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신부님 강론

2017년 4월 9일 주님수난성지주일 무위신부님 강론

은가루리나 2017. 5. 19. 18:33

 

무소 추천 0 조회 43 17.04.15 10:14

 

 

마태오가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입니다.

< 27,11-54>

 

11 예수님께서 총독 앞에 서셨다. 총독이 물었다.
●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 12 그러나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당신을 고소하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3 그때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었다.
● “저들이 갖가지로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들리지 않소?”
○ 14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고소의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총독은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15 축제 때마다 군중이 원하는 죄수 하나를 총독이 풀어 주는 관례가 있었다. 16 마침 그때에 예수 바라빠라는 이름난 죄수가 있었다. 17 사람들이 모여들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 “내가 누구를 풀어 주기를 원하오? 예수 바라빠요 아니면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요?”
○ 18 빌라도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19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는데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 “당신은 그 의인의 일에 관여하지 마세요. 지난밤 꿈에 내가 그 사람 때문에 큰 괴로움을 당했어요.”
○ 20 그동안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군중을 구슬려 바라빠를 풀어 주도록 요청하고 예수님은 없애 버리자고 하였다. 21 총독이 물었다.
● “두 사람 가운데에서 누구를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 군중이 대답하였다.
◎ “바라빠요.”
○ 22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 “그러면 메시아라고 하는 이 예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
○ 군중이 모두 외쳤다.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23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 군중은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24 빌라도는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동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받아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하였다.
●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오.”
○ 25 온 백성이 대답하였다.
◎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
○ 26 빌라도는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27 그때에 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데리고 가서 그분 둘레에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28 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다. 29 그리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분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리고서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며 조롱하였다.
●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 30 또 군사들은 예수님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때렸다. 31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외투를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32 그들은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보고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33 이윽고 골고타 곧 ‘해골 터’라는 곳에 이르렀다. 34 그들이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를 예수님께 마시라고 건넸지만, 그분께서는 맛을 보시고서는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다. 35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제비를 뽑아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진 다음, 36 거기에 앉아 예수님을 지켰다. 37 그들은 또 그분의 머리 위에 죄명을 붙여 놓았다. 거기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 예수다.’라고 쓰여 있었다. 38 그때에 강도 두 사람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못 박혔다. 39 지나가던 자들이 머리를 흔들어 대며 예수님을 모독하면서 40 말하였다.
●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는 자야,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 41 수석 사제들도 이런 식으로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과 함께 조롱하며 말하였다.
● 42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 43 하느님을 신뢰한다고 하니, 하느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 내 보시라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야.”
○ 44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마찬가지로 그분께 비아냥거렸다. 45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46 오후 세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다.
?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 이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47 그곳에 서 있던 자들 가운데 몇이 이 말씀을 듣고 말하였다.
● “이자가 엘리야를 부르네.”
○ 48 그러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와 신 포도주에 듬뿍 적신 다음, 갈대에 꽂아 예수님께 마시게 하였다. 49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말하였다.
● “가만,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해 주나 봅시다.”
○ 50 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 무릎을 꿇고 잠시 묵상>
○ 51 그러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다. 52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났다. 53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다음,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 많은 이들에게 나타났다. 54 백인대장과 또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이들이 지진과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며 말하였다.
●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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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예수님

부활에 앞서 거룩한 주간 성주간이 시작되는 성지주일입니다. 

본당에서는 성지가지 행사를 하고  그러시죠? 

 

시한번 

이렇게 부활때마다 거룩하고, 정말 우리에게 분에 넘치는 그런 거룩함마저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룩함이 편안함이 아닐까! 

 

거룩함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배운 그대로  감히 근접할 수 없는, 

나같은 놈은 하느님 가까이 나갈수도 없는, 

성당에서도, 성당 바로 들어오기 전에 떠들고 하던 사람들도 

성당 들어와서는 엄숙해지고,  감히 하느님의 상징이요 또 표징이요 특성이기 때문에 

아마 근접할 수 없는 그런 것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느끼고 그렇게 살아왔는데 

거룩함은 편안함과  뭐 정말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으면 편안하죠!  

