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119 pp.590-594 제 4 편 제2장 제5절 거룩한 임종과 천주의 어전에 있어서의 힘①

은가루리나 2021. 10. 11.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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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편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과 효과


제1장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 ①②③

제2장 거룩한 위탁의 효과
제1절 천주와의 친밀 ①②
제2절 단순과 자유
제3절 정신의 안정과 마음의 평온
제4절 평화와 희열 ①②③
제5절 거룩한 임종과 천주의 어전에 있어서의 힘 ①

결론 ①②③

 역자 후기




제 4 편 거룩한 위탁의 우월성(優越性)과 효과(效果)

제 2 장
거룩한 위탁의 효과


제 5 절 거룩한 임종(臨終)과 천주의 어전에 있어서의 힘 ①


p.590

영혼이 거룩한 위탁에 나아감에 따라,
오직 천주께만 결합되기 위하여 모든 사물로부터의 이탈에도
또한 진보하였다.
신앙, 신뢰, 사랑 그 밖에 모든 덕이 그이 안에 커다란 진보를 이룩했다.

그리고 그의 의지와 천주의 의지와의 일치는 나날이 긴밀하게 돼 갔다.
그는 완덕의 길에 거보(巨步)를 내디디고 있다.


거룩한 생애는 거룩한 죽음을 준비하고,
말하자면 그것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최후까지의 항구심은 언제나 은혜 중의 은혜,
특히 천주의 은총에 의한 선물이다.

그러나 이 결정적인 은총을 우리에게 베푸시도록
천주 성부의 성심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거룩한 위탁보다 탁월한 것은 없다.

죄인의 뒤를 찾아 돌아다니시는 주께서,
오직 사랑과 효심에서 우러나는 순명 안에 사는 영혼에게
이 은총을 거절하실 수 있으시겠는가.

만일 그가 이 길에 최후까지 항구한다면, 그 때에 구원되고,
더우기 성인으로서 구원되는 것이다.



평신도에게 관해서 말할 때에도,
「즈네브」성인 주교는 항상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전능하신 천주에 있어서마저,
자기 육체에서 떠날 때에,
자신의 의지를 당신의 의지에 따르게 하는 영혼을
영원한 멸망에 맡겨 두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의지는 최후의 상태 대로 영원히 계속된다.
쓰러진 나무는 언제까지나 쓰러진 그대로 있다.

그러므로 그는 임종이 박두한 사람들을 방문할 때,
전력을 다하여 이 병자에게
그 의지를 천주의 의지에 따르게 하도록 권고하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 프란치스꼬.살레시오 정신」3.42)

p.591

죽음은 우리에게
재물과 지위, 근친자와 자기 육체까지도 앗아가 버리리라.
이런 모든 것으로부터의 이별은
각기 애착이 있는 영혼에게 있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뇌다.

그러나 위탁에 잘 무장된 영혼은 그토록 이 이별을 느끼지 않는다.
위탁은, 죽음이 우리에게서 강탈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덕에 의한 무관심 안에 우리를 확립시켰다.

죽음은 언제 와도 좋다.
희생은 이미 마음 안에서 바쳐졌다.
우리에게는 이미 죽음에 의해서 빼앗기는 어떤 것에도
조금의 집착(執着)도 없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오직 천주 뿐 이다.
그리고 바로 죽음은 천주를 영원히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죽음은 무서운 고뇌와 유혹을 동반하고 찾아 온다.
그것은 가장 치열한 싸움이며, 무엇보다도 괴로운 시련이다.
그러나 그 준비로서 거룩한 위탁처럼 탁월한 것은 없다.

왜냐 하면,
위탁은 우리를 천주의 전능 전선(全善)에 의지하게 하여,
모든 것을 그 손에서 사랑과 신뢰로써 받고,
십자가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면서까지
의무를 과감하게 수행하도록 양성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해 예수의 성녀「데레사」가 정당하게도 확신으로써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나는 임종의 투쟁도, 질병의 고뇌도,
비록 그것이 아무리 혹심한 것이라 하드라도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읍니다.」 (자서전 12장)

p.592

가장 탁월한 영혼에 있어서도,
이 세상에서 영세(永世)에 옮긴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심각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삼위일체의「엘리사벳」동정은 임종 때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은 나에게 있어 얼마나 엄숙한 때랴!
내세에 대한 생각은 깊은 감명을 주는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나에게는 내세에 살고 있었던 것처럼 여겨졌읍니다.
그래도 아직 그것이 미지(未知)의 것입니다.

..... 나는 천주님의 정의와 성성(聖性)에 관해서
형언할 수 없는 일종의 감격을 느끼고 있읍니다.

아! 나는 너무나도 미소한 너무나도 덕이 없는 사람입니다!
죽음에 임하는 영혼에게 신뢰심을 일으키는 것은
얼마나 필요한 일이겠읍니까! 」 (「회상」17)



영해 예수의 성녀「데레사」도 말하였다.

「아, 만일 그 고통을 생각한다면,
임종의 우민(憂悶)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해야 될 것인가!」
라고.

