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섭내

Re:12월 31일 성탄 팔일 축제 내 제7일 독서《하섭내6-4하느님은 내맡긴 영혼을 눈멀게 하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영혼을 아주 안전하게 인도하고

은가루리나 2015. 12. 31. 08:41


제 6 장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내맡기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질 것이다. 



4.하느님은 내맡긴 영혼을 눈멀게 하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영혼을 아주 안전하게 인도하고 계신다.




"여러분은 그 거룩하신 분에게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두 참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1요한 2,20)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라고하신 성 요한의 말씀은  특히 하느님께 온전히 내맡긴 영혼들에게 적용된다.

 

이러한 영혼들에게 있어 그들의 마음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말해 준다.

그들이 현 상황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마음의 충동에 귀를 기을여 듣기만 하면 된다.

하느님의 계획은 아무리 그 겉모습을 바꾸고 있다 하여도 

우리의 이성을 통하기보다는 

도리어 우리의 직관(直觀)을 통해서 그것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신다.

 

하느님의 계획은 여러 모양으로 드러난다.

우연하게,  아니면 아무런 행동의 선택의 여지도 없는 강압적인 신뢰감 같은 것으로,

혹은 어떤 초자연적인 기쁨으로,

혹은 아주 흔한 방법인 우리의 마음을 매료시킨다든가 혐오감을 주는 어떤 사정(事情)으로써

하느님의 계획은 드러나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피상적으로 판단해 버린다면, 

그것은 확실히 중요한 사정을 그런 불확실성(uncertainty)에 맡겨버리는 태도로,

이는 대단히 현명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판단해 볼 때.

진행되어가는 이런 과정에는 아무런 질서도 없고 실제로 아무런 느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뚜렷한 무질서를 따른다는 것은 덕행의 정상에 도달했다는 것인데,

이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고는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덕행은 순결하고 때묻지 않은 순수한 덕행이다.

아주 단순하게는 이것이 곧 완덕이기도 하다.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한 덕행에 이르게 되면, 

평생을 걸쳐 즐기던 연주는 별문제로 접어 두고 

음악 이론과 전문 기술에 대해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음악가와도 같게 된다.

그가 무의식 중에 하는 연주는 모두 완벽하여 만일 그가 작곡을 한다면,

그의 전작품에는 음악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규칙이 들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왜그럴까?  너무 원칙대로 해석해 볼 때,

그는 재능을 속박하는 규칙들 - 너무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경우-

그 자신이 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구속받질 않고 그 자리에서 작곡한 작품은 당연히 걸작으로 여겨지게 된다.


같은 방식으로 완덕에 이르기 위해 오랜 세월을 연구하고 노력을 기울이며

또한 은총에 협력하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사용해 왔던 영혼은

차츰차츰 하느님의 원의를 본능적으로 따름으로써 늘 행동에 옮기는 습관을 갖게 된다.

그러한 영혼은 이전에 필요하다고 여긴 온갖 조심스런 생각을 접어 두고

나타나는 것이 그 무엇이든 간에,

먼저 그것을 다루는 것 이상으로 더 좋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혼은 자신을 그릇된 길로 이끌지 않는 은총의 이끄심에 따라 닥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

은총이 행하는 일은 깨끗한 시선과 지적인 정신으로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런 규칙도 없는 그곳이지만 거기에는 완전한 조직이 있고,

적합한 배열도 없는데도 거기에는 모든 질서가 잘 잡혀 있으며,

아무런 진지한 사고도 없는데도 심오한 결론이 있고,

아무런 노력도 없는데도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지며,

아무런 예견도 없는데도 새롭게 생기는 모든 일에 즉각 순응한다.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하게 되는 영적 독서는 

저자들이 결코 꿈꾸지 못한 의미들을 드러내 준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다른 식으로 가려 두었던 진리들을 드러내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말과 행동을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만일 그분이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조명하시고자 한다면,

자신을 내맡긴 우리는 하느님이 보내시는 빛이

순수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바라보면서 상상하곤 했던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깨닫고 그것을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

 

 


이처럼 내맡긴 영혼이 늘 비밀스런 삶을 해 나갈지라도,

인간 생활의 일상 영역같이 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사건,

즉 아주 자연스럽고도 단순한 뜻밖의 사건을 통해 아직도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특별한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은 자기 포기 상태의 본질인 것이다.


예를 들어 가장 단순한 설교들, 가장 일상적인 대화들 그리고 아주 하찮은 서적들도 

하느님의 뜻을 통해서라면 지식과 지혜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자기를 내맡긴 영혼은 

언제나 교만한 자들이 짓밟아 놓은 빵 부스러기를 조심스럽게 모은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그들에게 가치있기 때문이며

그들을 풍요롭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것에 대해 온통 무관심하지만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것을 존경하고 그것들에게서 유용한 모든 것을 얻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모든 사건 안에 계시므로

우리가 그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실제로 피조물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토록 많은 여러 창구를 통해서 표현되는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기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제 이들 창구들은 

그 자체로는 우리가 성화되도록 도움을 주는데 아무런 힘도 지니고 있지 않지만 

하느님의 뜻의 도구로써 이것들은 그분의 은총을 전달해 줄 수 있고,

흔히는 뜻한 바대로의 목적과는 반대되는 듯이 보이는 방법과 수단으로써

영혼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 주기도 한다.


하느님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비슷하기 때문에 

진흙은 공기같이 투명하고,

또 그분이 사용하시는 도구는 언제나 그 도구의 목적을 위해서 유일무이한 것이다.

만일 우리의 믿음이 강하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음을 확신하게 될 것이고,

우리의 발전을 위한 유용한 재산들이 없다고 절대로 불평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시는 숙련공 하느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음을 확신시켜 주시고,

그분의 지극히 거룩한 뜻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