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118 pp.586-589 제 4 편 제2장 제4절 평화와 희열 ③

은가루리나 2021. 9. 21.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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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편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과 효과


제1장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 ①②③

제2장 거룩한 위탁의 효과
 제1절 천주와의 친밀 ①②
 제2절 단순과 자유
 제3절 정신의 안정과 마음의 평온
제4절 평화와 희열 ①②③
 제5절 거룩한 임종과 천주의 어전에 있어서의 힘 ①②

결론 ①②③

  역자 후기




제 4 편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優越性)과 효과(效果)

제 2 장
거룩한 위탁의 효과


제 4 절 평화(平和)와 희열(喜悅) ③


p.586

병고에 창백해지고,
고열로 고통을 겪었던 삼위일체의 「엘리사벳」동정은,
임종이 박두한 어느 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나를 위하여 열려 있는 것은 『갈바리아』의 길입니다.
나로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정배로서,
그 곁에 의지하면서 이 길을 걷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아, 만일 그대가
내가 보내고 있는 이런 거룩한 날의 일을 깨달으신다면!
나는 지금까지 없었던 커다란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고뇌의 환희!
아, 그것은 얼마나 감미롭고 유쾌한 것입니까.

이 좁은 방 안에서,
나는 이미 오직 천주님과 단 둘이서
지극히 사랑하올 주와 함께 십자가를 짊어지면서,
어느 정도 천국의 지복을 맛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의 행복은 고통이 더함에 따라 더욱 더 크게 돼 갑니다.

아, 만일 그대가 하늘의 성부께서 주시는 잔 밑에,
얼마나 깊은 감미가 있는지 깨달으신다면!」(「회상」14, 15장)

p.587

영해 예수의 성녀 「데레사」도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신의 일을 구하기를 그치고 나서
나는 누구의 상상도 미치지 못하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생활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실제, 고통은 그에게 있어 천국이었다.
우리가 행복에 대하여 하는 것처럼
그는 미소로써 고통을 맞이했다.

「나는 몹시 고통을 당할 때, 각가지 쓰라린 일이 일어날 때,
고통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대신 미소로써 이를 맞이합니다.
처음부터 항상 그것에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나는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 하면,
어떤 고통도 나에게 있어서는 모두 감미로운 것이 됐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왜 그처럼 기뻐하고 있습니까.」

.....「사소한 두가지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소한 고통은 무엇보다도 사소한 기쁨을 내게 줍니다.」


「오늘은 매우 괴로운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마는 나는 그것을 사랑하고 있으므로..... .
나는 천주님이 주시는 것은 무엇이나 사랑합니다.
나의 마음은 예수님의 의지로 가득 차 있읍니다.」(「자서전」12장,「회상」)



끝으로 우리는
유명한 「다울러르」의 「신학자와 거지와의 대화」를 듣자.
(고디에「영적생활의 완전」3편2장에 의한)

「어느 신학자(그것은 「다울러르」자신)가 8년 동안,
진리의 길을 가르쳐 주는 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단 없이 천주께 기도하였읍니다.

어느날,
전에 느끼지 않았을만큼 치열하게 이 소망에 타오르고 있을 때,
하늘로부터의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를 나와 성당의 계단에로 가라.
그대는 거기에 진리의 길을 가르쳐 줄 이를 만나리라』고.

나와보니, 거지 한 사람이 있었다.
맨발째 두 발은 상처를 입었고, 갈라져 있었으며, 흙투성이 되고,
몸에는 때로 더럽혀진 남루한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신학자는 인사를 하였다.


『주께서 네게 좋은 하루를 주시기를!』

거지는 대답하였다.
.....『나는 한번도 나쁜 날을 만난 적이 없읍니다.』

『주께서 네게 복을 베푸시기를!』 신학자는 말을 이었다.

거지는 곧 대답한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불행한 적은 없었읍니다.』라고.


