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

14 김홍근교수의 마음치유 9회 "현재를 잡아라."

은가루리나 2021. 1. 26. 21:48

 

※ 교양 
모든 것은 생애 단 한번! 지금 이 순간 새롭게 피어나라

-김홍근교수의 마음치유 9회 

위무위.보조 추천 0조회 463 20.09.28 01:01 댓글 55

 

 

 

 

모든 것은 생애 단 한번! 지금 이 순간 새롭게 피어나라-김홍근교수의 마음치유(약43분)

 

 

 

오늘은 우리가 항상 궁금해 하는 사항을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인간이 자기를 돌아보면 약간모순적인 것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면~ 자기가 자기지요?
그런데 자기를 찾아요. 
이게 인간의 모순적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면서 자기를 찾고 있어요.
이 문제가 어쩌면 인류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우리가 성지 순례도 많이 하고 하는데,
진정한 순례는 자기를 찾아서 떠나는 순례예요.
그래서 자기를 찾아 나서는 여행을 하다가 이렇게 만난 거지요.

인문학에 영원한 주제가 있습니다.
"존재와 시간"입니다.

'항상 존재가 궁금한데, 존재를 어디에서 찾는가?' 할 때
"존재로 들어가는 문은 시간"이라는 거죠.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존재로 들어가는 시간을 현재라고 부릅니다.
현재는 present라는 현재를 뜻하는 단어로 쓰는데, 또 하나의 의미가 있어요.
그것은 선물이라는 거죠.

현재는 우리에게 존재를 선물한다.
그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본래면목을 찾아들어가는 문은 '현재'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현재를 잡아라."(3:00)


철학가 문학가 종교인 등 모든 예술가들 종교인들도
이 문제를 갖고 고심을 합니다.

조금만 진지하게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전부 결국에는
어떻게 하면 이 현재를 통해서 존재를 잡는가?

현재를 잡으면 존재를 잡는다.


일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종교와 철학에서 말하는 존재의 두 가지 양면이 있어요.

동전에 두 가지 면이 있듯이
이 존재한다는 것에는 항상 두 가지 면이 있다.

한 가지는 본질이고 한 가지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 존재의 양면 - 본질과 현상 ) (4:00)

그러니까 이 세상은 하나인데
이쪽으로 보면 본질로 보이고
이쪽으로 보면 현상으로 보인다는 거죠.

그래서 '본질과 현상', 또 다른 말로는
( 존재의 양면을 '절대와 상대' )

다른 말로 하면 '나는 누구인가?' 할 때,
사실 우리도 이 두 가지 면을 같이 갖고 있다는 거죠.

'본질과 현상' '절대와 상대'
대승불교에서는 '진여와 생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법회 때마다 시작할 때 배우는 반야심경을 가지고 말을 한다면
'공과 색', 그러니까 '절대와 상대', '존재와 시간', '본질과 현상'

이것이 항상 영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실상의 두 가지 얼굴이에요.
"본질과 현상"

그런데 당장 지금 우리가 현상은 이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까?
현상은 이렇게 잘 보고 아는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그 본질은
우리가 거의 놓치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제가 시간 날 때마다 드리는 것이
불법(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의 구조가
'색'만 아는 사람에게 '공'을 가르치고
그리고 '공'에도 머물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후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중도로 회통을 하는.

그러니까 항상 불교의 가르침은 색에서 공으로 가서
공즉시색 색즉시공이 되는, 중도가 되는
현상과 본질이 항상 중도로써 눈 앞에서 역력한
이것이 실상을 바라보는 안목이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6:17)


그러면 이 모든 것을 통달하는 가장 핵심 포인트가 어디에 있는가?
'현재'에 있다.

그러면 '현재를 잡아라.' 그러면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는 모래알처럼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죠.

그러면
'현재를 잡으면 자기를 잡게 된다.'

자기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은
깨달음이란 자기 자신과 혹은 본래면목과 계합하는 것.
계(契 맺다) 합(合 하나 되다) 완전히 하나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현상은 알지요?

