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98 pp.491-496 제 3 편 제14장 심령생활의 신비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②

은가루리나 2021. 6. 7. 00:16

 

 

★거룩한위탁
제14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신비적(神秘的)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 1 절 신비적 관상의 각가지 상태(2)

옴니아 추천 0 조회 161 13.11.25 18:04


제3편 위탁의 대상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①②
 제4절 장소와 환경 ①②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①②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①②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
 ⑴
 ⑵
 ⑶
 ⑷

제8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실패와 과실 -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내적시련의 일반 -
 ①
 ②
 ③
 ④

제10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유혹 -①
 - 유혹 -②
 - 유혹 -③

제11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위안과 건조-①
 - 위안과 건조-②
 - 위안과 건조-③
 - 위안과 건조-④

제12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①②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①②

제13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①②
 제2절 각가지 공포 ①②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①②
 제4절 양심상의 小心 ①②

제14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①②③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례제3편 위탁의 대상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14 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신비적(神秘的)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②


p.491

그러므로,
신비적 길이 고도의 완덕에 인도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길은
보다 빨리, 또한 쉬이 거기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묵상의 각가지 길」이라는 저서 안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수동적 정화(受動的淨化)의 결실이 풍성한 효과에 관해서 말해 두었다.

거기서 천주께서는
영혼을 정화하시고, 단순화(單純化)하기를 바라시며,
스스로 우리의 질병과 특효약을 숙지하시는 그 그르침이 없으신 예지와,
인간의 애착과 나약함을 모르시는 그 힘센 손으로써 활동하신다.

신비적 묵상,
특히 고도의 그것이 정신을 비추고 마음을 움직이며,
의지를 단련하고, 우리의 생활을 갱신(更新)하는데,
비할데 없는 힘을 가진다.

주입적 관상(注入的觀想)이 완덕 자체가 아니고,
그것에 도달하는 필요한 수단이 아닌 것도 확실하다.

그러나,
그것은 성성(成聖)을 위한 놀라운 연장,
고덕(高德)의 학원(學園), 완덕에의 지름길, 가장 신속한 수레,
특히 탁월한 값진 진주, 그 값어치를 알고 있는 이는,
현명하게도 이것을 얻기 위하여
모든 재산을 팔아버리기를 주저하지 않을 정도의 하나의 훌륭한 보물이다.
(「묵상의 각가지 길」3편 1.1장 )

p.492

사람은 흔히
이 탁월한 그러나 너무 알려지지 않은 관상의 길의 위험을 즐겨 지적한다.

「그러나,
이 신비적 관상에는 과장해서는 안될 몇가지 위험이 수반되지만
일반적 묵상의 길에 있어서도 또한
등한히 해서는 안될 실제의 위험이 있지 않은가.

묵상의 이익 때문에 그것에 몸을 바치는 이는,
그것에 따르는 위험의 두려움에 방해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위험에 대한 공포는
관상에 의아심을 품게 하는 충분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


신비적 묵상은 모두, 하나의 금광(金鑛)이다.
우리는 그 채굴(採掘)에 노력하자.

중도에 몇몇 위험에 부딪칠 것이므로, 경계하고, 안전을 도모하자.
오직 적의 함정을 피하면서, 천주께서 이끄시는대로 순진하게 따르자.


그리고 경험은 우리에게 얼마 후,
이 묵상이,
즐기는 것, 또는 높이 올려질 것을 열망하고 있는 이에게가 아니고,
천주와 일치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참아 견디려고,
준비하고 있는 관대한 영혼에게 상응한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리라.

관상에 들어간 이는,
『다볼』산의 영광과 환희보다는
보다 자주 『갈바리아』의 십자가의 고통에 참여하리라.
만일 그가 시련되고, 낮추어질 필요가 있다면,
더욱 힘을 얻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묵상의 각가지 길」3편 1장 )



어느 사람은 또한,
신비적 독서의 위험을 이론(異論)으로 내세우는 일이 있다.

