오늘 좋은 귀한 말씀을 신부님을 통해서 듣게 되었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토마스 머튼이 종교간의 대화에서 가졌던 신앙인의 태도를 한국사회 안에서

좀 더 다이나믹하게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