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

21 {천상의 책 11권96장} 나는 사람이며 하느님이었다. / 〔벌거벗은지금〕 2부 예수의 경우는 어떠한가? (벤 아담 ben adam '사람의 아들')

은가루리나 2021. 2. 23. 01:23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11-96


1915년 7월 9일


진실로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인성과 같은 처지에 놓인다.



1 여느 때와 같이 머물러 있었지만 기분이 무척 언짢았다.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그런 상태를 보시고 측은해하시며 잠시 오셨다.
그리고 내게 입맞춤을 해 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가엾은 딸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를 떠나지 않고, 떠날 수도 없다.

3 사실, 
내 뜻을 행하는 영혼은 내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저항할 수 없는 폭력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자석이다.

4 내 뜻을 행하는 영혼에게서 나를 빼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바로 나 자신에게서 나를 빼내는 셈이 되리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5 그 다음에 그분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6 "딸아, 
진실로 내 뜻을 행하는 사람은 나의 인성과 같은 처지에 놓인다.



나는 사람이며 하느님이었다.

하느님으로서 나는
모든 기쁨과 지복과 아름다움과 내 소유인 모든 선을
나 자신 안에 지니고 있었다.

나의 인성은 
한편으로 내 신성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더없이 행복하고 기쁘고 아름다운 모습이
이 인성에서 빠져나간 적이 없었다.


8 또 한편으로 내 인성은
하느님의 정의 앞에서 피조물을 대신하여 보속할 책임을 맡고 있었으므로
모든 죄를 극명하게 보는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그 모든 죄에 대한 보속을 떠맡고 있었으니,
저마다 고유의 고통을 주는 각각의 죄를 소름이 끼치도록 통감했던 것이다.


9 따라서 내 인성은 기쁨과 고뇌를 동시에 느꼈다.

신성 편의 사랑 피조물 편의 싸늘한 냉담을,
한편의 거룩함 다른 편의 죄를...
피조물이 행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아무리 작은 행위라고 하더라도 결코 내게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10 이제 내 인성은 더 이상 고통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내 뜻을 행하는 사람 안에서 산다.
이 사람이 내 인성으로 쓰이는 것이다.

11 이런 연유로 그는
한편으로 사랑과 평화와 선에 항구함과 굳셈 등을 느끼고,
한편으로 냉담과 성가심과 지겨움 등을 느낀다.


12 만일 그가 온전히 내 뜻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 모든 것을 자기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겪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용기를 잃지 않고 나를 측은히 여길 것이며,
내 고통에 참여하는 영예를 누릴 것이다.

13 왜냐하면 
그는 다만 나를 덮어 가리는 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시와 냉기의 성가심을 느낄 뿐이지만,
그런 것이 깊이 와 박히는 곳은 내 안이요, 내 심장인 것이다.



* * *



★벌거벗은지금
Re:2부 예수의 경우는 어떠한가?

moowee 추천 0조회 384 17.10.28 19:25 댓글 62


예수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원적 생각의 틀로는 무엇이든지 가르고 나눌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예수를 신으로'만' 이해하고 사람을 사람으로'만' 이해한다.

아무리 성경 본문과 신비주의 사상가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해도 소용없다.

이 분리를 극복하는 데에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신 사건'의 요점이 있다.

그러나
전체 그리스도교와 개인 그리스도인들은
 육화의 비밀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하느님의 출현인
예수 안에 나타난 '위대한 나인 나 the Great I AM'가
첫 세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나도 감동적인 것이어서,

그 뒤로 계속 유지되어야 할
그분의 인성과 신성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실은 그분의 인성이 좀 더 강조되었어야 했다.

실제로 예수가 자신을 가리킬 때 쓴 유일한 칭호가,
네 복음서에 87회나 등장하는 '벤 아담ben adam,
 '사람의 아들'이었음을 기억하라.

예수는 실제로 강조하여 말한다.
"나도 그대들과 같다." 그대들과 같은 유한한 사람,보통사람이다!