『주께서 너를 축복하시기를!
그런데 똑똑히 말해다오.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신학자는 반문한다.

.....『좋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좋은 날이 있기를 바라셨지만,
나는 한번도 나쁜 날을 만나지 않았다고 대답하였읍니다.

실제, 굶주림에 절박해 있을 적에, 나는 천주님을 찬미합니다.
추위에 고통을 당하더라도, 우박이나 눈, 비가 내려도
날씨가 좋거나, 폭풍우를 만나도 나는 천주님을 찬미합니다.
결핍, 거절, 치욕을 당하드라도, 마찬가지로 천주님을 찬미합니다.

그러므로, 즉 나에게는 나쁜 날이라곤 하루도 없읍니다.
당신은 또한 좋은 행복한 날을 지내도록 바라셨지만,
나는 조금도 불행하지 않다고 대답하였읍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나는 천주님과 함께 살고 있으며,
주께서 하시는 것은 모두 좋은 일 뿐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천주님으로부터, 또는 남에게서 받는 것을 허락하시는 것은
순경과 역경, 즐거움과 괴로움의 어느 것도 행운으로 여기고
그 손으로부터 기꺼이 받읍니다.

그것 뿐 아니라,
나는 천주님의 의지에만 따르기를 굳게 결심하고,
주께서 바라시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 될수록
깊이 자신의 의지에 융합시킵니다.
따라서 내게는 이제까지 불행한 일이 한번도 없읍니다.』.....


『그런데, 만일 천주님이 너를 지옥에 던지시려고 하신다면?』

..... 『지옥에 던져 넣으신다고 말씀하십니까.
만일 천주님이 그렇게 하신다면,
보시다시피 두 팔이 있으므로, 천주님을 굳게 잡겠습니다.

참된 겸손인 왼 팔로 거룩한 인성을 꽉 잡고,
그리고 사랑의 바른 팔로는 그 신성(神性)을 잡아
굳게 들어붙어 떠나지 않겠읍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나를 지옥에 빠뜨리시기를 바라신다면
주께서도 함께 거기에 가셔야 합니다.

천주님을 떠나서 천국에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천주님과 함께 지옥에 있는 편을 나는 훨씬 원하고 있읍니다.』.....

p.589

그래서 신학자는 깊은 겸손에 결부된 참된 자기포기가
천주께로 가기 위한 최단의 지름길임을 깨달았다.
그는 또 물었다.

『너는 어디에서 왔는가.』
.....『천주님에서 왔읍니다.』

『어디에 천주님을 뵈올 수 있었던가.』
.....『모든 피조물을 버린 곳에.』

『주는 어디에 살으시는가』
.....『순결한 마음과 선의의 사람들 안에.』

『대체 너는 누구냐.』
.....『왕입니다.』


『네 왕국은 어디에 있는가?』

.....『영혼 안에 있읍니다.
왜냐 하면 나의 영혼의 모든 감정과 모든 능력이
내게 복종하도록 안팍의 감각을 다스릴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 왕국은 의심 없이 지상의 모든 왕국보다도 귀중한 것입니다.』


『대체 누가 너를 그렇게도 훌륭한 완덕에 이르게 하였는가』

.....『침묵과 깊은 묵상과 천주와의 일치입니다.
나는 천주 이외의 어떤 것 안에서도 조금의 안식을 찾아볼 수 없었읍니다.
지금 나는 나의 천주를 발견하고,
천주 안에 완전한 휴식과 변함 없는 평화를 가지고 있읍니다.』


이것이『다우러르』와 거지와의 대화다.

이 거지는 자기 의지를 천주의 의지에 온전히 적합시킴으로써,
그 가난함 가운데 있어 왕보다도 부유하고,
그 고난 가운데 있어, 자연의 모든 힘과 협력하여
만족을 얻게하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을 맛보고 있었다.
(샹.쥬르 「예수.그리스도에의 인식과 사랑」2편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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