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를 당신께 맡기나이다

아버지 나를 당신께 맡기나이다 - C. 카레토 지음 ★아버지나를당신께맡기나이다

은가루리나 2016. 5. 26. 21:36


무소 등급변경▼ 조회 286  추천 0  2016.05.17. 08:09




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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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나의 아버지시다.




이 짤막한 한 귀절은

인간이 바라는

가장 중대한 예언의 선포이며,

인생의 신비에 던져지는

모든 물음의 답변이다.





나의 아버지



별 하나를 만드시는 일 다르고,

아들 하나를 낳으시는 일 다르다.


꽃한 송이 피우시는 마음 다르고,

아들 하나를 얻으시는 마음 다르다.


잠자리 한 마리 빚으시는 솜씨 다르고,

아들 하나를 만드시는 솜씨 다르다.




하느님은 처음에 별똥 하나를 생겨나게 하시듯 

나를 만드시고 생명을 불어 넣으셨다. 


잎새를 빚으시듯 꼴을 뜨시고 내 모양새를 다듬으셨다. 

그 다음 본심을 넣어주시고 사랑을 심어주셨다.



나는 하느님의 창조계에 진화가 있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 몸을 빚으시려고 바위에서 재료를 취하셨고, 

신경조직을 뽑아내시려 꽃잎의 맥들을 본따셨다는 생각만 해도 흥겹다.


그러나 내게 넣어주실 본심을 생각하셨을 때 

그 어른은 당신에게서 모델을 찾으셔야 했다.

성삼위 생명에서 본을 뜨셨다. 


그래서 당신의 모습따라, 당신과 비슷하게 나를 만드셨다.

마음이 통하고, 자유가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게끔 하셨다. 



그 모든 일은 자식을 만드시는 솜씨였다. 

자식은 아버지의 생명에서 나온 생명이다.

아버지의 자유를 이어받은 자유이다.

아버지의 마음과 통하는 마음이다.


보이는 우주에나 보이지 않는 천상에나 많고도 많은 본(夲)들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본들이, 

하느님 편에서 본다면 말이다, 

단 한 개의 본을 이리 저리 바꿔놓은 것에 불과하다. 

나를 아들로 지어내시는 본이 그것이다.



당신의 그 생명을 지녀 영원히 숨쉬는 아들, 

당신의 그 자유를 지녀 행복해 하는 아들,

당신처럼 남과 통하는 마음이 있어 

사랑할 줄 아는 아들을 지어내신 것이다.


그래서 그 어른의 계획은 끝이 나지 않았고, 

그 어른의 일손은 완성되지 않았다.

끝났다면 세상은 종국이 올 것이다.

세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일손이 움직이는 중이다.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로마8,19.22)는 말씀대로 

일이 수월하지가 않은 까닭이다.



끝나기까지 얼마나 간격이 남았는지는 

우리 각자에게서 어림잡히는 간격으로 알 수 있다.


우리의 참된 탄생, 

보이는 사물들의 좁다란 동굴을 빠져 나가  창조주를 우러러 

온전한 정신으로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날이 언제쯤일까?


그날 우리는 아들의 자격으로 그 어른의 집에 발을 들여 놓을 것이다.


벽을 장식하는 한 폭의 그림으로 집에 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자격으로다.

한 그루 화분으로 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자격으로다.

아버지를 몰라보는 집짐승으로 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자격으로다.


땅 위에 펼쳐지는 인간의 역사는 

결국 인간의 변모가 이루어지는 길고도 극적이며 약속에 차 있는 역사다. 

하느님의 아들이 배태되어 자라는 기간이다. 


그리고.... 하느님이 지니시던 가장 힘든 -자유라고 하는- 

책임을 짊어지지 않아도 좋을 인간이었다면

인간의 역사가 그다지 극적일 것도 없을 것이다.


또 죄라는 실재가 존재하지 않을진대 

그 역사가 굳이 약속에 찬 것일 까닭도 없을 것이다.


죄!

신비에 가까운 인간의 그 사악! 참 사랑께 “아니오!”라 대답할 수 있고,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사람에게 있다니!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분을 맞아 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들은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것이다.“(요한1,12-13)




 

아들을 두시다.

