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

◇인간, 그리고 이 세상 1. 인간【인간의 운명/인간의 실체/속박으로서의 인간/죽음과 재생】

은가루리나 2016. 8. 7. 23:01


 p.7~15 (no.1-40)


◇ 인간, 그리고 이세상




1. 인




□ 인간의 운명



1. 밤이면 하늘에는 많은 별이 빛난다.

그러나 아침, 해가 솟으면 별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낮에는 별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여, 

그대 무지(無知)의 대낮에 신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해서 신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2. 사람은 그의 생각과 동기(動機)에 의해서 그에 적절한 보상을 받는다.

신은 깔파따루(Kalpataru)*와 같다.

모든 사람은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신으로부터 공급받는다.

가난한 사람의 아들이 고등교육을 받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변호사가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나는 행복하다. 

나는 가장 높은 지위에 올랐다. 이제 이것으로써 내 인생은 충분하다.」

그러나 신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그 상태에서 그대로 머물려 하는가.」


그가 나이가 들어 변호사직을 물러났을 때,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았을 때,

이 삶을 쓸데없이 써 버렸다는 것을 그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일생동안 내가 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에게 신은 말했다. 「친구여, 그대는 이생에서 무엇을 했는가.」


[3]


3. 인간은 다음의 두 가지 취향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첫째, 비드야(Vidya)** ㅡ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

둘째, 아비드야(Avidya)*** ㅡ 세속적인 것, 구속 쪽으로 이끌리는 경향.


인간이 태어날 때 이 두 가지는 천평저울의 두 접시와 같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곧 이 세상이, 그 쾌락과 욕망이 저울의 한쪽 접시를 점령해 버린다.

그리고 다른 한쪽 접시는 영적(靈的)인 것이, 그에 대한 매력이 차지해 버린다.


마음이 이 세상을 택하게 되면 아비드야의 접시가 무겁게 되어

지상(地上) 쪽으로 추락한다. 

그러나 만일 마음이 영혼 쪽을 택하게 되면

비드야의 접시가 무겁게 되어 신 쪽으로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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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에 있다는 나무로서 이 나무밑에 앉기만 하면 마음먹은 대로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함.

** 明知. 신을 자가할 수 있는 예지.

*** 無知. Vidya의 반대.



4. 하나(1, 神)를 알아라. 그러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숫자 뒤에 놓인 제로(0)는 백(100)도 되고 천(1000)도 된다.

그러나 숫자를 빼 버린다면 그 제로(0)들은 아무 가치가 없다.

수많은 제로(0)들은 하나가 있을 때만이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첫번째로 중요한 것은 <하나>이다.

그 다음에 많은 것(제로)다.


첫번째는 신(神)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인간과 이 세상이다.


5. 첫번째로 신을 자각하라. 그 다음 물질이다. 이와 반대로 시도하지는 말아라.

영적인 자각이 있은 후에 세속적인 삶으로 내려가라.

그러면 너는 결코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4]


6. 사회개혁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사회개혁을 위한 그 전제 조건으로서  

우린 첫째로 신을 자각해야 한다.


기억하라.

옛 구도자들은 신을 자각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등졌다.

이것이 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나머지 것들은 네가 정말로 필요로 할 때 너에게 공급될 것이다.


첫번째로 신을 자각하라.

그다음  체제에 대해서, 사회개혁에 대해서 이야기하라.



7. 낯선 도시를 처음 방문한 사람이  우선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밤의 휴식을 위하여  편안하고 경제적인 숙소를 찾는 일이다.

그런 숙소를 찾게 되면  짐을 그 숙소에 풀어 놓은 다음 

느긋한 마음으로  도시의 여러 곳을 두루 구경할 것이다.


그렇지 않게 되면 

휴식할 곳을 찾기 위하여  밤의 어둠속을 헤매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다.

신 속에서 영원한 휴식처를 찾은 후에야 

이세상의 첫 방문자인 너는 

두려움 없이 일상적인 일들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게 되면 

어둠, 그 무서운 밤이 너를 덮칠 때  너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8. 큰 곡식창고의 문 앞에는 

쥐를 잡기 위하여  식은 밥덩어리를 단 쥐덫이 놓여 있다.

식은 밥덩이에 매혹된 쥐는 

창고 속에 백 배나 더 맛있는 곡물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리고는 그 쥐덫에 잡히고 만다.

잡혀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


네 영혼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이세상 즐거움의 그 백 배나 더한 신성의 축복 앞에 서려는 그 찰나.

그 축복 속으로 다가가려는 노력 대신 

너는 세속적인 조그만 쾌락에 유혹당하고 만다.

