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99 pp.496-500 제 3 편 제14장 심령생활의 신비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③

은가루리나 2021. 6. 10. 01:39

 

 

★거룩한위탁
제14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신비적(神秘的)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 1 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3)

옴니아 추천 0 조회 144 13.11.13 04:27


제3편 위탁의 대상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①②
 제4절 장소와 환경 ①②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①②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①②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
 ⑴
 ⑵
 ⑶
 ⑷

제8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실패와 과실 -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내적시련의 일반 -
 ①
 ②
 ③
 ④

제10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유혹 -①
 - 유혹 -②
 - 유혹 -③

제11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위안과 건조-①
 - 위안과 건조-②
 - 위안과 건조-③
 - 위안과 건조-④

제12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①②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①②

제13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①②
 제2절 각가지 공포 ①②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①②
 제4절 양심상의 小心 ①②

제14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①②③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례제3편 위탁의 대상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14 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신비적(神秘的)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③


p.496

성녀 대「데레사」에 의하면, 신비적 관상은
「주께서 모든 이를 이에 초대하시는 향연이다」라고.

그러므로,
그것은 모든 선의의 영혼에게 제공되고, 말하자면 약속된 것이다.

주께서는 그것을
온전한 이탈, 완전한 겸손, 그 밖의 덕행으로써 맞갖게 준비하고,
중도에서 멈추지 않으며, 항상 열심을 더하고,
그 바라는 지복(至福)한 목적지를 지향하여
전진하는 영혼에게 주어지리라.


특히 성녀는,
「겸손하라, 겸손하라.
대개 주께서는 이 덕에 의해서, 
우리의 모든 소망에 지시고, 양보하시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자주 겸손을 권장하고 있다.

물론 이 관상은 초자연적인 것이며,
또한 은혜의 주인이신 천주께서는
우리 모두를 같은 길에 의해서 이끄시지 않으신다.

p.497

그렇지만,
「어느 영혼이
흔히 자신을 그르치게 하는 상상에 있어서가 아니고
진실로 겸손하고 모든 것에서 이탈하고 있다면,
그 때 주께서는 단지 이 관상의 은총 뿐 아니라,
더우기 그 소원을 초월한 더욱 많은 은총도 주신다는 것을
나는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완덕의 길」18,19, 20, 26, 「영혼의 성」제 4.2-3 )

십자가의 성「요왕」안에도
우리는 같은 의미의 많은 말을 찾아낼 수 있다.
(「제 1의 암야」1-8, 「사랑의 생활한 불꽃」제 2절 3의5)



실제
「시또회 창립기 (創立記)」,「월보(月報)」, 성「벨라도」의 「설교집」을
읽는다면,
몇 세기 동안, 훌륭한 신비의 꽃이
본회의 뜰에 향기롭게 만발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그것은 또한
「아씨지의 가난한 이」의 자녀들 사이에도,
「갈멜회」, 「방문회」 그 밖의 모든 수도회,
특히 관상적 및 봉쇄 제도의 수도회 안에,
창립시대의 얼이 보존돼 있는 한, 화려하게 꽃이 피었다.


성녀 대 「데레사」는 
그 어떤 수도원에 있어서도, 묵상의 길을 걷는 이는 극히 드물며,
거의 모두가 완전한 관상의 영역에 올랐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메디나 수도원의 창립에 관해서」4장)


성녀「요안나.드.샹딸」은,
「방문회의 동정녀의 거의 전부에 걸쳐 있었던 경향은
극히 단순히 천주의 어전에 거닐고, 이에 온전히 맡기는 태도였다」
라고 명언하였다. (「어느 수도원장에의 서간」)


그리고 그것은 이미 일반적 묵상의 길은 아니었다.
물론 환경이 가장 좋았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까라멜리」신부는 30년의 전교생활 후,
「거의 도처에서 천주는
이 신비적 길로써 높은 완덕에 인도하시는 영혼이 발견된다는 것」
을 말하고 있다. (신비적 지도 서론)


과거에 관해서와 마찬가지로, 현대에 관해서도
경험은 천주께서 보다 탁월한 이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시는
허다한 영혼이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p.498
그런 영혼은 세속에 있어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러나 수도회, 
특히 관상생활을 영위하는 수도원 안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경건한 영혼의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또한 반드시 그럴 수도 없다.

즉 대다수의 사람은 항상 골짜기에 머물러 있으며,
꽤 많은 이가 최초의 언덕을 오르며,
매우 소수의 썩 날래고 용맹스러운 이만 절정에 이르리라.


그러므로, 고도의 신비적 관상은 극히 드물게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최초의 단계에 도달한 이는 의외에도 많다.」
(소드로「영적 생활의 단계」5권1편7장)


더구나 어느 영혼이 고해신부도 모르며,
자신마저 그것을 느끼지 않고서 관상에 들어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

「보수에」의 말로써 표현한다면,
「이것은 주신 것을 그들의 눈에 감추어 두시고,
관상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탐구하게 하시는
천주의 예지의 이상한 장난이다.」(「묵상의 상태」서언7)


그러나,
신비적 상태는 실제로는 더욱 빈번히 발견돼야 할 것이다.
천주께서는 거기에 인도하시기 바라시지만,
도중에 멈춰 버리는 영혼이 너무나 많다.


