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116 pp.578-582 제 4 편 제2장 제4절 평화와 희열 ①

은가루리나 2021. 8. 23.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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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편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과 효과


제1장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 ①②③

 제2장 거룩한 위탁의 효과
 제1절 천주와의 친밀 ①②
 제2절 단순과 자유
 제3절 정신의 안정과 마음의 평온
 제4절 평화와 희열 ①②③
 제5절 거룩한 임종과 천주의 어전에 있어서의 힘 ①②

결론 ①②③

  역자 후기




제 4 편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優越性)과 효과(效果)

제 2 장
거룩한 위탁의 효과


제 4 절 평화(平和)와 희열(喜悅) ①


p .578

거룩한 위탁은 단지 인생의 무상(無常)함,
인생의 각가지 사건 안에 있어 귀중한
천주의 자녀의 자유, 유쾌한 정신의 평온을 얻게 할 뿐 아니라,
지상에 있어서의 참된 행복, 즉
깊은 평화와 내적 희열(內的喜悅)도 우리에게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를 천주의 의지에 온전히 적합시킴으로써,
우리는 지상에 있어 맛볼 수 있는 가장 완결한 휴식을 획득할 수 있다.
그것은 지상을 낙원으로 바꾸는 수단이다.

어떤 사람이 전에
『아라곤』및 『나뽈리』의 왕인 총명하고 박학한 대『알퐁소』에 묻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는 누구냐고 말을 던졌다.

왕은 이에,
천주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이,
행복 불행의 구별없이
모든 일을 천주의 손으로부터 오는 것으로서 받아 들이는 이야말로,
그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샹.쥬르「예수.그리스도에서의 인식과 사랑」3편 8.5)

p.579

「게」주교는 이에 또한 덧붙인다.

「『엘리파스』는 『야곱』에게 말하였다.
『천주의 성의에 승복하라. 그러면 너 평안을 얻으리라』고.
성서의 다른 곳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같이
이 평화는 그치지 않는 평화, 큰 강처럼 유유히 흐르는 평화다.

화목하는 이, (마태오5.9) 즉 평화를 주위의 모든 이에게 나누어 줄만큼
풍요한 평화의 보물을 가지고 있는 이가 바로 천주의 아들이다.
그리고 가장 훌륭한 의미로서의 천주의 아들이란,
온전히 천주의 손에 맡긴 영혼을 말한다.

나에게 충실한 자들의 백성,
미소한 자, 어린 자, 몸을 맡긴 자들의 이 백성,
『그는 신뢰의 장막 밑에 아름다운 평화 안에,
바라는 모든 것 이루지 못할 바 없는 커다란 휴식 안에 좌정하리라.』
(욥22.21)


저 위탁의 찬미가라고도 부를 수 있는 『성영』제 22를 읊었을 때,
성왕『다위』는 이 막사 안에 살고, 이 휴식을 즐겼다.

『주께서 나를 양처럼 치시니,
나는 아무 것도 아쉽지 않나이다.
그 이는 푸른 풀밭에 나를 눕게 하시나이다.
내가 쉴 수 있는 물터로 나를 인도하시고,
나의 심신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그 외아들 예수의 거룩하신 이름 때문에
『나를 똑바른 지름 길로 걷게 인도하시나이다.』

그러므로
아, 거룩한 스승이여, 아, 나의 인도자시여, 아, 나의 어머니신 섭리여,
『나는 비록 어두운 골짜기를 걷더라도,
당신이 나와 함께 하시니,
불행 당할까 두려워하지 않으오리다.
당신의 막대기와 당신의 지팡이,
이것들이 나에게 위안을 주나이다.』


..... 그렇다. 
위탁은 평화를, 깊고 완전한, 
말하자면 산란되지 않는 평화를 생기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생활과 선덕」중「위탁」3)

p.580


「실제 이 거룩한 위탁의 길을 걷는 영혼은,
변함 없는 정온(靜穩)을 즐기며,
그들만이 깨달을 수 있고,
또한 지상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아낼 수 없는 평화 안에
세상을 보낸다.

『시에나』의 성녀『가타리나』는
주께서 전에 영혼 안에,
섭리라는 극히 견고한 돌로써 하나의 숨은 집을 만드는 것,
그리고 거기에 끊임없이 들어박힐 것을 가르치신 것을 말하고 있다.