마야, 이 환영의 덫에 잡혀 죽임을 당하게 된다.


[5]


9. [문] 사람들은 해와 달, 그리고 수많은 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육체를 가지고 저 모든 별에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관한 당신(라마크리슈나)의 의견은 어떠한지요.



[답] 정말로 위대한 것은 박띠, 신에 대한 이 헌신이다.

그들에게도 이 박띠의 마음이 있다면 좋다.

그들의 목적이 신의 자각에 있다면 옳다.

그러나 기억하라.

다른 천체의 별이나 해와 달 등의 이 하찮은 일에 열중하는 것은

진정으로 신을 찾는 것이 아니다.


(神)의 발밑에 복종하기 위하여 우리는 영적인 명상수련을 해야 한다.

그(신)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으로 우리의 가슴은 울어야 한다.

마음은 오직 그를 향해서 집중되어야 한다.


그는 어떤 경전이나 언어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슴이 그에 대한 열망으로 불타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성취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깊은 헌신과 숭배의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6>


10.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정신없이 놀고 있다.

그러나 엄마가 돌아오면 그들은 놀던 장난감을 내던지고 엄마에게 달려간다.

너도 이와 같다. 오,인간이여.


이 물질의 세상에서 철없이 놀고 있는 인간이여,

너는 지금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부귀,명예 따위의 장난감에 팔려 

아주 재미있어 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저 영원한 어머니(신)을 자각하게 되면

이 모든 장난감에서 더 이상의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장난감들을 내던져 버리고 저 영원한 어머니에게로 달려갈 것이다.


11. 바닷속에는 진주가 있다.

그러나 진주를 얻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릎쓰지 않으면 안 된다.

단 한번 자맥질을 해보고 나서 진주를 얻지 못했다 하여 

바닷속에는 진주가 없다고 속단하지 말라.

몇번이고 몇번이고 꾸준히 자맥질을 하다 보면 마침내 진주를 얻게 될 것이다.


신을 찾는 작업도 이와 같다.

첫번의 시도가 실패했다 하여 신을 향한 그 가슴의 불꽃마저 꺼 버리지 말라.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꾸준히 시도하다 보면 걸국 너는 신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12. 몸이라는 이 사원을 어둡게 하지 말아라.

이 사원이 각 방마다 지혜의 불을 켜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영원한 어머니(神)를 봐야 한다.




<7>


□ 인간의 실체



13. 숫자는 그 숫자 뒤에 제로(0)가 붙음으로써 큰 숫자도 되고 적은 숫자도 된다.

그러나 1이라는 숫자가 빠진다면 제로,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이와 마찬가지다.

지바(Jiva)*가 1 이라는 신에게 달라붙지 않는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은, 그 가치는,

그것들이 모두 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데서부터 오는 것이다.


지바가 신과 연결되어 있는 동안은,

우리가 하는 일이 모두 그(신)를 위한 일이 될 때,

우리는 더욱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신을 무시하고 모든 성공을 그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며

그 자신의 찬양을 위해서 한다면 너는 결국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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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인 영혼




14. 기름이 없으면 램프의 불은 더 이상 타지 않는다.

신이 없으면 인간은 단 일초도 살 수 없다.


<8>


15.인간에게 있어서 신은 쇠에 있어서 자석과 같다.

그렇다면 왜 신은 인간을 끌어당기지 않는가,


쇠가 진흙 깊이 묻혀 있으면 자석의 인력이 거기 미칠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야의 진흙 깊이 묻혀 있는 영혼은 신의 인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쇠에 묻은 진흙을 물로 씻어내게 되면 

쇠는 자유로와져서 자석이 끄대로 움직인다.


끊임없이 참회의 눈물과 기도로 영혼에 묻은 마야의 진흙을 씻어 내게 되면

너는 머지않아 신의 인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16. 얽매어 있는 영혼은 인간이다.

그러나 그 마야의 밧줄로부터 풀려날 때 그 영혼은 신이다.


<9>


17. 평범한 영혼(인간)과 뛰어난 영혼(신)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흐르는 물에 널판지를 가로질러 넣으면 물이 두 개로 나뉘어진 것처럼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눌 수 없는 것(신)이 마야의 제한력 때문에 

평범한 영혼과 뛰어난 영혼의 둘로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거이다.



18. 물과 물 위에 뜬 거품은 하나며 같다.

거품은 물에서 생겨나 물위를 떠돌다가 결국은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평범한 영혼과 뛰어난 영혼은 하나며 같다.

이 양자 사이의 차이점은 오직 겉모양뿐이다.