지금 몸이 있고 몸을 중심으로 생각, 감정, 그러니까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오온- 색 수 상 행 식"은 현상입니다.
그러면 나라고 하는 존재의 현상은 우리가 이렇게 알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나의 본질이 모르기 때문에 일단은 본질을 알아야 됩니다.
본질을 알 수 있는 힌트가 무엇인가?
본질을 알 수 있는 단서는 현상이다.

그래서 현상을 아주 푹 꼬집어서 '이것이다.'라고 한다면
지금 이 현재라고 하는 시간 - 이 시간이 존재로 들어가는 문이다.(8:00)
이것이 철학의 대명재예요.

8:03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하면 현재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같이 풀어보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잘 아는 아주 유명한
선에서 말하는 공안, 천칠백 가지 공안이 있는데
그중 하나로서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덕산스님 - 덕산선감(780-865) 금강경 청룡소초 - 이라는 분이
원래는 금강경 학자였어요.

이분께서 학자로서 듣자 하니 지금 저 남쪽에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통하지 않고 바로 직지인심(直指人心)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는 그런 선종이 일어나는
그런 소식을 들은 거예요.

덕산 스님이 살았을 때를 지금은 '선의 황금시대'라고 그래요.
그래서 강서성의 마조, 호남성의 석두,
이 둘 다 양자강 아래거든요~

그래서 강서성의 마조 아래에서 폭발적으로 깨달은 사람이 많이 나왔어요.
정확하게 깨달은 기록에 있는 분만 해도 무려 백 열명이 이름이 쏟아져 나왔고
또 석두 아래에서도 많은 분들이 나온 겁니다.(9:40)

그래서 강서성과 호남성에 깨달은 분들 이름으로
강호제현(江湖諸賢)이란 말이 그때 나와요.

이렇게 선이 황금시대로 꽃 필 때 그중의 한분이에요. 덕산이.(10:27)


11:28
우리가 쓰는 말에 점심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점심 - 원래 선승들이 마음에 점을 찍듯 가볍게 먹던 음식 )

이게 간단하게 먹는다 해서 우리가 먹는 중식이 되었는데
원래 불교에서 나온 겁니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말을 제가 서두에
현재를 어떻게 잡을까요? 현재를 잡을 수 있을까요?

현재를 잡는다는 이 말이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거죠.
그러면 우리가 매일 점심 먹을 때마다 '점심' 공안과 마주친다.
( 선종에서, 조사가 수행자를 인도하기 위하여 제시하는 과제 )


스님께서 '점심'. 마음에 점을 찍겠다고 하시니까,

그 노파가
"금강경의 부처님께서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

과거심도 얻을 수 없고 현재심도 얻을 수 없고
미래심도 얻을 수 없다 하셨는데

과거는 지나가서 잡을 수 없고
현재는 현재라고 하는 순간 지나가기 때문에 잡을 수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아서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스님께서는 마음에 점을 찍겠다고 하셨으니까
삼세심 불가득(三世心不可得)인데 하처점심(下處點心)고?"

이렇게 물은 거죠.


지금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 다 얻을 수 없는데
마음에 점을 찍겠다고 하시니까 과연 어느 마음에 점을 찍겠습니까?

이 말을 지금 현대어로 번역하면
"마음에 점을 찍어보세요." = "현재를 잡아보세요."(14:05)

근데 이게 쉬운 문제가 아니지요?
현재는 잡는 순간 지나간다 이거죠.

'하처점심' 이 말은 현상을 통해서 본질을 계합하는 거예요.
어떤 식으로 해야 우리가 현상을 통해서 본질과 하나가 될 수 있나?

다시 말하면
시간이라고 하는 요소를 통해서 어떻게 존재로 접근할 수가 있는가?
그 말이에요. 


14:49
이 시간의 문제는 인류의 오래된 숙제예요.

우리가 태어나서 언젠가 한 번은 시간이라는 것이 있구나.
그런데 이 시간이 지나가는구나.

