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4권

{천상의 책 4권66장} 온 존재로 겪는 예수님 부재의 고통, 은총과 십자가에 대한 가르침을 받다

은가루리나 2018. 3. 8. 16:46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4-66



1901년 4월 19일



온 존재로 겪는 예수님 부재의 고통, 

은총과 십자가에 대한 가르침을 받다




1 흠숭하올 예수님을 뵙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오신다고 해도 

그림자나 번쩍 비쳤다 사라지는 빛처럼 오시는 것이 고작이니까) 


내 보잘것없는 마음은 엄청난 괴로움에 잠겨 있다. 


그분의 부재가 얼마나 날카롭게 느껴지는지 

내 온 마음과 온 몸이, 신경과 뼈와 심지어 핏방울들까지 

내 안에서 끊임없이 발버둥치면서 이렇게 부르짖고 있다.




2 "예수님은 어디에 계시느냐? 


네가 어떻게 그분을 잃을 수 있느냐? 


무슨 짓을 했기에 그분께서 더 이상 오시지 않느냐? 


그분 없이 내가 어떻게 지낼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위로의 원천을 잃었으니, 달리 누가 나를 위로해 줄 수 있겠는가? 


나약에 빠졌을 때  누가 나를 강하게 해 주겠는가? 


전류보다 더 강력하게 내면의 가장 은밀한 곳까지 들어와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감미로움으로 나의 상처들을 바로잡아 치유해 주던  

- 이 없이 홀로 있게 된다면, 

누가 내 결점을 고쳐 주며 보여 주겠는가? 


일체가 비참이요, 황량함이요 어둠일 뿐이다! 

그분 없이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의 깊숙한 곳에서는 이를 감수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분의 부재를 

그분께 대한 사랑으로 바치는 가장 큰 희생 제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모든 것은 나를 거슬러 싸움을 벌이며 괴롭히고 있다. 

오, 주님, 당신을 알아 온 것이 제게는 너무나 큰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지난날의 방문들에 대하여 

제게 얼마나 비싼 값을 치르게 하시는지요!"




4 내가 그런 상태에 있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잠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바로 나 자신의 일부인) 은총을 소유하고 있기에, 

논리적인 필연성에 따라 

네 존재의 어느 부분에도 내가 없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네 안의 모든 것이 극성스럽도록 나를 요구하고, 

그래서 네가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에 내가 스며들어 있으나 

(오직) 부분적으로만 그들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즉 

부분이 아니라 전적으로 나를 소유할 때에는 

그 모든 것이 평온해져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5 이 가혹한 상태에 대해서 내가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셨다. 


"수난의 전 과정을 통하여  나 역시 극단적인 버림받음을 체험하였다. 

물론, 나의 뜻은 언제나 성부와 성령과 일치를 이루고 있었지만 말이다. 


내가 그 고통을 받은 것은 

모든 것 안에서 십자가에 신성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네가 나를 보든지  십자가를 보든지 

차이가 없는 사랑으로 

이 둘 안에서  같은 광채와 같은 가르침을, 

끊임없이 너 자신을 볼 수 있는 같은 거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4권66장 온존재로겪는J부재의고통 은총과 에대한가르침을받다.m4a.avi


moowee 등급변경▼ 조회 207 추천 0 2013.10.22. 00:56




<69> 영성이란 무엇인거? (29.하느님 뜻과의 조화)  ★영 성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65) 하느님 뜻과의 조화 (29) 세상 안에 살아 계신 주님과 더불어 살기 


혼 뺏겨 사는 우리, 주님 주신 풍요로움 못 느껴
하느님 뜻에 조화될 때 확고한 삶 살 수 있어


발행일 : 2012-09-30 [제2814호, 19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한 단어로 정의하라면?

나는 ‘풍요로움’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보라. 얼마나 풍요로운가. 
세상은 풍요로운 공기로 가득 차 있다. 

그 공기 속에서 참으로 풍요로운 생명들이 살아간다. 
바닷속에는 또 얼마나 풍요로운 생명들이 있는가.
과일의 종류는 또 얼마나 많은가. 
곤충의 종류는 일일이 꼽기도 힘들다. 
풍요로움은 생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바닷가의 모래알을 보라. 한 알 한 알이 모두 다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 이렇게 풍요롭다면,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또 얼마나 풍요로울 것인가.
하느님은 늘 새롭고, 강렬하고, 역동적인 것들을 
매일 우리에게 풍요롭게 선물하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이같이 풍요로운 선물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풍요로움을 만끽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왜 그럴까?


