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100 pp.501-505 제14장 심령생활의 신비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 2 절 신비적 관상의 각가지 상태 ①

은가루리나 2021. 6. 14. 01:25

 

 

★거룩한위탁
제14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신비적(神秘的)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 2 절 신비적 관상의 각가지 상태①

옴니아 추천 0조회 210 13.11.20 00:43


제3편 위탁의 대상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①②
 제4절 장소와 환경 ①②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①②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①②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
 ⑴
 ⑵
 ⑶
 ⑷

제8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실패와 과실 -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내적시련의 일반 -
 ①
 ②
 ③
 ④

제10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유혹 -①
 - 유혹 -②
 - 유혹 -③

제11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위안과 건조-①
 - 위안과 건조-②
 - 위안과 건조-③
 - 위안과 건조-④

제12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①②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①②

제13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①②
 제2절 각가지 공포 ①②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①②
 제4절 양심상의 小心 ①②

제14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①②③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①②③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례제3편 위탁의 대상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14 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신비적(神秘的)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각가지 상태 


p.501

여기에 천주께서 관상의 길을 우리에게 피력하신다고 가정하자.
이 길은 매우 다양(多樣)하며,
천주 스스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자유로이 선택하신다.



관상은 어느 것이거나,
천주와 천주에 관계되는 사물을 
사랑에 충만된 단순한 시선(視線)으로써 바라보는 하나의 묵상이다.

그 본질은,
「바라보고 사랑한다」라는 짧은 말마디 안에 포함된다.

그런데, 우선 과도기라고도 할 수 있는 시기가 있어,
거기서는 묵상과 관상이 교대로 행하여진다.


관상에는 또한 능동적 관상과 수동적 관상과의 두가지가 있다.

전자에 있어서는
영혼은 추리(推理)하는 것을 떠나 자기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
그 각가지 애정을 단일화(單一化)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후자에 있어서는
영혼은 광명과 사람이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님을
분명히 자각한다.


즉, 그런 것을 자신 안에 주입하시는 이는 천주시며,
영혼은 다만 그것을 받을 뿐 이다.

그런데 천주께서는 이런 광명과 사랑을 뜻대로 주시는데,
사랑보다 광명을 풍부히 베푸실 때, 묵상은 「케루빔」과 같은 것이 되며,
사랑을 보다 많이 주입하실 적에는 그것은 「세라핌」과 같은 것이 된다.



천주께서는 어떤 이에게는 당신의 신적 속성(神的屬性),
혹은 흠숭해야 할 삼위일체를 관상시키고,
대부분의 사람을,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인성(人性), 어린 예수, 수난하심, 성심(聖心), 성체 등의
관상에로 향하게 하신다.

p.502
천주는 주가 되시기 때문에,
각기 영혼에게 그 임무와 봉사를 자유로이 배당하실 수 있다.

천주의 신비적 활동은,
때로는 경탄함과 사랑에 충만한 침묵을 자아내고,
때로는 애정에 넘쳐 흐르는 말씀 또는 열렬한 황홀상태를 일으킨다.


이 신비적 작용은,
영혼의 준비에 따라 또는,
천주께서 영혼을 불타게 하고 또는 정화하시려고 생각하심에 따라,
광명과 사랑을,
또는 일시적으로 흠뻑, 또는 알맞게 또는 한 방울씩 주입하신다.

요컨대,
관상은 각가지 이유에서 다종다양(多種多樣)한 모습을 취하며,
또는 자주 변하는 것이다.

그런 변화는 우리에게
나날의 자기포기와 효애에 충만한 위탁을 요구한다.



이런 관상 가운데 가장 쓰라린 것의 하나에 관하여,
아래에 다소 고찰하기로 한다.

왜냐 하면,
관상은 때로 감미로운 것이지만, 보다 많이 건조한 것,
또한 그다지 커다란 위안을 수반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말하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하여,
「러.고디에」신부와 함께,
관상에는 몇가지 본질적인 행위가 있다는 것,
즉,
오성(悟性) 안에는 추리할 것을 온전히 멈추고, 단순한 바라봄의 행위,
의지 안에는 관상의 원천이며, 관상을 관상답게 하도록,
또한 그 목적이 되는 우애(友愛)의 행위가 있다」
라는 것에 주의를 경주하고 싶다.


「그러나 관상에는 말하자면
그것을 완성하는 감탄,
믿기 어려운 무상의 환희를 수반하는 열성과 같은 다른 행위도 있다」
(「영적 생활의 완전」 2편 3 부 3장)

확실히 이 후자의 행위는
신비적 묵상에
찬란한 아름다움, 감미롭고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
동시에 또한 보다 커다란 힘을 초래하여, 이것을 완성한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없어도, 관상은 그 본질적 요소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과 동시에 예지로써 다스리시는 천주께서는,
우리 안에 맺으려고 바라시는 은총의 좋은 결과에 따라,
혹은 감미로운 관상을
혹은 위로를 수반하지 않고서 정화(淨化)의 원인이 되는 관상을
각각 사용하신다.

p.503

천주께서 만일 영혼을 지상의 사물에서 이탈시켜,
당신에게 굳게 일치시키기를 바라신다면,
이 때 광명과 사랑을 넘칠만큼 영혼 안에 주입하시리라.