이걸 한 번 우리가 느낀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럴 때 한 번 오싹한 경험이 있어요.

이런 형이상학의 문제를 우리가 자각할 때는 오싹한 기분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리스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라는 분이
"그 누구도 동일한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다."

강물은 시간의 비유.

우리가 오싹한 것이
시간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누구도 시간을 잡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을 '만법이 흘러간다~'해서
만물유전(萬物流轉)이라고 불러요.

이 만물유전 사상을
불교에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표현을 하는 거죠.

이 세상을 살펴보면
모든 현상은 영원하지 못하고 다 이렇게 흘러간다는 뜻이지요.(16:37)


16:47~20:00
< 죽은 시인의 사회 >
사진은 저기 있는데 그 사람들은 어디 갔을까?
까르페 디엠(Carpe Diem - 현재를 잡아라.)

호라티우스(로마시대 )
"내일의 이름으로 오늘을 희생하지 멀라.
이 순간을 잡아라."


18:41
이 순간을 잡아라.
우물쭈물 살다가는 우리도 똑같이 허망하게 사라질 것이다.

현재의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되어
미래의 이름으로 현재를 희생하기를 강요하는 사회

지금은 더 악화되어서
많은 젊은이들이 미래를 담보로 해서 
현재를 충실히 살지 못하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까르페 디엠이라고 하는 이천 년 전 로마 시인이 한 이 말이
우리에게는 여전히 굉장히 강력한 호소를 하고 있다.(20:37)

 


20:50
법정스님의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책이 있습니다.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만남이다."

"모든 것은 생애 단 한번!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라.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나라!"


22;30
톨스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여기!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당신!"


23;30
현재를 잡아라 = 카르페 디엠! = 하처점심
어느 마음에 점을 찍을 것인가?

자 그러면 제행무상(諸行無常)인데,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다는 것.
즉 움직이는 모든 것은 항상 그렇지 않고 소멸한다는 이치를 담은 말.)

우리가 지금 이것을 생각을 조금만 새롭게 하면
무상하다는 말은 흘러간다는 소리 아닙니까?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다는 뜻이 됩니다.

흘러가는데 초점을 맞추면 '무상하다` 그러면.
좀 부정적인 허무한 느낌이 드는데,

딱 뒤집어서 매 순간 난생처음 새로운 순간을 맞이한다.
그러면 갑자기 의욕이 막 생기면서

어르신들같이 허구한 날 그렇고 그렇지가 아니라
어린아이들처럼 매 순간을 난생처음 맞이하거든요.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지금 오늘은 여생의 가장 젊은 날!

그러니까 할 일이 많아지죠.
버켓 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 같은 것 있습니까? 여러분!

있죠.
그중 하나가 불법 공부죠.
그러니까 이 나머지 시간을 잘 활용해서
이 순간을 잘 쓸 필요가 있죠.

그러면, 중요한 대목입니다.
같은 제행무상을 한 생각을 바꾸면
무상 대신에 새롭고 새롭다. 
제행신신(諸行新新)이 되면 과연 우리들은 할 일이 너무나 많아지는,

우리는 이 세상에 무엇을 하러 태어났죠.
그러면 이 순간은 바로 그것을 하는 순간,
존재의 의미가 여기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거죠.


그렇다면 이 제행무상을 한 생각을 뒤집는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전환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굴린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 초기 불교의 '삼법인(三法印)'이 있지 않습니까?

삼법인을 전환하면 대승불교의 열반4덕이 된다.
① 제행무상(諸行無常), ② 제법무아(諸法無我), ③ 열반적정(涅槃寂靜)
일체개고(一切皆苦)

초기 불교의 삼법인에서 약간 무상하다, '무(無)'다 '고(苦)'다 하는 것을
대승불교에서는 전환을 해서 열반의 긍정적인 면 네 가지 덕
우리 인간이 태어나서 진리를 만나서 한 번 깨어나게 되면
깨어난 우리 - '마인드 리셋' 얘기했잖아요?

