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

제2부 06 {천상의 책 12권18장} 잘못된 성덕의 길 {20권26장} 내 뜻을 혼수상태로 있게 하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의 겉모습만을 보여 줄 뿐이다

은가루리나 2020. 6. 5. 03:02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12-18


1917년 8월 14일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것' 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 의 차이.




32 하느님의 뜻 안에서는 덕행들이 신적 질서 속에 자리를 잡는다.
반면에 그것이 이 뜻을 벗어나 인간적 질서 속에 있게 되면
자만과 허영과 격정의 지배를 받게 된다.

33 오, 얼마나 많은 선행이, 잦은 성사 참여들이
하느님 대전에 개탄할 만한 보속거리가 되는지!
그것은 행위들에 하느님의 의지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런 결실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34 하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진정한 성덕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되면, 오,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질 정도가 될 것이다!

35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성덕의 길을 걷고 있다.


경건한 신심 실천에 성덕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들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너무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36 만일
그들의 의지가 예수님과 하나 되어 그분 안에서 변화되지 않는다면
- 이 변화에 이르는 과정이야말로 끊임없는 기도이기에 -
그들의 성덕은 그 모든 독실한 실천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이다.

이는 그런 영혼들이 그렇게 경건한 신심행위를 하다가도
얼마나 쉽사리 결점이나 오락에 빠지고
불일치의 씨앗을 뿌리는 등의 짓거리를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는 점이다.

이런 부류의 성덕은, 그러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성덕인가!


37 또 어떤 이들은
성당에 가는 것, 모든 전례에 참여하는 것에 성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의 의지는 예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는
이 영혼들이 스스로의 본분에 얼마나 등한한지를 보면 알 수 있는 점이다.

가는 걸음을 막는 무엇이 있으면 벌컥 화를 내고,
그들의 성덕이 허공 속으로 사라진 듯 울부짖으니,
그 불평과 불순종으로 가족들의 상처가 되기 쉽상이다.

이 얼마나 맹랑한 성덕인가!


38 또 다른 이들은
자주 고해성사를 받고 꼼꼼하게 영적지도를 받으며
모든 것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에 성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의지가 예수님의 의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을 반박하는 사람들이 되레 불행하다(고 여길 따름이다)!
이런 영혼들은 부푼 풍선과 같아서 작은 구멍만 있어도 바람이 빠진다.

즉, 그들의 성덕이란 것이
연기처럼 공중으로 흩어져 오르다가 땅에 떨어진다.

39 이 가련한 풍선들은
언제나 할 말이 있고 너무나 쉽사리 슬픔에 잠기며 줄곧 의혹 속에 산다.

그러니 아주 작은 일에서도
지도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평화와 위로를 줄 사람을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보다도 더 심란한 상태가 되고 만다.

이 얼마나 딱한 가짜 성덕인가!



40 나는 저 가짜 성덕들을 두고 예수님과 함께 울기 위해서
그분의 눈물이 되고 싶다.

진짜 성덕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며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사는 데에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45 반면에,
저 하잘것없는 고무풍선과도 같은 가짜 성덕은 끊임없이 변화를 탄다.

그 풍선들이 부풀대로 부풀어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그들의 영적 지도자들까지도 사뭇 탄복할 정도로
상당히 높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듯 하지만,
머지않아 이 사람들은 환멸을 느끼게 된다.

46 하나의 수모, 자기 아닌 다른 이에 대한 영적 지도자의 한 호의만으로도
이 풍선들의 바람이 빠지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도둑맞은 무엇으로 보기 때문이니,
그만큼 스스로를 그지없이 궁핍한 인간으로 여기는 것이다.


47 그러니
그토록 어리석은 것을 두고 찜찜해하다 보면 결국 불순종에 떨어지게 된다.
질투가 이 풍선들을 갉아먹는 좀이다.

이것이 그들이 행하는 선을 태워 없애면서 계속 공기를 소모하기에
풍선이 쭈그러들어 땅에 떨어진다.
떨어져서 더러운 흙투성이가 된다.


48 이때 이 풍선들의 성덕이란 것이 정체를 드러낸다.
그 안에서 무엇을 볼 수 있겠는가?

선의 외관 아래 숨은 자애심과 원한과 격정이다.
그러니 그들은 악마의 노리개가 된 자들이라고 일컬어질 근거를 주는 셈이다.

그들의 성덕이라는 것 중에서
외관상 덕행으로 포장된 숱한 결점들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49 하지만 이에 대해서 누가 다 말할 수 있겠는가?