마음이 평화롭고 안정되고  그런 상태가 하느님 앞에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가르켜주시려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면서 아들로써 이 세상에 내려오셨고, 

그 모습을 보여주셨지 않습니까! 

 

거룩함은 편안함을 넘어서 

편안함은 어떤 우리가 주로 육체적인 그런 표현을 할 때 편안하다. 

마음도 그렇고,  하지만 마음이나 육체적인걸 표현할 때 편안하다 

하지만 평화로움은 정말 영육 모든거를 다 포괄하는 그런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룩함은 편안하고 이게 더 깊어지면 어디서 어떤 상황속에서도 깨질 수 없는 평정심

이게 진정한 평화로움이 아닌가

 

그래서 제가 내맡긴 영혼들에게 있어서는 뭐 1년이, 하루하루가, 모든 날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전례력이 우리 삶 자체고, 사순절이고, 부활절이고, 

우리는 우리의 모든 날을 하느님의 신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구별은 없어지고 

정말 본당에서 하는 전례가 우리의 삶을 시기시기마다 새롭게 느끼고 체험하게 이끌어준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뿐만 아니라 

또 돌아오는 금요일에도 또 부활전야때도 긴 성경들이 읽혀지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예수님이 십자가상에 달리셔서 고통을 받으시고 

마침내는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라고 이런 외마디를 지르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근데 천상의 책에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의 뜻이 나와있죠? 

기억이 안나요? 그 예수님이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이 말씀에 대한 천상의 책에 

그 뜻을 올려 놓은 글이 있어요~! 

상의 책인지, 수난의 시간들인지에 거기에 올렸어요.

오늘은 그걸 떠나가지고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이거를, 아직까지도 저는 그래요. 

뭐 많은 성인들이 체험하고, 체험해야하는 과정중에 하나인 어둔밤이라고. 

든 것이 그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이 상황을 느낀 거라고 저는 바라보기가 싫어요. 

 

아직까지. 글에서도 몇 차례 말씀드렸지만, 

내맡긴 영혼들에게 있어서 죽음의 순간이  오면은 하여튼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이걸 원망스런 외침으로, 또 하느님께서 성부께서 아들 예수님을 잠시 떠나간 듯한, 

그래서 예수님이 이걸, 이 외마디를 외쳤다고들 얘기하는데 

저는 그렇게 제가 체험을 하지 않은 것은 말씀을 안드린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지금 현재까지 저의 처지에서는 내맡긴 영혼들에게는 이 예수님의 외마디가, 

하느님이 나를 떠나가서 절망,  마더 데레사도 느꼈고, 누구도 체험했고, 누구도 체험했고 

다 암만 이야기를 해도,  

저는 이 이야기는 현재까지 제가 체험 못했기 때문에 

내맡긴 사람들은 이런 그 어둔 밤으로, 

어둔 밤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서 다시 하느님을 만나는  이런 과정은  

내맡김 그  자체로 통과의례 되어버렸다. 라고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고 

체험을 못했기 때문에, 제가 체험을 하면 알려드릴께요.

 

 

그리고 이것은 단지 예수님이 우리 내맡긴 영혼들만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어떤 그런 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그런 말씀, 아직까진 그런쪽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유를 오늘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완전히 구약과 신약으로 완전한 갈래길!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구약과 신약이 완전히 나뉘어지는, 

물론 그렇다고 별개의 것이 아니라, 

신약을 완벽하게 여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죽음이고, 

예수님이 십작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는 그 이유가 

바로 전에 이 군중들의 외침! 

'수석사제들도 이런 식으로 율법학자들과 함께 조롱하며 말하였다.' 

수석사제들도 이런 식으로 율법학자들과 원로들과 함께, 

세 부류의 유대를 움직이던 권력자들, 예수님 죽음의 앞잡이가 되었던 이 사람들이

조롱하면서 하는 이 말 속에 

예수님이 죽으신 그 이유! 법정 뭐 판결이라고 그럴까! 