깨어난 자리 열반은 무상이 아니라 상(常항상)이다.
무상은 '영원하지 않다.'잖아요.
이것이 열반에 가면 섬으로 가서 저편 언덕에 도달하면
무상이 아니라 상(常) 영원하다는 거예요.

일체개고(一切皆苦 - 인간이 무상, 무아를 깨닫지 못하고 영생에 집착하여
그로써 온갖 고통에 빠져 있음을 이르는 말)가 락으로 변합니다.
- 열반은 고(苦)가 아니라 낙(樂)이다.

무상은 상으로 개고는 락으로
열반은 무아가 아니가 아(我)이다.

큰 전환이에요.


초기 불교에서는 삼법인이 제행무상, 일체개고 적법무아인데
이것이 대승 불교의 열반 사상으로 전환이 되면

상 락 아 정 - 열반은 정토다.(열반 사덕)

우리 인생의 목표가 제행무상이 목표입니까 상락아정이 목표입니까?
상락아정이죠?!
대승불교에서는 엄청난 반전이 일어나서 대긍정이 일어난 거예요.

자, 상락아정이 어디예요? 요기(나)
집 나간 생각이 딱 돌아오면 - 생각이 사라지면 - 이게 비밀이에요.

계속 반복해서 말씀드리는데,
마인드 리셋을 하면(정신을 차리면) 생각이 딱 끊어져요.

집 나간 생각이 돌아오면
그러면 생각이 없으면 지금 여러분하고 제가 따질 일이 없지요.(29:28)

같이 이렇게 진리를 논하고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좋습니까?

이 자리는 생각이 없으면 시간이 사라집니다.
시간도 분별, 생각이란 뜻이죠.
생각이 없으면 시간이 사라집니다.

시간은 생각 속에서만 존재한다.
시간이 사라진 이 자리가 영원이다.

생각이 없으면 동서남북이 없어져서
여기가 바로 열반의 섬이에요.

열반의 섬이 어디에 있을까요?
이거(나)잖아요.

그러면 이 말은 뭐냐 하면,
열반의 섬은 모든 곳인데 내 정신이 복잡하면 가려지고
마인드 리셋을 해서 정신이 또렷하게 돌아오면
이 서있는 자리가 그대로 열반 자리다.(30:38)

31;00
아르헨티나 출신의 앞서 가는 작가 보르헤스(1899-1986)도
문학의 주제가 시간이었거든요.

"모든 사람에게 모든 사건이 오직 현재에서만 일어난다."

이 말이 맞지요?!
우리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오직 현재에서만 살아왔다.
그런데 이 현재를 충실히 누리지 못하고
(이 현재는 바로 상락아정의 열반이거든요.)
놓치고 복잡하게 살아온 거죠.

왜 그랬을까요?
딱 한 가지.
생각에 속아서 생각 속으로 빠지면 생각 속에는 복잡합니다.
그래서 한 생각이 일어나면 온갖 문제가 생기고
그 한 생각이 마인드 리셋되어서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

그러니까 선불교에서는 하나하나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일망타진~!
홍수에 있을 때에는 온갖 문제가 있지만
섬으로만 올라오면 희한한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생각만 없으면 바로 정토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문제는 너무나 생각에 시달리고 있어서
그게 번뇌죠.
생각에 시달리는 번뇌 망상이 고통이다.

괴로움은 생각 속에 있어요.
생각에서 나오면 괴로움은 사라진다.

마음치유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를 하나하나 푸는 게 아니에요.
깨어나면 생각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가 단박에 사라진다.

이게 제가 첫 시간에
꿈에서 깨어나니까 모든 고통이 사라집디다~ 라고 말씀드린 거예요.

생각에서만 나오면 모든 문제가 사라져요.
그러면 생각에서 나오면 무엇이 있는가?

생각에서 나오면 영원한 현재인 '늘'이 있고
그리고 생각에서 나오면 여기다 저기다 할 수 없는
언제나 '여기'이고, 분리되지 않는 '자기'다.

