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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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나의 아버지시다.
소박하고 순결한 마음이라면
참새의 둥지나 토끼굴 하나를 눈여겨보더라도
거기서 주님의 전(全)설계도의 윤곽을 어림잡기에 넉넉합니다.
하물며 어느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오고 우리 인간에게서 오는지를
주님이 모르실 리 없습니다.
우리도 날새의 둥지를 보면 감탄합니다.
하늘 나라의 상징치고 우리에게는 그것보다 더 멋진 것이 또 없습니다.
영원으로부터 주께서 정해 주신 나라,
우리의 존재를 그곳을 향해 띄워보내신 그 나라를
한 개의 새둥지에서 떠올리고도 남습니다.
새둥지, 산짐승의 굴, 집, 사랑, 어떤 안정감, 평화, 함께 있다는 기쁨, 잘되기 바라는 마음,
연대감, 사해동포 사상...,
이 명상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와 우리가 감관으로 느끼는 것이
얼마나 다르다는 말입니까?
똑같은 것들 같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늘나라의 비유들은
우리 본성에 그토록 깊은 메아리를 남기는 것들이어서
진정으로 기쁜 마음들에서 그 비유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중의 누가 지어낸 이야기들같이 귀에 익게 들리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원설계도는
주님이 만드신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만든 것입니까?
님께서 우리를 님 위해 지으신 것입니까?
아니면 님을 뵙기까지 마음이 찹찹하지 못한 것이 우리입니까?
"주의 기도"란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기도를 간추린 기도입니까?
이런 궁리들을 하다보면,
주님이 설령 존재하시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주님을 어디선가 만나뵙지 않았을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마저 듭니다.
주님의 부르심과 제안이 먼저 있었는지,
아니면 혹시라도 우리가 말씀드린 다음에야 부르심을 내놓으셨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고 싶으셨는지,
아니면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되고 싶었는지 분간을 못 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고백하셨는지,
아니면 사랑하고픈 마음을 우리가 먼저 느꼈는지 따질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하느님,
창조의 하느님,
교회의 하느님,
사람들의 하느님은 결국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앞서 가신 주님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아나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특징을 한마디로 특정지운다면 나는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님은 나보다 앞서 가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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