여기 다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번 다같이 저하고 읽어봅시다.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 

하느님을 신뢰한다고 하니, 

하느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 내 보시라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야."(마태27,42-43)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야,  

이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유.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하느님이,  당신의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당신을 아버지로 내어주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 이 친 아들이 당신을, 

이제는 난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벗, 형제라 부르겠다. 

똑같이 아버지를 하느님을 같이 너희들도 아버지라고 부르자.

 

 

햐~~~이거 이게 어디 있습니까. 

예를들어 어떤 가정이 고아원에서 지내던 아이를 입양해서 데려왔는데, 

뭐 걔는 외톨이죠! 외톨이! 

그 외톨이가 어쩔줄 모르고 있는데, 그 중에 자녀중에 하나가 

'너 이제 우리집에 살게 되니까 우리처럼 아빠라고 부르자, 

이거 정말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하느님을 감히 하느님을 당신의 외아들이 그 엄위하신 하느님을 ,

구약시대때 이름도 부를 수 없는 그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해 주셨다는게, 

이 아버지, 얼마나 큰 영광인지 우리가 2독서를 보면은 우리가 사는 목적이 여기 나와있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필리2-11)

 

우리가 사는 목적은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거예요. 

이 내맡김의 영성! 시작부터 지금까지 7년까지 내려온 것이 결론은 아버지 영광이예요. 

놀라우신~놀라우셔요!

 

 

제 입에서도 이제는 아버지 호칭에 대한 변천사! 

어렸을 때부터 제 입에서 나오는 거는 우리 엄마와 같은 성모님! 

모든 게 성모님,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죠.! 

여기 카페에 들어와서, 뭐 묵주기도에다가 성모님 아니면 죽을똥 살똥, 

뭐 사실 죽을 때 되면 살똥, 죽을 똥도 못싸는 사람이 그 감히 , 저한테 비길수가 없어요. 

언제 영세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묵주기도 해야된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신부가 전문가 아닙니까 

하느님에 대해서 . 

그럼 그렇게 아멘하고 받아들여야지...그렇게 말을~~~

그 사람의 신앙상태를 알아요 댓글을 보면은.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그렇게 소신학교 때부터 저한테 위안을 주는 그분은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님이었어요. 성모님! 어려울 때마다 

성모님께 다가가서 기도하고 9일기도 

어려울 때 안 들어주신 적이 없어요. 

정말 희한하게~그러고 잘못을 저지를 때 미리 성모님께 기도를 해요 .

 

예를 들어 신학교 혜화동 성벽공사를 대대적으로 할 때, 

담이 다 허물어져가지고 담치기들을 많이 했어요. 

성벽 넘어서 가게에 가서 먹을 거 사고, 술먹고 들어오고 

그러다가 걸려가지고 신부 못 된 친구들도 있어요. 

제 친한 친구도. 뭐 담이 없으니까 무너진 성벽을 건너가면 되는데...

 

우리 성모님, 저를 지켜주신 성모님. 

그리고 저 진짜 죄에 대해서는 소심증, 어려서부터 소심증이 있었어요. 

참~! 더 얘기 깊어지는 안되요...ㅋㅋㅋ

 

소심해가지고 죄도 못 짓고! 

저를 무지 좋아하는 여성들이 뭐 있지 않습니까. 저도 남잔데...

뻔하죠 그죠? 여러분들도 뻔하죠. 뭐 사랑스러우니까 안고 뽀뽀하고. 키스하고! 

정말 그래도 이 안에는 그것만은, 그것만은, 정말 놀래요 이게, 저절로 되는게 아니예요, 

그것만은! 뭐 여러차례..

옛~~~날에~~ㅎㅎㅎ

 

 

성모님으로 위로를 삼고, 위로를 받고, 항상 성모님이 제 입에서,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신학교 생활내내. 저희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강론했지만 

신앙은 전수예요. 전수받고 전수해 주는 거!  

내가 전수해 주는거예요, 

다른거 아니예요. 받아들일 그릇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데 옛날에는 몰랐죠. 