그리고 인간적으로는 여러분과 저하고 언제나 구분되지 않는 자기.
개체의 자기가 아니라 항상 한 덩어리가 된 자기.
이거거든요.


요게 우리 인생의 비밀입니다.
인생은 고통을 통해 성숙해져서 상락아정의 열반락을 누리는 기회다.

이게 지금 부처님의 가르침의 요지입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잠깐 말씀을 드리면
인생의 문제는 답이 있어서 풀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성장해서 성숙해지면 문제가 문제 되지 않는다.

이게 완전 해결 아닙니까?
뭔가를 조작해서 답을 내는 게 아니라
내가 성숙해지면 어릴 때의 문제는 문제가 안 되는 거죠.

정말 중요한 것은 인격의 성장인 거죠.
인격의 성장은 개체로서의 '나'에서 전체와 소통하는
시간을 통해서 존재로 들어가는 이런 체험을 우리가 함으로써
우기 마음이 개체에서 전체로 확장되는 것.

우리 마음이 열려서 이렇게 넓어지는 것을 '마하'라고 하거든요.


마하대법앙(범어사 대웅전 주련)
마하라는 법의 왕 (36:30)

마하는 우리 마음이다.
마하반야 할 때 이 마하라는 말은 '크다 작다'라는 말을 넘어서
지금 오늘의 주제가 '현재를 잡아라.' '하처점심'이잖아요?

하처점심하는 방법에 대해서
제가 계속 이렇게 말씀을 풀어가고 있는 거예요.


마음에다 점을 찍을 수 있게 되면
시간적으로는 영원이 되고 공간적으로는 무한대 '마하'가 되는 거죠.

인간적으로는 개체의 자아에서 '무변신보살(無邊身菩薩)'
이런 말이 또 나오네요.
선사들이 참 이 말 좋아하셨거든요.(37:20)

무변신보살은 몸에 테두리가 없는 보살,
이게 마하거든요.

우리가 누구냐?
생각을 일으키면 김ㅇㅇ이다, 남자다, 인간이다 하지만
한 번 이 생각이 딱 끊어지면
그때는 정말 생명 자체.

이걸 제가 예전에 영주 부석사에 계시는
무량수전에 앉아 계시는 무량수불,
영원한 생명의 부처~ 그것이 누구인가?

우리 모두의 본래면목이 무량수불이다.(38:39)


38:48

자, 정리를 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현재를 잡아라.'에요.

어떻게 잡는가?
여러분께서 현재를 잡으시면 영원히 못 잡습니다.
제행무상이라서, 흘러가기 때문에, 흘러가는 것은 아무리 잡아도,
두 번 동일한 강물에 두 번 발을 지킬 수가 없어요.

잡으면 못 잡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현재는 잡는 것이 아니고 현재는 타는 거예요.★

탄다는 말은,
현재를 대상으로 하면 영원히 못 잡아요.

현재가 우리의 본래면목이라는 거,
현재가 바로 나라는 이 사실을 자각하고 가만히 있으면,
제가 표현을 '현재를 탄다'고 표현했어요.

가만히 있으면 현재와 분리되지 않아요.

여기서 생각을 일으켜서 현재를 잡아야지 하면 두 조각이 나서,
다시 말하면 현재는 영원한 현재이기 때문에,
영원한 현재는 절대(絶對)입니다.

절대라는 말은 상대(相對)가 끊어졌다.
상대가 끊어진 절대를 상대로 잡을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잡으려는 손을 거두어들이는 거예요.
이게 마인드 리셋(mind reset), 
거두어들이면 내가 현재예요.
영원한 현재가 나예요.

그러면 여기서 깨달음 하고 같거든요.
깨달음은 자기가 자기를 깨닫는 거예요, 그쵸?


어떻게 자기를 깨닫는가?

자기를 상대화해서 깨달으려면 영원히 못 깨달아요.
그걸 거두고 가만히 있으면 자기랑 계합해 들어가게 돼요.

이게 아주 중요한 공부의 포인트입니다.

