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 헌신의 길과 지혜의 길은 결국 같다 738, 737

은가루리나 2018. 5. 2. 10:22


pp181-182


736.  박따(Bhakta)는 브라흐마즈냐나(Brahma-Jnana)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 박따는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는 인간으로서 신을 깨닫는 것으로 만족해한다. 

신을 어머니로서 혹은 슈리 크리슈나, 챠이타냐 데바와 같은 화신으로서 파악하는 것으로 

만족해하고 있다.


신의 가시적인 계시, 즉 신의 무한한 형상에서 나온 한 형태를 파악함으로써 흡족해하고 있다. 

그는 그러므로 삼마디(三味, Samadhi)속에서 그의 에고 전체를 제거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충분한 개성을 남겨두어 인간으로서의 신의 비전을 만끽하려 한다. 

그는 그 자신이 설탕(神)이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설탕을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737.  나의 영원한 어머니(神)는 자신이 바로 베단타에서 말하는 브라흐만(神)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낮은 자아의 소멸을 통해서 얻는 브라흐마즈냐는 

그녀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올바른 식별력(Vichara)을 통해서 브라흐만을 알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에 대한 박띠를 통해서도 이는 가능하다.



박띠의 정수는 무엇인가. 


그녀에게 모든 걸 바치는 것이다. 

열렬한 사랑으로써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다. 


선 이런 식으로 내 영원한 어머니(인격적인 신)에게 접근하라. 

너의 기도가 정말 간절하다면 어머니는 틀림없이 너의 기도에 응답할 것이다. 


그리고 또 그녀의 비인격적인 모습을 깨닫고자 한다면 기도하라. 

어머니는 전능하시기 때문에 너의 기도를 기꺼이 들어주실 것이다. 

너는 삼마디 속에서 그녀의 비인격적인 모습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는 브라흐마즈냐나를 통해서 깨닫는 신의 보편성과 똑같다.