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106 pp.529-533 제3편 제14장 심령생활의 신비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4절 ②

은가루리나 2021. 7. 9. 02:15

 

★거룩한위탁
제14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신비적(神秘的)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4 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2)

옴니아 추천 0 조회 143 14.01.02 20:03


제3편 위탁의 대상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①②
 제4절 장소와 환경 ①②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①②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①②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
 ⑴
 ⑵
 ⑶
 ⑷

제8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실패와 과실 -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내적시련의 일반 -
 ①
 ②
 ③
 ④

제10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유혹 -①
 - 유혹 -②
 - 유혹 -③

제11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위안과 건조-①
 - 위안과 건조-②
 - 위안과 건조-③
 - 위안과 건조-④

제12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①②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①②

제13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①②
 제2절 각가지 공포 ①②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①②
 제4절 양심상의 小心 ①②

제14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①②③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①②③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①②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①②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례제3편 위탁의 대상 ①②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14 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신비적(神秘的)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 4 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②



p.529

신비적 영향이 느껴지지 않게 됐을 때,
영혼은 익숙한 유효한 방법으로써 스스로 선정(選定)한 기도에 종사한다.

이 때 영혼은 수동적 묵상 동안에 이루지 못한 것을 보충하며,
경건한 독서에 면려하고, 적당한 감정을 일으키고 기도한다.


성「프란치스꼬. 살레시오」는
성녀「요안나.드.샹딸」과 그 수녀들에게 준 지도 안에서
빈번히 이것을 권장하고 있다.

묵상 후에는,
영혼은 그 모든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또는 내적 제욕(內的制慾)에 의해서,
성의시라면,
한층 탁월한 새로운 은총에 대한 준비가 되는
열심과 순결 안에 머물도록 전심한다.

p.530

천주께서 이 영혼을
수동적 세련(受動的洗練)의 불가마 안에 싫증이 날만큼 거듭 던지실 때,
영혼은 하늘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은 묵은 사람에 대하여만 손실을 끼치는 것이다.

영혼은 천주의 손 안에 있다.
아무리 몸부림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천주는 전능하시다.
시련을 단축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탄식하지 않고, 반항하지 않으며 걱정하지 말고, 복종하는 것이다.


순연한 수동적 상태에 멈추는 일 없이, 오히려
우리의 가장 훌륭한 벗, 무한한 예지, 지선하신 성부께 신뢰를 바치며,
손도 발도 모두 내밀어 원하시는대로
언제까지나 십자가에 못박으시도록 맡겨 드리자.

묵상에 유쾌한 맛이 없고 권태를 느낄 때에도
결코 이것을 버리는 일 없이,
평소와 다름 없이 그것에 달려들며,
용기를 북돋아 의무를 완수하자.

자신이 건조의 원인을 만드는 일 없이, 천주의 어전에 낮추며,
통회하고 복종과 변함 없는 신뢰에 충만한 태도를 간직하자.


그렇게 하면, 이 괴로운 상태는 실제로
이것이 초래할 수 있을 정도의 겸손, 자기포기, 거룩한 위탁을
우리에게 부여하리라.
이렇게 하여 우리는 풍요한 이익을 거둘 수 있다.



성녀「요안나.드.샹딸」이 자신도 행하고, 
자기 수녀들에게 실행시킨 길은 이것이었다.

「그는 이 수동적 상태 안에 있어서도,
천주께서 활동을 멈추시고, 또는 마음을 자극하실 적에는,
결코 스스로 행위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항상 그 행위는 오래 계속되지 않으며,
겸손과 사랑에 충만된 것이었다.

그는 곧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의 딸이여,
천주께서 그것을 바라시고,
은총의 움직임에 의해서 그것을 드러내실 적에는,
나는 내적인 어떤 행위를 하든지 또는 무슨 외부적인 말을 외우지만,
특히 유혹을 물리칠 때 그렇게 합니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무모하게 혼자서 결정한다는 것은,
천주께서 결코 나에게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때라도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실은 그것을 하기 싫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안나.마리아.롯세』동정은,
스스로 느끼지 않고서 행위를 하고 있으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나는 그에게 외부적으로 행위를 하도록 권장하고 있읍니다. 』」

성녀「요안나.드.샹딸」의 전기자(傳記者)는 더욱 계속한다.

p.531

「성녀는 무슨 일이나 은총의 움직임에 응해서만 하도록 유념하고 있었다.