홀로 예수님만이 이 거짓 성덕의 더없이 나쁜 폐단을 알고 계시고,
거짓 신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건전한 기초가 없어서 아무런 열매를 맺지못하는,
이른바 독실한 삶이란 것의 악폐도 알고 계신다.

이 가짜 성덕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 - 불모의 영적 포도나무들이어서
사랑하올 예수님으로 하여금 얼마나 자주 눈물을 흘리시게 하는지 모른다.

50 그런 이들은 사회의 반감을 사고, 지도자와 가족의 골칫거리가 된다.
모든 사람에게 해로운, 유독한 공기를 가져오는 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26 1926년 11월 19일

하느님 뜻이 피조물 안에서 치르시는 극심한 고통


14 내 뜻을 혼수상태로 있게 하는 그 사람들은
신앙생활의 겉모습만을, 그 옷만을 보여 줄 뿐이다.

내 뜻을 그런 상태로 버려두기 때문에
그들의 내면도 꾸벅꾸벅 조는 상태가 되어 빛과 선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니 밖으로 드러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속에는 하느님의 생명이 비어 있어서,
결국 허영과 자만심과 다른 피조물의 비위를 맞추는 것 따위의
허망한 연기(煙氣)로 바뀌고 만다.

나는 따라서
내 지고한 의지와 함께 그들 내부에 있으면서도
그들의 그런 일들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17 오랜 세기에 걸친 고뇌가 지겨운 나머지
내 뜻이 이제는 밖으로 나가고자 두 가지 길을 마련하고 있다.

하나 승리의 길로서
이 길에는 내 뜻에 대한 지식과 그 놀라운 것들과
그 모든 재산을 가져올 '지고한 피앗의 나라'가 있다.

또 하나는 정의의 길로서
이는 내 뜻을 승리자로 알아보기를 원하지 않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어느 길을 통하여 내 뜻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지,
그 선택은 피조물에게 달려 있다."





하느님 뜻의 나라 동정 마리아 부록5
성전 방문. 기도의 모범이신 마리아.



9
교회에 기도하러 오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불행히도 입술로만 하느님께 기도하고,
그들의 마음과 정신은
하느님에게서 멀리 달아나 딴전을 부리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지 습관적으로,
또는 무익하게 시간이나 보내려고 교회에 오는지 모른다!

10 그런 이들은 하늘을 열기는커녕 닫아버리고 만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삶 - 하느님 아버지의 메시지

37. 가톨릭교회 신자들에게



4
너희가 충실한 자녀로서 나를 사랑하면,
내 교회와 내 대리자들에게도 사랑과 순종이 깃든 존경심을 품게 된다.

이 존경심은 나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내게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드러내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5
너희가 현재 지니고 있는 이 거짓 존경
'정의'에 대한 불의이며,
내 마음의 가장 민감한 데를 미어지게 하는 아픔이고,
너희에 대한 이 '아버지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비웃기까지 하는 태도
이기 때문이다.

6
내 백성 이스라엘에 대해서 내가 느낀 가장 큰 비탄과
오늘날의 인류에 대해서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나에 대한 이 잘못 알아들은 존경이다.

사람의 원수가 이것을 이용하여 우상 숭배와 이단에 빠지게 하였다.

7
원수는 진리와 내 교회와 나로부터 너희를 멀리 떼어 놓으려고
지금도 이를 이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이용할 것이다.
아! 그러니 이제는 원수에게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

8
지금 너희에게 계시하고 있는 진리를 믿고, 
이 진리의 빛 안에서 걸어야 한다.



* * *



moowee17.03.08 15:52


내맡긴 영혼들에게 있어서 삶 = 기도 = 삶 입니다.

제가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기도를 하지 말라 하지 않았습니다.
단, 기도에 얽매이지 말라 말씀드렸습니다.

평일미사도 꼭 참례해야 하고, 이런저런 기도모임에도 참석해야 하고,
그래야만 자신의 의무를 채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되고,
그렇지 않으면 죄짓는 것처럼 찜찜하게 여겨지는 바로 그런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거내영의 기도는 삶 자체가 기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하루가
<미사의 제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하루의 삶 자체가 <제대 위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렇게 이끌어주시면 이리 가서 아버지만 사랑하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저렇게 이끌어주시면 저리 가서 아버지만 사랑하며 사는 것이
<기도>입니다.

외적인 신심행위에 얽매여서는 아니 되는 것이 거룩한 내맡김의 삶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