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신부님 강의록

카를로스신부님 제2차 피정 강의록(제15강의-하느님 뜻과 인간의 뜻에 대하여) {천상의 책14권 4장} 인간 영혼에 필수적인 양식인 사랑

은가루리나 2015. 10. 18. 16:14




14권 4장   1922년 2월 17일 


인간 영혼에 필수적인 양식인 사랑




루이사의 글 안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핵심에 대해서 설명하신 수백 개의 장(章)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 모든 글들의 제목이 천상의 책(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로 되어 있지만

이 제목과는 상관이 없이 성 요한이 복음에서 말한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 뜻과의 완전한 일치는 우리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무한한 사랑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첫 원조인 아담이 제일 처음 한 말도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인 것이 분명합니다. 

첫째 계명도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이며, 

둘째 계명도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의 가장 심오한 특징은 

죄나 선동(도발)이 아닌 그분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예수님 수난 안의 주인공은 그분의 무한하신 사랑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그분 자신을 완전히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했지만,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더욱이 그것을 거부하는 편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분의 수난의 특징을  만든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난 원천인 것입니다.


칸타라 메사 신부님이 강생의 신비에 대해서 언급할 때에 

교회의 역사에서 많은 신학자들과 성인들이 

왜 그분께서는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사람이 되셨는가? 

왜 죄가 그분께서 오신 분명한 원인인가?’ 라는 의문을 가졌으며, 

신학자들과 성인들은 ‘죄는 그분의 강생의 주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칸타라 메사 신부님은 교회가 이것에 관하여 이해해 온 과정을 일일이 설명하였는데, 

결국 이 신비를 이해할 수 있는 그들의 마지막 결론은 쉬운 것으로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것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강생하신 이유는 하느님께서 피조물을 무한하게 사랑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아들일 능력이 있고, 

창조주께 무한한 방법으로 응답할 수 있는 인간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했습니다. 

어떻게 피조물이 무한한 사랑을 받을 수 있겠으며, 

피조물이 그 무한한 사랑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 해결책은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하느님인 존재였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그 존재는 무한하게 사랑받을 수 있고 또한 무한한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사람이 되신 것은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에서는 항상 하느님의 영광이 제일 중요한 것이었고, 

그런 식으로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완전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랑이시므로 

그분의 무한하신 사랑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는 것이 항상 이 신비의 중심이 됩니다. 

이것으로 모든 것과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뜻의 선물도 설명이 됩니다. 

그분께서는 무한한 사랑이시며 

그분께서는 무한한 방법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무한한 사랑을 받을 수 있겠으며, 이 사랑에 응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뜻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예수님 안에서는 본성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우리들 안에서는 은총으로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설명하시는 대로, 

하느님의 뜻이 모든 것을 보관하고, 

하느님 안에서 그분의 뜻은 신적인 생명을 보관하고 있으며, 

그분 안의 하느님 사랑의 모든 신비가 그분의 뜻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사랑으로 주님께서 당신 뜻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면 

우리는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우리 안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에 무한한 방법으로 응답해 드릴 수 있게 됩니다. 

피조물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그 때문에 창조하셨다는 것이 바로 위대한 신비입니다.


그분 뜻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된 작은 신들이 됩니다. 

그 조건은 그분의 뜻과 우리의 뜻이 항상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마귀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창조주와 아주 비슷한 뜻을 가지고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뜻은 그분의 무한함과 그분의 전능하심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뜻이 

우리의 자유 의지로 그분의 뜻에 동의하여 생명력을 가질 때에만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장(章)의 전반부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부분이지만 시간 관계상 중간 문단만 보겠습니다.



11 사람에게 가장 밀착되어 있는 것이 내 사랑이다. 

이는 사람이 태어난 요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떤 부조화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지체들이 몸과 조화를 이루듯이, 

내 신성 안에는 일체가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12 사람의 의지는 그의 정신 안에 있으면서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 

사람이 원하지 않는데 그의 눈이 보고 손이 일하며 발이 걷는다고 말할 수 없다. 

반면에 그가 원하면 눈이 보고 손이 일하며 발이 걷는다. 

모든 지체 조화롭게 일치를 이룬다.


13 내 신성도 그러하다. 

내 의지가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다른 모든 속성들은 내 뜻이 원하는 바를 따르려고 완전한 조화 속에 자리하고 있다. 

지혜, 능력, 지식, 선성 등등이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14 그런데 이 속성들은 서로 구분되면서도 모두가 사랑의 샘 안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랑이 넘쳐흐른다. 

이런 이유로,  사랑이 달리고 활동하며 스스로를 내줄 때면, 

내 다른 속성들도 사랑과 일치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다.


15 더군다나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양식과 같다. 

이에 비하면 지식이나 능력이나 지혜는 없어도 살 수 있고, 

아니면 때가 상황에 따라 필요할 뿐이다.


16 내가 사람을 창조했으나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겠느냐? 

하물며 사람을 사랑할 마음이 없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창조하겠느냐? 

그렇다면 내게 수치가 될 것이고, 

내 사업이라고 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사랑 외의 다른 것은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17 그리고 사람이 만일 사랑의 근원이 없어서 사랑할 수 없는 존재라면 어떻게 되겠느냐? 

바라보기조차 민망스러운, 잔인한 야수같이 되지 않겠느냐?


18 그런즉 무엇이든지 그 안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 사람의 모든 일에 내재해 있어야 한다. 

어떤 나라의 화폐에 들어 있는 임금의 초상처럼 말이다. 

이 초상이 새겨져 있지 않은 주화는 그 나라의 돈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과 같이, 

사랑이 내재해 있지 않은 일은 나의 일로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 하느님 뜻의 위대한 신비의 깊은 속으로 들어가도록 초대를 받음과 동시에 

이 하느님 뜻의 왕국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전파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사랑 없이는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이 우리의 삶과 설교 등등의 모든 것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사랑의 인장이 찍혀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만일 사랑이 들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나의 일로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께 드리는 감사의 기도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