우리는 그분의 신성에 사로잡혀서,
그분이 그토록 분명하게 밝힌 인성에 대한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그리스도교 역사의 대부분이
자기네가 단죄한 바로 그 이단으로 채워져 있다.

덕분에 우리는 예수를 신성만을 지닌 존재로 생각하여
당신 스스로 밝힌 인성을 놓치거나 외면하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균형을 볼 수 없었고,
아마도 그래서
나 자신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을 함께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원론의 틀에서 보면 언제나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
둘 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영적 존재가 되고자 갖은 애를 쓰는 단지 인간일 뿐인 존재로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자체가 
너는 이미 영적 존재라고(하느님 안에 있다고),
따라서
어렵지만 네가 해야 하는 과제는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가르치는데도 말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온전한 통합의 모델1코린 15,47-49로 오셨고,
사실상 하느님은 모든 사람 눈에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는,
예수 자신처럼 생겼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여전히 상처 입고 부족하고
사랑도 못하고 자기를 미워하고 깨달아야 할 것이 많은 존재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영적 존재가 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가련할 따름이다.

예수는 동시대인들에게
당신의 오묘한 신비 앞에서 겸손과 인내를 지니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요한 8,14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마태 11,27)

그분은 신이면서 인간인 존재의 신비를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대로 감수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신 것 같다.

 

 

 

 

* * *



위무위.보조 21.02.24 04:01

< 6 "딸아,
진실로 내 뜻을 행하는 사람은 나의 인성과 같은 처지에 놓인다.

 나는 '사람' 이며 '하느님' 이었다. >

사람으로 오신 예수하느님!
참으로참으로 감사감사드립니다!

神, 하느님이신 당신께서는
人間, 성모님의 자궁을 통하여 내려오셨습니다.

女人의 자궁을 통해 이 세상에 오시고자 하신 당신의 뜻에
무한감사찬미 드리며
저는 그러하신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래야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도 사랑하는 저의 엄마 자궁을 통하여 이 세상에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시절부터
저의 참 어머니, 성모님을 쉽게 사랑할 수 있었고,

참으로 늦었지만
병을 얻은 뒤 어머니의 참 아드님,
어머니의 맏아드님이신 온 인류의 맏형,

저의 큰 형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하느님이 인간이 아니셨다면?
만일, 성모님이 인간이 아니셨다면?

그것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他종교들의 신神이요, 여신女神,

신화 속의 신神들에 불과했었을 것입니다.


저는
저의 엄마처럼, 저의 누이들처럼 똑같이 생리를 겪으셔야 했던
저의 참 엄마 성모님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저는
저를 비롯한 모든 남성들처럼
똑같은 남성을 지니고 이 세상에 오신 저의 큰형님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참 엄마도 큰 형님도 다들 화장실에 들락였었다는 사실 그자체가
아버지 하느님의 참으로 놀~~~라우신 섭리입니다.


< "딸아,
진실로 내 뜻을 행하는 사람은 나의 인성과 같은 처지에 놓인다.

 나는 '사람' 이며 '하느님' 이었다. >


아아 ~ ~ ~ 지극히 흠숭하올 하느님의 뜻이여!

큰형님 예수님!
형님은 참으로 참으로
인간人間이시며 참으로 하느님神이십니다!


어린시절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진리>를
아버지를 만나고서야 늦게 깨달았기에 또다시 이렇게 외쳐봅니다.

오 ~~~ 지극히 흠숭하올 하느님의 뜻이여!


어린시절부터 배워온 것이
인간의 성性은 더러운 죄의 원천,
性에서 멀어지는 것이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에
하느님 神이시며, 또한 神하느님의 어머니를 인간으로 생각하는 것을,

오랜 세월 머리 속의 교리로 여겨왔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저의 맏형, 큰 형님!
참으로 형님을 사랑합니~ 데이Dei ~~~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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