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97 pp.486-491 제 3 편 제14장 심령생활의 신비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①

은가루리나 2021. 6. 3.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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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 위탁의 대상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①②
 제4절 장소와 환경 ①②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①②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①②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
 ⑴
 ⑵
 ⑶
 ⑷

제8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실패와 과실 -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내적시련의 일반 -
 ①
 ②
 ③
 ④

제10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유혹 -①
 - 유혹 -②
 - 유혹 -③

제11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위안과 건조-①
 - 위안과 건조-②
 - 위안과 건조-③
 - 위안과 건조-④

제12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①②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①②

제13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①②
 제2절 각가지 공포 ①②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①②
 제4절 양심상의 小心 ①②

제14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①②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례제3편 위탁의 대상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14 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신비적(神秘的)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①


p.486

 

우선 나는 다만 기도에 관해서,
더우기 거룩한 위탁의 견지에서만 이에 관하여 언급한다.

묵상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즉 우리는 이것으로써 천주께 흠숭을 다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으로써
은총의 생명에 성장하고, 따라서 영광의 생명에 성장하는것,
또한 행실을 개선하고
모든 선덕, 특히 애덕이 증대할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기도 안에서 행하는 행위와 기도에 의해서 얻어지는 은총과 기도가,
우리의 마음에 남기는 거룩한 심정에 의해서
우리는 이 목적에 인도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 가장 훌륭한 기도는,
항상 우리를 가장 유효하게 이 목적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자「루이.듀뽕」신부의 다음과 같은 말은 참으로 지당한 것이다.

「묵상에 있어서의 주안점(主眼點)은,
영혼이 자기 묵상을 행위의 개선에 향하게 하는것,
또한
영적 광명(靈的光明)도 실행이 수반되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는데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묵상에서 얻은 은총과 묵상에서 받은 광명을,
보다 순명, 유화, 인내 깊은 이가 되며,
남에게 대해서는 보다 봉사적인 이,
자기에게 대해서는 보다 완전히 이탈한 이가 되고,
비천한 직무를 더욱 애호하며,
남으로부터의 존경과 사랑에 보다 무관심하게 되고,
자의(自意)를 꺾으며,
욕망의 성급함을 억제하는데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것처럼,
덕행의 나날의 새로운 진보에 이용하여야 한다.」

p.487

또한 그는「발다살.알바레스」신부와 함께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훌륭한 묵상의 첫째 목적, 또한 그것에서 생기는 가장 탁월한 효과는
천주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든 것을 바치는 것,

비록 천주께서
건강, 명예, 재물, 그 밖의 물질상의 편익(便益)을 앗아가시고,
그 감미로운 사랑의 표시를 없애시며, 모습을 감추시고,
암흑과 겨울바람의 혹한 안에 방치하시며,
모든 종류의 유혹, 공포, 폐허의 먹이로 제공하실지라도,

어느 것이나 이것을 좋은 것으로 기꺼이 받아들여,
우리에게 관해서의 섭리의 배려에 완전히 적합하는 것이다.
이것보다 정당한 일은 없다.


왜냐 하면,
천주께서 우리에게 그런 쓰라린 길을 걷게 하시는 것은,
그로써 당신에게는 보다 큰 영광이 돌아오게 하시고,
우리에게는 덕의 길에 진보시키려는 성의 외에 또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만일 우리가 충실을 다하여 견인(堅忍) 한다면,
만일 천주께서 거절하신 위안을 피조물에게서 찾지 않는다면,
만일 천주께서 내미신 십자가를 앞에 두고 물러서지 않는다면,
반드시 성취하리라.」



천주께 흠숭을 다하는 것, 그것이 기도의 첫째 목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 진보 역시, 망각해서는 안될 다른 목적이다.

우리는 이 영적 진보를 무엇보다도 먼저 추구하며,
이것을 간절히, 또한 절대적으로 기도하여야 한다.
묵상의 양식이 어떤 것이라도, 그 귀착점은 거기에 있어야 한다.


즉 만일 묵상이 유효하게 거기에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가장 통상적인 것이라 하드라도, 그다지 불편은 없다.

이에 반하여,
만일 우리에게 이 목적이 결여돼 있다면,
비록 그것이 보다 신비적인 묵상이라 하드라도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p.488

존자「듀뽕」신부는 말을 계속한다.

「많은 영혼은 영적 생활의 각가지 길을 꿈꿀 뿐 이며,
행동의 개선과 진보를 소홀히 여기고 있는데,
그것은 참된 하나의 기만이며,
그만큼 위의 가르침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느 영혼이 오랜 묵상생활 후에도 초기 무렵과 변함이 없으며,
아무런 진보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 기만에서 생긴 것이다.

아마 그들 자신에게 있어서도, 남에게 대해서도
이 보다 화(禍)를 끼치게 하는 미혹함은 또 없으리라.」
(듀뽕「발다살. 알바레스 전」33장, 50장)



심령생활의 목적에 도달하기에는 두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일반적 길이며,
그것은 묵상과 애정을 주로 하는 묵상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신비적 길이며
거기서는 수동적 정화(受動的淨化)와 함께
암흑을 수반하는 주입적 관상(注入的觀想)이 지배하고 있다.

시현(示現), 계시(啓示), 초자연적 속삭임 등은,
이 둘째 길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으며,
또한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의 성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일반적 길로 넉넉할 것인가.

「보수에」주교는,
「이상한 묵상이 없드라도 사랑은 위대한 성인이 될 수 있다」라고 언명하였다.
(「묵상의 상태」22장)

그러나, 그는 이것을 주장하는데 불과하다.