왜냐 하면, 이렇게 하여
그는 확실히 행복을 간직하고,
완전한 영혼의 휴식을 찾아냈으며,
모든 번잡함, 모든 폭풍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 사람은, 영혼이 어린이와 같이 사랑에 충만한,
전능하신 섭리의 팔에 안겨, 안식하는 상태보다도 
복된 상태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 영혼의 지복을 확실히 묘사하기를 바란다면,
홍수 동안에 「노에」의 일을 회상하라.

즉 「케배 안의 『노에』는
사자, 호랑이, 곰 등과 함께 있으면서 평화스러웠다.
왜냐 하면,
다른 이가 육체, 정신과 함께 아직까지 있어 본 적이 없는
광란하는 파도 안에 용서 없이 삼켜지고 있을 때,
천주께서는 그를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섭리에 몸을 맡기고,
그것에 자기 일엽편주의 조종을 맡긴 영혼은
모든 고난의 한 가운데서도, 완전한 평화를 즐기며, 
인생의 큰 강을 조용히 항해한다.

이에 반하여,
『방종한 영혼』, 섭리에 반역하여 도망친 노예는
쉴 새 없는 불안에 사로잡혀
정처 없는 자기의 소경된 의지 외에는,
해상안내자(海上案內者)를 가지지 않으므로,
오랜 동안 폭풍에 시달리고,
드디어 비참한 난파의 쓰라림을 당하여야 한다.」
(샹.쥬르 「예수.그리스도에의 인식과 사랑」3편 8, 5및 10절)

p.581

「게」주교도 말한다.

「실제, 그대의 마음의 동요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단지 표면에 파도를 일게 하는 동요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느끼기 쉬운 성질이면, 이런 종류의 동요는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혼의 속 깊은 곳에 까지 도달하고,
거기서 덕마저 교란시키는 동요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다.

무엇이 이 동요의 원인이겠는가.
그대에게 내려진 명령인가, 혹은 예기치 않았던 사건인가.

아니다,
왜냐 하면, 그대의 평화를 빼앗는 이 십자가도
그대의 동료 수도자에게는 완전한 평화를 주지 않는가,
그것은 어찌 된 셈이냐.


다름이 아니라,
그대의 동료 수도자는 그 의지를 온전히 천주께 맡겨 드렸지만,
그대는 그것을 피하고,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혼란은 다만
자의(自意)와, 천주께 대한 이 자의의 반항에서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허다한 혼란이나 불안의 원인은 자의(自意)다.
그리고, 위탁은 그것이 생기게 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동서)



실제, 자신을 천주께 맡긴 영혼은,
자기 의지를 천주의 의지 안에 융합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따라서,
그 소망을 거스르는 아무 것도 일어나는 일 없고,
그 감정을 해치는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그에게 일어나는 것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살비아노」는 말하였다.

「나에게는 세상의 누구도 이런 영혼보다 복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들은 수치를 당하고 모욕을 받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것을 바란다.

그들은 가난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가난함 가운데 있어 기뻐한다.
이것이 그들이 항상 충족하고 있는 까닭이다.」(「섭리」1편)


p.582
「어떤 일도 의인의 마음을 슬프게 하지 않으리라」
예지는 말하였다.(잠언 12.21)

즉 무엇이거나 그의 정신의 평화함과 고요함을 교란할 수 없다..
그것은 그가 자기 신뢰를 천주께 두고,
주께서 바라시는 모든 것을 미리서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천상의 평화가 아니며, 지상의 평화라는 것은 명백하다.
지상에 완전한 평화, 영원히 계속되는 지복(至福)이 있음은
천주의 의지가 아니다.


우리는 고난에서 도피할 수 없다.
십자가는 도처에서 우리를 따라다닌다.

그러나, 거룩한 위탁은 인생의 지식과,
이 세상에 있어 행복하게 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이 지식과 이 방법과는 괴로와 하는 것을 아는 일이다.

괴로와 하는 것을 아는 것,
즉 그것은 괴로와 하는대로 괴로와 하고
천주께서 바라시는 모든 것을 바라는 한,
또한 바라시는대로
신앙의 정신에 의해서 사랑과 신뢰로써 괴로와 하는 것이다.

위탁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팔 안에, 따라서
예수의 팔 안에, 그 성심위에 안식하는 것을 가르친다.
우리는 거기에 평화 이상의 것을 발견하는 것인데,
즉 희열을 맛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