어떤 이는
복음서에 나오는 저 병자와 함께,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다」(요왕 5.7)
나를 관상의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다.
아니 나는 거기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이마저 만났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또한 어떤이는
과로, 불안, 소심 때문에 방해를 당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고귀한 진주의 값어치를 올바르게 평가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획득하기에 필요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아포기, 순명, 겸손 등의 덕을 충분히 닦고 있지 않다.

이것은 참으로 관상의 영역에 도달한 영혼이
너무나도 많지 않다는 주요한 원인이다.



「볼로냐」의 성녀「가타리나」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도 지당하다.

「오늘 만일 복음서의 성녀『막달레나』이상으로
열렬히 천주를 사랑하는『막달레나』가 있다면,
천주께서는
이를 보다 깊이 사랑하시어, 이에 훌륭한 은혜를 베푸시리라.

만일『아씨지』의 성『프란치스꼬』이상으로
주를 위하여 고난을 감수하는『프란치스꼬』가 있다면,
주께서는 그에게 보다 풍부한 보다 커다란 은혜를 주시리라.

만일 그 성덕에 있어
성녀『글라라』보다 주의 마음에 맞갖는『글라라』가 있다면,
주께서는 그를 보다 높은 은총의 보물로써 풍요하게 하시리라.」
(「성인전」5월2일)

p.499

위에 설명한 바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즉,

(1)
우리는 반드시 신비적 상태를 바라야만 된다는 것이 아니고,
천주께서도 또한 반드시 우리에게 그것을 주실 의무는 없으시다.

왜냐 하면, 신비적 상태는 완덕 자체가 아니며,
또한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유일한 길도 아니기 때문이다.


(2)
그것이 초래하는 풍부한 광명과 사랑 때문에,
또한 그것으로써 증대되는 힘 때문에,
우리는 신비적 상태를 정당히 바라고, 기구할 수 있으며,
또한 간절히 그렇게 하는 것은 온전히 허락되어 있다.

대개, 그것은 우리의 영적 활동력의 좋은 자극이 되므로,
우리가 그것을, 적어도 머나먼 이상(理想)으로서 목표로 두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3)
우리는 그 준비를 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준비는 일상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
그리스도교적 제욕의 업을 실행하는 것이며,
그리고 이것은
영적 진보에 뜻을 두는 모든 영혼에게 부과된 의무이기 때문이다.


(4)
신비적 상태에 대한 우리의 소망은 성급한 것이거나,
또는 공상적(空想的)인 것이어서는 안된다.
모든 일은 그 적당한 때에 성취돼야 하기 때문이다.

「일치의 길」의 휴식을 맛보는 데는 먼저
「정화의 길」의 쓰라린 싸움과
「조명(照明)의 길」의 오랜 노고를 겪어야 한다.

최초에 열심으로써 그것에 필요한 준비를 하는 일 없이,
헛되이 관상을 꿈꾸고, 전투와 전진(前進)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망상이다.

p.500
(5) 우리의 이 소망이,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 하드라도,
겸손과 위탁에 의해서, 그것에 절도(節度)를 주어야 한다.

겸손한 영혼은 자신을
그런 훌륭한 은총을 받기에는 맞갖지 않은 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비록 오랜 동안 아마 일생 이 은혜를 받지 못할지라도,
결코 꺼리지 않는다.

사람은 위탁에 의해서 관상과 같은 훌륭한 것에 대해서마저,
거룩한 무관심의 태도를 간직하게 되며,
천주께서 이것을 우리를 위하여 바라실 때에만 이것을 찾아 구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질서와 평화 안에 자신을 간직하고,
또한 실패하는경우에 비탄하며 낙담하는 일을 피한다.


(6) 묵상은 하나의 유력한 수단이므로,
우리는 이에 진보하기를 바라자.

더구나
묵상의 목적인 덕의 진보에 관해서는 더욱 열렬히 이것을 바라자.

우리안의 거처를 깨끗이 하고, 모든 덕으로써 꾸미며,
거기서 침묵과 기도의 생활 안에 천주와 함께 있는 일에
우리의 모든 관심과 모든 힘을 경주하자.

그리고,
비록 천주에게는 그런 탁월한 은총을 베푸실 의무가 없다 하드라도
인간의 관대함보다 더욱 커다란 관대함으로써
은혜를 풍부히 주실 것임이 틀림 없으리라.

그러나
천주께서 다른 길에 의해서 우리를 성화하기 위하여
이런 은총을 거절하신다 하드라도
우리가 지불한 노력에 대해서
은총과 영광과의 풍부한 보수를 베푸시리라.

이것이 가장 소중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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