성「프란치스꼬. 살레시오」에 의하면,

「탈혼 혹은 관상의 황홀상태를 경험하지 않았던 많은 성인들이 천국에 있다.

왜냐 하면,
그대들은 그 전기(傳記) 안에서 경건과 열심과의 은혜 외에
별로 천주로부터의 이상한 은혜를 묵상안에서 받지 않았던
많은 순교자, 위대한 성인 성녀의 일을 읽지 않는가」라고. (「신애론」7편7장)


순교자에 관해서는 누구도 이에 이론(異論)이 없다.

다른 성인에 관해서는,
성인 박사는 단지 탈혼에 관해서 말하고 있음에 불과하며,
이 탈혼에 앞선 관상의 여러 단계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p.489

「분도」14세 교황의 해석에 의하면,

시성 수속에 있어서 성교회는
항상 시성되는 이의 영웅적 덕행과 기적을 증명하는데 전심하지만,
그러나
「주입적 관상(注入的觀想)의 문제가 없어도 시성된 많은 성인이 있다.」
(「열성에 관해서」3편26.8)


이것은 신비적 상태가 성덕에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일까.

그것은 오히려 신비적 상태의 존재와 또한 그 정도의 여하를
후에 이르러 확증하는 일이 흔히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문제는 원리로서 미확정(未確定)의 일에 속한다.


실제 「뿔랑」신부에 의하면,

「역사적 연구의 결과,
열성(列成)된 성인들의 거의 모두가 신비적 일치의 상태에 이르고,
또한 일반적으로 풍부하게 그것을 경험하고 있었다는 것,
또한 약간의 성인은 이에 결여돼 있었다고 보통 믿어지고 있지만,
어느 성인에 관해서는 이 단정은 그릇된 것이고,
그것에 관해서는 아무런 증거가 없으며,
어느 경우에는 기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라는 결론이 나온다.(「묵상의 은총」28.2)



일반적 길은, 적어도 높은 완덕에 도달하기 위하여 넉넉하겠는가.
보통 이것은 긍정되고 있다.

「아뷜라」의 성녀 대「데레사」가 신비적 관상에 아낌 없는 찬사를 하고,
또한 그것을 열렬하게 바라도록 권고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여 아직 그것에 도달할 수 없었던 자기 수녀들을 위로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께서는 결코 같은 길로써 우리들을 인도하지 않으신다는 것,
자신의 눈에 가장 하찮은 이로 보이는 이가,
흔히 주의 어전에는 가장 훌륭한 이가 될 수있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음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 수도원의 모든 이가 묵상에 면려하드라도,
모두가 관상의 영역에 도달해야 된다는 일은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 관상에 들어가지 않는 이라도 지금 말한 일을 충실히 다한다면,
완덕의 지극히 높은 영역에 도달할 수 있고,
그리고 자신의 노력이 많을수록,
다른 이보다 탁월하게 커다란 공로를 세울 수 있다.

주께서는 그런 영혼을 강한 이로서 취급하시며
천국에 있어 그들을 위하여 대비하시는 행복에,
그들이 이 세상에서 맛보지 못했던 모든 위로도 덧붙여 주시리라. ....


성녀 『말다』는 관상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훌륭한 성인이었다.
만일 그가 『마리아』처럼 사랑에 충만한 관상에 잠겨 있었다면,
누가 주의 식사를 준비했을 것인가.

관상, 묵상, 염경기도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우리가 항상 이 거룩한 손님을 접대하는 이상,
주께 대한 의무를 수행하는데 무엇으로 하거나 별로 다른 것은 없다.」
(「완덕에의 길」18장)

p.490

성「프란치스꼬.살레시오」의 가르침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주께서 그런 감미로움
그런 정관(靜觀)의 은혜를 한번도 주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극히 완전한 영역에 도달한 이가 있다.

그들이 자기 영혼의 상부에 있어 모든 것을 하고,
그 오성(悟性)의 첨단에 있어,
억지로 자기의지를 천주의 의지 안에 죽이려는
그런 죽음이야말로 십자가의 죽음이며,
다른 죽음보다도 훨씬 탁월한, 그리고 관대한 것이다.」(「대화편」2 )


「보수에」는 이에 관하여

「묵상이 능동적인지 수동적인지에 의하여,
영혼의 공로와 그 완전성을 운운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천주로부터 풍부한 은총이 주어진 영혼의 공로를,
천주 자신이 그들에게 베푸신 마음가짐과,
당신 홀로 알으시는 그들의 신애(神愛)와
그 밖의 덕의 정도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홀로 천주께만 속하는 일이다」라고 결론하였다.(「묵상의 상태」9편 12, 13 )

p.491

나는 「알바레스.드.빠스」의 말로써 다음과 같이 결론한다.

「완덕에 도달한 모든 이는,
반드시 완전한 관상에 높여져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 하면,
전능하신 천주께서는 완전한 자, 성인을 만드시기에
다른 각가지 틀리는 길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천주께서는 어떤 이를
고뇌, 질병, 유혹, 박해 등의 길에 의해서 놀라운 완덕에로 인도하시고,
다른 이를
활동생활의 노고, 또한 지극히 순수한 의향으로써,
사람들의 구령을 위하여 진력하는 사도적 사업에 의해서 성화시키시고
또한 다른 영혼을
일반적 묵상과 만사에 있어서의 제욕의 길에 의해서
탁월한 성덕의 영역에 이르게 하신다.

그리고,
관상의 탁월한 은혜를 받은 이라도,
사랑의 완전함에 있어, 이것을 받지 않은 이에 비하여 열등할 수도 있다.」
(「전집」3권 5편 2부 3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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