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19권

소리-무화_천상의책_맡김{19권 17장} 하느님 뜻 안에서만 바칠 수 있는 참된 보편 기도. 하느님 뜻은 하느님 자신과 그 속성들을 지배하고 두 처소에

은가루리나 2016. 1. 6. 15:43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19-17



1926년 5월 3일



하느님 뜻 안에서만 바칠 수 있는 참된 보편 기도.

하느님 뜻은 하느님 자신과 그 속성들을 지배하고

두 처소에 동시에 공존하며 활동하는 특성이 있다.




1 늘 하는 방식대로 거룩하고 신성하신 의지 안에 녹아들려고 하다가 문득, 

'지고하신 임금님, ​

첫 사람에서부터 이 세상에 존재할 마지막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제가 왔습니다. 

각 사람이 당신께 마땅히 드려야 할 모든 영예와 흠숭과 찬미와 사랑을 드리고,

하나하나의 모든 죄에 대한 모든 보속을 바치려는 것입니다.하고 말씀드렸다.



2 그러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이르셨다. 


"딸아, 이는 오직 내 뜻만이 할 수 있는 기도 방식이다. 

내 뜻만이 

'제가 지고하신 임금님 앞에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왔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과연 내 뜻은 그 자신의 전지(全知)와 무한성으로 모든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을 싸안는다. 

그러므로 

'저는 사람들이 임금님께 마땅히 해야 했으나 하지 않아 빚져 있는 모든 것을 다 갚으려고,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왔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한갓 말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 된다. 

실제로 어떤 인간의 뜻도  '저는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왔습니다.'  라고 말할 수 없다. 

이 말은 나의 뜻이 네 안에서 다스리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징인 것이다."







4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신 뒤 계속해서 큰 소리로 기도하셨다.

나도 그분을 따라 하다 보니, 그분과 함께 지고하신 임금님 앞에 있었다.


5 오!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멋진 일이었다. 

모든 것이 그분의 말씀과 행위에 싸여 있었다. 

그런데 그분의 뜻은 모든 장소와 각 조물 안에 있기에, 

그분의 창조 말씀과 흠숭과 그분께서 행하고 계신 모든 것이 반복되고 있었고, 

그 소리를 어디서든지 들을 수 있었다.


6 나는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나 자신이 한층 더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깜짝 놀란 내게 그분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딸아, 놀라지 마라. 

나의 뜻은 하느님 안에 군림해 있으면서 동시에 영혼 안에도 군림해 있다. 

동시에 두 처소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적인 방식으로 그 영혼 안에서 기도하고 사랑하며 활동한다.


7 그러니 우리(성삼위)가  피조물 안에 있는 우리의 뜻을 

즐기지도 사랑하지도 않고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우리의 뜻만이 우리의 '외적' (ad extra) 활동, 

곧 창조사업을 통하여 우리의 배 속에서 밖으로 넘쳐흐른 우리의 기쁨과 행복과 사랑을, 

무릎 위에 올려놓듯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다.


8 우리의 뜻은 우리를 위한 축제를 되풀이한다. 

또한 우리가 우리에게 어울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그토록 많이 창조하면서 느꼈던 기쁨을 

우리 안에 새로이 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거룩한 사랑과 흠숭과 영광을 주려고 우리의 뜻이 자기 안에 군림하게 하는 사람을 

- 그리하여 우리의 뜻이 두 처소에 (동시에) 있을 기회를 우리에게 주는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9 그런고로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하느님에게 있어서나 사람에게 있어서나  모든 것이 이 뜻 안에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많은 일을 할 능력이 있는 우리(성삼위)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것을 하기를 원하면, 

그때에는 우리가 완전히 사랑이 되고, 힘이, 눈이, 손이, 발이 된다. 

말하자면 우리의 뜻이 하고자 하는 그 활동에 우리의 온 존재가 집중되는 것이다.


10 이와 반대로

우리의 뜻이 하고 싶어 하지 않으면 우리의 속성들도 전연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의 뜻이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 무엇에 대해서나 전연 생명이 없는 것처럼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뜻이 최상권을 지닌다. 

우리의 뜻이 우리의 존재 자체를 지배하고 우리의 모든 속성도 통치하는 것이다.




11 이런 연유로 

우리의 뜻은  우리가 피조물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었고, 

이 뜻안에 우리의 온 존재도 집중되어 있었다. 

이보다 더 강렬한 사랑이, 더 놀라운 기적이 있을 수 있겠느냐? 

더구나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준다고 해도 

피조물 안에 군림하여 다스리는 우리의 뜻을 그에게 주는 것에 비하면 

그것이 우리 눈에 무엇이겠느냐?


12 사실 

우리가 피조물에게 줄 수 있는 다른 것들은  우리의 활동과 통치의 열매인 반면, 

우리의 뜻을 주는 것은  열매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생명과 통치권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열매와 생명 중 어느 것이 더 값지겠느냐? 

말할 것도 없이 생명이 더 값지다. 

우리 뜻의 생명을 주면서 그것과 함께 지닌 모든 좋은 것들의 샘을 주는 것이니, 

이 샘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열매를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13 (마찬가지로) 

피조물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거나 더없이 큰 희생을 바친다고 해도, 

우리의 다스림을 받기 위하여 자기의 작은 뜻을 내주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은 셈이 될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의 뜻에 의해 생겨나지 않은 것들은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건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14 나는 예수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하느님의 뜻이 자신의 거처, 

곧 자신의 거룩하신 배 속에서와 같이 

피조물 속에도 동시에 계시며 다스리시는이 가능한 일일까?' 하고 자문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해주셨다.



15 "딸아, 어떻게 그리 되는지 모르겠느냐? 

작고 초라한 오두막집 한 채를 상상해 보아라. 

임금이 오두막집을 사랑하여 이 안에서 살기를 원했으므로, 

임금의 음성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16 임금은 거기에서 활동할 뿐만 아니라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니 임금이 들기에 합당한 음식이 그 안에 있으면, 앉기에 합당한 어좌도 있다. 

따라서 임금으로서 품격에 있어서는 바뀐 것이 없고, 오직 그 거처만 바뀌었을 뿐이다. 

임금 자신의 의지로, 더없이 큰 기쁨으로, 

왕궁에서 그 오두막집을 택했으니 말이다.


17 그 작은 오두막은 영혼이고, 임금은 나의 뜻이다. 

그러니 네 영혼의 그 작은 오두막 안에서 기도하고 말하며 가르치는 내 뜻의 음성을 

내가 너무나 자주 듣고 있지 않느냐?  

또 내 활동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을 너무나 자주 보면서 

내가 네 작은 오두막 안에서 모든 조물을 다스리고 생기를 주며 보존하고 있지 않느냐?


18 내 뜻은 너의 작음을 곱씹어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대단히 좋아한다. 

내 뜻이 찾는 것은 절대적인 통치권이다. 

그런 통치권을 통해서만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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