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102 pp.511-515 제3편 제14장 심령생활의 신비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 2 절 신비적 관상의 각가지 상태 ③

은가루리나 2021. 6. 21.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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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 위탁의 대상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①②
 제4절 장소와 환경 ①②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①②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①②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
 ⑴
 ⑵
 ⑶
 ⑷

제8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실패와 과실 -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내적시련의 일반 -
 ①
 ②
 ③
 ④

제10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유혹 -①
 - 유혹 -②
 - 유혹 -③

제11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위안과 건조-①
 - 위안과 건조-②
 - 위안과 건조-③
 - 위안과 건조-④

제12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①②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①②

제13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①②
 제2절 각가지 공포 ①②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①②
 제4절 양심상의 小心 ①②

제14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①②③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①②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례제3편 위탁의 대상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14 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신비적(神秘的)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각가지 상태 ③


p.511

영해 예수의 성녀「데레사」는, 그 서원(誓願) 전의 묵상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묵상에 의해서 위로를 받는다는 것보다는
도리어 더할 나위 없는 혹심한 무감각이며,
거의 버림 받는 것과 같은 모양이 었읍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나의 조그마한 배 안에서 잠들어 계셨읍니다.

.....주께서는 아마 내가 영원한 대묵상(大默想)에 들어가기까지
눈을 뜨지 않으시리라.

그러나, 그것은 괴롭기는 커녕,
나에게 있어 다시 없는 하나의 기쁨입니다.

.....나는 이 무감각의 원인을
자신의 열심하지 못함, 충실하지 못함에 돌려야 합니다.
나는 묵상이나 감사의 기도 동안에 자주 졸았던 것을 슬퍼해야 합니다.

그러나,나는 이것을 너무 한탄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자고 있을 때에도,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마음에 드는 것이므로. 」



이 안도의 정은 그의 어린이로서의 신뢰와 겸손에서 우러난 것이다.
그러나 성녀는 마음을 다하여 성공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였다.
그는 또한 천주께서 부딪치게 하신 무서운 시련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원장님,
당신에게는 내가 큰 위로에 충만한 것처럼 생각되시고
신앙의『베일』이 거의 찢어져 있는 어린이와 같이 여겨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베일』이 아니라,
하늘에까지 솟아 있는, 별이 빛나는 창공을 덮는 벽입니다.

나는 천국의 행복을 노래할 적에도,
그것에 관해서 조금도 기쁨을 느끼지 않고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다만 믿고 싶다고 바라는 것을 노래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이 십자가를 내가 감내할 수 있게 됐을 적에만 주셨읍니다.
전에 그런 십자가를 짊어지게 됐더라면, 아마 실망에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십자가는 유일한 것,
즉 천국을 구하는 치열한 소망에 있어서의 자연적인 만족의 느낌을
모두 제거한다는 유일한 것을 주고 있읍니다.」(자서전 89장)

p.512

위에 말한 것은,
특히 희미한 그리고 일반적인 관상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 관상 이외에 또한 다른 명백한 특수적인 관상,
즉 시현(示現), 계시(啓示), 내적 담화(內的談話)등 안에
영위되는 관상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천주에 의해서 일반적인 길로써 인도되기를 바랄수록,
그런 관상에 대하여 거룩한 무관심을 실천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특수한 은혜는 반드시 성덕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아브라함」도 「사울」도 예언하고, 또한 「유다」도 예언했으며,
기적마저 행하였다.
또한 「라.살렡」(La Salette), 「루르드」(Lourdes), 「파티마」에 있어서는
어린이가 현시(顯示)를 받았다.

이에 반하여
많은 성인들은 이런 특수한 은총을 받지 않은 이처럼 생각된다.



현대에 있어서도, 천주께서는 그런 은총을
성녀「젬마.갈가니」,「젤뜨루다.마리아」동정에게 풍부히 베푸셨다.

그러나
영해 예수의 성녀「데레사」, 삼위일체의 「엘리사벳」동정,「세리나」동정은
전연 또는 거의 그런 은혜를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런 은총은 성덕 자체가 아니며, 성덕의 표시도 아니다.


성녀 대「데레사」는 지당하게도 다음과 같이 단정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은총을 가끔 받았다 하더라도,
영혼이 그만큼 커다란 하늘의 영광에 맞갖는다고 말할 수 없다.

.....주의 눈에 있어 우리의 공로는 결코 이런 종류의 은총에 의한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조금도 이런 은총을 받지 않은 성인도 있으며,
또한 이런 은총을 받고 있으면서도 성인이 되지 않은 이가 있기 때문이다.」
(「영혼의 성」제6,9장)



이런 은총은 완덕에 이르는데 필요한 수단도 아니다.
그러나 이 은총에 충만돼 있던 성녀 대「데레사」는
그 훌륭한 효과를 크게 찬양하고 있다.

p.513
「우리는 그것에 탁월한 가치를 인정하여야 한다.
내가 받은 현시(顯示)안에서,
나를 덕에 진보시키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곧잘 듣는 하나의 영적 속삭임,
『아베.마리아』동안에만 계속하는 하나의 현시(顯示」,하나의 집중(集中)도
내 영혼을 완전한 평화 안에 두고, 육신에마저 건강을 주며,
오성(悟性)을 광명으로 충만케 하고,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힘과 소망을 회복시킨다.