하느님은 나를 아들로 삼으신다. 


하느님은 우주와 역사를 이끌어내 탄생의 분위기를 만드신다.

내가 당신의 아들로 태어날 신성한 분위기를 마련하신다.

그 어른은 피조물들을 가지고 나를 빚으시고 나를 다듬으신다.

그리고 당신 은총의 온유한 손길로, 

당신 영의 강건한 손길로 내게 본심을 주신다.


나는 삼라만상 속에 자리잡은 몸이다.

사물로 빚어진 몸이면서도, 사물을 깜득히 초월하는 생명을 꿈꾼다.

지상 사물 속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도 하느님의 아들이 된다.

현세 것을 물려주신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지만 

천상 사물로 빚어진 아들로다시 태어날 것이다.



지금은 덜된 태(胎)이다.

내 과거와 미래를 사이에 둔 몸이요, 내가 익히 아는 것과 낯선 것의 중간 신세다.

그래서 자리가 늘 거북스럽다. 사실 괴롭다.

채워지지 않아서, 앞이 어두워서, 그리워서 괴롭다.


사람이 다 못 되어 미숙한 고로, 죄과 자못 크므로 채워지지 않는 괴로움이 있다.

똑똑히 보이질 않고, 사물에 에워 갇힌 몸인지라 앞 못 보는 괴로움이 있다.

내 핏줄에는 이미 하느님의 피가 흐르고 있으나 

아직 인간으로서 병들고 격동하는 사람의 피가 흐름을 

참고 기다려야 하는 그리움이 있어 괴롭다.



인간이 이런 처지에 그대로 머물러야 한다고 말할라치면 

그건 너무도 잔인한 짓이다.


“너는 네 어미의 태 속에 영원히 머물라!”는 저주일 게다.


나를 품어주는 어머니의 태를 나는 사랑한다.

그렇지만 힘이 닿자마자 나는 그곳을 나왔다.


나와 한 발자국 떨어져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

일단 나와서 본다면 태 속은 편치가 않다. 

적어도 밖에 나온 지금이 더 좋다.


우주의 역사니 하는 것도 거대하고 복잡한 모태와 흡사하다.

어둡기도 하고 밝기도 하고 편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한 모태와 흡사하다.


거기서 내 탄생이 이루어진다.

아들로 만들어지는 <신의 영역>이 마련된다.



언젠가 나는 저승으로 떠나야 한다. 여러분도 그렇다.

좋든 싫든 저승으로 떠나야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낫겠지!”하는 평범한 소망에서 이 말을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논리, 하느님의 사랑은 

더 못한 곳으로가 아니고 더 나은 곳으로 나를 다듬어 가신다. 

죽음이 아니라 삶에로 밀고 가신다.

고립이 아니라 친교에로 끌어 가신다.

슬픔이 아니라 행복에로 데려 가신다.


그래서 우리는 이승을 빠져나가는 순간, 우리를 탄생시킨 이 땅을 되돌아보며

<드디어...>라는 안도의 말을 내뱉을 것이다.



오랜 세월 나는 대지(大地)의 모태를 

썩 편하고 낯익고 이만하면 됐다 싶을 만큼 

아름답고 즐거운 곳으로 여겨왔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곳이 갑갑하게 느껴진다.

출구 가까이 밀려온 듯하고, 가위라도 눌린 듯한 기운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벽이라도 짚여질가 손을 내젓고 있다.

그걸 모르시지 않는 하느님은 비상수단을 마련하셨다.


이승의 짐을 견뎌나가고 또 훌훌 벗어버리고 싶은 심경에 걸맞는 처방을 

마련하셨다.

<형제들을 위하는 ♥사랑>이 그것이다.

다음 구절에서 성바울로가 무슨 말을 하려 했던가 헤아려 봄직하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 더 살아서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과연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둘 사이에 끼어 있으나 

마음 같아서는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또 그편이 훨씬 낫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위해서는 내가 이 세상에 더 살아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확신이 섰기 때문에 

나는 살아 남아서 여전히 여러분과 함께 지내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필립비1,21-25)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마8,19)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로마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