실제, 그토록 순결한 그처럼 
거룩한 생애 후에도 그는 아직 한가지 증오해야 할 소리를 들었다.

「너는 참으로 천주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천주가 그것을 알리려 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래서 성녀는 며칠 동안은 형언할 수 없는 고뇌 안에 있었다.
(자서전 12장)



죽음에 임하고 있던 성녀 「요안나.드.샹딸」은 그 고해신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 신부님, 참으로 천주님의 심판은 두려운 것입니까! 」

그것을 두려워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성녀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천주님의 심판은 무서운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부고 주교「동 성녀전」34장)


그것은 실제, 죽음에 직면한 인간본성(人間本性)의 외침이다.
그것은 이 한없이 엄숙한, 결정적 순간의 핍박이다.
그것은 겸손 자체에 의해서 경고된 섬세한 양심의 고민이다.

그러나 거룩한 위탁에 사는 영혼은, 이 공포에 보다 잘 극복할 수 있다.
이 영혼은 자기 준비를 완성해야 할 어떤 수단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는 마지막에
성부, 벗, 지극히 사랑하올 분, 그 모든 기쁨을 둔 분,
자기 생명을 한 방울씩 끊임없이 바쳐온, 
마음의 천주께 바야흐로 뵈오려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는 감미로운 감동에 고동하면서
천주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와
인자와의 형언할 수 없는 증거를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천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
나아가 더욱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아, 그렇게도 중대한 때,
그토록 결정적인 때를 당하여, 성영 작자와 함께,
「당신은 나의 천주시니이다.
나의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렸나이다.」 (30.15, 16) 라고
읊을 수 있는 그는 얼마나 복되랴!

p.593

요컨대,
사랑과 신뢰 안에 살아온 그는 또한 사랑과 신뢰 안에 죽는다.

성녀「요안나.드.샹딸」도, 성「알퐁소.리고리오」도
그 임종은 가장 평화스러운 것이었다.

아마 천주께서는 최후까지 우리를 십자가에 못박아 놓으실지 모른다.

그러나 천주께 맡겨 드릴 영혼이,
마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는 어린이와 같이,
성무일과를 읊으려는 수도자와 같이,
조금의 두려움도 없고, 평온하게 기뻐하면서
영원한 조국에 옮겨가는 것을 보는 것도 드물지 않다.



성녀 「마리아.막달레나.뽀스뗄」의 임종이 그와 같은 것이었다.

「그의 죽음에는 조금의 고뇌도 공포도 따르지 않았다.
긴 생애의 시초부터 최후까지
그처럼 완전히 천주의 뜻에 순종한 성녀는
최후의 결정적인 날에도 역시 그렇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의 임종의 몇 시간은
정온(靜穩)과 신뢰와 위탁에 넘쳐 흐르는 것이었다.

임종의 머리맡에 입회한 사제가,
생명을 희생으로써 바치도록 권고 했을 때, 그는 말하였다.
『조금도 쓰라린 것은 없읍니다.
무슨 일에나 주의 뜻이 이루어지시기를!』이라고.


그의 평화와 조용함에 마음을 빼앗긴 수녀는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아,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그의 얼굴에는 원기가 충만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을 날으는 넋과도 같이 찬란하게 보였다.
그는 신덕송과 열애의 신음을 되풀이 하고,
끊임없이 지극히 사랑하올 분과 일치하고 있었다.」
(러구 주교「성녀 마리아.막달레나.뽀스뗄 전」32장)

p.594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이 때를 당하는 영혼은
순결에 지나치는 일도, 공로가 너무 풍부히 지나치는 일도
결코 없으리라.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최후의 시련을 가장 열매를 맺게 하기에는
거룩한 위탁보다 탁월한 것은 또 없다.

아, 이 영혼은 사랑에 충만한 인내로써
이 무너져 가는 육체의 혹심한 고뇌를 참고,
효애에 충만한 신뢰심으로써 죽음의 타격을 천주의 손으로부터 받아,
그것에서 얼마나 큰 이익을 거두랴!

이미 많은 공로를 쌓은 후에,
임종의 고통은 더욱 탁월한 공로의 다발이며,
훌륭한 열매의 최대의 추수가 되리라.

그것은 더구나 천주의 정의가 가장 기뻐하시는 제물이며,
그리고 아마 우리 죄의 충분한 보상이 되리라.



성「알퐁소」에 의하면,
「우리의 의지를 주의 의지에 적합시키기 위하여,
그 주시는 죽음을 받는 것은
순교자와 마찬가지의 보상을 받는데 맞갖는 것이다.

왜냐 하면, 순교자로서 존경되는 것은
천주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하여 고뇌와 죽음과를 감수하였기 때문이다.

천주의 의지에 적합하여 죽는 이는, 거룩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보다 탁월한 적합 안에 죽는 이는, 보다 거룩한 죽음을 맞이한다.

존자『루이.드.블로아』는,
천주의 의지에 대한 완전한 적합의 행위는 
죽음에 임하여 우리로 하여금 단지 지옥을 피하게 할 뿐 아니라,
연옥도 면하게 하는 것이라고 확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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