그런데 신비적 독서만 위험한 것인가.
성신에 문을 닫는 것 외에 다름이 아닌
신비적인 일에 관해서의 무지, 편견, 어떤 종류의 완미(頑迷)함 등은
더욱 두려워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런 저서가 올바른 가르침을 전하는것,
영혼의 필요에 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기회에 나는
묵상의 길에 있어서는 현명한 지도자가 특히 필요하며,
그가 독서의 선택을 위하여 지정된 안내자 임을 되풀이 하고 싶다.

그렇게 하면 거기에는 걱정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혹 위험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저서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너무나 즐거움을 구하고, 높여질 것을 간절히 바라는
영혼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다.

그런 심정을 가진 이에게는, 모두가,
즉 신비적 저서를 읽는 것 뿐 아니라.
수덕서(修德書), 일반적 묵상의 길에 있어서의 위안,
그리고 영성체까지도 위험하다.
금지 되어야 할 것은 그런 슬퍼해야 할 마음가짐이다. 

p.493

신비적 관상은 우선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에 의존하는 것이다.

성녀 대「데레사」는 말했다.

「천주에게는 그것이 없이도
구령할 수 있는 은총을 우리에게 이 세상에 있어 부여하실 의무가 없다.
뜻대로, 바라실때에, 원하시는 이에게 이 은총을 부여하신다.

즉 은혜의 주인이신 천주께서는,
누구에게도 불의(不義)를 행하시는 일 없이,
그렇게 그 은혜를 나누어 주신다」라고. (「영혼의 성」제4.1, 2장 )



「알바레스.드.빠스」도 말하였다.

「천주께서 이 관상의 은혜를 거절하시는 사람들 가운데는
허다한 완전한 이가 있다.


어떤 이에게는 관상에 충분히 온화한 기질이 없기 때문에,
어떤 이에게는, 너무나 자존심에 기울어져,
이 훌륭한 은혜에 만심(慢心)을 일으키지 않도록 낮추기 위하여,
끝으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그 섭리의 은밀한 배려를 성취하시기 위하여,
관상의 은혜를 거절하신다.」(「전집」3권 5편 2부 3장)



그러나 이 의견을 너무나 과장시해서는 안된다.

왜냐 하면 성녀 대「데레사」에 의하면,

「천주께서는 줄 사람을 찾아내시는 것을 바라시는 것보다
더욱 그 밖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시며,
그리고 아무리 주시드라도 그 재보는 결코 감소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
(「영혼의 성」제6.4장 )


아니, 오히려 천주께서는 주시는 정도에 따라 부유하게 되신다.

천주에게 있어,
그것은 당신을 인식시키고, 사랑케 하며,
당신을 섬기도록 하는 최상의 수단이 아니겠는가.

p.494

모든 은총과 마찬가지로,
신비적 은혜도 천주께서는 이것을 극히 관대히 주시지만,
그러나 그것은
「천주의 원의와,
각자가 그것에 상응한 준비를 하며 그것에 협력하는데 의한 것이다.」
(뜨리덴띠노 공의회「의(義」에 관한 의정(議定) 제6 회의록 7장)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준비를 했다 하여,
그렇다고 천주께서
이 측량할 수 없는 고귀한 은총을 주셔야 할 의무는 지시지 않으신다.

보통 천주께서는,
영혼이 아직 완전함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라도,
충분히 정화되고 이미 덕으로써 풍부히 꾸며지기를 기다리신다.

영혼은 관대한 준비와 충실한 협력에 의해서 자신을 온전히 터놓을 때,
광명과 사랑이 넘칠만큼 주입(注入)된다.


만일 영혼이 자신을 절반 밖에 열지 않는다면,
그런 분량도 그만큼 적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천주의 은총 외에 다른 것이 아닌 관상은,
우리가 그것에 준비하고 그것에 협력하는 열심에 의하는 것이 
매우 큰 것이다.


천주께서 스스로 바라실 때,
수동적 정화의 길로써 그 영혼의 준비를 완성하시지만,
이것은 후에 말하겠다.

여기에 말하는 준비란
은총의 도우심과 병행하여 우리의 자발적 행동에 의한 것이다.