천주께서 그를 활동에 재촉하시거나,
또는 그 활동을 중지하시어, 그의 자유에 맡기시거나,
성녀는 항상 은총의 움직임에 온전히 복종하였다.

그처럼 성녀는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기고,
뜻대로 바꾸시는 능동과 수동과의 상태 안에 지내고 있었다.


『보수에』는 이에 관해서
『그의 생애의 장식이 된
놀라운 각가지 덕, 복종, 인내의 행위를 자아낸 이유가 된 것은
천주의 손 아래 그로 하여금 극히 유순하게 하고,
천주께서 그를 두시는 상태에 끊임없이 순응(順應)시킨
이 위대한 성녀의 생애에 있어서의 현저한 변화다 』라고 말하였다.


처음에는
이 보통이 아닌 상태를 그는 묵상 동안에만 경험하였는데,
그 후, 미사성제 영성체 성무일과 동안에도,
때로는 가끔 온 종일 계속하여 그것을 느끼게 되었다.
때때로 그것은 순간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그 동안 성녀는 눈을 감고
무언 가운데 단순한 응시로써 천주와 일치하고 있었다.

또한 어느 때, 이런 상태는 몇 시간 계속하였는데,
그 동안 이것 때문에 정신의 자유도 행동의 자유도 방해되는 일은 없었다.」
(부고 주교「동 성녀전」18장, 보쉐「묵상의 상태」8편 26-40)

p.532

이 마지막 고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으리라.
즉 영혼은 묵상에서와 마찬가지로
행동의 한가운데서도 천주에 의해서 움직여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우리는 오래 기도에 관해서 말하였다.
그것은 신비적 영향이 미치는 것은,
특히 기도에 있어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말해 온것은 이 영향이 어떤 것인가,
또는 그것이 기도 이외에서 느껴질 때,
어떻게 이에 응하게 할 것인지 잘 이해시키리라.



일반적 길에 있어서는 은총은,
그것을 받은 이에게 있어서마저 감추인 것이다.

은총은 자발권(自發權), 
자유로운 일에 있어서의 선택, 고찰, 결심, 실천 등을
우리의 의지에 맡기고 있다.

근본에 있어서는 모든 것은 성신에게서 오는 것이다.
과연 성신께서 우리 안에 그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시고, 
그것을 바라며, 실행하도록 돕지 않으시는 초자연적 업은
하나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신은 모습을 감추시며,
우리의 자연적인 방식에 응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은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은총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
또한 어떤 경우에는 성신의 은혜로써 지탱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신앙에 의해서 알고 있다.



이에 반하여,
신비적 묵상에 있어서도 신비적 활동에 있어서도 그 작용하심이 느껴지고,
말하자면 그것은 명백하게 된다.

거기서는 이미 천주의 활동은 인간의 방식에 구속되지 않는다.
갑자기 영혼은 비추이는 것을 느끼며,
신적 본능(神的本能), 특수한 영시(靈示), 특별한 자극에 움직여진다.

p.533
천주의 활동이 아무리 돌발적이며,
아무리 감미에 지배적인 것이라 하드라도
그것은 자유의지의 활동을 결코 억압하지 않는다.

이 때 영혼은 커다란 기쁨으로써 이것을 받아들이고,
이에 응하기 위하여 그저 모든 세력을 모이게 한다.


그래서 「보수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성신에 의해서
보다 강하게 자극되고 움직여지며, 격려됨에 따라,
그만큼 우리는 활동적이 된다.

성신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활동에 자신을 넘기는 이 행위는
말하자면 우리를 온전히 성주를 위하여 활동시킨다」라고.
(위탁의 행위에 관해서)

그러나 다른 의미에 있어,
우리가 수동적이 될수록 그만큼 비활동적(非活動的)이 되며,
그리고 위로부터의 힘이 활동하기 시작하고, 행위의 선택을 하며,
고찰을 신적 본능(神的本能)에 바꾸어
즉시 실행에 재촉한 것을 그 때 잘 느낀다.

어떤 영혼이 자주 이런 신비적 영향을 받을 때,
이를 표현하는데,
이 영혼은 성신의 지도 아래 있다는 말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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