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13 p.74-78 제 1 편 제 7장 위탁(委託)에 있어서의 원망(願望)과 기도(祈禱) ①

은가루리나 2018. 1. 8. 16:17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102   추천 0   2014.08.12. 19:58


제1편, 거룩한 위탁의 본질


제1장 최고의 규범으로서의 천주의 의지

제2장 천주의 명시의지와 임의의지

제3장 천주의 명시의지에 대한 순명

제4장 임의의지에 대한 적합

제5장 거룩한 의탁의 개념

제6장 위탁과 현덕

제7장 위탁에 있어서의 願望과 기도

제8장 위탁에 있어서의 노력

제9장 위탁에 있어서의 고통감

제10장 위탁과 희생의 서원



p.74



제 1 편 거룩한 위탁의 본질(本質) 


제 7장  위탁(委託)에 있어서의 원망(願望)과 기도(祈禱)




본장에서 말하려는 것은 

단지 기호(嗜好)나 혐오(嫌惡)의 정에 관해서가 아니라,

유의적(有意的)으로 야기되고 추구되는 원망(願望)에 관해서이며,

결심과 기도와 노력에 의해서 표현되는 것에 관해서이다.



그런데, 그러한 원망(願望)은 거룩한 위탁과 서로 용인되는 것일까.

원망(願望)이 단지 인종(忍從)과 양립(兩立)할 수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왜냐 하면, 성「프란치스꼬.살레시오」


「인종(忍從)은 다른 모든 것보다도 천주의 의지를 앞세우지만,

그러나 동시에 천주의 의지 이외의 많은 것을 사랑함을 방해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고 병자의 보기를 인용하여,


「사람은 확실히 죽음보다도 삶을 바라고 있다.

죽음이 천주의 뜻이라는 점에서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지만,

살아날 수 있으면 더욱 기뻐할 것임이 틀림없으리라(「신애론」9편 3및 4장) 

고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무관심과 거룩한 위탁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종류의 행복한 일이 일어나,

그것이 계속 되도록이라든가, 

영적(靈的)이건, 물질적(物質的)이건, 

이러저러한 시련에 부딪치지 않도록이라든가,

또한 그것이 끝나도록 바란다는 것은 

과연 위탁의 완전성에 위배되는 것인가.


예외는 별도로 하고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원망(願望)을 일으키고, 또한 기구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반드시 그것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p.75


우리는 정당하게 그것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몰리노스」(정관파「靜觀派」의 대표자, 1604-1694) 의 다음과 같은 설을

교회가 배척하였기 때문이다.


「천주의 의지에 인종(忍從)하는 이가 천주께 대해서 어떠한 기원(祈願)도

한다는 것은 알맞지 않다.


그것은, 

기원은 자기의 의지와 자기의 선택의 행위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하나의 불완전성(不完全性)이며, 

그러한 경우, 

사람은 천주의 의지를 자신의 의지에 따르게 하도록 바라고 있음을 

뜻하고 있다.


복음성서의 『 구하라, 곧 너희게 주시리라』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은 

원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내적영혼(內的靈魂)에 대하여 말해진 것이 아니다.


그러한 영혼은 

천주께 대해서 아무런 요구를 내세울 수 없을 정도에 이르기 때문이다.」

(배척된 조항 제14조)




「발다살.알바레스」신부는 말한다.


「만일 그대들이 

온전히 천주에의 봉사만을 위해서만 사용하려는 결심이 있다면 

건강을 바라고 이를 천주께 기구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왜냐 하면, 

이런 종류의 원망(願望)은 성의(聖意)를 거스르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천주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 자신의 증명을 여기에 들어 보자.

주께서는『젤뜨루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딸아, 사람들의 영혼에 내 사랑의 위대함은 순수하고 

또한 인간에게 허용되는 한의 무사적(無事的)인 열심에서 솟아 나오는 

의인(義人)등의 원망을,

어느 때든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인 것이다.


병자가 건강을 바라는 것이 

참으로 보다 훌륭하게 나를 섬기기 위해서인가.

그렇다면 온전한 신뢰로써 그것을 내게 기구함이 좋으리라.


그리고 또한 

보다 커다란 보수에 맞갖게 하기 위하여 그것을 들어 주리라.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그들의 이익을 내 이익으로 간주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발다살.알바레스」전51장)


p.76


성「알퐁소」역시 이와 같은 의미의 말을 하고 있다.


「우리가 몹시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그것을 동료에게 알리는 것도,

그리고 완쾌되기를 주께 원하는 것도 결코 좋지 못한 짓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커다란 고통에 관해서 뿐이다」라고.


그는 또한 

영혼의 건조(乾燥)와 시련(試鍊)에 관해서도 그와 같은 것을 가르치고,

명심해야 할 두가지 보기를 들어서 그 증거로 삼고 있다.