한 쪽(물)이 영원적인 데 비하여 다른 한 쪽(거품)은 순간적이며 제한되어 있다.

한 쪽(물)이 독립적인 데 비하여 다른 한 쪽(거품)은 의존적이다. 

-차이는 이것뿐이다.



19. <나>라는 이 소아적(小我的)인 생각은 갠지즈 강물 속에 들어가서

자기 주변의 강물을 가리키며 

「이것은 나의 갠지즈 강물이다 」라고 외쳐대는 거와 같다.



20. 납은 수은 속에 넣으면 머지 않아 아말감*이 된다.

이와 같이 소아(小我)는 브라흐만의 바다(신의 바다)에 떨어지는 순간

소아적인 제한성으로부터 해방된다.


<10>


21. 인간이 유한한 존재임에 대하여 신은 무한한 존재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유일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저 무한한 존재인 신을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마치 소금으로 만든 인형으로 바다의 깊이를 재려는 거와 같다.

바다 깊이를 재려고 소금으로 만든 인형을 바다에 넣는 순간 

그 인형은 바닷물 속으로 녹아 버린다-------흔적도 없이.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신의 정체를 헤아리려고 하게 되면 

신과 인간의 분리선이 없어져 버리고 마침내는 인간이 신과 하나가 된다. 

신의 바닷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22. 신은 지금 인간의 형태로 이 세상에 나타나서 연극(Lila)을 하고 있다.

신은 위대한 요술장이다.

인간만사의 이 갖가지 희비극과 이 세상의 천차만별은 

모두 그(신)가 벌이는 요술이며 유희이다.


마야(幻影)로서의 이 모든 요술장난은 진실이 아니지만 

그러나 요술장이인 신만은 진실이다.


<11>

23. 인간의 몸은 솥과 같고, 

마음(思考), 지성, 감각은  물, 쌀, 그리고 감자와 같다.


솥 속에 물을 붓고  쌀과 감자를 넣은 다음  불을 때면

그것들은 뜨거워진다.

그것들이 펄펄 끓고 있을 때,

그것들을 집으려고 손을 넣으면  손은 화상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열(熱), 그 자체는 

솥에도, 물에도, 쌀에도, 감자에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있어서 마음, 지성, 감각이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브라흐만(신)의 힘 때문이다.

브라흐만의 힘이 그 활동을 정지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 지성, 감각도 따라 멈춰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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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별적인 영혼.

* amalgam: 수은과 다른 금속과의 합금.



<12>



□ 속박으로서의 인간



24. 인간의 본질은 저 영원한 축복(신)이다.

그러나 에고 때문에 인간은 수많은 우파디(Upadhi)의 제약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로 하여 마침내는 그 자신의 본질마저 망각해 버린다.


25. 인간은 우파디의 증가에 따라 변한다.

아주 멋진 바바리코트를 입으면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온다.

부츠를 신게 되면 맥없는 여자라도 금새 의기양양해진다.

좋은 만년필을 손에 쥐게 되면 아무 종이에나 시험삼아 낙서를 할 것이다.



26. 뱀이 허물로부터 벗어나듯 영혼은 육체로부터 분리된다.




27. 자아(아트만)는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기쁨, 고통, 죄의식, 올바름 등등

그 어떤 것도 자아를 오염시킬 수 없다.


그러나 육체가 그 자신의 진정한 자아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위의 것들(기쁨, 고통 등)에게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연기는 벽만을 검게 그을게 할 뿐,

벽 속의 밀집 공간(密集空間)은 더럽힐 수 없다.



28. 자아는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죄나 덕(德), 고통이나 기쁨등이 결코 자아에게 영항을 미칠 수 없다.

그러나 연기는 벽을 더럽힐 수 있으나 저하늘은 결코 더럽힐 수 없다.


<13>


29. 어부는 강에 그물을 던져서 많은 고기를 잡는다.

이 고기들 가운데 어느 고기는 그물 속에 누워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물 밖으로 나가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또 어느 고기는 그물 밖으로 나가려 팔딱거리지만 그러나 그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어떤 고기들은 그물을 뚫고 나가 버린다.


-- 이 세상에 온 인간 역시 이 세 종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영혼의 자유를 얻으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유를 얻기 위하여 투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 어던 사람은 이미 자유를 쟁취했다.  





30. 여기 세 종류의 인형이 있다.

① 소금으로 만든 인형, ② 헝겊으로 만든 인형, ③ 돌로 만든 인형.

이 세 가지 인형을 물속에 넣어 보자.


① 의 소금으로 민든 인형은 물속에서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② 의 헝겊으로 만든 인형은 물에 부풀어 몇 배로 팽창할 것이다.

