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신부님 강론

2016년 8월 11일 목요일 무위신부님 강론

은가루리나 2016. 9. 9. 07:48


오늘의 복음 : 마태오복음 18,21-19,1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21─19,1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19,1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찬미예수님!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이라는 수, 이것은 신비의 수입니다.

피타고라스가 기원전 수백 년 전에부터 말해왔지만. 지금도, 여러분이 앉아계시지만, 모든 것이 숫자의 종합입니다. 숫자로 이루어져 있어요.

만물은 숫자로 얽혀 있습니다.

만물은 수다. 이렇게 말하지요.

 

그것이 현대에 드러났잖아요.

현대에 가장 중요한 것이 뭐예요? 컴퓨터지요.

컴퓨터는 2가지 숫자로 이루어졌습니다.

음과 양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 숫자가 얼마나 신비로운지 모릅니다.

 

주님은 저를 이끌어 주실 때

수를 통해서 이끌어 주시고 보여주시고 증명해주셨습니다.

저 신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나. 할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숫자로 보여주십니다.

그럴 때 저는 아 주님 감사합니다. 알았습니다. 그렇게 합니다

 

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지리산에서 살면서 저에게 다가온 숫자, 당신이 저를 통해서 보여준 숫자는

111입니다.

그래서 이 숫자를 너무 좋아합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면 저에게는 112 가  아니고 1111입니다.

 

제가 너무 몸이 않 좋았을 때를 생각해서

여기 환자들을 만나보면, 이렇게 한번 해보십시오. 할 때 그대로 따라주면 좋아지는데. 자기 몸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미진한 것을 보면 너무 답답해요.

저는 저의 건강을 위해서 모든 치료를 다 해봤어요.

저는 진짜 좋은 것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다 권합니다.

그것 때문에 신부님은 왜 혼자만 좋아하지 남에게 강요하냐고 하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요.

 

내맡김의 영성도 너무 좋으니. 처음에는 강요했지만. 이제는 강요안 합니다.

진주를 개나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고 했잖아요.

돌아설 때 진주를 선물로 던졌는데. 밟아버린다는 것을 알았어요.

진주를 밟고 돼지 똥밭에서 뭉개듯이 합니다.

마음의 문을 닫아 걸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도 나와있잖아요.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다.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기 때문이다.'(에제키엘 12,2)

마음의 빗장을 닫아놓으면 열릴 수가 없어요.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입니다.

도레미파솔라시,가 몇 개입니까?

거기서 반음이 들어간 것은 미파, 라시이지요.

이것을 인도 철학자가 풀어놓은 것을 보면 놀라운 신비가 있어요.

이것을 말하면 쥐뿔도 모르면서 가르쳐주면 가르쳐주는 대로 하지 않고 반대를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일본에서도 많이 느꼈어요.

오죽하면 바오로 사도가 그랬겠어요?

내가 바리사이이며 로마 시민이며...라고요.  그 말씀이 이해가 가요.

 

오늘 예수님의 말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라고 말하는 것은 완성을 말하지요.

개신교 목사들이 성경말씀을 가지고 강해를 하지요.

우리도 주석서가 있지요.

주석은 성경공부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은

그 성경말씀에 주석을 말할 수 있어요.

하느님이 지혜를 주시는 겁니다.

 

우리 어머니를 통해서 알 수 있어요.

저희 어머니는 국민학교밖에 다니지 않았어도 얼마나 놀라운 지혜가 있는지 모릅니다.

설교하라고 하면 설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일하시는 시간 외에는 항상 책과 기도로 사신 분이세요.

그러니 지혜가 열려있어요.

그래서 제가 어머니로부터 신앙을 전수받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오늘의 제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을

이해욱신부의 주석에 의하면,

'용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라는 겁니다.

너희 인간은 절대 용서라는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러면 누가 하는 겁니까?

하느님이시죠.

하느님이 해주시는 거예요.

 

제가 도봉동 성당에 있을 때,우리 신자가, 자기 딸이 신자 아닌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것을 못하게 말려서, 결국 옥상에서 찔려 죽이고 자신도 옥상에서 떨어진 사건이 있었어요.

그것이 KBS좌담에 나왔어요.

또 여의도에서 광란의 질주를 한 사람의 차에 치여 어떤 아이가 죽었는데. 그 할머니가 천주교 신자였어요.

용서는 정말 힘들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그 아버지는 처음에는 신앙의 힘으로 용서한다고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괴로워지고 용서할 수 없었다는 것, 괴로움과 증오가 더 깊어진다는 것을 방송에서 고백하더라고요.

 

그래서 용서는 신적인 행위라는 거지요. 인간이 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하느님이 용서해주시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지요?

하느님께 맡겨야 된다는 겁니다.

내 자식을 내 손주를 살해했다고 해도, 그것마저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내 마음을 용서해주시고,

죄지은 사람을 주님이 용서해주신다는 거지요.

 

이해욱 신부의 주석이었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할 수 없고, 그 강한 상처에 대한 용서는 주님의 능력을 빌려서 주님의 은총으로만 용서가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대한 저의 해설입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바로 우리의 처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 자발적으로 맡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따라서 하십시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용서는 신적인 행위이다."    아멘아멘!

 

주님을 죽도록 뜨겁게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