혼을 뺏겨 살아가기 때문이다. 눈이 맑지 않기 때문이다.

영성생활은 시력을 점검하고, 
자신의 시력에 적합한 안경을 착용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눈이 흐리다면 안경을 써야 한다. 
흐릿하게 보이는데도 그냥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안경만 쓰면 잘 보이는데 쓰지 않고 있다. 
좀 더 잘 봐야 한다. 그것이 영성생활이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깜깜한 밤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힘들어 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안타깝다.

조 카나한이 연출하고 리암니슨이 주연한 영화, 
‘더 그레이’(The Grey, 2012)에서는 
비행기 조난을 당한 후 생존한 사람들이 
설상가상으로 늑대에게 쫓기는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늑대를 피해 달아났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영화 막바지에 주인공이 도착한 지점은 늑대 소굴이었다. 

많은 이들이 세상의 고통을 피해 도망 다니지만 
결국 도착점은 고통의 중심부다. 
걷는 길의 방향이 잘못되면 우리는 고통의 굴레를 벗어날 길이 없다. 

대로 보고, 제대로 길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신념 있게 꾸준히 걸어야 한다. 
나 자신의 아집에만 사로잡혀 살아가다 보니 신비를 보지 못한다.


하느님은 바닷가에서 놀고 계신다. 
산에서도 놀고, 인간 안에서도 노신다. 
그렇게 하느님은 당신의 창조물들과 뒹굴고 계신다. 

그런데 정작 인간은 그 풍요로움 안에서 살아가면서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안경을 써야 한다. 제대로 
보고 하느님과 함께 세상 안에서 뒹굴며 놀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영성생활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이런 ‘풍요로움 속에서 뒹굴며 놀기’가 가능할까. 
‘경외’가 중요하다. 
경외의 눈으로 보면 하느님이 세상 안에서 놀고 계신 것이 보인다. 

하느님을 참으로 경외해야 한다. 
그러면 저절로 ‘경탄’이 터져 나오게 된다. 
경외하고 경탄하면 
확고함, 용기, 부드러움, 인내, 효과성, 개방성, 
순명, 꾸준함, 신실함과 같은 여러 성향들이 
고구마 줄기 엮듯이 줄줄이 나오게 된다.


이 세상의 풍요로움은 나와 동반관계다. 
풍요로움 따로, 나 따로가 아니다. 
풍요로움 자체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나를 위해 주신 선물이다. 
이러한 동반관계를 경외 속에서 깨달을 때, 
그것이 바로 공명(하느님 뜻과의 조화)의 삶이다.


우리는 더 이상 구약성경의 신관에 사로잡혀 살 필요가 없다. 
바짝 엎드려 ‘나 죽었다’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은 이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나에게 요구하고 있다.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하느님 품안에서 뒹굴어야 한다. 
하느님과 더불어 어깨동무를 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콧노래 부르며 걸어야 한다.


내가 집을 향해 가는 그 길에 하느님이 함께하신다. 
성체 조배실에 갈 때 하느님은 함께 하시고, 방 청소를 할 때 함께하신다. 
성당에 갈 때, 직장에 갈 때, 산에 갈 때, 바다에 갈 때, 늘 함께하신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그곳에 하느님이 계신다.


하느님 뜻과 조화되는 삶을 살 때, 풍요로움을 만끽할 때, 
우리는 무기력해지지 않는다. 
수동적이지 않게 된다. 
의존적이지 않고 확고한 삶을 살아간다.


물론 인간이라면 
미지의 지역들로 여행하는 모험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 두려운가. 
내가 걸어가는 그 길의 모래 하나하나에 하느님이 존재하신다. 

길 옆 꽃에도, 풀 잎 하나에도 하느님이 계신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 입자 하나에도 하느님은 존재하신다. 

세상이 풍요로운 것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 풍요로움을 내 안에 가득 채워야 한다. 

왜 배고픔을 두려워하는가.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 
우리는 그저 그 밥 상 앞에 앉기만 하면 된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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