현재를 잡아라!
어떻게 잡는가?

잡으려면 못 잡아요.
부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잡는 것이 되는가 하면,
손을 거두어들이고 있으면, 지금 현재지요 여러분?
지금 현재 맞습니까?

또 현재지요~?
또 현재지요~?

★현재를 타는 거예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제 방에 관세음보살 그림이 한 장 걸려 있어요.
근데 그게 사진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듣기로는 어떤 비행사가 비행 도중에 찍었대요.
근데 그 사진에 관세음보살께서 용을 타고 계세요.
그런 사진 보신 적 있죠~.

저도 그 사진이 저에게로 온 뒤로는 공부가 급속도로 좋아졌거든요.


지금 이제 결론으로 말씀드리면,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계시잖아요.

우리가 현재를 타고 있는 거예요.
영원한 현재를 다 낱낱이 다 타고 있어요.

이걸 잡으려고 하지 말고 이미 타고 있는 것을 마음껏 쓰는 거예요.

계속 새로운 시간이 이 시간에도 샘솟아요.
제행신(新), 신, 신, 신~ 프레젠트예요.


이 프레젠트를 쓴 거예요.
인생은 이 프레젠트를 써.

그러면 텅 빈 이 공간을 무심이라고 하고
이걸 마음대로 쓰는 것을 평상심이라고 하는 거예요.
결론은 중도지요.

결국 현재를 잡아라, 어떻게 잡는가?
잡으려 하면 못 잡지만 가만히 있으면 현재다.
왜냐? 절대기 때문이다.

상대 세계에서만 살아서 우리가 어떻게 절대를 터득하는가?
★모든 것을 거두어들이는 거예요.★

그러면 불교( )에서는 ★멈춰라, 그러면 올 것이다.★


 

 

 

 

* * * * * * * 

 

 

 

위무위.보조 20.09.28 21:20

사랑하는 식구 여러분!

여러분은 관세음보살처럼 용(龍)을 타시겠습니까?
아니면 무엇을 타시겠습니까?

여려분은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으로
이미 하느님의 뜻을 타고 계십니다, 
아니 하느님의 등을 타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타고
하느님께서 가시는 대로만 그저 얹혀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내려 오지 않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내려 오지 않는 방법이 바로
끊임없는 화살기도입니다, 끊임없는 화살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이곳의 모든 이들이 아버지만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위무위.보조 20.10.01 13:41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긴 영혼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일이 일어났을 땐 모든 것을 멈추고(에포케),

< 오직, "지금"에 충실해야 합니다.

지금에 충실하라는 말은
"지금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집중하라는 것>이며,

< 절대>이신 하느님께 집중하는 것이 바로,
< 현재를 타는 것>이며 그러면 하느님이 <오십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다 처리해 주십니다, 정말입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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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wee 12.05.09. 06:39


하느님의 앞의 인간은 언제나 젖먹이 똥싸개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교회 역사상 유명한 대학자 성인들께서도 다 그 점을 인정하셨습니다.

모든 종교에서
자신의 신앙의 대상께 자신의 몸을 조아리고 땅에 머리를 박는 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 은
그 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낮추지 못합니다.

몸을 조아리고 머리를 땅에 박는 몸기도도 비웃고 깔보곤 합니다.

거룩한 행위와 거룩한 것들을 깔보는 자들 속에는
늘 "마귀" 가 숨어 있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 은 마귀를 잘 모릅니다.
이미, 마귀의 조정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철부지가 됩시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은 하느님의 등에 업히지를 못합니다.

하느님의 등에서 자꾸 내려 스스로 걸어가려고만 합니다.
하느님의 능력보다 자신의 능력을 더 믿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등에 업혀 하느님이 가시는 데로 따라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등에 업히는 것이 바로 "내맡김" 입니다

하느닝믜 등에 업혔기 때문에 "거룩한 내맡김" 입니다
거룩한 것을 비웃고 깔보는 자들은 "하느님" 을 깔보고 비웃는 자들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말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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