다른 곳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준비는,

(1) 모든 묵상에 반드시 필요한
양심, 정신, 마음, 의지의 네가지 것의 정화에 의해서
진보의 장해를 제거할 것,

(2) 적극적으로 영혼을 기도의 생활에 의해서 향기롭게 되고,
또한 모든 덕으로써 미려하게 꾸며진,
고요하고 마음이 집중하는 성소(聖所)로 할 것,
이 두 가지다.

그러기 위하여 발랄한 신앙과 신뢰심과 사랑이 필요하며,
또한 이에 상응한 정도의
자아포기, 순명, 겸손 등의 덕의 실행이 수반돼야 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묵상 때문에서보다도,
관상 때문에 이런 덕에 있어
커다란 진보를 이룩하고 있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묵상의 각가지 길 」3편2장)

p.495

이것은 성「벨나도」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교훈이다.
「아가」의 귀절, 「우리의 잠자리는 꽃으로 꾸며졌도다」에 관해서의
그의 해석의 일절만을 여기에 싣기로 한다.

「아마 그대들도 또한 관상의 이 휴식을 간절히 바라리라.
그것은 옳다.
그러나 다만 신부(新婦)의 잠자리를 꾸며야 할 꽃을 잊어서는 안된다.
과실 전에는 꽃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거룩한 휴식에 덕의 수행이 앞서야 한다.」


자의(自意)를 포기하라.
만일 그대의 영혼이 불순명의 독초(毒草)나 가시풀로 덮여 있다면,
불순명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택하실만큼 순명을 사랑하신 분이
어떻게 당신을 온전히 그대에게 주실 수 있으시겠는가.

나에게는 어떤 이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들은 그 기이한 행위로써 우리를 산란케 하고,
성급함으로써 화나게 하였으며,
완미(頑迷)함으로써 우리를 경멸하였다.

종일 그들은 형제의 방해를 하고, 불화(不和)를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빈번히 기도하여
순수하신 천주를 그 더럽혀진 영혼 안에 머무르게 하려는
「철면피」를 감행한다.


「그렇다면
그대들의 잠자리는 꽃으로 꾸며진 것이 아니고 악취에 충만된 것이다.
우선 그대의 양심을
분노, 쟁론, 불평, 질투의 모든 병원(病源)에서 깨끗이 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그대의 마음에서 무엇보다 먼저
형제와의 평화를 깨뜨리고 장상에게 거스르는 모든 것을 몰아내라.

다음에
모든 선행, 훌륭한 소원의 꽃으로써 이를 꾸미고,
덕의 감미로운 향기로써 감돌게 하라,
모든 참된 것, 모든 정의, 거룩하고 사랑해야 하고 영예로운 것,
모든 덕과 규율이 있는 것에 생각을 향하고, 그대 안에 배양하라.

그리고 그대들은 자신(自信)을 가지고 천상 정배를 부르며,
참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우리의 잠자리는 꽃으로 꾸며졌도다』 라고.

왜냐 하면, 그것은 이미 경건과 평화와 양선함,
정의와 순명과 거룩한 희열과 겸손의 드높은 향기만을
풍기기 때문이다.」

p.496

그러므로, 이렇게 하여 아직 영적 생활의 초보에 있는 이는,
「구세주의 발에 친구하여」통회의 눈물로써 이를 씻어드려야 한다.

덕을 닦는데 전심하고 있는 이는,
「착한 스승의 손에 친구하여」 겸손되이 그 도움을 간청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 입술에 친구하는 것」이 허락되는 것은,
덕에 있어 이미 상당히 진보한 영혼이다.


그래도 아직 그들은 경외(敬畏)로써 흠숭하고,
자신을 온전히 미소한 이로 하여야 한다.

그리고
무한 예지신 주께서는 그들을 높이시기에 앞서 낮추시고,
높이신 후에도 또한 낮추시려고 배려하시리라.


「왜냐 하면, 그렇게도 커다란 것을 간절히 바라는 이는,
자신에게 관해서 깊은 비하(卑下)의 정을 가져야 하므로.
그대들이 사람들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할 때,
만일 모든 것을 천주를 위하여 침묵하고, 기쁨으로써 감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은총이 바로 주어진 증거다.」
(「아가에 관한 설교」제3.1-5, 제 34.1, 제 46.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