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섭내

《제3장 -03 내맡김이란 본질적으로 순수한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합친 상태이다.》

은가루리나 2016. 1. 3. 15:38


제 3 장


하느님께 순종함은 모든 덕을 실행하는 것이다




 03 


내맡김이란 본질적으로 순수한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합친 상태이다.





   이 내맡김의 상태는 

하느님과 그분의 모든 활동에 우리를 일치 시키는 단일한 행위 안에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합친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덕이 일치될 때, 

결국 이들은 하나의 덕이 되고 

즉 하느님께 마음을 들어 올리는 단일한 행위가 되며 

그분께 단순한 내어맡겨드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 일치인 신비적 결합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 본성(本性)의 관념을 제시하는 호칭을 쓸 수 있으며, 

이 삼덕의 일성(一性)을 알아듣게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이 세 가지 덕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단일한 자극 안에서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소유하고 누리도록 해줍니다.

우리는 그분을 보고 사랑하며, 또 그분한테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길 희망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세를

순수한 믿음, 순수한 희망, 순수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상태를 흔히는 순수한 신앙의 상태라고 하지만 

그 말은 다른 대신덕(對神德)도 포함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 편에서 보면 이 상태만큼 안전한 상태도 없고, 

마음으로 보면 이 이상 초연한 상태도 없습니다.

하느님 편에서 보실 때 거기에는 두려움과 희망이 혼합된 것과 유사한 확실성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서 보면 그곳에는 두려움과 희망이 혼합된 것과 유사한 확실함이 있다.)


   이 거룩한 세 가지 덕의 일치야말로 그 얼마나 바람직한 것인지요! 

그러므로 성령의 순수한 작용하심 안에서 믿고 바라고 사랑하도록 합시다. 

그러면 하느님의 이름으로 감도된 은혜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전 존재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신비적 계시이며 온갖 복된 결과를 가져다주는 운명의 보증이 여기에 있습니다.

"정녕 하느님은 좋으신 분이시다, 올바른 이에게!

하느님은 좋으신 분이시다, 마음이 깨끗한 이들에게! (시편 73,1).


사랑으로 불타는 영혼 안에 가져다주는 이러한 성령의 접촉을 순수한 사랑이라고 부름은 

그것이 신뢰와 빛으로 가득 차 영혼에 쏟아 내려지는 환희의 물줄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혼들이 곤경 중에 생활할 때에는 이것을 순수 신앙이라 부를 수 있는데, 

그것은 영혼들이 곤경 중에 아는 것이라고는 온전히 캄캄한 밤의 어두움뿐이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사랑은 보고 느끼며 믿는 것이지만, 

순수한 신앙은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수한 사랑과 믿음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이 차이가 근본적인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순수한 신앙 상태란 사랑이 결핍되는 일이 없고, 

순수한 사랑 역시 신앙과 내맡김이 부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이러한 세 가지 덕을 서로 다르게 혼합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영적인 상태를 만들어 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이 상태들을 수없이 다르게 배합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각기 제 영혼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하느님의 모습을 받지 못한 영혼은 

단 한 영혼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습은 항상 믿음, 희망, 사랑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아포기(自我抛棄)는 특별한 덕행을 확보하는데 있어 정상적인 수단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같은 종류의 덕을 주시고 

똑같은 상태로 우리를 들어 높여 주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하느님과 일치하고, 

그분의 뜻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며 우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선물을 그분한테서 받으면 

마침내 하늘나라를 찾게 되어 그분 영광에 참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우리가 모두 사랑의 관(冠)이나 믿음의 관을 하나씩 얻어 쓸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광의 관이요, 항상 하느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사실적으로는 

어떤 이는 빛 속에, 어떤 이는 어둠 속에 살게 될 것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돌아와 그분 뜻에 순종하는 한, 

도대체 그것이 지상에서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분명 우리 자신이 머물 상태의 기술적(技術的) 명칭에 대해, 

아니면 그 웅장함이 어떻다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우리는 하느님만을 찾고 있을 뿐, 

그 밖의 것들을 어떻게 이루실 것인지는 우리에게 있어 아무래도 좋습니다.


우리는 영혼들에게 

순수한 믿음의 상태, 순수한 사랑의 상태  혹은 십자가나 신앙의 감미로움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크게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이러한 문제들은 그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작용 전반에 자기포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로써 그들을 위해 

영원으로부터 선택하고 준비해둔 그 특별한 상태에 그들이 도달할 수 있음을 

그들에게 이해시키도록 합시다. 

아무도 기가 꺽이지 않게 하고 물리치지도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를 부르신 그 드높은 완덕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아버지의 뜻을 따름으로써 당신의 신비체(神秘體)를 구성하기를 요청하십니다.

그 신비체의 각 지체들은 자신들의 의지가 예수님의 의지와 완전히 일치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예수님을 자기들의 머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온유하고 사랑하올 구원자께서는

어렵다거나 아니면 어떤 특별한 노역을 사람들에게 절대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말하도록 합시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일치의 정도에 따라 그분이 그들을 인도하고 지도하며 

그리하여 그들이 그분과 하나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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