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를 당신께 맡기나이다

제1부 하느님은 나의 아버지시다 나의 아버지

은가루리나 2016. 5. 26. 22:15


제1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느님은 나의 아버지시다.





나의 아버지




신앙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어느 자세가 더 나은 것인지 아무도 판단 못 한다.

나를 불러 손짓하시는 하느님 사랑과 

나의 소매를 붙잡는 형제의 사랑에 끼어 망설이는 마당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렇다. 마음 같아서는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

그러나 아직 교회가 필요로 한다면  살아 남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도통한 경지에서 하는 말이다

하늘이고 땅이고  오직 하나의 실재로 보일 만큼

신앙이 투명하고  완숙한 경지에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모두가 그 경지에 들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그리고...아버지 하느님의 얼굴을 뵈오러 간다는 것은  언제나 더 좋은 일임에 분명하다.

    

 

허나, 나는 여기 이승에 있는 몸이다

(때가 오기까지는) 여기 머물러야 한다.

나는 이곳에 있다

그리고 왜 이곳에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지금 쓴 <깨닫다>라는 말은 정확지가 못한 말이다.

<깨닫는다>는 것은 내가 <아는> 사물에 해당되는 말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물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눈으로 뵙지 못하는 하느님을 어찌 깨달으랴?

나보다 앞서 계시고 위에 계시는 그 어른의 어버이다움을 어찌 깨달으랴?

태아가 어찌 어머니를 깨달으랴

태아는 고작 어머니를 의지하여 잠자코 있는 것이다.

태어날 아기가 자기를 낳아줄 사람에게 

자기 존재의 사유서를 보여달라고,

출생과정에 관한 명세서를 보여달라고 요구하지는 못한다.



<내어 맡긴다>는 것은  어느 피조물에게나 첫째가는 좋은 품성이다.

앞서 계시는 분의 수중에 <잠자코 머물러 있고>, 

현실 앞에 <온순하게 내어 맡긴다는것은

하루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걸어야 할 길을 한 치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이것이야말로  진실하고 또 영리한 자세가 아닐까 한다.

이것을 더 적당한 말로 표현한다면 <믿는다>는 말이 되는데...

그 또한 얼마나 힘겨운 말이던가!

사람치고 <믿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이맛살 찌푸리지 않는 자 있던가?



그렇다. 믿는다는 것은 힘든 노릇이다.

미숙한 존재가 성숙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이기에  힘든 노릇이다.

사랑할 능력이 없는 피조물, 불신에 젖어든 피조물에게  사랑과 극단의 신뢰의 자세를 요구하기에 

힘든 노릇이다.

다 해결해 나가야 하는 태아(胎兒)가  마치 <이미 다 해결한 양> 행세해야 하기에 힘든 노릇이다.

그래서인지 신앙이란 하나의 악순환이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신앙을 필요로 하면 할수록 그 필요성을 못 느끼고

필요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어디서 그걸 찾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어디에다 머리를 들이받을지 모를 때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그러면서도 가긴 가야 할 때

그대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그대 힘으로는 찾지 못할 해결의 실마리를 그대 안에서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대가 앞을 못 볼수록

더욱이나 앞 못 보는 다른 사람들을 인도해야 하는 몸일수록 그렇다.

남이 데려가게 잠자코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비참하기도 하고  익살맞은 짓이기도 하다.

우리는 손에 주사기를 들고 서 있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뭘 아는 체하면서 주사를 안 맞겠다고 버티는 어린애와 흡사하다.

뭔가 바라면서 눈을 꼭 감은 채 잠자코 팔을 내미는 것이 좋으련만 

야생의 짐승처럼 당치도 않은 말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바보같은 짓을 한다.

사람은 알아듣지 못할 것을 알아듣겠다고 버티기 십상이다.

이런 유혹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디가 어딘지 모른는 망망대해에서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낯익은 한 장 널빤지에 매달리는 것과 흡사하다.

그렇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세계와 연관을 맺는 생의 새로운 차원이다.

그래서 힘든 일이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문제 해결을 스스로 마련하시지 않았던들

인간으로서는  결코 풀지 못할 수수께끼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