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

5. 학문의 속박【학문을 위한 학문은 황무지와 같다/논쟁의 무익함/배움의 끝】

은가루리나 2016. 10. 17. 16:48


p.30-35 (no.107-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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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문의 속박



□ 학문을 위한 학문은 황무지와 같다



107. 독수리는 하늘 높이 날지만 

그의 눈은 썩은 송장을 찾기 위하여 납골당에 고정되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배웠다는 사람들은 그 높은 학문과 지식에도 불구하고 (富)와 욕망에 집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진정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


108. 마음을 순화시키고 가슴을 절실하게 하는 지식만이 진정한 지식이다.

그밖의 모든 지식은 거짓지식이다.



109. 학문을 위한 학문을 무엇에 쓰겠는가.

학자들은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책들을 그저 읽는 것만으로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경전에 씌어진 것들을 우리는 이 삶을 통해서 체험하고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그저 단순히 책을 읽는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지혜도 얻을 수 없다

여자와 부(富)만을 생각하는 동안은,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이 있는 동안은 

구제받기 힘들다.


110. 학자들은 큰소리로 외칠 것이다.

그들은 브라흐만(신)에 대해서, 요가와 철학에 대해서, 본질에 대해서 

자신있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것을 몸소 체험하고 깨닫는 사람들은 아주 드물다.

거기 오직 메마르게 경직화되어 버린 관념의 말장난만 있을 뿐이다.


111.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말로 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것들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기는 어렵다.

진리를 이야기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을 체험하고 실천하기는 어렵다.



112. 그저 경전을 읽음으로써 신을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힌두교의 달력에 의하면 

어느 특정한 날이 되면 20밀리의 비가 내린다고 한다.

그러나 그날이 되면 

그 날짜가 기록된 달력으로부터는 단 한방울의 빗물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아주 값진 말들을 우리는 경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신을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경전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113. 신 앞에서는 이유, 지성, 지식 등은 쓸모가 없다.

거기 벙어리가 말하고, 눈먼 자가 보고, 귀머거리가 듣는다.


114. 단순히 책만을 읽고 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오직 베나레스 지도만을 보고 베나레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와 같다.



115. 경전(Grantha)이라는 말은 언제나 성스러운 책(聖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밧줄(Granthi)을 뜻하기도 한다.

진리를 알기 위한 그 열정으로 경전을 읽지 않는다면, 

단순히 문자로서만 읽는다면,

지독한 에고와 억측, 그리고 학자인 체하는 거만심만이 더할 뿐이다.

이는 무수히 얽힌 밧줄과 같아서 그의 마음에 방해물이 될 것이다.


116. 잿더미에  물을 부으면 물은 대번에 말라 버린다.

자만심은 잿더미와 같다.

자만심으로 차 있는 영혼에게는 기도도, 명상조차도 별 효과를 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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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쟁의 무익함



117. 빈 그릇에 물을 부으면 소리가 난다.

그러나 그릇이 차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신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신의 존재와 그 본질에 대한 무익한 논쟁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일단 신을 체험하게 되면 말없이 신의 은총에 젖어 있다.



118.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말한 것 가운데 모래알만큼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은 그의 전 삶이 진리를 찾는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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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많은 사람들이 잔치에 초대되었을 때 처음에는 왁자지껄하다.

그러나 그 왁자지껄한 소리는 음식이 들어오기 전까지이다.

음식이 들어오게 되면 조용해진다.

식사가 다 끝나고 다과가 들어오게 되면 더욱 조용해진다.

마지막으로 후식(後食)이 나오게 되면 이제 오직 먹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잔치가 다 끝나고 손님들이 할 일은 잠자러 가는 일뿐이다.


신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질문과 이유가 적어진다.

신을 체험하게 되면,

그때는 이 모든 논쟁이며 이유들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그다음은 잠자러 갈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신과의 저 영적(靈的) 교섭에 젖을 시간이다.



120. 벌이 꽃잎의 밖에 있을 때에는 윙윙 소리를 낸다.

그러나 꽃속으로 들어가 꽃가루를 딸 때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진리의 넥타(감로)를 맛보지 못한 사람은 교리나 이론에 대한 논쟁에서 떠나지 못한다.

그러나 진리를 체험하게 되면 그는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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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외국어를 배울 때 초보자는 회화를 익히기 위하여 가능하면 외국어로 말하려 한다.

자기의 생각을 외국어로 표현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외국어에 능숙하게 되면 이젠 일부러 외국어로 말하려 애쓰지 않는다.

보통 때에는 그 자신의 모국어로 말한다.


진리를 찾는 사람의 경우도 이와 같다.

초보자일 경우 되도록이면 구도자의 티를 낸다.

그러나 진리에, 신에게 가까와지면 그럴수록 구도자의 티를 내려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신을 체험하게 되면 가장 평범한 인간이 된다.



122. 시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는 장사치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만이 들려온다.

그러나 직접 시장에 들어가게 되면 장사치들의 소리는 더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필요한 물건 사기에 여념이 없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다.

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무익한 논쟁과 혼란,

그리고 궤변과 말다툼의 와중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신에게 가까이 가면 그럴수록 이 모든 논쟁과 토론은 끝난다. 

대신 그는 신의 불가사의한 힘을 선명하게 체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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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끓는 기름에 밀가루 반죽을 떼어 넣으면 요란한 소리가 난다.

그러나 그 반죽이 익으면 익을수록 소리가 적어지다가 

완전히 익게 되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조금 알 경우, 인간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그 안 것을 말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완전히 알게 되면 이런 쓸데없는 짓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124. 신의 은총이 내리게 되면 그는 즉시 그 자신의 실수를 알게 된다.