천주 안에 잠기고,
그 현존과 그 작용과의 깊은 즐거움을 느끼며,
사랑에 의한 일치에서 생기는 거룩한 정열에 타오르고,
피조물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위대하시고, 또한 거룩하신 천주의 지선하심,
지극히 아름다우심, 지극한 사랑에 마음이 빼앗겨,
이 영혼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며,
묵묵히 감탄 안에 관상의 경지에 젖는다.

영혼은 그 목말라 하는 시선으로써 지극히 사랑하올 분을 감싸며,
자기를 사로 잡는 감탄과 희열과 사랑을 드러낸다.

주의 품 안에 안식한 성「요왕」처럼,
영혼은 평화와 감미에 충만한 일치 안에서 천주를 즐긴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마음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그런 침묵은 드높이 외치고 있다.
영혼은 그 불타는 눈동자, 그 눈물, 동작으로써 
자신의 상태를 감격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마음 안을 여지 없이 전한다.

그리고 또한,
만일 은총의 작용으로써 거기에 이끌린다면,
영혼은 평온하게 황홀함에 들어가는 일 없이
가장 감미로운 영적 친교 안에
사랑에 충만한 담화, 애정이 깃들린 의사(意思)의 토로에
자신을 온전히 기울인다.


또는 사랑과 희열이 극도에 달하여, 
이미 마음에 이것을 감쌀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 때, 영혼은 사람과 행복에 열중하여
천주로 도취되고 거룩한 황홀상태에 들어가,
부드러운 애정의 비약과 마음의 격심한 충동에 몸을 맡겨
타오르는 애정, 몸부림치는 말투, 거룩한 어리석음에 넘칠 만큼 충만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영혼이 사람들의 호기심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하시려는 왕의 비밀이다.

그런데, 천주께서 우리의 미소함까지 몸을 굽히시고,
이 거룩한 친밀한 애무에까지 우리를 높이시는 것은,
단지 한번 밖에 뿐 아니다.

천주께서 이 영혼을 사랑하는 자녀로서
그 팔로 안아 올리시고, 그 무릎 위에서 애무하시며,
그 가슴에 껴안으시는 이런 업은
몇번이나 되풀이 되고, 동시에 또한 오랜 동안 계속하신다.

p.504
그런 때 이 영혼에게,
자신이 천주를 사랑해 드리는 것,
그리고 그보다 훨씬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또한 천주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지극히 착하신 분이시고,
영혼에게 커다란 행복을 주시려고 바라신다는 것을
추근추근하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 포옹의 부드러움을 이 영혼은 깨닫지 못할 것인가.

이제야 영혼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 성부의, 
흠숭하올 천상 정배의 그토록 인자에 넘쳐 흐르는 마음을 알고 있다.

아무런 노고도 노력도 없이 성부께 자신을 맡기고,
그 가진 바 귀중한 것, 생명도, 죽음도, 영원도, 모든 것을 이에 맡긴다.

사람은 주께 자기 마음도 의지도 온통 손에 맡겨 드리는 것을,
또한 그런 것을 영구히 지켜 다스리실 것을 간절히 원한다.

이 때 영혼이 하지 않은 것이란 무엇이 있겠는가.
그것은 찬란한 쾌청한 날씨, 풍성한 수확(收穫)의 때다.


기도에 있어서의 천주의 작용에 순순히 따르며,
충실한 마음을 배가하여 은총에 보답하고,
그 원하시는 바를 하나라도 거절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여야 한다.

그것은 영혼에게 있어 그다지 고통스러운 일도 아니며,
보다 단호한 힘으로써 자신을 극복해야 할 때다.

그럴 때, 
희생은 매우 쉬운 것이 되고, 일종의 참된 매력까지 미치게 한다.


영혼은 천주의 위로보다도
오히려 위로주신 천주를 찾아 구할 것,
또한 천주께서 그 자비하심으로써 자기를 높이시는 만큼,
자신의 비참함의 자각 안에 깊이 파고 들어야 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p.505
그렇게 하여 순경(順境)의 날에 
역경(逆境)의 날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 하면,
관상은 반드시 언제나 정신을 꿈결 안에 두는 커다란 감탄,
또는 의지를 황홀상태에 던지는 열애의 불꽃,
영혼과 감각을 앗는 환희를 가져오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없기 때문이다.


신비적인 작용이
이토록 가장 강한 정도에 이르는 일은 극히 드물며,
가장 흔한 경우에는 중간이나, 또는 약한 정도에 그친다.

이렇게 하여,
묵상은 위로라고도 건조라고도 분별할 수 없는 하나의 상태,
혹은 단조(單調)롭고, 쓸쓸한 건조(乾燥) 안에서도 계속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