위대한 사도 성「바오로」는「사탄」의 사자(使者)에게 매질을 당하였을 때,

세번 악령(惡靈)이 물러가도록 주께 기도하였는데,

그렇다고 완전한 위탁에 결여되었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네게는 내 은총으로써 족하느니라」고 대답하셨기에,


성「바오로」는 싸움과 고통과를 겸손되이 수락하고, 

전력을 다하여 싸우고,

또한 나약함 가운데 있음을 기쁨으로 여겼다.


왜냐 하면, 고통 중에 있을 때야말로,

그는 그리스도의 힘에 의해서 강한 자였기 때문이다.



둘째 보기는,

그보다도 훨씬 탁월한 것이며, 반박(反駁)할 여지 없는 증명이다.


「예수.그리스도 자신이 그 혹독한 수난하심에 있어,

그 영혼에 느껴지신 죽을 것만 같은 우민(憂悶)을 제자들에게 알리시고

그리고 성부께 세번이나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구하셨다.


그러나 천주이신 구세주께서는 

그와 동시에 우리가 같은 기도 후에 해야 할 것은


『그러나 내 원의대로 말으시고, 오직 네 원의대로 하소서』라고 덧붙여 

즉시

천주의 의지에 맡긴다는 것을 당신 자신의 모범으로써 가르치셨다.」

(성「알퐁소」「천주의 의지에의 적합」5절3-5)


그와 같은 경우에 있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제 이 이상의 것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프란치스꼬. 살레시오」는 하나의 예외를 제시하여


「만일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가 사전에 나타났을 경우,

이를테면, 
성『베드루』에게는 그 최후의 모양이,
성『바오르』에게는 쇠사슬과 감옥이라든가,
『예레미아』에게는 그 사랑하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다위』에게는 그 자식의 죽음이라는 것과 같이 미리서 제시되는 경우에는,
즉시 우리의 의지를 천주의 의지에 일치시켜야 한다.」(「신애론」9편6장)
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가 절대적이며,
철회(撤回)할 수 없음을 가정하고 있는 것인데,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우리는 당연히 원망(願望)하고 기구한다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p.77

그러나, 일반적인 법칙으로서는,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지금 말하는 사건은 모두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에 속하며,
그 결정은 우리의 일이 아니고, 천주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덕(賢德)이 요구하는 것은 이것을 모두 수행한 후에,
하늘에 계신 성부께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는 것이 
어찌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겠는가.


「주여, 당신은 내가 당신을 더욱 깊이 사랑하고,
선덕(善德)에 나아가려고 열망하는 바를 아시나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
건강이냐, 질병이냐, 위안이냐 건조(乾燥)냐,
평화(平和)냐 싸움이냐, 활동이냐, 무위(無爲)냐,
나 조금도 이를 알지 못하오며,
홀로 당신만이 이를 완전히 알으시나이다.

당신은 내가 바라는 것을 나타낼 것을 내게 허락하시나이다.

나는 오직 예지(叡智)와 지선(至善) 자체이신 당신께
나를 맡기는 것을 택할 뿐이로소이다.
뜻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

오직 나로 하여금 
만사가 당신께서 정하신 바에 그저 순종하는 정신을 주시옵기를!....」

p.78

어떠한 원망(願望)도 요구(要求)도,
그러한 태도 이상으로 천주께 대한 신뢰를 입증(立證)함과 동시에
우리의 자아포기(自我抛棄)와 순명(順命)과 관대(寬大)함을 드러내는 것은
없다고 생각된다.

위에 말한 것은 성「알퐁소」의 의견이다.
그는 착한 의향(意向) 안에 다음 세가지 단계를 세우고 있다.

「제 1 단계

사람은 각가지 현세적 선(現世的善)을 목적으로 
예컨대,
이러저러한 질병, 훼방 물질적 곤궁등이 끝나도록 미사를 봉헌해 달라든가,
또는 단식(斷食)할 수 있다.

그러한 의향은 인종(忍從)에 의해서 선(善)한 것이 되지만,
그러나 이 단계가 세 단계 중에서 가장 불완전하다는 것은 그 대상(對象)이 
지상(地上)의 영역(領域)을 이탈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2 단계 

사람은 또한 천주의 정의(正義)를 만족시키고, 
또는 선덕(善德), 공로(功勞), 천국 영광의 더음이라는 것과 같은 
영적 선(靈的善)의 획득을 기도(企圖)할 수도 있다.
이 둘째의향은 첫째의 그것보다 탁월하다.


제 3 단계

사람은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와 성지(聖旨)가 성취되기만 바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세 단계 중에서 가장 완전한 가장 공로가 많은 것이다.」
(「수도자의 성화」제 15장 7절)


또한 성인은, 다른 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가 병에 걸렸을 적에 취해야 할 최선의 길은,
질병도 건강도 원하지 않고,
오직 천주께서 그 뜻대로 우리를 처리하시도록 천주의 의지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적합」5장 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