저희 어머니가 전수해준 신앙을 이어받아가지고 이렇게 된건데, 

한순간에 이렇게 되기는 어려워요 

실. 사고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정말로 제가 이런 자리에서는 제가 그대로 말씀드리지만 

우리 사제관에 7분의 신부님들이 계시는데 저까지 포함해서. 

다 유명한 신부님들이세요, 

영성심리담당 신부님도 계시고, 신학교 총장출신 신부님, 평화방송 차장 신부님도 계시지만...

 

내맡김의 영성지수는 곧 신앙의 정도예요. 

신앙의 성숙도인데 여러분들보다 낮아요. 정말이예요.

 

제가 1년 반 같이 살면서 

아! 이게 신학교 교육이구나! 마음으로 안타까워요~! 

두 신부님이 병을 통해서 지금 겪고 있는 모습들이 이거는 아니예요~! 

그리고 며칠전에 은퇴하신 아마 80이 다 되셨을거예요. 

 

병원관계되는 일로 저랑 통화를 하게 됐는데 참 죽음앞에서는 ,

죽음이라는 거 앞에서는 밑바닥에 있는 신앙이 드러나는 거예요. 

사실 두렵다고 이렇게 표현하셨어요...

 

그분께 제가 병을 경험했다는 걸 알려드리고 제가 도와드리겠다는 이런 대화를 했는데 진짜로 신부

님들 돌아가실 때 어떻게 돌아가시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느님을 '오소서 주님, 마라

나타 주님!' 하고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분이 몇이나 얼마나 될려나!

 

걱정하는 것을 볼 때 나도 내맡김이 아니었다면은 저렇게 살 수밖에 없었을것이다 라는 그런 생각을

주변신부님들을 통해서 하게 되요.

우리가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예요. 하느님을 사랑하면은 하느님이 모든 것을 다 헤아려 주시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고, 모든 걸 다 이끌어주시는데,

오늘 이 신부님은 달라졌다는 것이 맨날 묵주가지고 살고, 성모상을 여기저기 사 들여가지고 바깥에

도 사들이고, 여기도 놓고, 여기도 놓고. 뭐 그런 외적인게 대화하면 틀려요. 뭐 묵주기도가 그 신부님께 위안을 주지만 대화는 그게 아니예요.  수많은 사람들의 영성심리 상담을 받으시는 분이신데.

신부님이 원하시면, 제가 이 내맡김영성 책도 드렸어요.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안 읽기가 쉬웠을 거예요.

 

 

처음에 수술하고 6개월전에 이렇게 했을때는 아주 대단했어요. 지금은 달라져가지고 이렇게 하고, 저보고 대단하다고 병을 그렇게 앓고 대단하다고 그랬는데, 저는 병이 아니라 신부님이야말로 TV를 보면서 저 심리상담을 넘어서서 진짜, 그 신부님이 담당하는게 영성심리거든요. 심리차원을 넘어서서 영성적으로 올라오면 기가 막히겠는데 라는 생각을 옛날부터 신부님이 평화방송에서 상담프로그

램할 때부터  저는 느꼈습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면 여기서보다 영적으로는 더 올라서면 기가 막힐겁니다 라는 이런 표현을 해갖고 언제든지 신부님께서 원하신다면은 제가 경험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씀은 드렸는데 그 이후에는 뭐...

 

그래서 두 신부님이 아프고 수술하는거 이런 병을 통해가지고 사제관이 거룩해졌어요. 작은 사제관이지만. 이게 바로 주님께서 병주고 약주고 해가지고. 내맡김의 영성수준이 아래예요, 있는그대로!

지식은 많고 크나 그렇습니다. 정말 오늘 성전 휘장이 갈라진 이유, 하느님을 저는 구약의 백성들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는데, 이 성전 휘장이 갈라짐으로써 이제 하느님이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은 다른 하느님,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그냥 하느님!

 

이런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호칭이 얼마나 대단하고 너무너무 위력있고 거룩한 호칭이라는게 점점점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여러분 각자를 통해서, 우리를 통해서 드러내주실 것입니다. 강론을 마치면서 저를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세~번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