나는 과거의 상태를 반성하고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극히 짧은 시간이기는 하나 이런 은총은
자신이면서 자신이 아닌 것처럼 생각될 정도로,
전연 나를 일변시켰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자서전 28장)


그러므로 누가 만일 편견(偏見)에 사로 잡히고 선입관이 지나쳐,
이런 모든 종류의 은총을 배척하려 한다면,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성신이 만일 이 길에 의해서 우리를 성덕에 인도하시려 하신다면,
그것은 성신에게 길을 봉쇄하는 것이 되리라.



그러나 천주로 부터 온다는 이유로,
유익한 또는 탁월한 은총이 있다 하드라도
악마의 간계, 또는 상상의 장난인 것 같은,
이에 유사한 어떤 유해한 현상도 있다.

다른 어떤 경우에 있어서보다도,
이점에 관해서 쉬이 착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며,
성인들마저 일반적으로 이 미혹함에서 면할 수 없었다.


한 예를 든다면,
성녀「가타리나.볼로냐」는 수도생활의 최초의 5년동안,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의 모습 또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가장하여 나타나는 악마에게 속고 있었다.

그것은
성녀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었던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성녀 대 「데레사」는,
우리가 자진하여 이런 종류의 은혜를 구하려는 것을 경고하여,

「그런 소망 자체가 이미 망상이며,
또는 미혹함에 발을 디딜 커다란 위험에 자신을 처하게 한다.

왜냐 하면,
악마가 무수한 함정 안에 우리를 빠뜨리게 하기에는,
악마에게 극히 사소한 틈을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또한 다만 하나의 치열한 소망도 상상도 일으키어,
그럼으로써 보지도 듣지도 않은 일을 마치 보고 들은 것처럼
생각케 하기 쉽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p.514
이에 반하여,
「영혼이 망상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겸손함과 순박함의 길을 걷는다면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자서전」28장, 「영혼의 성」제6.9장)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어느 때보다도 우리는 기도하고 반성하며, 충고를 구하고
현덕(賢德)의 가장 신중한 모든 법칙에 따라야 한다.



십자가의 성「요왕」이,
현시, 계시, 내적인 영적 속삭임을 믿지 않을 것,
이에 저항해야 된다는 것,
이에서 이탈할 것을 얼마나 역설하며 권고하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성녀 대「데레사」는 가장 원만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천주로부터 온 것임이 확실히 될 때까지는
항상 유의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런 현상의 시초에 가장 안전한 길은
항상 그것과 싸운다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만일 그것이 천주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면
내 자신의 부당함을 반성하고,
자신은 그런 은총에 맞갖지 않다고 생각하는 영혼의 겸손한 태도야 말로,
그것을 받기 위한 가장 훌륭한 준비이며,
그 진위(眞僞)를 시험함에 따라,
그 만큼 이 현상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은총을 받은 이를 너무나 억제하여 불안에 빠뜨리지 않도록
경계하여야 한다.」


주의 현시에 관하여 성녀는 이어 말한다.

「같은 길에 의해서 주께서 그대들을 이끄시기를
결코 바라거나, 간청해서는 안된다.

물론 이 길은 탁월한 것이며,
그대들은 이것에 충분한 가치를 인정하고,
이것을 깊이 존중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바라거나 간청돼야 할 것이 아니다.」

p.515
성녀는 우리를 거룩한 위탁에 인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이익을 기대하고 있는 사물에서
뜻밖에 손실을 입는 일이 없다고는 할 수없다.

주께서 우리를 가장 알맞는 길에 의해서 인도하시고
그럼으로써 만사에 있어 그 뜻이 이루어지시도록,

우리가 자신에 관해서 아는 것보다도,
더욱 잘 우리를 알으시는 주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대신에

어떤 것이 가장 안전한 인도인지 모르고,
자진하여 걸어야 할 길을 맘대로 선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떤 기괴한 무모한 무모 함이랴」고. (「영혼의 성」제 6.3, 9장)


그러므로 현명한 자중(自重)과 효애(孝愛)에 충만한 위탁이 가장 필요하다.
성녀의 이 결론을 택하여 나의 결론으로 삼는다.

과연 「너희는 성신을 끄지 말지어다.
건설적 설교의 특은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모든 것을 음미하여 좋은 것을 취하라」(뎃살로니카 후서 5.20-21) 는
성신의 훈계하심에 보다 훌륭히 조화되고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은, 근본적인 일이 
우리의 묵상이 
능동적인 것인가 수동적인 것인가,
우리의 관상이
평온한 것인가, 기도적인 것인가,
감미로운 것인가, 건조한 것인가,
희미한 것인가, 광명에 넘치는 것인가의 여하에 의하지 않고

도리어 우리의 기도가
자기포기, 겸손, 순명 등의 풍부한 열매를 맺고
우리를 모든 덕에, 특히 애덕, 신뢰, 거룩한 위탁에
성장시키는가 어떤가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위에 말한 각가지 변화는,
곧 영혼으로 하여금
겸손이라는 보물을 자기 안에 간직하면서 천주의 손 안에 있어,
솔직하고 유순한 이가 되게 하는데 극히 적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