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산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19 / 2. 마야 □ 구속력으로서의 마야

은가루리나 2016. 8. 14.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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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속력으로서의 마야



47. 한 사두(흰두교 승려)가 있었다.

그는 때때로 다크네슈알의 깔리 사원*  구석방에서 살곤 했다.

그는 누구하고도 얘기하는 일이 없이 

오직 신에 대한 명상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이 어두뤄지더니

조금 후 불바람이 그 구름을 몰아가 버렸다.

사두는 밖으로 나와 갑자기 깔깔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스승(라마크리슈나)은 그에게 물었다.

「친구여, 무슨 일인가?

온종일 방안에서 침묵만 지키고 있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무엇이 얼마나 기쁘기에 이렇게 춤을 추고 있는가?」


사두는 말했다.

「스승이여, 이 삶을 구속한 것은 바로 마야였습니다.

마야는 정체가 없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것입니다.

브라흐만의 저 청명한 하늘에서 전 우주가 창조되고, 

브라흐만의 호홉에 의해서 전 우주가 흩어져(파괴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48. 마야의 환영이 옆으로 비켜서지 않는 동안은 

창조물인 우리 인간은 결코 창조주인 신을 볼 수 없다.


49. 성자는 밤낮으로 샹들리에 - 프리즘을 보며 웃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프리즘을 통해서 여러 가지 색깔을 보았기 때문이다.

프리즘 속의 이런 색깔들이 거짓이듯이 

이세상도 이와 마찬가지로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50. 하리(Hari)* 가 사자의 가면을 쓰자 아주 무섭게 보였다.

그는 그의 어린 누이동생을 놀려 주려고 

누이동생에게 가서 사자소리를 내며 으르렁거렸다.

어린누이동생은 이 무시무시한 괴물을 보자 질겁을 하며 달아났다.


그러나 하리가 사자가면을 벗자 

새파랗게 질린 누이동생은 그 괴물이 실은 오빠라는 것을 알았다.

누이동생을 오빠에게 달려와서 오빠를 때리며 말했다.

「바로 오빠였구나. 왜 사람을 놀라게 해. 미워, 오빠 미워.」


우리 모두의 경우도 꼭 이와 같다.

우리는 부라흐만, 

그 자신 속에 내재해 있는 이 마야의 불가해(不可解)한 힘에 의해서 

끝없이 현혹당하고 있다.

갈등을 겪고 있다. 온갖 희비극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브라흐만의 얼굴로부터 마야의 베일이 벗겨지게 되면

우리는 더이상 무섭고 엄격한 감독자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대신 거기에는 가장 사랑스러운 자아가 있다.



51. 신이 편재해 있다면 우리는 왜 신을 볼 수 없는가.

부초(浮草)의 물거품으로 덮여 있는 저 옛 연못을 보라.

부초와 물거품 때문에 물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물을 보고 싶으면 부초와 물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두 눈이 마야의 필름으로 가려져 있으면서 신을 볼 수 없다고 너는 투덜댄다.

신을 보고 싶으면 네 두 눈으로부터 마야의 필름을 걷어내라.


52. 구름이 태양을 가리듯이 마야가 신을 가리고 있다.

구름이 걷히면 태양을 다시 볼 수 있듯이  마야를 걷어내면 신이 드러난다.


53. 마야의 정체를 발견했다면  마야는 발각된 도둑처럼 달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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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캘커타 부근 Belu에 있는 깔리 사원.

라마 크리슈나는 이 사원의 사원지기로 일생을 마쳤다.


* 신의 유지의 속성을 인격화한 비슈누의 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