그리고 ③ 의 돌로 만든 인형은 물이 전혀 스며들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① 의 인형은 자아가 우주 속에 용해되어 우주와 하나가 된 사람,

이미 해탈을 얻은 사람을 말한다.


② 의 인형은 박따, 즉 진정으로 신을 사랑하는자,

신의 축복과 지혜로 충만한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③ 의 인형은  순전히 세속적인 사람을 말한다.


털끝만큼도 진정한 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14>


31. 인간은 마치 베갯잇과 같다.

베갯잇은 붉은 것도 있고  푸른 것도 있고  검은 것도 있다.

그러나 베갯잇 속의 베개는 모두 같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예쁜 사람도 있고  미운 사람도 있고  성스러운 사람도 있고  나약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속에는 성스러운 존재(存在)가 살고 있다.



32. 케이크의 바깥은 크림으로 발라져 있다.

그러나 그 속은 각각 다른 재료로 만들어진다.

케이크가 좋고 나쁘고는 밖의 크림이 아니라  속의 재료에 따라 결정된다.


모든 인간의 육체는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가슴(영혼)의 순수성에 따라 천차만별의 격차가 나게 된다.



33. 브라흐만(神)의 아들(인간)들은 모두 브라흐만의 핏줄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위대한 학자가 되고, 성직자가 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요리사가 되기도 하고, 매춘부의 문전에서 비실거리기도 한다.


<15>


34. 맹수의 마음속에도 신이, 신성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저 맹수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제 아무리 나약한 존재 속에도 신이, 신성이 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그런 것들과 동등하다고 보는 것은 적당치 않다.



35. 신은 물에도 충만해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물을 음료수로 사용할 수는 없다.


신은 이 모든 곳에 편재해 있지만, 

그러나 인간은 이 모든 곳을 방문할 수는 없다.



어떤 물은 말을 씻는 데에나 알맞을 것이며, 또 어떤 물은 목욕하는 데에나 적당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물은 음료수로 사용할 수 있는가 하면 또 손조차 대어서도 안 되는 물도 있다.


이세상에는 각기 다른 장소와 분위기가 있다.

인간이 직접 가 봐야 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멀리서 작별인사나 하고 지나가야 할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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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구속하는 부속물들, 즉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물건들.



<16>


□ 죽음과 재생



36. 죽음의 순간에조차 해탈을 얻지 못한 영혼은 세속적인 일만을 이야기한다.

그 가슴속에 아직도 세속적인 애착이 남아 있다면,

만트라의 암송도, 갠지스강의 목욕도, 성지의 순례도 아무 쓸모가 없다. 

죽음의 순간에 그 세속적인 애착들은 여지없이 드러나고 만다.

죽음의 그 순간에조차 애착에 가득한 말만을 가득하고 있다.


저 앵무새를 보라.

보통때는 라마크리슈나(神)의 성스러운 이름을 노래한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쫒길 때에는 비명소리를 질러댄다

―― 이것이 바로 앵무새의 진정한 목소리인 것이다.



37, 인간은 결국 신에게 복종하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마음속에서 신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에게 헌신하는 방법을 꾸준히 수련해야 한다.

이런 수련을 평소에 꾸준히 하게 되면  

신에 대한 생각이 죽음의  그 마지막 순간에 그의 마음속에게 솟을 것이 분명하다.


<17>


38. 인간의 다음 생(生)의 탄생은 

그가 죽기 직전에 무엇을 생각했느냐의 의해서 결정지어진다.

그러므로 기도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꾸준히 기도생활을 하게 되면  세속적인 모든 생각들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그의 마음은 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찰 것이며,

그의 주변도 이 영적 파장으로 진동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영적 파장은 죽음의 그 순간에조차 그를 떠나가지 않을 것이다.



39. 굽지 않은 오지그릇이 깨지면 

그 오지그릇의 진흙으로 다시 새 그릇을 빚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구워진 오지 그릇이 깨지면 

그 깨진 조각으로는 더이상 똑같은 그릇을 빚을 수 없다.


인간이 무지(無知)의 상태로 죽게되면 그는 자꾸짜꾸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러나 그가 지혜의 불꽃으로 구워졌을 때는,

완전한 인간 (깨달은 인간)으로 죽게 되면,

그는 더이상 이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



40. 불에 익힌 쌀은 씨를 뿌려도 더이상 싹이 트지 않는다.

싹이 트는 것은 불에 익히거나 삶지 않은 쌀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취자(깨달은 자)가 되어 죽게 되면 

그는 더이상 태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으로 죽게 되면 성취자가 될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