그는 이제 더이상 무익한 논쟁을 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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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움의 끝



125. 경전들은 오직 신의 길을 가르쳐 줄 뿐이다.

일단 그 방법을 알았다면 책이 더이상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다음은 저 철저한 고독 속에서 신과 대화를 해야 할 시간이다.



어떤 사람이 그의 가족으로부터 몇 가지 필요한 물건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집에 보낼 물건을 사는 도중에 그는 다시 한번 편지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거기 빠뜨린 물건이 몇 가지 더 있었다.

그는 급히 그 빠뜨린 물건을 추가시켰다.

그런 다음 그 편지를 호주머니에 구겨 넣고는 물건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이 편지가 얼마 동안 필요한가. ----- 보내달라는 물건들을 확인할 때까지다.

일단 내용몰들을 다 알고나면 편지는 집어넣고 그 물건들을 구하는 데 전력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경전은 신을 체험하는 그 방법만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뿐이다.

이 방법을 알게 되면 그 다음은 그 목표를 향해서 몸소 가는 일이다.

목표란 무엇인가. ----- 신을 깨닫는 일이다.





126. 가장 높은 지혜는 신을 깨달음으로써 얻어진다.
이 모든 것들, 즉 경전, 철학, 논리 등은 우리의 마음을 혼란시킬 뿐이다.
부담만을 안겨줄 뿐이다.

그래서 책(Grantha)은 때로는 밧줄(Granthi)을 뜻하기도 한다.
책은 높은 지혜로 우리를 이끌 때에만 유익한 것이다.


127. 책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신의 예지를 얻을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보다 신을 체험한 사람의 말을 직접 듣는 것이 낫다.

말을 듣는 것보다는 직접 보거나 깨닫는 것이 더 낫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보다는 감동에 젖어 그 사람의 말을 직접 듣는 편이 낫다.

듣는 것보다는 직접 그를 찾아가 만나는 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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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가장 높은 지혜는 신을 깨달음으로써 얻어진다.

이 모든 것들, 즉 경전, 철학, 논리 등은 우리의 마음을 혼란시킬 뿐이다.

부담만을 안겨줄 뿐이다.


그래서 책(Grantha)은 때로는 밧줄(Granthi)을 뜻하기도 한다.

책은 높은 지혜로 우리를 이끌 때에만 유익한 것이다.



127 책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신의 예지를 얻을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것보다 신을 체험한 사람의 말을 직접 듣는 것이 낫다.

말을 듣는 것보다는 직접 보거나 깨닫는 것이 더 낫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보다는 감동에 젖어 그 사람의 말을 직접 듣는 편이 낫다.

듣는 것보다는 직접 그를 찾아가 만나는 것이 더 낫다.


베나레스*에 관한 책을 읽는 것보다는 

직접 베나레스에 갔다온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더 낫고,

그보다는 그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베나레스를 보는 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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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오직 다음의 두 종류의 사람들만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① 자기가 배운 모든 지식에 방해받지 않는 사람.

다시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빌려온 생각들 때문에 혼란스러워하지 않는 사람.


② 이 모든 경전과 과학을 공부한 후에 자기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




129. 사람들은 죄와 미신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고등교육을 받은 것에 대해서 자부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한 구도자는 

절실하게 신을 갈망하면 신이 모든 것을 도와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때 잘못된 길을 갔던 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그가 원하는 것을 신은 알고 있기 때문에 

신은 그의 바램을 틀림없이 이루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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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두 친구가 과수원에 갔다.

계산이 빠른 한 친구는 즉시 망고나무를 세기 시작했다.

망고나무 한 그루에 망고가 몇 개 정도 달려 있는지 알아 보았다.

그리고 망고숲 전체의 가격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 다른 한 친구는 과수원 주인에게 가서 주인과 친구가 되었다.

조용히 망고나무로 다가가서 제일 잘 익은 망고를 따서 먹기 시작했다.


----자. 이 두사람 가운데 누가 더 현명한가. 



망고를 먹어라.

그러면 허기를 면할 것이다.

망고나무에 달린 망고를 세는 것이 무슨 실속이 있단 말인가.

지식인들은 쓸데없이 창조의 <이유>를 밝히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러나 현명하고 겸손한 사람은 창조주(신)와 친구가 되어 

창조주의 선물인 최상의 축복을 만끽하고 있다.




131. 차이타냐(Chaitanya)*가 인도 서부지방을 순례하고 있을 때 어떤 신봉자를 만났다.

학자가 기따**를 읽고 있을 있는 동안 그는 줄곧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단 한개의 알파벳도 알지 못했으며 단 한 줄의 기따도 읽지 못했다.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다.

친구여, 왜 그렇게 울고 있는가?


그는 답했다.

나는 기따의 단 한 줄도 읽을 줄 모른다. 

그러나 학자가 기따 읽는 소리를 듣는 동안 

크리슈나(신)가 아르쥬나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내 영혼의 눈에 선명히 보이고 있다.

그리고 저 모든 훌륭한 생각들이 기따에서 모두 구체화되고 있다.

-----이런 사실들이 나를 사랑과 환희에 넘쳐 흐느끼게 하고 있다.



이 사람은 비록 단 한 줄의 글도 읽을 줄 모르지만, 

그러나 신(神)을 향한 그 순수한 사랑으로 하여 높은 예지를 얻을 수 있었다.

(神)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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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1485년 벵갈 지방에 살았던 힌두의 한 성자. 

순수한 사랑을 통해서 신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강조했다.


**Gita;바가바드 기따. 힌두교의 대표적인 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